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15화 (15/726)

#015화

처용은 마녀의 목에 처용의 칼날이 닿은 순간 승리를 확신했지만.

-카앙!

“……무슨?”

목을 공격했다기에는 너무 묵직한 소음.

거짓말처럼 마녀의 목에 닿은 검은 마녀의 머리를 날리지 못했고.

허무하게 부러져 버렸다.

검기를 두른 검이니 마녀의 머리를 날려 버렸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마녀의 목 부근을 불길한 검은 기운이 감싸며 보호했다.

검은 기운은 빠르게 퍼져 나가더니 마녀를 보호하듯 둥글게 감쌌다.

동시에 보호막 안쪽에서 마법진이 그려졌다.

처용의 앞에 펼쳐진 악의가 넘실거리는 기운은 마녀의 것이 아니었다.

마녀의 마기보다 더욱 상위의 기운, 악신의 마기였다.

대상을 보호하고 강제로 이동시키는 악신의 권능 중 하나로.

마음에 드는 병사에게 내리는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권능은 S급 마인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처용은 아직 A급 마인인 마녀에게 이 권능이 걸려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만큼 마녀를 높게 평가한다는 거냐!’

처용은 이 권능을 사용하는 악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마녀에게 가호를 내린 ‘거대한 어둠’이라는 이명을 쓰는 악신.

상위 악신 중 하나이자 절망의 대악마라 불리는 자.

“바알!!!”

-쿠쿵!

처용이 울부짖으며, 부러진 검에 검기를 실어 내리찍었지만.

보호막에 실금만 갔을 뿐 부수지는 못했다.

‘신격을 조금만 더 회복했어도!’

바알의 권능이 작동하기 전에 보호막을 부수는 것은 지금 처용에게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항마의 화신을 사용했기에 더 신력을 쓰면 위험했다.

아직 신격을 완벽하게 회복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더 무리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길 수 있었다.

보호막에 속에 쓰러져 있던 마녀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고.

“커, 커흐윽. 아쉬워서…… 어쩌냐? 크, 크크킄.”

자신의 상황을 빠르게 파악한 그녀가 처용을 보며 비웃었다.

“다음……엔, 반드시 죽여주마!”

처용은 비웃는 마녀를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이 권능을 부술 방법은 없다. 하지만…….’

마녀를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처용은 마법진 속으로 사라져가는 마녀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건네었다.

처용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주변에 들리지 않게 조용히 속삭이자.

비웃음으로 가득하던 마녀의 얼굴이 핏기가 가시듯 싸늘하게 굳어갔다.

처용을 바라보는 두 눈에 분노와 살의가 사라졌고.

붉은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마녀는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어둠 속에 잠겨 사라졌다.

처용이 마녀에게 마지막으로 전했던 한 마디.

-재미있었어. Bro.

친구에게 인사하듯 가벼운 말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마인들, 특히 상급 마인들에게는 엄청난 경각심 속에 각인된 말이었다.

섀도우 헌터들의 수장.

입 부분만 비어있는 흑백색의 하회탈 반쪽 가면을 쓴 광대.

웃을 때 드러나는 금색으로 번쩍이는 이빨들.

영화에서 나온 빌런의 명칭과 같은 ‘조커’라는 이명을 쓰는 정체불명의 헌터.

그가 입버릇처럼 내뱉는 말이었다.

처용은 예상했던 정보를 확인할 겸 이 말을 했던 것이었다.

마녀가 이 말의 의미를 몰랐다면 그저 헛소리로 들었을 것이지만.

마녀의 반응을 볼 때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내가 각성하기 전부터 이미 싸우고 있었던 건가?’

마녀가 섀도우 헌터를 알고 그놈들에게 분노한다는 건.

이미 그들과 여러 번 싸움이 오갔다는 것이었다.

마녀가 살아 돌아가면 처용에 대해 분명히 알릴 것이고.

처용을 섀도우 헌터로 오해한 마녀의 시선을 완전히 그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물론, 마인들이 머저리들도 아니고 완전히 속아 넘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혼란을 주어 시간을 벌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마녀의 도주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었을 뿐이었다.

