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눈앞이 일렁이며 지구의 것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 펼쳐졌다.
회색빛으로 채워져 있는 들판과 드문드문 보이는 숲.
최하급 던전 잿빛 초원의 풍경이었다.
“와! 신기하네요?”
진아처럼 다른 세계에 대한 신기함과 호기심을 보이는 새내기가 있는 한편.
“조금 무섭네요.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할 때도 있나요?”
혜민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적어도 이 던전은 보스를 잡아도 사라지지 않아요.”
인솔자인 현아가 새내기들을 다독였다.
“자, 미리 정했던 포지션대로 이동해 봅시다.”
현아의 말에 처용과 정훈이 전위에, 혜민과 진아가 후위로 자리했다.
인솔자인 현아는 일행의 맨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처용 씨는 힐러시니까 다른 분들이 다치시면 치료 부탁드릴게요.”
현아가 처용에게 부탁을 했다.
“그렇게 위험한 던전은 아니라고 해도 혹시 모르니까요.”
“네, 힐러라면 다친 분들 치료하는 건 당연히 해야죠.”
처용에게 있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혼쾌히 승낙했다.
과거로 돌아와 재차 받아보는 튜토리얼이 지루하기도 했지만.
병아리들의 반응을 보며 나름 신선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랬었으니까.’
어차피 튜토리얼은 해야 했으니 나름 쉰다 생각하고 편하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김정훈의 재능을 미리 파악해 보기로 했다.
“다른 힐러들은 자존심하고 콧대가 높은데 처용 씨는 다르네요?”
힐러는 파티원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매우 중요한 포지션이니만큼 대접이 좋은 편이었다.
그것을 힐러만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머저리들도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귀족 놀이하는 놈들하고 같은 취급은 사양입니다.”
처용의 말에 현아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새내기들에게 기초를 알려주며 던전 탐사를 시작했다.
“전위는 근처나 가까운 곳을 살피고 후위는 시야를 넓혀 먼 곳을 살피면서 이동하세요.”
새내기들은 현아의 말에 집중하며 주위를 살피고 경계하며 나아갔다.
“이곳은 주로 짐승형 몬스터가 출몰합니다. 흔히 보이는 게…….”
-크르르르.
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낮은 짐승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회색늑대입니다. 습성이나 특징은 저희가 아는 늑대와 비슷합니다.”
2미터가 조금 안 되는 크기의 늑대가 총 다섯 마리.
처용과 정훈이 있는 정면에 세 마리, 좌, 우측에서 한 마리씩 다가오고 있었다.
“진형을 유지하고 전위는 후위를 보호해주세요. 후위는 접근하기 전에 한 방 날려도 좋습니다.”
현아는 새내기들이 당황하지 않도록 침착하게 알려주었다.
새내기들은 경계심을 잔뜩 세우며 늑대들을 노려봤다.
그리고, 이런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여유로운 처용은.
‘어디…….’
[회색 늑대]
[등급 : D-급]
[특징 : 잿빛 초원에 서식하는 토착 몬스터]
[스킬 : 도약 공격]
느껴지는 기운으로 매우 약한 개체라는 것은 알았다.
혹시, 특수한 스킬이 있나 해서 통찰의 눈으로 살펴보았지만.
‘굳이 크게 나설 필요는 없겠네.’
병아리들이 여유롭게 이길 수 있을 정도로 약한 몬스터들이었다.
‘애초에 튜토리얼 던전이니까.’
협회가 바보도 아니고 일반 던전에서 튜토리얼을 진행할 리가 없었다.
병아리들 교육을 위해서는 가장 약한 몬스터가 아니면 위험했으니까.
예상대로 위험한 상황은 일절 없어 보였다.
“파이어 볼!”
마법사 클래스인 혜민이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초급 마법을 사용했다.
혜민의 앞에 농구공보다 큰 크기의 불덩이가 만들어졌고 늑대를 향해 날아갔다.
-쾅!-깨갱!
3마리의 늑대 중앙에 떨어진 불덩이가 터져 타올랐다.
가운데 있던 녀석은 직격을 당했고 화마에 휩싸이며 즉사했다.
초보 헌터라고 해도 마법사의 마법공격은 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동시에 활을 든 진아가 불덩이에 당황하는 남은 두 마리 늑대 중 하나에게 활을 쏘았다.
