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우워어어!
바위로 이루어진 거대한 석상이 주먹을 들어 내질렀다.
내질러진 주먹 앞에는 처용이 있었다.
처용은 자신에게 쇄도해오는 거대한 주먹을 똑바로 마주했다.
팔을 들어 올려 가드 자세를 취하고 바위 피부의 힘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쾅!-치지지.
거대한 주먹이 처용을 강타하자.
마치 바위와 바위가 부딪힌 듯한 굉음이 일어났다.
처용은 바위 피부의 굳건한 방어력 덕에 팔이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골렘과의 힘에서 밀렸기에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났다.
[체력이 1 증가합니다.]
[바위 피부의 숙련도가 증가합니다.]
시스템의 음성을 확인한 처용이 씩 웃었다.
처용은 다음 공격에 대비하며 자세를 살짝 낮추고 가드를 유지한 채 상대를 바라보았다.
[금강역사 – 리오 신]
[등급 : B+]
[특징 : 성역를 수호하는 가디언.]
[특수한 바위로 제작되어 있기에 같은 등급의 개체보다 방어력과 힘이 더 강력하다.]
[수행자들의 지식과 기술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스킬 : 바위 피부, 암권투공, 화염 숨결]
우락부락한 근육을 지닌 상체와 무도복 하의를 입은 거대한 인간 모습의 골렘.
5미터에 달하는 크기와 무시무시한 얼굴, 그리고 화강암과 비슷한 회백색 재질.
성역 태룡전을 지키는 가디언 중 하나였다.
바위 골렘이라 둔해 보이이지만, 생각보다 재빠른 공격이 가능하고.
무투나 장병기술 등 무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거기에 웬만큼 맞아서는 끄떡도 하지 않을 만큼 단단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푸화화화-
심지어는 입에서 불까지 뿜을 수 있었다.
처용은 화염에 직격당하는 것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면서.
골렘의 오른쪽으로 빙 돌기 시작했다.
[선인의 육체의 화염 저항이 증가합니다.]
골렘의 화염 숨결 지속시간이 다 되었는지.
처용을 태워버릴 기세로 뿜어지던 불이 점점 약해졌고 이내 멎었다.
추격해오던 불이 꺼지자 처용이 골렘한테 달려들었다.
골렘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처용을 보며 오른쪽 다리를 뒤로 빼며 살짝 굽혔다.
처용이 접근하자, 마치 발차기를 하듯 굽혀진 무릎이 펴지며 거대한 다리가 쇄도했다.
처용은 공격해오는 골렘의 옆차기를 보며 자세를 크게 낮추었다.
-후우웅!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머리 위로 휘둘러진 듯한 묵직한 소음이 울려왔다.
골렘은 옆차기를 피한 처용을 보며 들어 올려진 다리를 다시 내리며 처용을 내리밟았다.
-콰쾅!
처용이 재빠르게 몸을 굴려 피하자.
지진이 나는 듯한 굉음과 동시에 지면이 울려왔다.
-쿠워워!
골렘이 발을 피해낸 처용을 향해 이번엔 주먹을 내질렀다.
“하아압!”
처용 역시 기합을 내지르며 오른손에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질렀다.
이번엔 방어나 회피가 아닌 공격에 맞서는 공격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처용의 주먹엔 푸른 마나의 기류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콰쾅!
재차 바위와 바위가 강하게 부딪힌 듯한 굉음이 울려왔다.
동시에 골렘과 처용의 거리가 서로 벌어졌다.
[힘이 1 증가합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빠르게 확인한 처용은 다시 골렘을 주시했다.
-쩌적
놀랍게도 골렘의 주먹에 얇은 실금이 번져 나갔다.
반면에 처용의 주먹에는 상처 하나 없었고.
마치 불이 꺼진 듯 푸른 마나의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충전 강타 / 액티브 스킬]
[힘을 모아 강력한 한방을 선사합니다.]
[힘을 오래 충전할수록 공격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최대치로 충전 시 적의 방어력과 방어스킬을 일부 무시합니다.]
- 최대 10초 충전
- 최대 충전 시 방어 관통
충전 강타는 수련을 통해 처용이 되찾은 스킬 중 하나였다.
힘을 강하게 모을수록 더 강력한 한방을 구사하는 스킬이었다.
그냥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는 골렘의 강력한 방어력을 뚫고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때문에, 방어와 회피만 하다가 힘이 최대치로 충전되는 시간에 맞춰 공격한 것이었다.
