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화
‘집으로 갈 방법이…….’
처용의 본가는 서울이 아닌 강원도에 있었다.
권능이 멀쩡했다면, 집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겠지만,
권능은커녕 빨리 이동할 수 있는 스킬조차 없다.
그리고, 처용이 지구의 문명을 벗어난 시간이 수십 년이 넘었다.
집으로 향하는 열차가 이곳 말고도 있겠지만,
집의 위치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사용법이 기억나지 않는다.
‘곤란한데…….’
난감한 상황이었다.
처용이 본가에 가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 가야만 자신의 성좌들을 찾아갈 수 있다.
그들에게 작금의 상황을 알리고 미래를 준비해야 했으니까.
고민하던 처용이 현아를 향해 말했다.
“……저기?”
“네?”
현아는 돌아갈 줄 알았던 처용이 자신을 부르자 의문이 들었다.
“제가 전철역에 있었던 이유가 집에 가기 위해서였는데…….”
처용이 피에 젖어 만신창이가 된 열차표를 꺼내 들었다.
“아- 그렇군요?”
현아는 처용의 상황을 빠르게 이해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한 전철역이 무너졌으니 얼마나 곤란하겠는가?
“자택 위치를 물어보는 건 실례겠죠? 어디 역까지 가면 되나요?”
다행히, 현아가 처용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집으로 갈 수 있는 근처 전철역까지 차로 태워다 준 다음.
새로운 표까지 구해다 주었다.
“감사합니다.”
처용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녀에게 큰 도움을 받았으니까.
“아닙니다. 조심히 가세요. 협회로 찾아오시는 거 잊지 마시구요.”
현아는 처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큰 피해가 일어날 일을 막아낸 헌터에 대한 예우도 있었다.
처용이 전철역 안으로 사라지자 현아도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아, 이름을 안 알려주셨는데……, 뭐 연락 주시기로 했으니까.”
다시 가서 물어볼까 했지만, 처용이 연락을 준다고 했으니 믿기로 한 그녀였다.
처용은 집으로 향하는 열차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을 밝히는 빌딩과 가로등 불빛들.
그 밑을 바쁘게 지나다니는 차들과 사람들.
멀리 보이는 산과 밤하늘 위로 고고하게 떠 있는 달.
지구가 멸망한 후, 처용의 추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장면들이었다.
두 번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어머니…… 연화, 연아…….’
지금 시간대라면, 헌터로 활동하고 있을 4살 위의 누나인 연화.
공부는 때려치우고 놀기 바쁜 여고생 연아.
그리고, 아버지도 없이 3남매를 키운 어머니…….
조금만 있으면 너무나도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창밖을 구경하는 처용의 시선에는 지루함이 없었고,
곧 만날 가족들에 대한 생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 이번 역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처용이 내려야 하는 정거장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역을 빠져나와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자, 잊고 있던 기억들이 점점 살아났다.
자신이 돌아왔다는 게 점점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익숙했던 길을 밟으며, 잊고 있던 추억들을 하나하나 주워 담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걷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집을 향해 거의 일직선 거리로 쭉 달려나가자 익숙한 산이 보였고,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전통 양식의 건물이 드러났다.
“……진짜 오랜만에 보네.”
사찰에 들어가는 입구를 상징하는 일주문.
그리고 일주문의 현판에는 사찰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태룡사
태룡사.
처용의 가문 대대로 관리하고 지켜내온 사찰이자 집.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들처럼 거대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하나의 산을 중심으로 세워졌기에 작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얼마 만에 밟아보는 길인지…….”
처용이 옛날 기억을 되살리며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
몬스터들이 등장하기도 이전 시기.
어린 처용은 사찰 집안이라는 주변의 편견 때문에 이 길을 싫어했었다.
그리고, 세상에 게이트가 열리는 재앙이 발생한 후.
아버지가 죽었다.
그저 운이 나빴었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집안에서 열과 성을 다해 신을 모셨는데도,
아버지를 그저 운이 나빠 죽게 내버려 둔 신들이 원망스러웠다.
그런 신을 모시는 집안도 싫었다.
그 이후에는 이 길을 밟는 것 자체를 혐오했었다.
그렇게 방황하며 삐뚤어지다가 사고에 휘말렸고,
살면서 처음으로 몬스터와 마주했었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옆에 갓난아기를 안고 쓰러져 있는 임산부가 있었다.
배 안의 아이와 품에 안은 아이를 끌어안고 지키려는 웅크린 모습.
그들을 몬스터에게 희생시키고 도망칠 수도 있었다.
자신이 입만 다물면 아무도 모를 테니까.
그리고.
그래야 자신이 살 수 있었다.
당장 다리를 움직여 뛰어야 했다.
하지만,
아기를 품에 안고 두려움에 떠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도망칠 수가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도망쳐야 한다고 외쳤다.
