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9화 (19/726)

#019화

튜토리얼 사건이 터지고.

처용과 새내기들은 다음 날 간단한 추가 조사를 마치고서야.

각자 자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협회장실 내부에서는 협회장과 백호, 태민이 후속 조치에 대해 회의중이었다.

“일단 공식적으로 마인들은 부장님과 저희 팀의 헌터들이 잡아낸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태민의 보고를 듣던 협회장이 태민을 보며 질문했다.

“한처용에 관한 기록들은요?”

“튜토리얼에 있었던 조사 기록들은 최고등급 비밀로 처리했습니다.”

협회에 있어 최고등급 비밀이란.

협회장을 제외한 그 누구도 열람이 불가능하단 뜻이었다.

협회 고위 간부인 임원들조차도 말이다.

“현장에 있던 새내기들도 나름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정훈을 포함한 병아리 3인은 길드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모두 협회에 소속되기를 원했다.

“아마 한처용 헌터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정훈의 경우는 처용에 대한 비밀 유지 서약서를 받을 때.

은인에 대해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었고.

처용을 따라 협회에 있고 싶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었다.

덕분에 처용에 대한 비밀을 유지하기가 수월했고.

협회장 측으로 신입 헌터들이 새로 늘어났다.

“저희 쪽의 사람들이 늘어난 것은 좋지요.”

태민의 말을 들은 협회장이 기분이 좋은 듯 웃어 보였다.

“그래도 말이유 형님, 그 양반들이 분명 파볼 텐디?”

백호가 말하는 이들은 협회 임원.

그중에서도 집행반의 뒤를 봐주는 이들을 뜻했다.

“허허, 그 늙은 돼지들은 미치도록 궁금해하겠지.”

협회장이 임원들을 생각하며 비웃었다.

처용이 집행반 헌터를 때려눕힌 일까지 있었으니 이미 그들에게 한번 노출이 되었지만.

협회장이 작정하고 모든 기록을 숨겨버렸으니.

뒤늦게 조사한다고 해도 알아내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작정하고 숨기면 오히려 더 안달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꼬리를 잡을 수 있겠지요.”

태민이 말에 협회장이 답했다.

특히 마인에게 협력하는 배신자는 무슨 수를 써서든 처용에 대해 알아내려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자신들의 계획을 전부 망쳐버린 적에 대해 파악해야 했으니까.

분명, 마인측에서도 배신자를 닦달할 것이다.

협회장은 처용이라는 미끼를 놓고 놈들을 흔들 계획이었다.

임원들을 주의 깊게 잘 주시하고 조사한다면.

결정적인 증거는 무리더라도 수상한 정황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저희에게 생긴 히든카드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태민의 말대로 협회장 파벌에 있어 처용의 합류는.

유리한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조커와도 같았다.

“문제는 그 히든카드가 온전히 우리 편이냐는 것인데…….”

백호의 말대로 한처용이라는 히든카드는.

사용자의 뜻대로 조종당하지 않는 마검(魔劍)과도 같았다.

“그 녀석 앞에서는 협조하는 척했지만, 솔직히 나는 반반이우.”

처용이 해줬던 말들은 충분히 신뢰성이 있었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한처용이라는 인물을 온전히 믿는 것은 별개였다.

백호는 오랜 시간 헌터로 싸워온 만큼.

헌터들이 그리 정의롭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백호가 볼 때 처용은 무언가의 이득을 목표로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까.

“분명, 뭔가 진짜로 원하는 건 따로 있는 것 같은데…….”

백호가 손가락을 까닥이며 생각하듯 인상을 썼다.

“우리 역시 이득을 위해 그를 포섭한 거지 않느냐?”

“그건, 그렇지만…….”

협회장 역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처용을 포섭한 것은 맞으니까.

“백호야, 내가 더러운 정치판에서 여러 군상을 만나 봤잖느냐?”

“돼지 군상들 말이우, 형님?”

“하하, 사람들이라 말하기엔 창피한 이들이 많긴 하더구나.”

짧게 웃어 보인 협회장이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름 사람을 보면 대충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보여. 감이랄까?”

“……형님의 감에 한처용은 어떻수?”

백호는 오랜 시간을 함께한 협회장의 안목은 믿었다.

그는 더러운 정치판 속에서도 현명한 판단을 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복수.”

“음?”

“복수……입니까?”

협회장에 입에서 예상하지 못한 단어가 나오자 백호와 태민이 의문을 표했다.

