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홀로 계승자-5화 (5/726)

#005화

“다들 흩어져서 현장 정리하고 기록해!”

상민이 오더를 내리자, 헌터들이 여기저기 흩어졌다.

“감사합니다. 헌터님.”

상민이 처용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놈들을 여기 잡아 두신 덕분에, 아무 피해 없이 끝났습니다.”

그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몬스터들과 맞서 싸웠다.

힐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살리신 겁니다.”

“운이 좋았죠 뭐.”

처용은 상민의 감사를 그저 그렇게 넘겼다.

사람들을 위해서 마수를 막았다기보단.

마인들의 실험을 말아먹게 만들기 위해 마수를 죽였을 뿐이니까.

“그나저나, 여기서 좀 나가고 싶은데요?”

마수를 죽이는 목표가 끝난 이상 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았으니까.

“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대충 정리되는 대로 출구로 안내하겠습니다.”

상민이 다른 헌터들에게 다가가 보고를 받을 때.

처용은 상민을 보다가 슬쩍 팔을 아래로 내리며 무언가를 주워들었다.

마수의 뭉개진 머리통에서 흘러나온 듯 보이는 손에 딱 잡히는 크기의 시커먼 보석이었다.

[오염된 C급 마수정 / 재료]

[일부 몬스터들이 몸속에 가지고 있는 마나가 뭉쳐진 덩어리.]

[현재 마기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특정 몬스터, 특히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면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는 것이 마수정이었다.

마수정은 체내에 마나가 쌓이며 만들어진 덩어리로.

영물이나 신수들의 내단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연금술이나 인첸트. 무구, 아티팩트 제작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하는 재료였지만.

마수는 마기에 오염되어 뒤틀린 진화를 한 몬스터였다.

마수의 오염된 마수정은 특정 작업을 거쳐 정화하지 않는 이상 쓸 수 없었다.

거기에 잘못 사용하면 대형 사고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기껏 마수를 죽이고 사고도 막아 줬는데 무지로 인한 2차 사고는 사양이었다.

‘활용 방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마수정을 챙긴 처용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팔짱을 끼고 기다렸다.

“마인 사체, 찾았습니다!”

현장을 정리하던 헌터 하나가 외치자 상민이 재빠르게 다가갔다.

“으음…….”

사체를 확인한 상민의 입에서 침음성이 들려왔다.

목에 철근이 박힌 채 찢어져 있는 사체.

처용이 가장 먼저 사살한 케빈 콕스의 사체였다.

마인은 본래 사람이었던 이들.

잔혹한 장면에 목 위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이래 뵈도 헌터이니 만큼 냉정하게 현장을 분석했다.

‘전깃줄로 목을 걸어 입을 막은 후에 철근으로 찌른 건가?’

저항 흔적이 없던 것으로 봐서는 순식간에 당한 것 같았다.

“힐러가 이런 게 가능하다고?”

구출된 생존자들의 말에 의하면.

이 마인은 분명 그가 살해한 것이 분명했다.

곧이어 다른 곳에서도 마인들의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다른 사체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기습을 당해 사망한 모습.

상민은 팔짱을 끼고 마수를 바라보는 처용을 짧게 바라봤다.

힐러가 마인들을 순식간에 죽이고 몬스터 무리까지 상대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심지어 아티팩트도 없이 쇠파이프 하나만 들고 말이다.

상민은 고개를 내저었다.

답은 절대로 불가능이었으니까.

하지만, 막 현장에 도착했을 때 보스와 대치하고 있는 그의 모습과.

보스가 발악할 때 쇠파이프로 머리통을 내려쳐 끝장낸 것을 봐서는.

그 불가능한 것을 해낸 건 사실이었다.

“일단 전부 기록해 놔!”

현장에 있는 헌터들에게 지시한 상민이 손바닥만 한 직사각형 형태의 아티팩트를 꺼내 들었다.

“장 대리님, 저 김상민입니다. 지금 현장에…….”

처용은 협회 헌터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회귀 전에는 이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던 것이겠지.’

마인들의 테러를 통한 마수 실험.

만약 자신이 이 자리에 없었다면?

게이트에서 풀려난 마수가 헌터들과 민간인들을 죽이며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그런 프로토타입 마수의 경험들을 밑바탕으로 더 강하고 악랄한 마수들이 생산되었을 것이고.

종국에는 재앙급, 즉 S급 마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시작이 나쁘지는 않구나.’

비록 처용이 한없이 약해졌다 하지만.

마인들의 목적을 대략 알아냈고 프로토타입 마수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가 또 있었다.

‘레벨을 올리면 된단 말이지?’