“하…….”

마녀와의 싸움이 완전히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처용이 한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더 빠르게 힘을 되찾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목표였던 마녀의 사살은 실패했지만.

마인들이 말하는 실험과 제물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처용 헌터님! 무사하십니까?”

일행들이 C급 마인을 처리했는지, 정훈이 처용을 부르며 다가왔다.

“마인은 처리했나요?”

그들이 마인을 처리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 네. 죽어 버리긴 했지만…….”

“잘하셨습니다.”

새내기들이나 협회 직원들은 몰라도 정훈을 살린 것은 다행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도 구한 셈이니 협회에 신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태민은 몰라도 현아는 처용을 믿는 듯 보였으니까.

‘일단 윗선이 누구인지를 좀 알아야겠어.’

태민에게 명령하는 윗선이 누구냐에 따라 처용의 행동이 달라질 것이었다.

알 수 없는 분노와 살의에 휩싸였을 때.

마인들을 변호하는 규정을 만든 이들을 찢어 버리겠다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은 진심이었으니까.

‘이 결계에 대응하는 방법도 미리 준비해야겠어.’

마녀가 완전히 사라지자 어두웠던 하늘이 무너지며 다시 밝아졌다.

동시에 처용의 귓가에 시스템의 음성이 들려왔다.

[업이 정산되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

.

[잃어버린 스텟이 일부 복구됩니다.]

‘이제 53레벨인가?’

처용의 레벨이 단번에 3개가 올랐다.

동시에 힘이 조금 더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헌터들에게 적용된 시스템은 노력과 결과를 판단하여 정산해 준다.

처용이 마기에 오염된 많은 몬스터와 마수까지 처치한 것도 있었지만.

마인들을 죽인 것까지 업으로 정산되었기 때문이었다.

헌터들의 전투 경험치 상승은 몬스터만이 아닌 마인도 포함된다.

반대로 마인 역시 헌터를 죽이면 경험치가 오른다.

싸우면 싸울수록,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더 강해질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마녀까지 죽였으면 아주 좋았을 것을…….’

그녀를 죽이는 것에 성공했다면, 분명 레벨이 더 올랐을 것이다.

아쉬워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만 단념했다.

“마녀는 어떻게 된 겁니까?”

태민이 처용에게 다가와 물었다.

처용이 태민을 향해 한숨을 내쉬며 대답해 주었다.

“도망쳤습니다.”

“도망……쳤다고요?”

“네, 죽여 버릴 수 있었는데 말이죠.”

마녀를 죽이기 위해 무리가 가는 항마의 화신까지 사용했는데 죽이지 못했다.

하지만, 항마의 화신을 더 유지했다고 해도 바알의 방어막은 부수지 못했을 것이다.

처용은 지친 기색을 숨기고 그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면에 태민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녀를 체포하러 나섰던 다른 길드의 A급 헌터들도 그녀를 상대하는데 버거웠었다.

종국에는 A급 헌터 하나가 사망했고 1급 위험인물로까지 지정된 정말 위험한 마인이었다.

그런 마녀가 도망쳤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처용이 마녀와 싸우는 동안 C급 마인과 대치한 일행들은.

마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죽여야만 했었다.

규정을 따지기에는 새내기들과 현아가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

상황이 정리되자 정훈이 처용을 찾아 나섰고 태민과 다른 이들도 뒤따랐었다.

일행들이 처용을 찾았을 때 보았던 것은.

치명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마녀의 위험한 흑마법과.

처용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스킬이 격돌하는 모습이었다.

결과는 놀랍게도 처용의 승리였지만.

그가 마녀의 목을 날릴 때 검은 기운이 그녀를 감싸더니 그대로 마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어찌 된 것인지 처용에게 묻자, 마녀가 도주했다고 말했다.

태민은 협회의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만 처용이 버텨주기를 바랐었다.

아무리 처용이 에픽 클래스를 지녔다 해도.

