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8화
“뭐 이런저런 이유로 회복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처용은 굳이 여기서 더 설명하지는 않았고.
남은 사람들 역시 궁금한 게 많아도 더 묻지는 않았다.
특히, 현아와 태민은 처용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는 당장 회복하기 힘든 부상 상태에서 자신들을 구해준 셈이니까.
“너무 큰 은혜를 입었네요.”
태민 역시 현아의 말에 공감했다.
심지어 자신은 그를 수상한 자라 판단하고 의심했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감사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처용의 말대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처용이 없었다면?
자신과 현아는 물론 새내기들까지 전부 확실하게 죽었을 것이다.
절대로 운만으로는 빠져나갈 수 있는 위기가 아니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돕겠습니다.”
태민은 적어도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 처용을 도와줄 생각이었다.
“일단은 제가 앞서 요구한 것들 외에 과장님만이 해주실 수 있는 일이 있네요.”
처용이 태민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과장님 클래스가 탐정이라고 하셨었죠?”
“네.”
“그렇다면, 조사나 분석에 특화된 비전투 클래스가 맞나요?”
처용은 통찰의 눈으로 이미 파악한 사실이었지만.
“네, 좀 특이하죠?”
그의 말대로 나름 흔한 대장장이나 인첸터들과 달랐다.
희귀한 계열의 비전투 클래스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그런 특이한 힘을 가졌기에 남들은 하지 못할 일을 할 수 있었다.
“협회 임원들 중 마인에게 협력할 만한 사람들,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따로 조사해 주세요.”
“안 그래도 저 역시 그리 지시할 생각이었습니다.”
처용의 말에 협회장이 동의했다.
“하지만, 제 능력만으로는…….”
태민은 협회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늙은 돼지들을 견제하기 위해 그들을 조사했었다.
그 결과로 몇 가지 비리와 약점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처용이 원하는 것은 일반적인 비리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이전에 그 사람들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인들과 결탁했다는 증거는…… 없었습니다.”
태민이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없는 게 아니라 감추었겠죠. 과장님 능력에서 발견되지 않도록.”
처용은 태민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무언가를 감추고 비밀리에 작당모의를 하는 건 마인들이 즐겨 쓰는 수법입니다.”
처용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태민에게 이야기했다.
“그저 의심이 가거나 수상한 정황을 보인 이들만 따로 추려주세요. 본격적으로 파는 건.”
태민에게 말하는 처용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제가 직접 할 테니까.”
동시에 잔혹한 미소가 뒤따랐다.
“도대체 어떻게 하시려고…….”
처용의 미소에서 불길함을 느꼈는지 태민이 궁금증을 표했지만.
“아 폭력적인 짓은 함부로 안 합니다. 그리고 제가 과장님하고 비슷한 능력이 있거든요.”
“저와 비슷한 능력이요?”
처용의 말에 태민은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귀를 기울였다.
“상대의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미륵의 권능.
처용은 통찰의 눈에 대한 능력을 일부만 밝힐 생각이었다.
“상대가 악인인지 아닌지, 더 정확히는 마인의 영향을 받았는지 아닌지 볼 수 있습니다.”
처용의 말을 들은 태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처용의 말대로라면 마인들과 결탁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처용님 능력이라면 꼬리를 잡을 수 있겠군요.”
“아마 마인들의 결계 능력이 담긴 아티팩트나 은폐 계열 흑마법을 사용했을 겁니다.”
마인들의 마기는 보통 마나보다 강한 힘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용은 그것들을 파훼할 많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제가 몸이 온전치 못해서 능력이 완전하지는 않아요.”
“아…….”
“그래서 제가 회복하는 동안 사전 조사를 부탁드린 겁니다.”
처용에게 시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었다.
당장 처용이 의심 가는 협회 임원 하나를 잡고 제대로 털면 찾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처용이 원하는 것은 협회에 퍼져있는 배신자들을 한 번에 적출하는 것이었다.