하지만, 몸은 생존 본능과 머리가 내리는 명령을 거부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벽돌과 집을 수 있는 건 뭐든 집어 들었고.
몬스터에게 달려들었다.
몬스터의 발톱이, 날카로운 뿔이 처용의 몸을 찢고 가르고 찔렀다.
몸에 점점 힘이 빠졌고 피가 흘러 바닥에 번져 나갔다.
내가 왜 그랬을까?
저 사람은 오늘 처음 보는, 그저 남일 뿐이었다.
자신은 왜 몸을 던져 저들을 지키려 행동했을까?
자신은 곧 죽을 것이고.
안타깝지만, 저들도 죽을 것이다.
자신이 몸을 던져 희생한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눈앞이 점점 검붉게 흐려지고 감각이 사라져갔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처용은 빌어먹을 현실을 한탄하며 빌었었다.
도와달라고…….
신이 실존한다면 제발 도와달라고 빌었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차기 계승자 후보로 처용을 지켜보던 여래는,
자신이 죽을 위기에도 남을 지키려는 처용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행동에 전 계승자이자 처용의 아버지, 정민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처용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순간.
처용을 선택했고 그를 각성시켰다.
그날 이후.
처용은 성좌들, 집안에서 모시는 성좌들을 만났다.
처용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았다.
그리고 결심했었다.
자신이 계승자가 되어 아버지의 의지를 잇기로.
마인들의 마수에서 사람들을 지키는 방패가 되기로.
아버지와 같은 선한 자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처용은 수호신의 운명을 받아들였었다.
세상을 지키는 힘을 얻은 처용은 자만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다가오는 재앙에 맞서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했다.
한국 최연소 S급 헌터가 되었고.
한국을 넘어 전 세계 헌터 1위가 되었으며.
헌터들 중 최초로 신격을 얻어 반신에 올랐다.
처용은 세상을 지키는 굳건한 방패가 되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악의 종주, 크타니드와 직접 대면하기 전에는…….
그 어떤 악이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수호신의 방패가 깨져나갔다.
악에 맞서 싸우던 헌터들, 동료들, 가족들…….
언제나 지켜주겠다고 말했던 처용의 약속을 비웃듯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결국, 재앙의 불길이 지구 전체를 집어삼켰고.
차원 전체로 번져 나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이 모여 뭉쳤었다.
지구를 잃은 헌터들, 세계수를 잃은 엘프들, 다른 차원의 생존자들…….
그리고 성좌들이 뭉쳐 종말에 대항했었다.
비극적인 절망이 계속되어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싸웠었다.
하지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어버렸다.
최후의 생존자였던 자신의 마지막 발악 또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그렇게, 종말을 노래한 악의 종주가 세상을 집어삼켰고.
모든 것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줄 알았다.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한때, 사람들을 지키고자 맹세했던 수호신이 패잔병이 되어 과거로 돌아왔다.
또다시 종말이 도래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리고, 배신자들에게 잔혹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
***
기억을 되새기던 처용이 마지막 계단을 밟으며 올라섰다.
길을 따라 걷자 가족들이 주거하는 사찰의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너무나도 그리웠던 한 사람이 보였다.
그녀는 밤이라 추운데도 불구하고 밖에 서 있었다.
두 손을 꼭 모은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을 가득 담은 그녀의 얼굴을 보자 처용의 가슴이 아려왔다.
‘어머니…….’
처용은 헌터가 되기 전,
어머니에게 있어 악질적인 불효자였다.
사람들에게 받았던 놀림을 어머니에게 따졌었다.
아버지가 없는 것을 어머니를 탓했었다.
돈이 부족해 용돈이 적은 것에 어머니를 보며 화를 냈었다.
자신의 짜증과 분노를 죄 없는 어머니에게 쏟아냈었고,
집을 뛰쳐나왔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처용에게 화를 내지 않았었다.
-미안하구나, 처용아…….
사과를 받을 자격조차 없는 아들에게…….
엄마가 전부 미안하다고…… 처용을 향해 그저 미안하다고 했었다.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쓰레기 같은 과거의 자신을 패고 싶었다.
멱살을 잡고 왜 그랬었냐고 묻고 싶었다.
모든 것을 어머니 탓으로 돌렸으면서,
정작 너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을 해줬었냐고,
아버지가 죽고 홀로 고통을 삼켜오며 괴로웠을 어머니를 위해서,
작은 위로 한마디 건넨 적이 있었냐고…….
언제나 어머니에게 악담만 퍼붓던 자신은,
그 죄송하다는 사과 한마디조차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과거의 멍청했던 처용은 이 자리에 없었다.
‘이 기회를 절대로 헛되이 하지 않겠습니다.’
처용이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며, 여래에게 했던 다짐.
이 다짐은 비단 종말을 막기 위한 다짐만은 아니었다.
기적처럼 주어진 이 두 번째 기회에서,
앞으로 어머니가 고통받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처용은 멈추었던 발을 움직여 걸어갔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에 어머니가 얼굴을 들어 처용을 바라봤다.