마녀에는 못 미친다 생각했었으니까.

그런데 처용은 도리어 마녀를 몰아넣고 거의 잡을 뻔했다.

처용은 지친 상태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있었기에 겉모습은 멀쩡해 보였다.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사라지던 마녀와는 대비되는 모습.

일행들이 봤을 때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승리로 보였다.

‘절대 C급 헌터일 리가 없어.’

처용이 마녀를 패퇴시킨 것을 확인한 이상 그는 적어도 A급 헌터였다.

‘정말로 에픽 클래스라고?’

태민은 현아가 중얼거렸을 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고 부정했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다.’

전 세계에서 영웅이라고 불리는 이들인 S급 헌터.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영웅의 모습이 있었다.

바로 세계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롭고 선한 마음이었다.

마인에게 강력한 적대감을 가지고 잔혹한 모습을 보이는 처용은.

다른 S급 헌터들의 정의로운 모습과는 달랐으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시죠. 협회의 지원팀이 곧 올 겁니다.”

생각을 정리한 태민이 일행들에게 말했다.

“다 끝났는데 뒷북치러 오는 건 여전하네요.”

처용이 반 정도 비웃음을 섞어 말했다.

처용이 볼 때, 작금의 협회 꼬라지는 정말 맘에 들지 않았으니까.

태민과 현아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지만 처용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현 상황을 그가 전부 해결한 셈이었으니까.

일행들이 던전 밖으로 나가자 협회의 마크를 단 차량들이 들어서 있었다.

태민과 현아가 앞으로 나아가 그들과 접선했다.

서로 간에 협회 라이센스를 보여주고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아……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구나.’

던전을 빠져나온 처용은 하늘을 보고 생각에 잠겼다.

마녀를 죽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정훈과 협회 직원들을 모두 살린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녀가 나타나기 전, 처용에게 일어났었던 알 수 없는 무언가였다.

갑자기 차오르는 분노와 살의.

반신에 오른 처용조차 제어할 수 없었던 감정의 폭발이었다.

‘태룡전에 돌아가는 대로 알아봐야겠습니다.’

회귀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발생한 일들에도 머리가 아픈 상황이다.

거기에 자신에게 일어난 원인 모를 문제까지 겹쳤으니 한숨이 나왔다.

[그러는 것이 좋겠구나.]

여래 역시 하나뿐인 계승자에게 생긴 이변을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계승자 몸은 괜찮은가요?]

보살이 처용의 상태를 알아보고 그를 적정했지만.

‘당장 쓰러질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조금 피곤하네요.’

당분간은 신력을 쓰기 힘들겠지만, 가벼운 수련으로 몸을 풀면 괜찮아질 것이다.

‘힘을 더 빨리 회복해야겠습니다.’

회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마녀에 이어 바알의 흔적까지 나왔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너는 잘하고 있느니라.]

‘침착하게 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잘 안되네요.’

처용이 성좌들과 대화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지원을 온 협회 헌터들 중 일부가 처용을 둘러쌌다.

아무리 봐도 좋은 의도로 접근한 것이 아니었다.

처용이 생각을 멈추고 하늘을 보던 고개를 돌려 이들을 바라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처용이 낮게 읊조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현아와 태민이 달려 나왔다.

“이분은 적이 아닙니다!”

현아가 중재에 나섰지만, 처용을 둘러싼 이들 중 일부는 무기까지 꺼낸 상황이었다.

“아니 그건 모르지.”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협회의 B급 헌터가 한 말이었다.

“제가 한 말들은 뭐로 들은 겁니까? 이분은 저희를 구해줬습니다.”

“수상한 놈이 구해준 거겠지.”

이들 간의 답답한 대화가 더 듣기 싫었던 처용이 리더로 보이는 헌터를 응시했다.

[이름 : 차인혁]

[레벨 : 73]

[칭호 : B급 헌터, 바다신의 가호]

[클래스 : 검투사]

[특징 : 묵직한 양손 무기 혹은 두 개의 무기를 양손으로 사용하는 전투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스킬 : 강격, 육체강화…….]

