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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35화 (235/240)

235화

대천사, 루체는 서둘러 왕성 지하로 내려왔다.

언젠가 자신을 죽이러 올 암흑룡에 대비해 마련한 의식용 제단과 제물들이 그를 반겼다.

왕성 지하실은 천사들의 왕궁이 아니라 악마 숭배자들의 비밀 아지트라 말해도 믿을 만큼 기괴하고 음산했다.

지하실 바닥 전체를 도화지 삼아 그린 듯한 적색의 마법진. 그 중심에 놓인 악마 소환의 제단.

지하실 양 끝에는 보존액으로 꽉 찬 유리관이 있었다. 유리 안에는 금단의 비술에 쓰일 수십의 제물들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전부 천사들이었다.

전 인류를 가축으로 삼자는 그의 뜻에 반대했던 자들.

마음 같아선 살점조차 남김없이 없애 버리고 싶었지만, 저들의 육신은 훌륭한 제물이었다.

루체는 오랜만에 마주한 동포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다 그리운 여인을 발견했다.

“…미엘라, 죽어서도 넌 여전히 아름답구나.”

스윽.

루체는 한 여인이 담긴 유리관에 손을 얹고선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눈빛과 손짓에서 애틋함이 듬뿍 묻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표정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왜… 그깟 열등종 따위한테 속아서 몸과 마음을 허락했느냐?”

루체는 미엘라를 아주 오랫동안 사랑했다.

미엘라는 그와 동격의, 몇 없던 대천사였다.

그런 그녀는 기이하게도 인류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다.

물론 천사가 하등한 인간을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태양신께서 천사를 창조한 이유도 나약하고 덜떨어진 인류를 보살피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감정선이 희미한 천사들도 본능처럼 인간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위험할 때 몇 번이고 도움을 줬다.

하지만 착각해선 안 된다.

천사와 인간은 동등한 관계가 아니다.

천사는 인간보다 우월한 종족.

아름답고, 장수하며, 강하고, 현명하기까지 했으니까.

그래, 인간이 개나 고양이를 보살펴 주는 정도의 관심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열등종에겐 과분했다.

“열등종이 널 더럽히다니…….”

모든 생명체엔 돌연변이가 태어난다.

천사들도 그러했다.

필요 이상으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호의적으로 굴었던 천사들이 일부 있었다.

불행히도 그가 연모했던 미엘라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천사들과 종종 하계로 내려가, 여행을 다니듯 이곳저곳 떠돌며 인간들을 도왔다.

심지어 인간과 친구가 되고 싶단 말까지 했었다.

그녀가 멍청한 소릴 뱉을 때마다 그는 가슴이 답답했지만 뭐라 내색할 수 없었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마음에도 없는 말로 그녀를 응원해 줬다.

그녀에게 미움받는 건 무서웠으니까.

어릴 적, 그녀에게 인간이 열등하다고 말했던 적 있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를 피해 다녔다. 그 탓에 한동안 말도 못 붙였다.

결국,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하고 나서야 겨우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몇 달간의 긴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온 그녀가 찾아와 말했다.

어떤 플레이어와 친구가 됐다고.

그때까지만 해도 루체는 좀 불쾌했을 뿐, 그 인간을 크게 경계하지 않았었다.

그에겐 천사와 인간이 맺어지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으니까.

인간과 원숭이가 어찌 결혼하겠는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미엘라는 그 남자를 천공의 섬까지 데리고 와선 결혼하겠다고 밝혔다.

규율상 인간이 천공의 섬에 거주할 순 없으니, 자신이 지상으로 내려가 살겠다면서.

정말 멍청한 소리였다.

루체는 그녀를 설득했다.

인간은 믿을 수 없다고. 하계에서 살아가는 건 위험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미엘라는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결국, 대천사와 최상위 천사들이 전부 모여 그녀의 처우에 대해 논했다.

며칠간 이어진 논쟁 끝에 과반수가 그녀의 뜻을 존중해 줬고, 그녀는 인간의 모습을 빌려 지상으로 내려갔다.

특별한 이유 없이는 천사의 모습을 보이거나, 천공의 섬으로 올라오지 않는단 피의 맹약을 맺고서.

“미엘라, 네가 쭉 행복하게 살았더라면……. 나도 그 남자와 인간들을 용서했을 거다.”

미엘라가 떠난 지 오륙 년쯤 되었을 무렵.

하계로 내려갔다 온 천사들이 소식을 가져왔다.

그녀가 인간들에게 붙잡혀 실종됐다고.