몬스터들과 싸우던 중 레벨이 오르며 스킬을 되찾았었다.

헌터들은 게이트 속 던전에 들어가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을 높인다.

물론, 처용의 드높은 레벨을 복구하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할 터.

처용의 본래 레벨은 사냥만으로는 절대 다가갈 수 없는 경지였으니까.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몬스터들과 쌈박질을 해온 처용이다.

같은 길을 다시 걷는 것과 같았으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심지어 길의 방향과 지름길까지 알고 있으니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다.

처용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무렵.

“……네, 네 이상입니다. 이분은 제가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상민이 처용에게 다가왔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터님은 저랑 같이 밖으로 가시죠.”

처용은 상민의 안내를 받아 드디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게이트를 찾아 내려왔었던 비상계단을 오르고 조금 더 나아가자.

사이렌 소리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말들이 들려왔다.

구조대원들이 정리한 듯 보이는 출구가 보였고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시작은 좋다고 해도 이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처용이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상념에 빠져들었다.

“그……, 마인들 말입니다. 모두 죽이셨던데.”

옆에서 상민의 말이 들려왔고 감았던 눈이 다시 뜨였다.

“제압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까?”

그 말에 처용의 눈이 상민을 향했고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문제라도?”

처용의 눈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문제는…… 없습니다. 민간인이 다쳤으니까요. 하지만.”

갑자기 확 달라진 처용의 분위기에 상민이 긴장한 듯 말을 이었다.

이 시기에는 아직 마인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이었다.

헌터들은 마인들과 대치할 때 주변의 안전과 그들의 제압을 먼저 생각한다.

마인은 본래 사람,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는 달랐으니까.

물론, 놈들을 죽인다고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마인들이 위험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추후, 마인들에 관한 문제가 커지면서 사살의 비중이 높아지게 되었지만.

“그…… 협회 규정상.”

상민은 그저 작금의 헌터 협회의 규정에 따라 물어본 것이었다.

“제압이 원칙이긴 합니…….”

“원칙? 원칙이라고?”

상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처용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그 새끼들은 민간인에게 손을 댄 게 아니라 죽였어!”

주변의 시선이 쏠릴 정도로 점점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처웃으면서 장난감 가지고 놀듯이 말이야! 알아?

처용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지고.

결국, 목소리가 커지다 못해 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테러를 일으킨 게 마인이야! 그런데, 그놈들을 제압하라고?”

“그, 그게…….”

“그런 버러지 같은 규정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만든 건데? 어!”

처용의 머리에 짜증이 솟구쳤다.

너무나도 멍청하다.

이들의 마인드가.

이들의 대처방식이.

이렇게 안일하고 방심하고 속 편하게 생각했으니까!

지구가 멸망하고 세계가 종말을 맞이한 것이다.

분노하는 처용과 쩔쩔매고 있는 상민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김상민 헌터, 거기까지만 하세요.”

짧은 단발에 안경을 쓴 웃는 얼굴.

망토가 이어져 있는 로브와 허리춤에 있는 마수정이 장식된 지팡이.

전형적인 마법 클래스 헌터의 모습이었다.

“아…… 장 대리님.”

상민은 그녀를 보고 크게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현장조사로 끝났으면 됐지, 굳이 이분을 귀찮게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상민이 재빠르게 사라지자, 여성은 처용을 마주했다.

“장현아라고 해요.”

현아가 손목에 찬 아티팩트로 라이센스를 보여주었다.

“죄송해요. 저희는 현장을 조사하는 입장인지라…….”

현아가 처용에게 사과를 건넸다.

처용도 알고는 있었다.

그저, 이 거지 같은 규정 자체에 화가 났고 그 규정을 따르는 이들이 답답했었던 것이었다.

“협회 원칙이 마인들과 대치하면 사살보다는 제압을 고수해서요.”

“웃으면서 사람 죽이는 사이코들을 제압하라는 건, 도대체 어떤 놈 대가리에서 나온 겁니까?”

그녀의 말에 처용이 비웃음을 섞어 대답했다.

“그 규정 만든 새끼들보고 마인을 제압하라고 하시죠?”

“하…… 그러니까 말이에요.”

한숨을 내쉬며 답한 현아는 처용의 말에 공감했다.

“그래도, 그 규정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점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현아가 웃는 얼굴로 답하자, 처용의 인상이 조금 풀렸다.

‘그나마 낫군.’

처용은 현아의 말에 짜증이 가라앉았지만, 답답함은 풀리지 않았다.

좀 전의 상민이 그랬듯이,

다른 헌터들 모두가 눈앞의 현아와 같지는 않았으니까.

“감사합니다. 헌터님 덕분에,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처용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구할 목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받을 자격은 없었다.