“넌 뭐냐?”

처용이 차인혁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나? 협회 집행반 팀장 차인혁이다!”

처용이 코웃음을 치며 비웃듯 마저 물어봤다.

“그래, 집행반 헌터 양반? 이게 무슨 짓이지?”

처용은 협회 집행반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경찰들처럼 사고 현장에 투입되거나 문제를 일으킨 헌터를 체포하는 이들이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실상은 권력자들의 요청으로 개인 경호나 잡일을 처리해주는 집단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지저분한 콩고물들을 얻어먹고 사는 이들이 협회 집행반이었다.

막강한 권력이 뒤까지 봐주고 있으니 눈에 뵈는 게 없는 이들이었다.

그만큼 구성원 거의 전부가 자만심과 권력의 힘에 취해 있는 이들이었다.

마치 처용이 가장 증오하는 순혈자들과 비슷한 부류.

회귀 전에는 이들의 말썽이 문제가 되어 협회가 완전히 개편됨과 동시에 집행반도 사라지게 되지만.

“고작 싱글 헌터가 마녀를 이겨?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차인혁이 말하는 것은 분명 억지였다.

“네가 일부러 마녀를 놓아줬는지는 어떻게 아는데?”

태민이 이들에게 설명을 해줬는데도 자기 멋대로 해석했다.

“좋은 말 할 때 손들고 바닥에 엎드려 당장!”

차인혁이 처용에게 손가락질하며 윽박질렀다.

처용은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둘러싼 여섯 명의 헌터들을 차례로 노려봤다.

마지막으로 차인혁을 노려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가 개처럼 핥아주는 ‘높은 새끼’의 명령이냐?”

차인혁의 표정이 분노로 구겨지기 시작했다.

“나 하나 잡기에…….”

처용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작 사냥개 여섯 마리로는 부족할 텐데?”

처용의 마지막 말이 화룡점정을 찍었는지 차인혁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며 분노를 쏟아냈다.

“고작 싱글 헌터 새끼가 감히!”

누가 말릴 새도 없이 허리춤에서 곤봉 두 자루를 움켜쥔 차인혁이 처용에게 달려들었다.

마녀와의 싸움 때문에 신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상대는 이제 막 B급으로 올라온 애송이다.

거기에 처용을 정말 만만히 봤는지 스킬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이런 오합지졸을 상대로 검기, 아니 마나조차 쓸 가치가 없었다.

처용은 자신의 머리와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곤봉을 맨손으로 잡아채 끌어당겼다.

“어?”

순식간에 무기를 뺏긴 차인혁이 당황하는 순간.

처용이 오른손을 뻗어 차인혁의 정수리를 움켜쥐었다.

“마빡에 힘줘라!”

-쾅!

처용이 차인혁의 머리를 잡아 내려치며 땅에 처박아 버렸다.

“고작 이딴 새끼가 팀장이라고?”

처용이 바닥에 박힌 차인혁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집행반 팀장이 당하자 남은 헌터 다섯 명이 주춤거렸다.

무려 B급 헌터가 순식간에 당했다.

땅에 머리가 심어진 채 말이다.

“또, 화분 되고 싶은 놈?”

땅에 처박힌 차인혁은 죽지 않았고 기절만 한 상태였다.

처용이 일부러 힘 조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협회 직원들이다.

이들을 죽이면 협회와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었기에 ‘일단은’ 죽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 사냥개들이 짖지 못할 정도의 격차를 보일 필요는 있었다.

이딴 놈들에게 휘둘리는 건 극구 사양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처용은 협회의 개차반들을 배려하기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나 체포하겠다며? 그냥 꼬리 말고 튀게?”

처용이 조소를 머금으며 점점 앞으로 다가가자.

집행반 헌터들이 점점 물러났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집행반들이 일으킨 소란 때문에 현장에 출동했었던 협회 헌터들이 몰려들었다.

“저, 저놈 체포해! 팀장님이 당했어!”