조그마한 암세포 하나라도 남길 생각이 없었으니까.
“이 부분은 과장님이 힘 좀 써주십시오.”
협회장의 말에 태민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맡겨주십시오. 처음부터 하나하나 제대로 재조사하겠습니다.”
처용의 합류로 그간 답답하게 막혔던 일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전철역에서 나타난 몬스터들 혹시 해부라던가 조사는 해 보셨나요?”
처용의 말에 태민이 답했다.
“C급 몬스터 블랙 독이었습니다만, 보스 몬스터는 처음 봤습니다.”
“나 역시 헌터 생활 오래 했지만, 그 보스 몬스터는 처음 봤다네.”
태민의 의문에 백호 역시 동의했다.
블랙 독이라는 몬스터는 종종 봤고 그 보스 몬스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철역에서 나온 보스 몬스터는 이들이 처음 보는 개체였다.
“뭐, 처음 보시는 게 당연할 겁니다.”
처용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도 놈들이 마수를 직접 운용하는 건 처음 봤거든요.”
처용은 마수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했다.
이것만큼은 이들에게 미리 알리고 경각심을 크게 키워놔야 했다.
“마수? 몬스터하고는 다른 건가?”
헌터 경험이 높은 백호조차 모르는 모습을 보고 일행들의 궁금증이 커졌다.
“마인들이 마나와는 다른 마기를 쓰는 건 알고 있으시죠?”
“그 시커먼 기운? 그걸 마기라고 하는구만.”
마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이라 그들에 대해 잘 알려진 것이 없었다.
“마수는 몬스터를 마기에 오염시켜 진화시키는 실험의 결과물입니다.”
“흠, 일반적인 몬스터와 비교하면 어떤가요?”
처용은 협회장의 질문에 그를 바라보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적어도 2배 이상 강해집니다. 그리고 헌터들처럼 경험이 쌓일수록 점점 진화합니다.”
“그런…….”
처용의 말에 협회장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우리처럼 레벨이 오른다는 소리인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염병하는구만.”
특히, 백호에게는 처용의 말이 다른 이들보다 더욱 심각하게 느껴졌다.
몬스터가 경험을 얻고 성장할 수 있다?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현아 씨는 직접 보셨을 거예요.”
“혹시, 그 검은 들소?”
처용의 말을 들은 현아는 자신의 화염 마법을 뚫은 들소가 바로 떠올랐다.
“그게 D급 몬스터 회색 들소를 베이스로 만든 마수입니다.”
“아…….”
처용의 간단한 비교에 현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작 D급 몬스터가 마수가 되었는데 자신조차 버거워할 정도의 괴물로 재탄생했다.
“흠, 자세히 좀 말해주겠나?”
“그게, 오늘 있었던…….”
현아가 금일 있었던 튜토리얼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해 주자.
마수가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번 심각하게 와닿았다.
“처용 님은 그것들하고 혼자서 싸워오신 겁니까?”
“뭐, 그렇죠.”
태민의 말에 처용은 마치 일상이었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남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겨우 참아낼 정도였다.
제아무리 처용이 에픽 클래스를 지닌 헌터라도.
이런 싸움을 혼자서 감당해왔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그 마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재료’가 헌터들일겁니다.”
처용은 충격에 빠진 이들에게 폭탄을 또 하나 던졌다.
“지, 지금 뭐라고!”
“그게 사실입니까?”
백호와 협회장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동시에 현아와 태민은 무언가 떠오른 듯 표정이 굳었다.
“제물을…… 가져오라고, 그렇게 말했었죠? 그 마인이.”
“마녀도 그렇게 말했었지…….”
튜토리얼 사건을 직접 겪은 현아와 태민이 기억을 더듬듯 중얼거렸다.
현아와 태민이 처용의 말에 증인이 되어 신뢰성을 높여주었다.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마수 제작에 헌터들의 목숨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튜토리얼을 습격한 이유도 그래서일 겁니다. 이렇게 대범하게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 했지만.”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니로군요.”