“그자가 마인들을 잡는 이유가 정의의 목적이 아니라는 건 알 거야.”

“그건, 그런 거 같수.”

마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그렇다 쳐도.

마인들에게 협력하거나 옹호하는 이들에게까지 거대한 적개심을 드러냈었다.

마치, 그들이 더 용서가 안 된다는 듯 말이다.

“백호야, 옛날에 강원도에서 백화점 무너진 거 기억나냐?”

“들어본 것 같…… 아! 그거 마인들이 테러한 거잖수!”

협회장의 말에 옛날 기억을 더듬던 백호가 기억난 듯 말했다.

과거 백화점이 지진으로 무너져 많은 사람이 다친 일이 있었다.

마치 이번에 전철역이 무너진 사건처럼…….

그 일을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마인의 흔적이 나왔었지만.

그 마인이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고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해 어영부영 넘어가 버렸다.

“한처용에 대해 조사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거기서 사망했더라.”

“흠.”

협회장의 말에 백호가 손깍지를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 봐도 마인들의 테러가 확실한 일이었어.”

“그리고 그 사건을 조용히 덮어버렸지, 그 망할 돼지들이.”

협회장의 말에 백호도 기억이 난다는 듯 읊조렸다.

“그럼 한처용의 아버지가 마인들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그저 가설일 뿐이지만요.”

협회장은 태민의 말에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듯 말했지만.

“가설이라도 그가 그동안 혼자서 행동한 게 설명이 됩니다.”

태민이 처용을 지켜봤을 때 그가 보여준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협회장이 말한 과거의 사건을 종합해 봤을 때.

무언가 맞아떨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 왜 갑자기 저희에게 협력을……?”

태민은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그런 분노와 복수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처용이.

왜 자신들에게 협력하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은 많지요.”

협회장은 처용과의 대화를 다시 상기하며 이야기했다.

“그의 말대로 마인들의 세력이 상상 이상이라 더는 혼자서 대항하기 힘들었을 수 있고.”

“하긴, 나조차도 놀랄 만한 것들이 많았지.”

베테랑 헌터인 백호에게도 처용이 준 정보들은 충격적이었다.

“아니면 우리에 대해 사전에 파악해 왔을 수도 있고.”

“우리를 말이우?”

백호가 협회장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이상하게 협회장인 나를 경계하거나 의심하는 느낌이 없었어.”

협회장도 따지고 보면 그 사건을 덮은 이들과 같은 부류였다.

복수심과 분노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는 처용이 그런 협회장을 경계하지 않는다?

협회장은 이 부분을 말한 것이었다.

“이 역시 가설일 뿐이지만.”

“끄응, 어렵구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아무리 백호가 단도직입적인 것을 선호한다고 해도.

타인의 과거, 그것도 가족의 죽음과 관련된 일을 함부로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어쨌든, 괜히 의심을 키우지는 말게나, 그가 우리는 도와준 것은 사실이니까.”

“나도 다짜고짜 경계부터 할 생각은 없수. 형님.”

협회장의 말대로 처용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라도 그가 뭔가 도움을 요청하면 최대한 협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협회장의 말에 태민이 수긍했다.

***

“흠. 라이센스가 빨리 나온 건 좋은데.”

처용이 왼손 검지에 끼워진 반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협회에서 나오기 전 태민이 건네준 정식 라이센스였다.

[한국 헌터 협회 / B급 한처용]

처용이 라이센스에 마나를 부여해 작동시키자.

협회의 간부를 상징하는 마크와 함께.

처용의 라이센스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나 53레벨인데…… 뭐 상관없으려나?’

처용에게 B급 라이센스가 지급된 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 아무리 부상을 입어 처용의 레벨이 낮다고 해도.

처용은 C급 헌터라고 할 수 없는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처용이 요구했었던 던전의 단독 조사 권한.

협회 간부로 취급되는 이들만이 가진 이 권한은 B급 이상부터였다.

처용의 라이센스는 이런 조건들이 합쳐져 나온 결과였다.

추가로 B급은 경험이 많은 헌터로 취급되는 만큼 여러 자유로운 행동이 가능했다.

‘김태민 과장하고 같은 간부의 권한 때문이겠지.’

문제는 없다고 판단한 처용은 외진 곳으로 이동했고.

태룡전의 열쇠를 사용해 게이트를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했어요. 계승자.]

태룡전으로 돌아온 처용을 보살이 반겨 주었다.

[이번엔 제법 무리했습니다. 괜찮은 건가요?]