처용이 씩 웃어 보이며 다시 오른손에 마나를 집중하며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골렘은 손에 난 균열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처용을 향해 덤벼들었다.
-쿠워!
달려오던 녀석이 돌연 자세를 굽혔다.
굽힌 자세를 강하게 펴며, 마치 스프링이 늘어나듯 빠르게 나아갔다.
동시에 몸을 반 바퀴 회전하고 그 회전력을 담은 돌려차기를 처용에게 날렸다.
처용은 좀 전의 펀치와 비교도 안 되는 파괴력이 느껴지자.
정면 승부가 아닌 자세를 낮게 숙이는 것으로 회피했다.
하지만, 골렘은 같은 방법으로 처용이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푸화화!
재빠르게 자세를 고친 골렘의 머리가 처용을 향했고.
고열의 화염이 처용에게 쏟아졌다.
“흐으읍!”
처용은 기합을 내지르며 선인의 육체와 바위 피부에 힘을 더했고.
피부가 타오르는 고통을 견디며 화염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다.
[화염 저항이 증가합니다.]
동시에 화염이 녀석의 시야를 가린 순간.
재빠르게 밑으로 빠져나오며 땅에 손을 짚고 힘을 주어 밀쳐내 위로 솟아올랐다.
“하합!”
다리부터 솟구쳐 오른 처용의 이단옆차기가 골렘의 턱에 작렬했다.
-크워어.
불을 뿜던 중 턱을 얻어맞은 녀석은 강제로 입이 다물어지며 휘청거렸다.
처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재차 뛰어올랐다.
골렘의 머리에 재차 접근한 처용은 푸른 기류가 넘실거리는 오른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합!”
골렘의 정수리에 처용의 내려차기가 작렬했다.
-콰앙!
굉음이 울렸고 충전 강타가 최대치로 충전된 내려찍기에 맞은 정수리에는 금이 번졌다.
처용은 충전 강타를 단순히 주먹에만 제한하지 않았다.
다리와 주먹에 각각 스킬을 사용해 힘을 축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킬에 사용되는 마나를 각각 컨트롤 하는 것이기에 쉽다고 할 수 없었지만.
처용은 검기를 다루는 최상급 무인이었다.
마나를 극한으로 압축함과 동시에 섬세하게 다듬어 유지하는 검기보다는 쉬웠다.
-쿠궁!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은 골렘이 쓰러지자.
재빠르게 자세를 바로 한 처용이 다시 한번 높이 뛰어올랐다.
뛰어올랐던 처용은 골렘을 향해 아래로 떨어졌고.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왼손을 강하게 쥐었다.
처용은 최대치로 충전된 충전 강타에 더불어 한 가지 스킬을 더 추가했다.
-콰쾅!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땅에 처박힌 듯 굉음과 동시에.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지면이 크게 요동쳤다.
처용이 충전 강타에 이은 또 다른 스킬 지진의 일격이었다.
[지진의 일격 / 액티브 스킬]
[지진의 힘을 모아 강하게 내리쳐 진동을 일으킵니다.]
[진동 범위 안에 있는 이들의 대열과 자세를 무너뜨립니다.]
[힘 스텟이 높을수록 효과가 더 강해집니다.]
- 낮은 확률로 기절, 스킬을 방해
본래 공격용 스킬이라기보다는 적의 진영이나 대열을 무너뜨리는 군중 제어기 계열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진동을 일으키는 지진의 힘을 충전 강타에 적용해 압축시킨 후 내려치면.
축적된 힘과 지진의 힘이 폭발해 강한 시너지를 낼 수 있었다.
상성이 좋은 스킬을 융합해 사용하는 것.
오랜 시간 동안 헌터로 싸우면서 깨달은 스킬 응용법이었다.
[힘이 1 증가합니다.]
“후…….”
시스템을 확인한 처용이 긴 숨을 내쉼과 동시에 아래를 바라보았다.
충전 강타와 지진의 힘을 동시에 받은 골렘의 머리통은.
처용의 주먹 자국을 중심으로 금이 가다 못해 일부가 반파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해도 완전히 부수지는 못했나?”
개체마다 전투력의 차이가 있지만.
평균 B급 몬스터 하나를 상대하려면, C급 헌터 5명 이상이 진형을 짜고 상대하는 게 정석이다.
같은 등급인 B급 헌터는 1:1로 맞서는 것이 가능하긴 해도.
금강역사는 B급 몬스터에 비교하면, 최상위라고 할 수 있는 개체.