-깨갱!
나름 집중해서 잘 쏘았는지 늑대가 다리를 맞고 쓰러졌다.
“오! 잘했어요.”
“헤헤.”
현아가 칭찬해주자 웃으면서 쑥스러워하는 진아.
“긴장은 놓지 마세요. 아직 3마리 남았어요.”
현아의 말대로 남은 늑대들이 달려들었다.
“하압!”
매섭게 달려드는 늑대들을 향하는 한 자루의 창이 있었다.
양다리를 벌리고 살짝 굽힌 채, 양손으로 창을 움켜쥔 정훈이였다.
도약하여 습격해오는 늑대 하나가 정훈이 내지른 창에 목이 꿰뚫렸다.
재빠르게 창을 빼내고 그 뒤에 달려드는 늑대에게 다시 찌르기!
초보 헌터라고 보기 힘든 간결하고도 안정적인 창술이었다.
“역시! 전직 특공무술 사범답네요.”
현아의 칭찬처럼, 처용이 보기에도 떡잎이 보이는 새내기였다.
“두 마리 정도는 제가 처리해도 상관없겠죠?”
처용이 현아를 보며 말함과 동시에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처용이 있는 방향에서 습격해오는 늑대 몬스터 한 마리.
병아리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금강역사와 대련하던 처용의 눈에는 너무나 느리게 느껴졌다.
처용은 습격해오는 늑대의 목덜미를 왼손으로 빠르게 낚아챘다.
동시에 바닥으로 살짝 내리쳤다.
-깽!
힘을 빼고 패대기쳤을 뿐인데, 놈은 처용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뼈가 부러지며 즉사했다.
“와 오빠 강하네요! 그런데, 왜 두 마리에요?”
처용에게 순수한 칭찬을 하던 진아가 의문을 표했다.
혜민의 마법에 한 마리, 진아의 화살에 한 마리, 정훈의 창에 두 마리, 방금 처용이 죽인 한 마리.
총 다섯 마리가 맞았다.
“죽은 걸 완벽하게 확인하기 전까지…….”
처용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풀숲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진아가 쏜 화살에 뒷다리를 맞고 쓰러졌던 늑대였다.
자신에게 화살을 날렸던 이를 목표로 조용히 다가와 기습한 것.
처용이 재빠르게 진아의 앞을 막고 팔을 뻗어 늑대를 가로막았다.
“방심하면 안 돼. 특히, 몬스터 상대로는 더더욱.”
늑대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처용의 팔을 물어뜯었지만.
늑대의 등급은 D급 중 최하위.
이런 약해빠진 몬스터에게 처용이 다칠 일은 없었다.
“이놈들은 너를 물어 죽이려고 달려드는 놈들이니까.”
그저, 뇌 맑은 병아리에게 작은 가르침을 주려고 했던 것이었다.
몬스터의 위험성과 잔혹성을 얕보고 안일하게 대하다가.
허무하게 죽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건 추후 일어날 지구의 ‘진짜’ 위기를 대비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때가 되면 굳이 김정훈 만이 아닌 이들 전부가 전력이 되니까.’
아직은 작은 병아리라고 해도 나중에 봉황이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히익?”
진아는 멀리서 늑대를 보고 화살을 쏠 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눈앞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늑대가 보이자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처용이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늑대를 처리하려 할 때.
-와자자작!
“……?”
마치 딱딱한 과자가 바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처용의 팔을 물고 늘어지던 늑대의 이빨들이 부러져나가는 소리였다.
‘아, 강철피부…….’
바위 피부에서 수련을 통해 강화한 처용의 패시브 스킬.
이름대로 피부가 강철처럼 견고해지고 단단해지는 능력이었다.
즉, 늑대는 강도 높은 강철을 있는 힘껏! 물어뜯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부러지고도 남았던 것이었다.
“힐러…… 맞으시죠?”
가장 놀란 모습을 보인 건 현아였다.
나름 고참 헌터이기에 힐러가 체력이 얼마나 약한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상민 씨도 장비 다 빼면, 이빨 자국은 남을 텐데……?”
전철역 붕괴 당시 처용을 도와주었던 C급 탱커 김상민.
