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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37화 (237/240)

237화

쾅, 콰앙, 콰아앙-!

정도현과 루체는 서로 자릴 바꿔 가며 팽이처럼 쉴 틈 없이 부딪혔다.

충돌할 때마다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며 지하가 마구 뒤흔들렸다.

그렇게 그들은 지상까지 쭉 솟구쳐 멀어졌다.

“다들 괜찮아요?”

“…괜찮다.”

“휴, 죽는 줄 알았네. 덕분에 살았어, 천사 아가씨.”

이윤정이 네 쌍의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던 저 둘의 싸움.

이윤정은 그 여파로부터 동료들을 지키고자 합세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그녀가 감싸 준 덕에 신호영과 조예령은 어디 다치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다.

조예령은 지상까지 시원하게 뚫린 구멍을 올려다보며 중얼 댔다.

“젠장. 이러면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겠네.”

“…….”

도움은커녕 짐이나 다름없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무안했는지 조예령은 주먹으로 땅을 쿵 내리쳤다.

신호영도 같은 심정이기에 말없이 고갤 떨궜다.

아버지와 여동생의 복수를 해야 한다고 억지 부리며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정작 천사들은 정도현과 이윤정 둘이서 전부 처리했다.

천사들에겐 「태양신공」이 아예 안 먹혔다. 그래서 그와 조예령은 뒤로 물러나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미리 알았다면 고집부리지 않고 피난민들과 함께 내려갔을 텐데.

‘난 아무것도 못 했어.’

정도현에게 부담만 지웠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했다.

신호영은 축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

“이윤정, 빨리 정도현을 도우러 가.”

“네? 하지만…….”

“우린 신경 쓰지 말고. 그놈 엄청나게 강해졌잖아.”

정도현이 패하면 이 세상은 끝이다.

이윤정은 예언자가 언급했던 메시아.

그러니 분명 도움이 될 터.

이윤정은 우려스러운 눈으로 둘을 쳐다봤다. 조예령까지 괜찮다고 말하자 그녀는 별수 없이 고갤 끄덕였다.

“…알겠어요. 두 분 조심하세요.”

“조심은 천사 아가씨가 해야지. 싸우는 건 그쪽인데.”

“그것도 그러네요.”

조예령이 실실 웃으며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이윤정이 따라 웃곤 날개를 활짝 펼쳐 날아오르려 했다.

바로 그때,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모르는 대천사가 있었나 했더니 그쪽이 메시아였군.]

“……!”

소멸당한 줄 알았던 악마왕의 목소리였다.

이윤정은 급히 날개로 두 사람을 감쌌다.

스스스.

극소량의 시커먼 마력이 담배 연기처럼 허공에 떠다녔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보다시피 마력이 얼마 안 남았거든. 대화나 겨우 할 수 있을 정도지.]

“…무슨 꿍꿍이죠?”

[꿍꿍이라니?]

이윤정의 추궁에 악마왕은 경찰에게 붙잡힌 범죄자처럼 딴청을 부렸다.

“당신은 대천사한테 반격조차 안 했어요. 가만히 당해 줬죠.”

[아. 그거?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녀석은 마왕의 그릇인데.]

마왕의 그릇. 악마왕은 아까도 루체를 그렇게 불러댔다.

‘역시 꿍꿍이가 있어.’

이윤정은 빛의 창을 생성해 움켜쥐었다.

한 줌밖에 남지 않은 악마왕의 마력마저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날 죽이면 내 계획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나, 순진한 아가씨?]

피잉-!

섬광이 번쩍이며 빛이 악마왕을 꿰뚫었다.

검은 마력은 담뱃재처럼 바스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악마왕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어.]

우우웅-!

그 말과 함께 바닥에 새겨진 핏빛 마법진이 공명하며 빛났다.

그제야 이윤정도 눈치챘다.

잘게 흩어져 사라진 줄 알았던 악마왕의 마력이 은밀히 바닥의 마법진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걸.

“뭐, 뭐야?”

화아악-!

공장 굴뚝이 내뿜는 매연처럼 마법진에서 시커먼 마력이 쏟아졌다.

악마왕이 부활하려는 건가?

불길한 느낌이 든 이윤정은 빛의 창을 마구 내지르며 검은 연기를 찌르고 갈랐지만, 마법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맹렬한 기세로 마력을 토해 냈다.

조예령이 답답하단 표정으로 외쳤다.

“그냥 마법진을 부숴!”

조예령이 도끼를 번쩍 들어 땅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터엉-!

하지만 마법진이 크게 반발하며 그녀가 저 멀리 날아갔다.

“그러니까 소용없다고 했잖아.”

“……!”

시커먼 연막 속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빛의 창을 내지르던 이윤정은 멈칫했다.