거기에 방어력만은 A급 몬스터에 필적할 정도로 엄청난 내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금강역사의 막강한 방어력을 하급 스킬과 육체의 괴력만으로 쓰러뜨린 것이었다.
“확실히 가르침을 잘 받기는 했구나. 제자야.”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여래가 다가왔다.
여래가 골렘을 향해 손을 뻗자 백색의 신력들이 골렘에 달라붙었다.
골렘의 실금들이 없어지면서 녀석이 다시 일어났다.
“주력 스킬 정도는 되찾고 싶었습니다만…….”
“재활을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 지났다. 욕심이 과한 것은 좋지 않구나.”
처용은 튜토리얼 날까지 남는 시간을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수련에 매진했다.
매일 마나를 몸에 순환시키며 집중하는 명상과 금강역사들과의 대련을 계속했었다.
반신에 도달한 처용이 며칠 먹지 않거나 자지 않아도 크게 문제는 없다지만.
여래의 말대로 무리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것이 맞았다.
“계승자, 여기까지만 하고 오늘은 쉬세요. 알겠나요?”
보살이 처용의 몸을 회복시켜주며 말했다.
“후…… 그럼,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여래가 수련 상대였던 금강역사를 공간을 열어 돌려보내 버렸고.
보살까지 부탁하자 어쩔 수 없었다.
처용은 아쉬웠지만, 그래도 얻은 것이 미미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반복적인 훈련으로 모든 스텟이 추가로 10 증가합니다.]
[근력 스텟이 추가로 5 증가합니다.]
[잃어버린 신력이 일부 회복됩니다.]
[패시브 스킬 ‘바위 피부’가 ‘강철 피부’로 진화합니다.]
[이름 : 한처용]
[레벨 : 50]
[칭호 : 반신]
[클래스 : 계승자]
[생명력 : 2950]
[마나 : 1620]
[근력 : 117]
[민첩 : 93]
[체력 : 165]
[마력 : 99]
[신력 : 150]
[권능 : 선술, 수호신의 가호……]
[패시브 스킬 : 강철 피부……]
[액티브 스킬 : 충전 강타……]
레벨이 오르면 클래스에 따라 능력치가 다르게 상승한다.
탱커는 체력과 힘이 1씩 상승하는 등 말이다.
공통적인 특징으로는 체력 스텟이 1 오르면 생명력이 5 증가했다.
같은 방식으로 마력이 1 오르면 마나가 5 증가한다.
반면, 처용의 계승자 클래스는 신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1씩 늘어났다.
대신들의 하나뿐인 계승자로서 특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단순 스텟만 따졌을 때 A급 탱커 정도인가? 아니 조금 밀리려나?”
처용의 레벨은 50, C급 헌터였다.
C급 헌터가 A급, 상위 헌터와 맞먹는 스텟을 지닌 게 이상했지만.
애초에 처용의 본래 레벨은 498.
그 드높은 경지까지 단순 레벨만으로 스텟을 올리지 않았었다.
시스템의 인정을 받은 수많은 업적과 수련, 그리고 선인의 육체 등.
반신에 도달하는 동안 끊임없이 단련하고 성장했었다.
회귀의 부작용으로 스킬이 사라지고 힘이 깎여 나갔다 해도.
그동안 들인 노력의 결과물이 완전히 백지가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발바리한테 물려서 피날 걱정은 없겠네.”
처용이 스테이터스를 확인하며 나름 만족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튜토리얼 전까지 잠도 거르고 수련한 결과였다.
B급 최상위 몬스터의 전력을 가진 금강역사와의 전투 덕분에 레벨이 많이 올랐고.
모든 능력치를 추가로 복구했다.
헌터가 강해지는 방법은 레벨업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예를 들어 헌터가 팔굽혀펴기 천 번을 하면.
힘 스텟이 1 오르는 등 기초 훈련을 통해서도 강해질 수 있었다.
무한히 올릴 수는 없지만, 이처럼 헌터가 강해질 방법은 다양하고도 많았다.
“신력은 15% 정도 회복된 건가?”
하나 더 좋은 소식은 성좌들의 도움을 받아 신력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거였다.
신력이 회복된 덕분에 제약이 걸렸던 선술과 권능도 조금 회복되었다.
“후, 그럼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조금만 쉬겠습니다.”
“쉬라고 했지 명상하라고는 안 했다만?”
쉬겠다고 말한 처용이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자, 여래가 어처구니없는 듯 대답했다.