아무리 약한 몬스터의 공격이라 해도.
C급의 헌터가 아티팩트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당했다가는 상처가 난다.
처용은 아티팩트도 없고 헌터 전용 무구도 없는 맨몸이었다.
심지어 마법사보다 체력이 약하다는 힐러 클래스였다.
“전투력이 높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좀 놀랍네요?”
처용이 일주일 동안 스텟과 레벨을 일부 복구했다는 점과.
강철 피부에 대해 모르는 그녀로서는 충분히 놀라워할 상황이었다.
“혼자 다니다 보니 제가 체력 스텟이 조금 높아서요.”
처용은 늑대를 대충 패대기치고 어영부영 넘겨 버렸다.
“부럽습니다. 레벨이 오르면 저도 가능할까요?”
의외로 정훈이 처용을 보며 크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방금 같은 무식한 짓은 따라 하지 마세요.”
처용은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그의 미래에 도움도 안 되는 짓거리였으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처용 헌터님은 싱글 헌터라고 하셨었죠? 혹시, 몬스터와 싸우는 팁 같은 게 있나요?”
미래의 재능 있는 헌터와 인연이 생길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창병이라고 하셨었죠? 창은 검보다 사거리가 긴 대신 단점이…….”
처용은 병아리들의 사냥이 끝나고 다시 이동할 때 종종 정훈에게 지식을 알려주었다.
“특공무술 사범이라 하셨었죠? 꾸준히 연마하세요. 가능하면 창과 관련된 다른 무술도.”
그가 빠르게 성장하면 분명 악신들과의 전쟁에 도움이 될 것이다.
현아가 처용의 의견에 긍정했다.
“새내기들을 위한 강의 감사합니다. 처용 씨.”
새내기들을 위해 좋은 조언을 해 준 처용에게 현아가 감사를 전했다.
힐러가 다수의 몬스터들과 싸울 정도면 얼마나 단련했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요. 뭐.”
처용의 조언과 더불어 현아의 지시를 잘 따르는 새내기들 덕분에.
튜토리얼 던전 탐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와 잡았어요!”
이 던전에서 나름 강하다는 거대한 회색 들소 사냥이 끝났고.
튜토리얼 과정은 종료되었다.
“다들 돌아가서 일찍 쉬죠.”
“조금 아쉽네요.”
현아의 말에 새내기들은 아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처용은 현아의 말대로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튜토리얼이 끝난 이상 더 남아있을 이유는 없었고.
태룡전으로 돌아가 금강역사들과 수련을 하고 싶었으니까.
그게 당장 더 도움이 되기도 했고 말이다.
그렇게 돌아가려는 찰나.
처용은 갑작스레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자 제자리에서 멈추었다.
“……현아 씨!”
그리고, 급하게 현아를 불렀다.
“왜 그러세요. 처용 씨?”
“당장 외부에 연락하세요!”
“네?”
처용이 느끼고 있는 불길한 기운.
그것은 분명 ‘마기’였다.
“이런 젠장!”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던전에서는 정말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환경이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처용이 알고 있는 특수한 상황 중 가장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새끼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처용의 입에서 험한 말이 튀어나왔고 일행들 모두 놀란 듯 쳐다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어두워진 하늘에 일행들이 당황했다.
마인이 마기를 퍼트려 빠져나갈 수 없는 결계를 만든 것이었다.
‘회귀 전 이놈들이 튜토리얼 던전에 나타났다는 말은 없었어, 그런데 왜?’
처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와 전혀 다른 상황에 황당했다.
[흠, 공간을 오염시켜 격리하는 지저분한 기술이구나. 빠져나갈 수 있겠느냐?]
처용의 시야로 상황을 지켜보던 여래가 물었다.
‘결계를 만든 마인을 죽여 버리면 됩니다.’
여러 가지 방법 중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지저분하게 퍼진 마기의 공간 속에서 놈을 찾아야 했다.
“아티팩트가 작동을 안 해요!”
현아가 통신용 아티팩트에 마나를 주입했지만, 먹통이었다.
“마인의 결계 속에서는 통신용 아티팩트가 막힙니다.”
“마인이요!? 농담은…… 아니신 거 같은데.”
처용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사실.