협회장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참담한 표정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튜토리얼 정보를 협회의 누군가가 마인들에게 넘겼을 테고요.”
“……!!”
처용은 이들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켜줬다.
내부 배신자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들인지 말이다.
“과장님에게 왜 그놈들을 조사해달라고 했는지 아시겠죠?”
“후, 너무나 심각하게 와닿는군요.”
태민 역시 한숨을 크게 내쉬며 참담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이게, 제가 마인에게 협력하는 놈들에게 자비를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협회 헌터를 제물로 바친 이들이니까요.”
처용의 말을 들은 일행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감히, 내 식구들을!”
특히, 백호는 굵은 눈썹이 도드라지게 구겨질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터질 듯한 근육에 힘줄이 도드라지는 것으로 보아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보였지만.
그는 베테랑 헌터답게 상황과 기회를 파악할 줄 알았다.
“자네!”
백호가 처용을 바라보았다.
“우리를 선택해 준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네!”
백호의 눈동자가 불타오르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백호 헌터님이 도와주신다면 정말 든든하죠.”
처용은 그 눈빛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대로 잘 풀린 것 같네.’
협회에서 시작하는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린 듯싶었다.
마인들과 마수에 대한 경각심, 그리고 처용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이젠 백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시선을 끌어줄 것이다.
처용은 분노한 호랑이가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은밀하게 준비를 마치고 움직일 것이다.
“혹시라도 더 알아낸 게 있으면 알려 드리죠.”
처용이 미소를 보이며 협회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협회장님.”
협회장은 처용의 손을 강하게 마주 잡았다.
“협회는 오늘의 은혜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는 협회장에게 있어 처용의 협회 합류는 단순 전력 증강만이 아니었다.
그가 건네준 정보만 해도 협회의 저력으로는 절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가 앞으로 할 일들과 해줄 일들은 분명 크게 도움이 될 것이었다.
협회에 있어서도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도 말이다.
협회장과 처용이 악수를 나누는 사이 태민은 처용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게…… 이 사람만의 정의구나.’
태민은 처용이 에픽 클래스라는 것을 부정했었다.
그의 잔혹함과 손속을 두지 않는 모습에 S급 헌터들의 정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 처용을 보며 다른 S급 헌터들과는 다른 그만의 정의를 볼 수 있었다.
‘S급 헌터는 세계를 위해서 정의를 실현하는 이들.’
처용은 세상을 위해 마인들과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다.
이것이 그가 세상을 위해 싸우는 처용만의 신념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을 위해서 가장 위험한 게이트를 막는 커맨더처럼 말이다.
***
‘후, 그래도 협회에서의 출발은 나쁘지 않구나.’
처용은 협회장실에서 회의가 끝나고 임시로 배정해준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좋은 출발 아니더냐?]
‘생각보다 변수가 많아서 걱정했습니다만, 오히려 좋게 끝났습니다. 스승님.’
[확실히 음지에서 움직인다는 판단은 나쁘지 않구나, 네가 다른 대신들의 눈에 띄어도 좋을 게 없고.]
‘저 역시 그들을 의식해서 내린 판단이었습니다.’
처용이 의식하는 주적은 마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보다 더 위험한 이들은 바로 배신한 성좌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별다른 이변은 없느니라.]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변수는 발생했으니까.
그 변수로 인해 너무나도 고단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고단하고 힘들었던 만큼 얻은 것도 많은 하루였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늘 하루만 참아 주십시오. 내일은 자택에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태민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
“오히려 좋은 시설을 공짜로 쓰게 해 주셨는데요.”
진상조사와 보안 문제로 처용과 새내기들은 바로 돌아갈 수 없었다.
대신, 이들을 배려해 협회에서 빌려준 숙소는 웬만한 호텔 저리가라였다.