“굳이 자는 게 쉬는 건 아닙니다. 마나도 그대로잖아요?”
사실 처용은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상태였다.
‘불안감에서 온 강박 같은 거겠지.’
가만히 쉬는 순간 종말이 재림할 것 같은 불안감.
그래도 휴식은 필요했으니, 차분하게 마음을 비우고 생각하는 것.
지금의 처용에게는 이것이 쉬는 것이었다.
***
“안녕하세요. 처용 헌터님?”
처용이 튜토리얼 집합 장소인 협회 앞에 도착하자 익숙한 인물이 처용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현아 씨?”
전철역 사건 당시 처용을 도와주었던 현아였다.
“제가 이번 튜토리얼 인솔을 맡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앞에 장은 빼주세요.”
“네, 오랜만입니다. 현아 씨.”
처용은 자신을 도와주었던 그녀가 내심 반가웠다.
“새내기분들하고 같은 교육을 받는 게 좀 이상하긴 하네요.”
“라이센스를 늦게 신청한 제 잘못이죠. 뭐.”
그녀의 안내를 받고 이런저런 질문에 답해주며 이동했다.
“선배, 아니 제 선임은 만나 보셨나요?”
“선임이라면, 김태민 과장님이라는 분?”
“네, 잘 도와주셨나 보네요?”
그가 도와주기는 했지만, 처용을 ‘관찰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눈앞의 현아는 몰라도 태민은 아직 명확히 적인지 아닌지 몰랐다.
그가 마인이 아니라고 해도 그 뒤에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 몰랐으니까.
“항상 바쁘신 분이 웬일로 이번 튜토리얼 감독으로 오셨더라구요?”
“인솔자하고는 다른 건가요?”
“던전에는 가지 않고, 각 튜토리얼 팀들에게 오더를 내려줘요.”
“음, 그렇군요.”
태민은 아마 처용을 감시할 목적으로 왔을 것이다.
‘그래도, 같이 가는 건 병아리들하고 이 헌터뿐인가?’
회귀 전, 튜토리얼을 받을 때도 별다른 사건은 없었으니 문제는 없겠지만.
현아의 수준은 파악할 필요가 있기에 통찰의 눈을 사용했다.
[이름 : 장현아]
[레벨 : 66]
[칭호 : C급 헌터, 화톳불 수호자의 가호]
[클래스 : 화염술사]
[특징 : 화염 속성 마나에 친화력이 높은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력이 높은 화염 마법을 주력을 사용하는 마법 계열 클래스입니다.]
[스킬 : 파이어 월, 파이어 스피어, 마나실드……]
‘B급을 앞둔 C급 헌터. 화염계열 클래스라기엔 유틸 스킬도 다양하고…….’
헌터는 레벨별로 나누어 등급이 정해진다.
막 각성한 이들과 30레벨 이하까지는 D급 헌터.
30레벨을 돌파하고 69레벨 이전까지는 C급 헌터.
이들은 초보를 벗어나 본격적인 헌터라 할 수 있었고 가장 인구수가 많은 등급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이 70레벨을 돌파하면 B급 헌터로 경험이 많은 베테랑이 될 수 있었다.
처용이 본 현아는 나름 고참이라 할 수 있는 헌터였다.
“오늘 같이 가실 분들이에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도착한 장소에는 3명의 남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처용은 튜토리얼을 받는 초보들 중 유일한 남성이었던 사람의 얼굴을 바라봤다.
‘익숙한데…….’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지만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 모였네요. 이제 출발하시죠.”
일행들은 튜토리얼이 진행되는 장소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했다.
“여기 이분은 싱글 헌터로 활동하셨던 분이에요.”
현아가 처용을 시작으로 하나하나 소개를 해주었다.
덕분에 처용은 익숙하게 느껴졌던 남자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A급 헌터 김정훈.
강력한 창술로 몬스터들을 휩쓸었던 헌터로 ‘창’이라는 무기를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이였다.
통찰의 눈에 그의 클래스가 ‘창병’이라고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확실했다.
‘이맘때쯤 각성한 건가?’
그가 A급 헌터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이 대략 6년 뒤였다.
보통 10년을 헌터로 활동해도 A급에 도달하지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시스템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99레벨에서 더 올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6년 만에 A급 헌터가 되었다는 것은 그의 재능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분의 병사였네.’
처용은 김정훈에게 가호를 내린 성좌 ‘창무신’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악신들과의 전쟁에서 함께 싸우던 무투파 성좌 중 하나였으니까.