처용에게 농담하지 말라 말하려 했지만, 그가 전철역 지하에서 마인을 죽였다는 보고가 생각났다.
“어, 어떻게 해요…….”
“일단 함부로 움직이지 마세요.”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새내기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현아 역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중이었다.
처용은 이 상황에서 도주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신력을 두르고 결계 끝으로 돌진하면 뚫고 나갈 수는 있다.’
물론, 혼자서 말이다.
처용은 무사히 빠져나간다 해도 남겨진 이들은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3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 번째는 협회에서 시작하는 일이 꼬이게 된다는 것.
협회 직원인 현아와 튜토리얼 참가자들이 모두 죽고 홀로 살아남는다?
되레 처용이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두 번째, 회귀 전과 다른 행동을 취하는 마인들의 목적이었다.
놈들이 이런 과감한 행동을 취한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도주하면 그 이유를 알아낼 수 없었다.
마지막 세 번째.
“두 분은 일단 진정하세요. 처용 헌터님? 뭔가 방법이 있나요?”
두 새내기 여성을 진정시킨 정훈은 처용에게 방법을 물었다.
처용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훈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속에 감추어 둔 두려움이라는 감정.
두려움을 느낄 텐데도 침착함을 가지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이곳에서 잃기엔 아까운 사람이다.’
미래의 A급 헌터가 될 김정훈.
이곳에서 정훈을 죽게 만드는 것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이 사람들을 돕자.’
마인이 모습을 감추고 있었기에 확실하게 수준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느껴지는 결계의 기운으로 봐서 현아와 동급이거나 조금 더 높은 수준.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막 B급이 된 수준인가?’
놈을 찾기만 한다면 이 상황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처용이 결정을 막 마쳤을 때.
-크르르르
3마리의 ‘회색 늑대였던 것들’이 접근해왔다.
온통 회색이었던 회색 늑대와는 다르게 검게 얼룩진 털들과 붉게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마수는 아니고 그저 잠식당한 것들이네’
마수로 진화하지는 못하고 그저 마기에 오염된 늑대들이었다.
그래도 일반 회색늑대들보다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다.
“파이어 월!”
-화르르륵!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인지한 현아가 행동을 개시했다.
그녀의 마법으로 강력한 열기를 가진 화염의 벽이 주변에 펴졌다.
늑대들이 마기에 잠식되었다고 해도 본래 D등급 최하위 개체였기에 현아의 마법을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늑대들을 잘 막아내나 싶었지만.
-푸슈슛
불타 죽어가던 늑대 하나가 날카로운 무언가를 현아에게 쏘아 날렸다.
“위험합니다!”
돌연 정훈이 현아를 감싸며 가로막았다.
덕분에 현아가 무사할 수 있었지만.
-치치지-
“으윽!”
정훈의 팔에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피부에 보랏빛이 번져가고 있었다.
“안티 포이즌!”
해독 마법을 익히고 있던 현아가 해독을 시도했지만.
“왜? 왜 해독을 못 하는 거야?”
정훈의 팔에 퍼져 나가는 감염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
“이건 독이 아닙니다. 마기가 뭉친 ‘저주’에 가까워요.”
정훈에게 다가간 처용이 신력을 끌어올려 정훈에게 손을 뻗었다.
“제가 하죠.”
처용이 보살의 권능 자비의 손길을 정훈에게 사용하자 황금빛 신력이 피어올랐다.
황금빛이 정훈의 팔에 닿자 보랏빛 기운이 사그라지며 상처가 회복되었다.
“다행이에요. 파티에서 힐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깨닫네요.”
해독 마법이 듣지 않아 크게 걱정했었던 현아가 안심했다.
“으, 감사합니다. 처용 헌터님.”
회복이 잘 들었는지 정훈은 무사했지만, 안심하고 있을 상황은 아니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처용이 양 주먹을 세게 쥐며 한 부분을 노려보자.
-푸르르릉!
처용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대한 검은 들소가 나타났다.
이 던전에서 유독 강한 개체인 ‘회색 들소였던’ 몬스터.
녀석은 덩치가 더욱 커지고 완전히 새까매진 상태로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나타났다.
“마수…….”