저 목소리,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그래,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다.

검은 마력이 커튼처럼 좌우로 걷히고 목소리의 주인이 사뿐사뿐 걸어 나오자 이윤정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엄마……?”

그녀가 갓난아기일 적. 품에 안겨 속삭임을 들은 게 다였지만.

이윤정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눈앞의 여인이 자신의 어머니라는 걸.

[대천사 미엘라] [LV.145]

“아, 아…….”

이윤정은 떨리는 손을 뻗으며 미엘라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시체 따위가 아니었다. 직접 맞닿지 않아도 따스한 체온과 숨결이 느껴진다.

갓난아기 때 드문드문 보아 흐릿하게 기억나는 다정한 눈동자와 아름다운 미소.

그녀의 기억 속 어머니가 눈앞의 미엘라와 겹쳐 보였다.

“이윤정, 속지 마라!”

경계심을 풀고 미엘라에게 다가가던 이윤정을 신호영이 다급히 불러세웠다.

그의 날카로운 외침에 이윤정도 겨우 정신 차렸다.

‘저건 엄마가 아니야.’

그래, 엄마는 오래 전에 인간들 손에 붙잡혀 죽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풍기는 마력마저 똑같아 속았지만 저건 틀림없이 가짜다.

이윤정이 다시 창을 겨누며 따졌다.

“당신 누구야!”

“방금까지 사이좋게 대화했잖아?”

미엘라는 쿡쿡 웃으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악마왕이 엄마의 탈을 쓰고 자신을 농락했다. 그 저열함에 이윤정이 치를 떨었다.

“아직 놀라긴 이른데.”

딱-!

미엘라의 모습을 한 악마왕이 손가락을 튕기자 마법진이 또다시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이번엔 웬 남성형 천사가 연막 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 남자 역시 미엘라처럼 날개가 네 쌍이나 됐다.

[대천사 라피엘] [LV.144]

“뭐, 뭐야? 천사가 늘었어?”

“…놈의 환각인가?”

신호영이 그렇게 의심하자 악마왕이 고갤 저었다.

“환각이 아냐. 전부 진짜라고. 시험해 볼래?”

화르륵-!

미엘라의 손아귀에 성스러운 불꽃이 피어나 창의 형태를 띠었다.

그녀가 화염의 창을 가볍게 찔러 넣자 불길이 회오리처럼 휘몰아치며 그들을 덮쳤다.

이윤정은 빛의 창을 사선으로 휘둘러 불길의 궤도를 비틀었다.

“말도 안 돼…….”

악마왕은 겉모습만 바뀐 게 아니었다.

대천사 미엘라의 권능을 고스란히 사용했다.

어떻게 악마가 천사의 힘을 다룬단 말인가.

혼란에 빠진 이들을 보며 악마왕은 기꺼웠는지 친절하게 하나씩 설명해 줬다.

“루체는 나와 거래했어. 동족들의 몸과 영혼을 제물로 바쳤지.”

“…몸과 영혼?”

“그래. 아까 녀석이 사용했던 영혼의 구슬. 그걸 주는 대가로 말이야.”

대악마는 보여 줄 게 더 남았다며 마법진을 계속 가동시켰다.

마력이 뿜어지며 천사들이 하나둘 걸어 나왔다. 그 수만 자그마치 수십 명.

불행 중 다행인지 대천사는 미엘라와 라피엘 외엔 더는 없었다.

하지만 수십의 천사들 전부 두 쌍 이상의 날개를 지닌 상위 천사였다.

수십의 천사 부대의 등장에 신호영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지? 간단해. 난 「거래」로 뭐든 주고받을 수 있거든. 설령 그게 수명이나 기억 혹은 영혼처럼 실체가 없는 거라도 말이야.”

악마왕의 개인 특성, 「거래」.

그는 루체에게 강한 힘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 대가로 루체는 동족들의 육신과 영혼 그리고 그가 죽으면 본인의 몸과 영혼마저 악마왕에게 내주기로 했다.

그렇게 루체는 영혼의 구슬의 힘을 취했고 「거래」가 성립되었다.

루체가 제물로 바친 천사들의 육신과 영혼은 전부 악마왕의 소유가 되었다.

“시체지만 내가 「거래」로 모아 온 수명을 나눠 줬거든. 그러니 지금은 살아 있는 상태나 다름없지.”

그렇기에 천사들은 생전의 힘을 그대로 쓸 수 있었다.

“뭐, 마왕과 마족들의 영혼을 내주긴 했지만 어차피 걘 곧 죽을 거고. 대천사 둘에 수십의 상위 천사들까지 손에 넣었으면……. 충분히 남는 거래지.”

