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다른 성좌들의 세력을 감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좌들의 문제는 성좌인 우리가 나설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다른 성좌들의 세력 감시.
이 역시 중요한 문제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태초신의 소멸로 인해 차원이 불안정해졌고.
그로 인해 하계인 지구의 차원이 함께 불안정해져 게이트가 발생했다.
지구가 무너지면…….
도미노가 쓰러지듯, 신계 역시 불안정해지고 결국은 무너진다.
성좌들은 이를 막기 위해 태초신의 남은 잔재로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재능 있는 인간을 선택하여 병사로 육성해 게이트를 막는 상황이었다.
동시에 자신들의 세력과 신앙을 확장 시키면서 말이다.
문제는 종말을 원하는 악신들 역시 이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더욱 강한 힘과 욕망을 갈구하는 악인들을 유혹해 마인을 만들어낸 것이다.
처용의 성좌들은 이를 예상하고 병사육성에 반대를 했었지만.
당장 눈앞의 불이 급했던 성좌들을 말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 인물을 계승자로 선택해 교육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하아, 네 녀석도 잘 알고 있겠다만…….”
미륵이 한숨을 내쉬고 처용을 바라보았다.
“성좌들이 힘을 합쳐 붕괴를 막는 듯 보여도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인간들이 국가를 이루고 서로를 견제하는 것처럼, 성좌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러 이해관계와 정치, 견제, 갈등 등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 있었다.
그저, 당장 급한 작금의 상황 때문에 전부 휴전일 뿐이었다.
간간이 지구에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타 세력의 재능이 뛰어난 병사를 빼낸다거나.
서로 동맹을 맺는 등 작은 알력 싸움들이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성좌의 세력들끼리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지구의 멸망이 가속되는 것을 넘어서 모든 것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큰 이변이 없는 이상 당분간은 서로 조심할 것입니다. 순혈자들 역시도…….”
“그 망할 놈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면 내가 전부 죽여버릴 것이다.”
“하하, 몇 놈은 양보를 부탁드립니다. 미륵님.”
특히, 아레스라던가.
“다른 성좌들은 우리가 잘 지켜보겠습니다. 계승자는 지구를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아니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서는 이룰 수 없었다. 반드시 해내야 한다.
“계승자가 미래의 일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전부’는 아닐 겁니다.”
보살의 말대로였다.
처용이 미래에서 왔다고 해도 전부는 알지 못한다는 것.
즉, 자세한 내막이나 그 과정을 낱낱이 알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나고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정도였다.
예를 들어서.
올림포스의 임시 수장이었던 아테나가 살해당하고, 올림포스가 완전히 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패륜아 아레스가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크게 놓고 보자면 이정도였다.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계승자가 걱정됩니다.”
보살은 처용이 반신에 도달했었던 강인한 전사라 할지라도.
지금은 약해진 그가 너무나 걱정되었다.
“확실히 제가 굵직한 사건들을 알고는 있어도, 자세한 내막 전부는 모릅니다. 하지만.”
처용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보살에게 웃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제가 그 사건에 개입해서 망쳐버릴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서.
아테나에게 아레스가 배신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보여줄 수 있다면.
그를 올림포스에서 퇴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레스를 사냥할 절호의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다.
“무언가 계획이라도 가지고 있나요. 계승자?”
보살이 궁금한 듯 처용에게 물었다.
미래를 바꿔야 하는 중요한 일이니 시작이 중요할 것이다.
“우선 헌터 협회를 살리는 것부터 시작할 겁니다.”
악신들에게 지원을 받은 마인들을 막는 세력은 크게 두 개다.
성좌들이 선택한 병사들이 모여 있는 ‘헌터 길드’와, 자국 내 헌터들을 관리하는 ‘헌터 협회’였다.
길드는 자기 세력을 불리기 바빴기에 마인은 항상 2순위였다.
그나마 마인에 경각심을 가지고 대처하던 협회들은 마인들의 손에 무너졌다.
거기에 가장 먼저 무너진 협회가 바로 한국 헌터 협회였다.
“협회에서의 일이 잘 풀리면 미래를 바꾸기 위한 전초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인들의 손에서 헌터 협회를 살리는 것, 이것이 시작이었다.
처용은 본의 아니게 회귀를 하자마자 마인들의 계획 중 하나를 망쳐 버렸다.
전철역 사고 현장에서 프로토타입 마수를 죽인 것.
따지고 보면 그 마수에게 살해당할 수 있었던 협회 직원들을 구한 것이다.
“고맙게도 그쪽에서 먼저 기회를 주기도 했고요.”
협회 헌터가 준 명함.
날이 밝는 대로 곧장 연락할 생각이었다.
“조금은 쉬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보살이 처용을 걱정했다.