그는 믿지 않았다. 당연히 헛소문이라 생각했다.

미엘라는 자신과 같은 대천사.

인류의 정점인 최초의 플레이어가 몇 명씩 덤벼들지 않는 한 그녀를 당해 내진 못할 터.

그러나 그가 몰랐던 변수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몇 년 전 아이를 잉태했었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웬 플레이어들이 그녀를 습격했다고 한다.

그녀는 저항했으나 임신한 상태에선 제대로 싸울 수 없었고, 결국 그들에게 사로잡혔다.

“그 가증스러운 놈이 널 팔아넘기지만 않았어도…….”

미엘라 본인도 알고 있었다. 아이를 품고 있는 지금이 가장 위험한 순간임을.

그녀는 혹시 모를 화를 피하고자, 아이를 낳을 때까지만 사람 발길이 끊긴 산골에 숨어 지내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은신처를 밀고한 이가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의 남편이 말이다.

“고작 돈에 눈이 멀어 널 팔아넘기다니…….”

미엘라는 천사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당연했다. 천사란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이목을 끌었으니까.

천사를 신의 사도라 여기고 호의적으로 구는 인간들이 있는가 하면, 몬스터 취급하며 경계하고 혐오하는 자들도 많았다.

그렇기에 미엘라도 자신의 본모습과 마력을 감춘 채 인간처럼 지낸 것이다.

문제는 그녀의 남편한테 있었다.

그 남자는 운 좋게 플레이어로 각성했으나 재능은 미천해 레벨이 낮았다.

그러다 보니 삶의 여건이 썩 풍족하지 못했다. 입에 풀칠이나 겨우 했겠지.

천사였던 미엘라는 가난에 연연하지 않았으나, 그 남자는 점차 지쳐 가고 불만이 쌓였을 것이다.

그러다 한탕을 노리고 도박 따위에 손을 댔고, 빚만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졌다.

최후엔 돈이 부족해 아내의 비밀까지 팔아넘겼다고 한다.

그 정보는 최초의 플레이어들 귀에도 들어갔다.

아까 말했듯 인간들 중엔 천사를 적대시하는 자들도 많았다.

최초의 플레이어들 역시 그러했다.

그들 대부분은 천사 역시 토벌해야 할 몬스터로 보았다.

당장은 시도 때도 없이 생기는 차원 게이트를 막으려면 천사들의 힘이 필요하니 임시 동맹을 맺었지만, 언제든 배신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신호탄이 지상으로 내려온 대천사, 미엘라였다.

“그자들은 널 실험체로 쓰다 죽였다.”

최초의 플레이어 중 흑마법사가 있었다. 그자는 미엘라의 육체를 연구하고 실험해 천사들의 약점을 알아내려 했다.

그러다 그녀가 못 버티고 죽었다.

아마 그때였으리라. 그의 마음을 억누르던 무언가가 뚝 끊어졌던 게.

최초의 플레이어들이 천사들을 배신할 준비를 해 왔듯, 루체도 예전부터 준비를 해 뒀었다.

정기 회담 때마다 몰래 만나, 정신 감응으로 천천히 세뇌해 뒀던 최초의 플레이어 세 명.

그녀들의 배신으로 인류는 허망하게 패했다.

“열등종 년들에게 바보처럼 웃어 줬어. 세뇌하려고 몸까지 섞었지. 그게 얼마나 고역이었는 줄 알아? 그래도 꾹 참고 하길 잘했어. 내가 아니었으면 인간들한테 졌을 테니까.”

루체는 미엘라가 담긴 유리관에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지상에서 들리던 시끄러운 소리가 멎었다. 시간 벌이로 보냈던 천사들이 전부 당한 모양이다.

그래, 그 머저리들한텐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다.

“흐, 흐흐……. 결국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루체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마법진의 중심으로 뒤뚱뒤뚱 걸어갔다.

우우웅-!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바닥에 새겨진 붉은 마법진도 점점 밝게 빛났다. 마치 그를 환영하듯이.

루체는 마법진 중심에 놓인 제단 앞에 섰다. 그리곤 양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내 부름에 응해라, 악마왕이여!”

콰아아아-!

마법진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구치며 제단 쪽으로 몰려들었다.

검은 연기는 허공에서 뭉쳐지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갖췄다.

잠시 뒤, 음산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 오랜만이군, 루체. 이게 몇십 년 만이지? 못 본 새 살이 많이 쪘구나.]