처용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서 커다란 안도감과 함께 눈물이 차올랐다.
“왜…… 왜 이렇게 늦었니? 전화도 받지 않고…….”
처용을 보고 울먹임을 삼키며 어머니가 말했다.
그녀의 눈에서 차올랐던 눈물이 얼굴을 따라 조금씩 흘러내렸다.
그 얼굴을 마주한 처용의 마음이 점점 더 크게 아려왔다.
좀 전에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도,
이렇게 마주하자마자 어머니의 얼굴에서 슬픔이 느껴졌으니까.
마음에 품은 죄책감이 점점 더 깊게 파고 들어왔다.
“죄송해요. 어머니…….”
처용이 품은 죄책감이 입으로 나와 어머니에게 전해졌다.
“……처용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처용의 대답에 어머니가 살짝 당황했다.
“죄송해요. 너무 늦었네요.”
처용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러 의미를 담아 전한 말이었지만,
그녀는 그저 아들이 무사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었다.
“……그래,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뉴스에서 전철역이 무너졌다는 말을 들어서…….”
그녀가 처용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전화라도 좀 받지 그랬니,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고장이 나서 못 받았어요.”
처용은 어머니의 말에 대충 둘러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처용의 전화는 무음으로 설정되어 있었기에 울리지 않은 것이었다.
“처용아? 옷이…….”
그녀가 가까이서 아들을 마주하자,
이제야 처용이 입고 있는 옷이 보였다.
어두운 색상이었기에 티가 잘 안 났을 뿐이었지만.
먼지에 절여져 있었고 여기저기가 찢어져 있었다.
“아…….”
처용도 이제야 자신의 몰골을 확인했다.
전철을 타고 집에 올 때.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긴 했었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었던 처용은 그 시선들을 무시했었다.
“괜찮은 거 맞니?”
“다치진 않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처용은 자신을 바라보며 눈빛이 흔들리는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이따가…… 이따가 말해드릴게요. 지금은…… 조금 쉬고 싶어요.”
처용은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해야 할 말도 많았지만.
지금은 성좌들을 만나는 것이 먼저였다.
어머니를,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한시바삐 그들을 찾아가 미래를 알려야 했다.
그들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야만 종말을 대비할 수 있으니까.
“그래,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나.”
그녀는 변화한 아들의 태도가 당황스러웠다.
그저 만신창이에 표정도 좋지 않았으니, 뭔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준다고도 했으니까.
“잠깐, 본당에 들렀다가 갈게요. 먼저 들어가 주무세요.”
처용은 어머니에게 말한 후.
가족들이 거주하는 집이 아닌 본당을 향해 발을 돌렸다.
“오래 있지 말고 일찍 들어와야 한다.”
뒤에서 그렇게 말한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갔다.
처용의 발걸음은 태룡사에서 가장 큰 중앙의 본당으로 향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당연히 아무도 없었겠지만.
주변의 기척을 꼼꼼하게 살핀 후 본당에 들어서 문을 닫았다.
밤의 어둠이 가라앉아 있는 텅 빈 본당 내부에 들어서자.
정면에 세워져 있는 세 개의 거대한 불상이 보였다.
태룡사에서 모시는 신들.
처용의 성좌인 이들의 신상이었다.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처용에게 있어 가족과 다름없는 소중한 존재들이었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다.
‘원래는 반년 정도 뒤에 만났었지.’
처용이 신상 앞에 마주 섰다.
이 장소는 처용이 성좌들의 부름을 받고.
계승자의 수행을 받으러 성역으로 가는 길이 열렸던 곳이었다.
처용은 두 손을 합장하고 마나가 아닌 신력을 끌어올렸다.
처용의 몸에서 눈부신 황금빛이 피어올랐다.
어둡게 가라앉은 본당 내부를 환하게 밝힌 처용의 신력이 성좌들의 신상에 닿았다.
“이미 지켜보고 계실지도 모르겠구나.”
과거, 처음 각성하고 성좌들을 마주했을 때.
오래전부터 자신을 지켜봐 왔었다고 했었다.
만약, 그렇다면 한순간에 변해버린 자신을 보고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이 순간 ‘계승자’의 자격을 지닌 처용의 신력이.
신상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당황? 의문? 경계심? 놀라움?
처용을 보며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그들을 설득하고 종말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야 했다.
“……전해야 할 말이 많습니다.”
처용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처용이 신상들을 하나하나 마주 보았다.
마치, 그들이 눈앞에 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마 놀라셨을 텐데, 우리 대화 좀 하시죠.”
-우우웅.
처용의 말이 끝나자 눈앞에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게이트가 열렸다.
처용은 게이트를 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후,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짧은 각오를 다진 처용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태룡전에 입장합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성역의 이름이 시스템을 통해 울려 퍼졌다.
나 홀로 계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