[칠흑 들소]
[등급 : C+급 마수]
[특징 : 토착 몬스터 회색 들소가 마기에 인공적으로 오염되어 변종으로 진화한 개체]
[덩치가 더욱 커지고 두꺼운 가죽에는 마법에 저항하는 힘이 생겼다.]
[스킬 : 맹독 숨결, 거침없는 돌진, 마법 저항, 폭주]
문제는 저 들소가 이전에 처용이 죽여 버린 놈과 같은 프로토타입 마수 같다는 것이다.
‘이야, 이번에는 나름 공들였나 보네?’
D등급에 불과한 개체를 C등급 상위까지 성장시켰다.
확실히 이전 전철역에서의 보스몹 마수보다 더 강해 보였다.
“플레임 월!”
현아도 마수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더욱 강하고 화력이 높은 화염 마법을 사용했다.
강력한 열기를 지닌 화염의 기둥이 검은 들소를 덮쳐 태워버렸다.
그렇게 마수를 잘 막아내나 싶었지만, 놈은 마법에 저항력을 가진 특수개체였다.
‘저걸로 못 막아.’
처용이 확신한 대로 녀석은 불길 속에서도 거뜬히 버텨냈고.
-푸르릉!
화염 기둥을 뚫고 일행을 향해 돌진해왔다.
“말도 안 되는…….”
현아는 자신의 스킬 중 공격력이 가장 강력한 마법을 사용했었다.
그런데 D급 던전의 몬스터가 그 공격을 뚫어버렸다.
재빨리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지만, 타이밍이 너무 늦은 듯싶었다.
심지어 녀석에게 다음 마법이 먹힐지도 미지수…….
-쾅!
돌연 처용이 마수를 향해 뛰쳐나갔다.
“처용 씨 위-”
갑작스러운 처용의 행동에 당황한 현아가 위험하다 외치려 했지만.
-쾅!
“험한데……?”
처용은 돌진해오는 마수의 양 뿔을 붙잡아 제자리에 멈춰 세워 버렸다.
‘밀리지도 않았어? 어떻게?’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사실은 들소의 돌진을 받아냈는데도.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푸르!-푸르릉!
마수는 자신의 돌진이 인간에게 멈춰진 것이 믿기지 않은 듯 날뛰었다.
마수의 코와 입에서 맹독이 가득한 가스가 같이 뿜어져 나왔지만.
“아가리 닫아, 이 새끼야!”
선인의 육체를 지닌 처용은 녀석이 내뿜는 독과 마기가 통하지 않았다.
처용은 뿔을 붙잡은 팔과 다리에 힘을 주고 놈을 들어 올렸다.
3미터가 훌쩍 넘는 크기의 들소를 인간이 들어 올리는 모습.
처용은 붙잡은 뿔을 아래로 당김과 동시에 무릎을 빠르고 강하게 들어 올려쳤다.
-빠악!-쾅!
처용의 니킥을 맞은 마수의 머리가 함몰되며 즉사했고 거대한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처용은 마수가 감지되는 순간.
팔다리에 충전 강타를 발동하며 미리 충전해놨었다.
마수의 돌진을 양팔의 충전 강타로 맞받아쳐 상쇄시켜버리고.
강철 피부가 적용된 단단해진 무릎에 충전 강타까지 추가된 니킥!
A급 몬스터에 필적할 금강역사의 방어력도 뚫어낼 정도이니.
아무리 마수의 머리통이 단단하다고 해도 견딜 수 없었다.
“어…….”
처용이 워낙 압도적인 무위를 보여준 탓인지 현아가 말을 더듬었다.
‘힐러 맞아!?’
아무래도 부하의 보고가 잘못되었던 것 같다.
‘아니, 힐 스킬을 사용했어, 힐러가 맞아. 그런데 어떻게?’
고민하던 현아는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날려 보냈다.
“감사합니다. 처용 씨.”
중요한 건 처용이 자신을 포함해 새내기들을 위기에서 구해줬다는 것이다.
현아는 가장 강해 보이는 몬스터가 죽었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긴장 풀지 마세요. 아직 안 끝났으니까.”
처용이 낮은 목소리로 재차 경고했다.
-크르르르!
-크르!
-푸르릉!
이번엔, 새까만 얼룩이 번져있는 몬스터들이 10마리도 넘게 몰려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