[네 녀석 미래에서 꽤 잘 싸우던 병사였나 보구나.]
‘웬만하면 제 쪽으로 포섭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가 한국이 무너질 때 안타깝게 죽지만 않았다면, 더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용이 김정훈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오빠는 싱글 헌터라고 하셨죠? 그럼 몬스터하고 싸워봤겠네요?”
자신을 부르는 발랄한 목소리에 처용이 상념에서 벗어났다.
일행 중 가장 어렸던 귀여운 외모의 여대생 진아였다.
“뭐, 그렇죠.”
밥 먹듯이 사냥했던 게 몬스터였으니 어려운 대답은 아니었다.
“몬스터, 많이 무섭나요?”
진아는 그치지 않고 이런저런 질문들을 이어왔다.
“운 좋게 각성해서 라이센스는 받으려고 오긴 했는데…… 괜찮겠죠? 헌터는 돈도 많이 번다고 하니까.”
처용은 눈앞에 있는 어린 병아리의 꿈을 지켜줄지, 현실을 말해줄지 잠시 고민했다.
헌터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은 게 사실이긴 했었지만, 호화롭고 편안하게 사는 직업은 절대로 아니었다.
가족들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처절하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직업이다.
헌터는 전사들이자 군인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하급 헌터가 직장인보다 많이 벌지 않나요?”
이번엔 진아가 아닌 다른 여성, 전직 회사원인 혜민의 말이었다.
“아니면 곤란한데…… 저는 겁이 많아서 하급 던전에만 갈 거 같아서요.”
그녀는 각성을 하자, 직장 상사의 얼굴에 사직서를 던져버린 후 뛰쳐나왔다고 말했었다.
“뭐, 하급 던전만 다녀도 먹고 살 걱정은 없어요.”
처용은 대충 적절하게 답해줬다.
그녀들은 재능이 있기에 각성을 했지만, 어떻게 살아갈지는 본인들 몫이었다.
“정 던전이 무서우시면 협회에서 일하는 건 어때요? 나름 복지도 좋거든요.”
현아는 겁 많은 병아리들에게 협회 입사를 제안했다.
처용이 보기에도 나쁜 방향은 아니었다.
심약한 사람들은 몬스터에게 죽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엔 최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을 돕는 역할이 그녀들 입장에서도 좋았으니까.
“그래도 저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몬스터들과 싸우고 싶습니다.”
눈앞에 있는 미래의 A급 헌터 김정훈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처용이 기억하는 정훈은 요즘 보기 드문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전직 특공무술 사범.
사람들을 지키려다 순직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시험을 봤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렇게 절망하던 중 각성하게 되었고 운명이라 생각하며 헌터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처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동안 차량이 던전에 도착했다.
매우 약한 기운이 느껴지는 최하급 게이트, D급 중에서도 가장 약한 게이트였다.
“여기는 잿빛 초원이라는 던전입니다.”
현아가 여러 기본 상식들을 초보들에게 설명해 주며, 각 클래스의 역할을 정해 주었다.
“각 클래스에 맞게 취해야 할 포지션이 있어요.”
창병인 정훈은 전위, 궁수인 진아와 마법사인 혜민은 후위.
던전에서 싸워야 할 헌터들이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사냥을 위해 취하는 기본 포지션이였다.
“처용님은 힐러……이셨죠?”
처용의 차례로 오자 현아가 잠시 고민했다.
그녀가 볼 때, 처용은 튜토리얼이 딱히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전 빠질까요?”
처용은 병아리들 훈련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말한 것이지만.
“음…… 아니에요. 던전에서 힐러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고민하던 현아는 처용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다른 분들보다 기본 스텟이 높으실 테니 정훈 씨랑 전위를 부탁드릴게요.”
힐러는 일반적으로 잘 싸우지 못한다.
하지만, 보고받은 내용에 의하면 처용의 기초 전투력이 높다고 들었었다.
“협력은 해 드리죠.”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고, 김정훈의 재능을 가까이서 볼 겸 수락했다.
최하급 던전에서 위험한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 분명했고.
돌발 상황이 생기면, 뒤따르는 현아가 알아서 개입해 줄 것이다.
“과장님, 저희 조 들어가겠습니다.”
현아가 원거리 통신 아티팩트로 보고를 마치고 게이트에 입장했다.
‘설마 무슨 일이라도 일어날까.’
처용은 별다른 걱정 없이 그저 쉬는 기분으로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