“아 처용 헌터님하고 튜토리얼 참가하신 분들 저녁을 못 드셨었죠?”
“저녁…….”
반신에 도달한 처용은 굳이 뭘 먹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지만.
회귀를 하자마자 전철역이 무너졌고 성좌들을 찾아가는 등.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냈기에 ‘식사’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식사’라는 단어 자체도 방금 막 떠올렸으니까.
생각해보니 입에 음식이라는 것을 넣어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일단 치킨을 주문해 놓기는 했습니다만…….”
“…….”
-우뚝.
태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용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치킨이 뭐였지? 하고 찰나의 순간 기억을 더듬었고.
동시에 처용의 눈이 번쩍 띄었다.
“과장님은 정말…….”
“……?”
“좋은 사람입니다!”
“네?”
처용의 말은 100% 진심이었다.
태민은 자신을 칭찬하는 처용을 보며 당황했다.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잠시 의문을 가진 태민이었지만.
한국인 중에 치킨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으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마 지금쯤 배달이 왔을 겁니다. 어서 가시죠.”
숙소에 와서 치킨을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는’ 처용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으드득! 와드득!
“…….”
닭튀김을 먹는다기에는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
처용과 마주 앉아 있는 현아와 태민은 이 소리를 황당하게 듣고 있었다.
보통 뼈 있는 치킨은 살만 먹고 뼈는 버려진다.
하지만, 처용의 입안에 치킨 조각이 들어가는 순간.
나오는 것은 없었다.
처용이 무려 치킨을 뼈째로 씹어먹고 있었으니까.
“며칠 굶으셨어요?”
현아가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
방금 닭다리 하나를 뼛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없앤 처용이 말했다.
“며칠 동안 뭘 제대로 먹은 적은…… 없네요. 생각해보니까.”
사실, 며칠 정도가 아닌 수십 년 단위였지만.
처용의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안타까운 표정이 절로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상상되는 것들은 많았다.
그는 혼자서 마인들과 싸워왔던 만큼.
많은 고난을 겪었을 테니까.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더 황당한 건 처용이 ‘은혜’라고 까지 말할 정도였다.
그렇게 말한 처용이 다시 치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맛을 느끼는 데 수련할 때 보다 더 집중한 듯 보였다.
바삭한 튀김옷과 기름기가 가득한 닭고기.
그리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닭뼈까지!
[맛있느냐?]
미륵이 정말 궁금한 듯 질문해 왔다.
[너 혼자 먹으니 맛있겠구나?]
‘혼자 아닙니다. 여기 사람들 있잖아요?’
[에라이, 빌어먹을 녀석!]
‘지금만큼은 빌어먹을 녀석이 되겠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수십 년 만에 맛보는 치킨이니.
미륵에게 빌어먹을 놈이라 불려도 상관없었다.
[마침 계승자에게 휴식이 필요했으니 다행이군요.]
[오늘 하루 고생이 많았으니 푹 쉬거라.]
‘하루 제대로 보답받는 것 같습니다. 하하.’
처용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 보면.
지구가 멸망하고부터는 거의 수십 년 동안 처절한 싸움을 하며 전장만을 돌아다녔다.
당연히, 음식이라는 것을 입에 넣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로 입안에 들어갔던 것들은.
적을 베어내며 쏟아지는 피와 살점 파편, 무기가 부서지며 퍼지는 쇳조각 등.
죽음의 맛이 느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었으니까.
그런 것들이 입안에만 맴돌다가.
수십 년 만에 다시 치킨을 맛본 것이다.
-탁! -치이이
콜라의 탄산이 입안의 기름을 싹 몰아내며 목으로 넘어갔다.
“크으으!”
동시에 표정을 시원하게 구긴 처용이 청량감을 표현했다.
‘지구를 지켜야 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군요.’
처용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진담에 마음이 더 기울었다.
처용에게 있어 오늘 고생한 하루의 보상을 제대로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