“다친 분도 치료해주셨죠?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민간인한테 스킬을 써 주시기 힘드실 텐데…….”

“……아.”

생각해보니 구해준 이가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구슬피 우는 윤아의 모습.

변덕스러운 마음에 그녀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었었다.

“덕분에, 생존자들 모두 무사합니다. 지금쯤 병원에 도착했겠네요.”

“……다행이네요.”

무사하다고 하니 다행이긴 했다.

도와줬는데 또 잘못됐다고 하면 더 짜증이 났을 테니까.

“실례지만, 성함이? 아니, 라이센스를 보여주실 수 있나요?”

라이센스를 보여달라는 현아의 말에 처용이 속으로 인상을 구겼다.

원래, 지금 시간대에서의 처용은 일반인 신분.

즉, 각성하기 전이다.

헌터 라이센스는 당연히 없었다.

“라이센스가 없으신가요?”

현아는 처용에게 아티팩트가 아예 없는 것을 보고는 물었다.

‘어쩌지?’

이런 상황이 생길 줄 알았다면, 그냥 나오자마자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혹시, 싱글 헌터신가요?”

“……?”

처용이 고민하고 있을 때, 현아가 ‘싱글 헌터’냐고 물었고,

잠시, 생각한 처용은 싱글 헌터가 무엇인지 생각이 났다.

길드나 협회에 소속되지 않고 홀로 다니는 헌터들을 칭하는 말이었다.

지금 시기는 헌터를 위한 시스템이 완벽하게 자리 잡기 전이다.

후에 게이트 관리와 범죄예방, 헌터 복지 등을 위한 정책이 생기고.

위 혜택을 받기 위해 싱글 헌터들 모두가 라이센스를 발급받아 그 명칭이 사라지게 된다.

“혹시, 모르셨어요? 얼마 전에 라이센스 등록 의무화 정책이 통과했어요.”

현아가 처용에게 설명해 주었다.

“아직 유예기간이라 여유가 있지만, 불이익이 생기기 전에 발급을 받는 게 좋아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얼떨결에 잘 넘겼다.

처용이 속으로 안도했다.

“원래 진상조사도 해야 되는데, 시간이 늦었으니까 일단 돌아가시고…….”

현아가 로브 안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다가 처용에게 명함을 건넸다.

[던전관리 조사과 / 장현아 대리]

[연락처 : 010-……]

[…….]

“협회에 한 번 방문해 주시겠어요? 미리 전화 주시면 라이센스 발급도 도와드릴게요.”

현아는 단순히 친절한 마음으로만 호의를 베푼 것은 아니었다.

상민에게 미리 보고받았던 현장의 상황을 생각했다.

3명의 마인, C급 이상으로 추정되는 게이트와 수십 마리의 몬스터.

재난이라 말해도 표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광역 공격이 특기인 마법사 클래스를 가진 현아조차도 단신으로 막을 자신이 없었다.

아니, 단언컨대 막을 수 없다.

그런 재앙을 단신으로 해결한 헌터가 눈앞에 있었다.

‘힐러 클래스 헌터가 이뤘다기에는 믿어지지가 않지만…….’

보고를 받은 내용에 의하면 목숨이 위험한 민간인에게 치료스킬을 사용했고.

협회 헌터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자기 자신에게 치료스킬을 사용했다.

그가 힐러 클래스라는 것은 확실했다.

전투력이 약한 힐러 클래스 헌터가 마인들을 사살하고 C급 몬스터 무리를 전멸시켰다?

이 사실 하나만 따져도 클래스를 넘어 그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다.

아직, 아무 곳에 소속되지 않은 강력한 헌터를 협회에 끌어들일 수 있다면?

작금의 한국 헌터 협회에 도움이 될 것이었다.

‘선배가 괜찮은 사람들 좀 끌어오라고도 했으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싱글 헌터였지만, 그는 마인들의 손아귀에서 사람들을 구해냈다.

거기에. 사람들을 미리 대피시키고 단신으로 게이트의 폭주까지 막아내었다.

그런 그가 악인일 가능성은 현저히 적었다.

“……연락드리죠.”

명함을 받은 처용이 대답했다.

현아의 호의는 처용에게 있어 해될 것은 아니었다.

라이센스는 자격 증명서와 같았기에 가지고 있는 것이 좋았으니까.

“감사합니다. 협회에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오셔야 돼요.”

“그러죠.”

대답한 처용이 돌아서서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아…….’

처용은 무너진 전철역과 주머니 속에 찢어진 열차표를 번갈아 봤다.

‘집에는 어떻게 가지?’

나 홀로 계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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