“잡담할 시간 없다, 악마왕! 예전에 설명했던 금단의 비술을 당장 나한테 써라! 제물들도 다 준비해 뒀다!”

[호오. 그걸 쓰겠다고?]

악마왕을 소환해 낸 루체는 본론부터 말했다. 금단의 비술로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악마왕도 흥미가 동했는지 음침하게 웃어 댔다.

[정말 동포들을 제물로 준비해 뒀군.]

“노닥거릴 시간이 없단 말이다! 놈이, 이클립스가 오고 있다!”

[아,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대가와 제물들만 바치면 금단의 비술은 한순간에 끝나니까.]

드디어 올 게 왔다. 악마왕이 말해 주지 않았던 비술의 대가.

루체는 마른침을 삼키곤 물어봤다.

“그래서 대가가 뭐지?”

[자네가 죽으면 그 몸과 영혼을 내 마음대로 쓰겠네.]

“…그게 다냐?”

엄청난 대가를 요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것 없었다.

자신이 죽고 난 뒤에 몸과 영혼을 넘겨주는 조건이라니.

악마왕이 뭔 짓을 꾸미든 그와 무슨 상관인가. 그때쯤이면 자신은 이미 세상에 없을 텐데.

“좋아. 계약하겠다!”

[그럼 시작하지.]

스스스-!

시커먼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고위 천사들의 시신이 담긴 유리관을 모조리 휘감았다.

악마왕이 탐욕스럽게 집어삼킨 제물들.

천사들이 마법 공학으로 만들어 낸 시공간 동결액으로 육신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혼들마저 그의 양식이 되었다.

악마왕은 뽑아낸 영혼들을 강제로 뭉쳐 성인 남성의 주먹 크기의 구슬로 만들었다.

영혼을 뭉친 구슬은 징그럽게 꿈틀거렸다.

끼에에엑-!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해 괴로웠는지 끔찍한 비명마저 질러 댔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하고 불쾌했다.

악마왕은 수십의 영혼들이 갇힌 구슬을 내밀며 말했다.

[삼켜라.]

“그걸 삼키면 정말 강해지는 거냐?”

[그래.]

루체는 영혼 구슬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선뜻 삼키질 못했다.

‘이 안에 미엘라의 영혼도 있을 거다.’

그녀는 분명 어리석다.

자신이 아니라 인간과의 사랑을 택했고 끝내 파멸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녀마저 사랑했다.

“이걸 삼키면 안에 담긴 영혼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

[인제 와서 마음이 약해진 거냐, 루체?]

“…….”

루체가 뭐라 말 못 하고 가만히 있자 악마왕은 혀를 찼다.

마약에 찌들어 타락했는데도 망설임이 남다니. 본질은 바뀌지 않는단 말인가.

‘하나 상관없다.’

암흑룡의 힘을 지닌 자가 여기로 오고 있으니까.

콰아앙-!

악마왕의 상념은 폭발음과 함께 날아갔다. 지하실 천장이 와르르 무너지며 정도현 일행이 하나둘 착지했다.

[정도현] [LV.142]

고위 천사들을 몰살시키고 레벨을 왕창 올려 온 정도현. 그가 루체를 노려봤다.

용의 기운을 지닌 자와 실제로 마주하자 루체는 등골이 오싹했다.

저 인간은 마치 죽음을 형상화한 듯했다.

“…너냐? 천사들의 왕이?”

정도현은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루체를 바라봤다.

[타락한 대천사장 루체] [LV.145]

인류를 패퇴시켜 가축으로 삼고.

세상을 여러 구역으로 나눠 인류끼리 반목하게 만들어 뭉치지 못하게 막았으며.

인간의 뇌를 마약의 재료로 삼아 향락에 빠져 살았던 괴물들의 수장.

그런 거물치곤 너무도 형편없는 모습에 김이 빠질 지경이었다.

“저딴 돼지 새끼한테 인류가 백 년 가까이 지배당했다고?”

콰아아아-!

어이없음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정도현이 마력을 방출하자 세상이 진동했다.

수십의 고위 천사들을 거의 혼자서 상대하고도 그는 마력이 고갈되지 않았다.

자연의 기운을 통해 마력을 초고속으로 재생시키는 드래곤 하트의 특성 덕이었다.

“뒈져.”

“……!”

정도현의 신형이 섬광처럼 변해 순식간에 거릴 좁혔다.

콰직-!

그의 칼날이 루체의 미간을 단숨에 꿰뚫었다.

인류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대천사이자 천사들의 왕은 제대로 반응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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