처용이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몬스터와 싸우기도 했었으니까.
“하루 정도 잠을 거르는 건 익숙하다 못해 일상이었습니다.”
처용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반드시 종말을 막자구나. 제자야.”
“예, 스승님!”
***
“이름조차도 알려주지 않았었으니 당황할 수밖에…….”
처용은 계획대로 날이 밝자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현아는 처용을 바로 알지 못하고 전화 잘못 걸었다며 끊을 뻔했지만.
다행히 전철역 사건을 이야기하자 바로 알아챘다.
뒤늦게 이름을 알려주고 찾아간다고 전했다.
-제가 오늘도 현장에 나가야 해서 제 선임분이 안내해 줄 거에요.
라는 말과 함께 미리 준비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래서, 현재 처용은 협회가 있는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크게 반대하지 않으셔서 다행이긴 하지만.”
처용이 성좌들과 만남이 끝나고 협회에 출발하기 전, 어머니에게 자신의 상황을 조금 꾸며내어 알렸다.
당당한 아들이 되고 싶었으니까.
며칠 전에 집안에서 모시는 신에게 선택을 받아 각성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것 때문에 방황했었고 이제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누나인 연화처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헌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이다.
어머니의 눈빛에서 망설임과 걱정스러운 감정이 느껴지긴 했었다.
하지만, 처용을 향해 웃으면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회귀 전과 같았다.
[계승자의 어머니는 강인한 사람입니다.]
보살의 목소리가 시스템을 통해 처용에게만 울렸다.
일반적인 성좌와 병사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처용과 성좌들만이 가능한 전음이었다.
[‘열쇠’를 받았으니 더는 번거롭게 움직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네, 스승님.’
여래가 말한 열쇠는 처용이 태룡전을 떠나기 전 성좌들이 건네준 아티팩트였다.
[태룡전의 열쇠 / 아티팩트]
[등급 : 신화]
[성역 : 태룡전으로 가는 게이트를 생성합니다.]
[외부의 또 다른 게이트를 생성하여 이동할 수 있습니다.]
[남은 기능은 현재 잠겨 있습니다.]
- 태룡전 입장 가능
- 외부 게이트 생성 (0/5)
동양의 용이 휘감긴 모양의 금빛 열쇠.
계승자의 자격을 지닌 처용만이 사용 가능한 아티팩트였다.
이제 열쇠를 쓰면 언제든지 태룡전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능은 다른 장소에 게이트를 설치하여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마치, 서로 다른 장소를 오가는 텔레포트 포탈처럼 말이다.
한번 그 장소에 방문하여 열쇠에 ‘등록’해야 했지만, 처용이 아니면 그 누구도 열 수 없는 게이트였다.
“로비에서 이름만 말하면 된다고 했었지…….”
역에서 내린 처용은 곧장 협회 건물을 찾아갔다.
헌터 협회는 서울에서 가장 큰 건물이기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저기요? 미리 연락하고 왔는데요.”
처용이 로비에서 안내직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말을 걸었을 때.
“한처용 헌터님?”
누군가가 처용을 불렀다.
“누구시죠?”
뿔테안경을 쓰고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정장 차림의 남자.
그가 처용에게 다가왔다.
“아, 맞으시군요. 장현아 대리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선임분?”
분명 전화로 그녀가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그리고 처용이 시선을 조금 내려 그의 명찰을 바라보았다.
[던전관리과 과장 / 김태민]
“네, 김태민이라고 합니다.”
처용은 그가 보여주는 라이센스와 명찰을 보고 의아해했다.
‘고작 헌터 하나 안내하는 데 과장이 내려온다고?’
처용은 뭔가 이상한 기분에 통찰의 눈으로 확인했다.
[이름 : 김태민]
[레벨 : 71]
[칭호 : B급 헌터, 탐구자의 가호]
[클래스 : 탐정]
[특징 : 비밀이나 함정 등을 간파하고 해독하는 능력에 특화된 전투보조 클래스입니다.]
[스킬 : 진실판별, 마나해석…….]
‘탐정? 처음 보는 클래스인데?’
처용은 전장과 던전에서의 활동이 많았기에 전투보조 클래스를 만날 일이 드물었다.
그나마 만나봤던 이들은 대장장이처럼 전투 클래스와 연관이 있는 이들이 전부였다.
‘딱히 이상한 점은 없군. 마인도 아니고.’
처용이 태민을 파악하고 있을 때, 태민 역시 처용을 파악하듯 안경을 들어 올리며 보고 있었다.
“미리 준비는 해놨습니다. 가시죠.”
“네, 그러죠.”
처용은 일단 안내를 해주겠다는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동시에 지나가는 직원들을 통찰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혹시, 협회 내부에 마인들이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네 수준으론 작정하고 숨는 놈은 찾기 힘들 것이다.]