집행반 헌터 하나가 선동하자 몰려든 이들이 처용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처용이 바닥에 떨어졌던 차인혁의 곤봉 두 개를 발로 차 들어 올려 손에 쥐었다.

“서열정리 한번 제대로 들어가자.”

말로 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놈들은 역사적으로도 매가 약이었다.

방금 차인혁을 제외하고 처용을 적대하는 협회 헌터 중 B급은 고작 두 명이었다.

아무리 처용이 지쳐있다고 해도 몰려든 헌터 전부를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마인들에게 적용되는 ‘제압’이라는 규정.

처용에게도 이 규정이 해당되기 때문인지 함부로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스킬을 쓰는 게 좋을 텐데?”

처용이 눈앞의 먹잇감들을 바라보는 독사처럼 섬뜩하게 웃어 보였다.

“처, 처용 씨! 여러분들도 그만 하세요!”

더 상황을 지켜볼 수 없었던 현아가 처용과 집행반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구보다도 처용의 무력을 가까이서 지켜본 현아였다.

이들 전부가 덤빈다고 해도 처용을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처용은 그녀와 일행들에게 있어 ‘은인’이다.

은인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분은 적이 아니에요. 제발 그만 하세요!”

“장현아 저것도 같이 잡아들여!”

집행반 헌터의 말에 현아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이들이 이렇게 막 나갈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일촉즉발의 상황 직전.

“어허! 다들 동작 그만!”

돌연 2미터에 달하는 덩치의 남성이 공중에 나타났고.

-쿵!

처용과 협회 헌터들 사이에 있던 현아를 감싸며 내려앉았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남자가 협회 헌터들, 특히 집행반인 이들을 노려보며 윽박질렀다.

단순히 소리를 질렀을 뿐인데도 마치 사자후처럼 공기가 무겁게 울려 퍼졌다.

바바리안처럼 전투 근육으로 꽉 들어찬 탄탄한 육체와.

마치 호랑이 같은 강인하고 사나운 인상에 두텁고 진한 눈썹과 수염을 가진 남성.

처용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자 눈이 살짝 커졌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이름 : 권백호]

[레벨 : 168]

[칭호 : A급 헌터, 드높은 태양의 가호]

[클래스 : 기공투사]

[특징 : 근접 전투 무술에 속성 마나를 더하여 싸우는 유니크 클래스입니다.]

[스킬 : 확인불가, 확인불가……]

헌터가 재능의 벽을 뚫고 100레벨, A급이 되는 순간.

단순 사냥만으로는 레벨을 올릴 수 없게 된다.

시스템의 인정을 받는 업적을 달성해야만, 성장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정말 위험한 재앙급 던전을 공략한다거나 하는 등.

웬만큼 해서는 레벨을 올리기 힘든 것이 A급 헌터였다.

그런데 앞에 나타난 권백호의 레벨은 무려 168이었다.

지금의 마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진정한 강자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의 권백호는 한국에서 무려 2번째로 강한 헌터이자.

한국에서 가장 강한 헌터인 S급 헌터 ‘커맨더’의 동료 중 하나였다.

“권 부장님, 와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상황을 단번에 중지시킨 백호를 향해 태민이 다가왔고.

그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협회에 소속되어 있었구나.’

처용은 백호가 협회와 관련이 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회귀 전, 한국 헌터 협회가 무너질 때, 그가 끝까지 맞서 싸웠었고.

결국, 마인들의 손에 죽었었다.

같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 외에는 개인적으로 크게 아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지금의 처용이 신력을 사용한다고 해도 권백호는 이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백호가 처용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처용은 긴장해야 했다.

좀 전에 협회 직원 하나를 땅에 박아 버렸으니까.

그가 적대적으로 나온다면 태룡전의 열쇠를 써서라도 도주해야 했다.

이윽고 권백호가 처용의 앞에 도달하자.

“미안하네!”

권백호가 처용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지만.

‘흐음? 이것 봐라?’

처용은 속으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나 홀로 계승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