“당분간 신력을 무리해서 쓰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던 처용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분은 어디 가셨나요?”

[알아볼 것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흠, 그런가요?”

웬만한 일이 아니면 성지를 비우지 않는 이들이었기에 의문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 있다면 자신에게도 알려줄 것이기에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열쇠를 잠시 저에게 주시겠어요?]

보살이 손을 내밀며 말하자.

“마침, 아주 좋은 소식이네요.”

처용은 망설임 없이 보살의 손에 태룡전의 열쇠를 건네었다.

미래의 지식이 있는 처용은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웃으며 열쇠를 받아든 보살이 눈을 감고 열쇠에 신력을 불어넣었다.

연꽃과 같은 보살의 연분홍빛 신력이 열쇠에 깃들었고.

[보물전이 개방되었습니다.]

처용은 그 결과를 시스템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다시 봐도 신기합니다. 저와 같이 성장하는 성역이라니…….”

태룡전은 계승자로 선택받은 사람이 성장할수록.

같이 성장하는 신기한 성역이였다.

그 원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미래에서는 저희가 알려주지 않았나요?]

“스승님께서 ‘말할 수 없다’라고 하셨었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보살의 눈과 고개가 슬픈 듯 아래로 내려갔다.

“제가 알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요?”

[계승자에겐 미안합니다.]

처용은 보살의 말을 듣고 더는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닌 ‘말할 수 없다’라고 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처용은 깔끔하게 단념하고 태룡전의 열쇠를 다시 받았다.

“이젠 뭘 거추장스럽게 들고 다닐 필요가 없겠네요.”

처용이 허리춤에 있는 검을 풀어 손에 들었다.

협회에서 무기가 없는 처용에게 임시로 쓰라며 빌려준 C급 무구였다.

처용이 검을 들어 허공에 집어넣듯 아래로 내리자.

놀랍게도 작은 게이트가 열리며 검이 빨려 들어갔다.

보물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아공간’ 능력이었다.

보물전이라는 전각 내부에 있는 다양한 물건들을 출납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간단하게 말해 게임 캐릭터의 인벤토리 능력과 같았다.

일반적인 헌터들은 가질 수 없는 계승자만이 지닌 혜택이었다.

이 아공간의 능력으로 헌터들이 지닌 불편함도 해결할 수 있었다.

헌터가 던전을 공략할 때.

장기적인 토벌이 필요한 경우에는 정말 많은 보급품이 필요했다.

아티팩트나 식량, 숙식, 무기 등.

하지만, 전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이 던전이다.

이 보급품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

무기를 정비해주는 대장장이 등 비전투 클래스가 보급반으로서 합류하거나.

내부 공간을 넓히고 무게를 줄여주는 마법 배낭을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처용은 아공간의 기능으로 위의 불편함을 겪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

“보물전을 미리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본래 성좌들과 나눌 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자리를 비웠고 마침 보물전이 개방되었으니 둘러볼 참이었다.

처용이 성좌들이 거주하는 전각을 나오자.

오른편에 긴 직사각형 형태의 새로운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전각의 입구로 다가서자 보물전이라는 이름의 명패가 걸린 대문이 보였고.

-끼이이

처용이 문을 크게 열어젖혔다.

회귀 전에는 악신들과의 싸움에 대비해 많은 아티팩트와 무구들을 모았었고.

보물전이라는 이름답게 다양하고 많은 무구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허전하네.”

무기와 아티팩트가 가득 진열되어 있어야 할 전시대는

좀 전에 처용이 집어넣은 C급 검 외에는 비어있었다.

다양한 재료와 광물이 가득해야 할 창고와 선반 역시 텅텅 비었다.

이제 막 개방된 보물전의 내부는 말 그대로 허전했다.

“천천히 채워 넣으면 되겠지.”

내부를 둘러보며 안쪽으로 이동하자.

보석을 세공하는 작업대와 대장간 화로 등의 시설이 보였고.

“그분들도 다시 모셔오면 좋겠는데.”

처용이 불 꺼진 화로를 만지며 회상하듯 중얼거렸다.

지구가 멸망하고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났을 당시.

이 자리를 지키던 이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싸우는 많은 영웅들의 무구를 만들었고.

가르침을 청하러 왔던 처용에게 거리낌 없이 지식을 나누어줬던 이들.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처용은 마치 그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안부를 전하듯 말했다.

생각을 마치고 보물전 내부를 다 둘러본 처용이 밖으로 나가자.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 것 같구나. 제자야.]

아까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여래와 미륵이 처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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