미륵의 말은 정확했지만.
‘혹시 모릅니다.’
혹시 모를 작은 흔적이라도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만약 대부분 협회 직원들에게서 마기의 흔적이 발견되는 최악의 상황이라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했으니까.
다행히, 아직은 마기의 흔적이 감지되거나 눈에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피며 이동하자 측정실이라고 적힌 장소에 도착했다.
처용을 안내한 태민은 밖에서 기다렸고 처용은 측정실로 들어갔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태민은 누군가에게 처용과 연관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 같았다.
두꺼운 문 너머 떨어진 곳이기 때문에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날 궁금해하는 누군가가 있는 모양이네?’
전철역에서 있었던 일을 협회 직원들이 봤으니 이유는 충분했었다.
“여기에 손을 얹으시면 자동으로 측정됩니다.”
직원 중 하나가 처용을 안내했고 장치를 작동시키며 농구공 크기의 구형 물체를 가져왔다.
‘체내 마나를 감지해서 레벨을 대략 측정해 내는 구조네.’
처용은 보자마자 분석을 끝냈고 조용히 마나와 신력을 억눌렀다.
마나는 몰라도 신력이 노출되는 순간, 기계 장치에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레벨이 낮아졌다고 해도 선인의 육체를 지닌 처용이다.
다른 헌터보다 기본 스텟과 마나가 높기에 레벨에 맞게 낮춘 것이다.
협회의 상황을 알 수 없는 지금, 되도록 전력을 숨기는 것이 좋은 판단이기도 했다.
“네, 측정 끝났습니다.”
처용의 노력 덕분인지 측정 결과는 레벨에 맞게 C급으로 측정되었다.
“클래스는 힐러라고 전달받기는 했습니다만 맞나요?”
“네, 뭐…….”
아마 전철역에 있을 때 자비의 손길을 본 협회 직원들의 보고 때문일 것이다.
처용은 클래스가 어떻게 나오든 상관은 없었다.
그저 라이센스만 필요할 뿐인 데다 자신의 정보는 적게 밝혀질수록 좋았다.
마인들이 모르게 놈들을 노리려면 자신을 숨겨야 했으니까.
“C급 힐러 클래스 헌터,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직원이 정보를 기록하고 물러났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렸던 태민은 결과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마치, 이럴 리가 없는데……라는 표정으로.
측정이 마무리되자 직원이 작은 반지를 처용에게 내밀었다.
“임시 라이센스입니다. 잃어버리면 불이익이 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라이센스 등록은 측정만 한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절차를 거쳐야 정식 라이센스가 발급되는 것이었다.
“일주일 뒤에 튜토리얼이 있습니다만, 다음 일정으로 잡아드릴까요?”
“가장 빠른 일정으로 가겠습니다.”
튜토리얼.
사고가 주로 일어나는 던전은 상위 던전이 아닌 하위 던전, 사고는 초보들에게 많이 발생했었다.
튜토리얼은 이를 방지할 목적으로 새로 라이센스를 취득하러 온 초보 각성자들을 위해 만든 과정이었다.
고참 헌터가 인솔하여 최하급 던전을 경험시켜주는 협회의 새로운 프로젝트.
‘일주일 동안 태룡전에서 최대한 힘을 회복해야겠구나.’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잃어버린 힘 전부를 복구할 수는 없다.
하지만, C급 몬스터에게 고전하는 이 한심한 상태로는 뭘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이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최대한 활용해 어느 정도는 힘을 회복해야 했다.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이 필요했으니까.
[하하하하, 병아리들 교육을 같이 받는 것이냐?]
미륵이 아주 적절한 표현으로 처용을 놀려먹었다.
‘규정은 규정이니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미륵님.’
이제 막 각성한 초보 헌터들을 위한 규정.
처용은 초보 헌터가 아니었지만, 라이센스 취득 규정이었으니.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그럼 일주일 뒤에 뵙겠습니다.”
태민은 일주일 뒤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처용은 그를 따라가 배후가 누구인지 알아볼까 했지만 관두었다.
지금 눈에 띄어봐야 좋지 않았으니까.
‘라이센스를 나중에 받을 걸 그랬나? 아니 라이센스도 필요하긴 했으니까.’
일주일이라는 시간의 여유가 생겼지만, 놀고 있을 여유는 없다.
처용은 협회를 나와 건물 근처, 인적이 매우 드문 골목을 찾았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고는 무언가를 쥐듯 손을 뻗어 올리며 신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손에서 환한 빛과 함께 금빛 열쇠가 생겨났다.
열쇠를 들고 위에서 아래로 그어 내리자 금빛 게이트가 열렸다.
처용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고 열쇠를 아래에서 위로 올리자 게이트가 사라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