악마왕이 미엘라의 몸을 빌려 터무니없는 소릴 내뱉자 이윤정은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자, 다들 궁금증은 풀렸지?”

악마왕, 아니 대천사와 상위 천사들의 육신을 차지해 수십 명으로 불어난 악마왕이 제각기 마력을 끌어 올리며 이윤정에게 쇄도했다.

* * *

콰과과과광-!

드높은 상공에서 불꽃놀이라도 하듯 크고 작은 폭발이 터졌다.

정도현은 몇백 번이고 루체를 썰었다.

하지만 놈은 마치 화형당한 죄인처럼 온몸에 시커먼 불길을 두르고 끝없이 재생했다.

“암만 베어도 소용없다, 열등종!”

정도현은 재생력만 믿고 으스대는 놈들은 수도 없이 죽였다.

하지만 루체는 반신. 다른 놈들과 격이 달랐다. 그야말로 불사신 같았다.

정도현은 검을 휘둘러 상대의 주먹질을 모조리 쳐 내며 동시에 물었다.

“너 아까 뭘 처먹은 거냐?”

“변절한 동포들의 영혼이다.”

“…영혼?”

아까 그 꺼림칙한 구슬은 천사들의 영혼들을 집약시켜 둔 건가?

그런 것치곤 신성한 기운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가 볼 땐 뭐랄까. 거대한 악(惡)이 담겨 있는 듯했다.

‘하긴, 그게 뭔 상관이야.’

놈이 뭘 처먹고 강해졌든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서걱-!

정도현은 상대의 공격을 읽고 흐름을 베었다. 기세 좋게 날아들던 루체의 한쪽 팔이 거짓말처럼 날아갔다.

회복력과 통증은 별개였기에 루체의 미간이 좁아졌다.

“벌레 같은 새끼가!”

“그 벌레한테 넌 몇 대를 처맞은 거냐.”

유치한 말싸움과 함께 정도현은 검을 휘둘렀다.

루체는 순간 주변 공간이 찌그러지는 착각이 들었다.

촤좌좌좍-!

너무 빨라 마치 수백 개로 늘어난 듯한 칼날이 그의 몸을 산산이 분쇄했다.

다진 고깃덩이가 되어 추락하던 루체는 몇 초도 안 걸려 재생했다.

“…그러니까 소용없다고!”

루체가 손바닥을 내밀며 검은 불꽃을 탄환처럼 쏘았다.

검술의 극의를 펼친 탓에 잠시 마력이 동났던 정도현은 반응이 늦었다.

콰앙-!

폭발에 떠밀려 공중에서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정도현은 벌떡 일어나며 혀를 찼다.

‘싸울수록 점점 세지는 거 같은데.’

지쳤거나 해서 착각한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놈의 마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빨리 어떻게 하지 않으면 슬슬 위험해질듯 싶다.

“…응?”

정도현은 의기양양하게 지상으로 착지한 루체를 보곤 눈을 크게 떴다.

그 반응에 루체는 드디어 놈이 자신의 위대함에 굴복했다 여기곤 폭소했다.

하지만 정도현이 놀란 건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야, 너 머리에 뿔이 더 자랐는데?”

“뭣? 무슨 헛소릴…….”

루체는 머릴 더듬고선 위화감을 느꼈다.

그 말대로 한 쌍뿐이었던 악마의 뿔이 두 쌍으로 늘어났다. 루체는 당황한 얼굴로 뿔을 더듬었다.

정도현은 그의 변화를 관찰하며 생각했다.

‘마력이 갑자기 강해진 거랑 연관된 건가?’

영혼을 삼켜 강해진 것까진 이해한다.

순백교 교주도 플레이어의 영혼을 흡수해 일시적으로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천사들의 영혼을 삼켰으면 왜 저런 악마 같은 모습이 됐을까.

“야, 돼지. 너 혹시 악마한테 속은 거 아냐?”

“…속았다고?”

“네가 삼킨 거, 천사들 혼이 아니라 악마들의 혼 같은 거 아냐?”

루체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관없다. 네 놈을 뭉개 버릴 수만 있다면 악마든 괴물이든 되어 주겠다!”

“아, 그러세요.”

대화로 잠깐 시간을 끈 덕에 정도현은 마력이 거의 회복됐다.

드래곤 하트의 사기적인 능력에 감탄하며 다시 자세를 잡을 때.

『무의미하게 계속 시간만 버릴 거냐?』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정도현은 주변을 두리번댔지만 루체말고는 아무도 안 보였다.

『난 네 안에 있다.』

정도현은 고갤 내려 자신의 가슴팍을 쳐다봤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드래곤 하트가 자리 잡은 심장부였다.

정도현이 흠칫했으나 드래곤 하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놈을 죽일 방법을 알려 주지. 대신 조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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