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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33화 (233/240)

233화

이윤정은 정도현에게 찬찬히 설명해 줬다.

“예언자가 말한 메시아와 이클립스는 저랑 오빠였어요.”

“하지만 이클립스는 암흑룡이잖아?”

드래곤 하트를 삼킨 정도현의 모습은 분명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긴 했으나 용이라 부르기엔 어폐가 있었다.

용과 인간. 그 사이에 있는 용인이라면 또 모를까.

“제가 조금만 늦었으면 오빠는 다음 단계로 변했을 거예요.”

“다음 단계?”

“아까 말했듯 오빠가 삼킨 드래곤 하트는 암흑룡 이클립스의 것이에요.”

용의 마르지 않는 마력의 원천인 드래곤 하트는 그 어떤 영약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대단했지만, 그 힘을 인간이 받아들여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른 플레이어였으면 진즉 마력에 잡아먹혀 암흑룡으로 변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아슬아슬하게 자아와 모습을 잃지 않고 버텨 냈어요.”

“…「조화심공」 덕이구나.”

모든 종류의 마력을 받아들이고 다룰 수 있게 해 주는 스킬, 「조화심공」.

정도현은 그걸 익혔기에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고도 기적적으로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

물론 이윤정이 제때 오지 못했으면 용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겠지만.

“그런데 드래곤 하트가 이클립스인 건 어떻게 안 거야?”

“시스템이 제 사명을 알려 줬어요. 이클립스가 부활하는 걸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시스템이?”

양파 껍질처럼 까도 까도 새로운 내용이 나왔다.

잠깐 얘기하고 끝낼 얘기는 아닌 듯해서 정도현은 바닥에 앉았다. 서아린과 권하율도 그를 따라 했다.

이윤정은 어디서부터 얘기할지 고민하더니 처음부터 쭉 털어놓기로 했다.

“혹시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어요? 시스템이란 뭐고, 언제부터 이 세상에 존재했었는지.”

“아니.”

“잘 모르겠는데. 그쪽은?”

“글쎄요, 막연하게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셋 다 고갤 저었다.

정도현과 서아린은 어릴 때부터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사느라 바빠 그런 걸 따질 겨를이 없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권하율도 깊이 고민해 본 적은 없었고.

그게 정상이었다. 시스템은 그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으니.

중력 때문에 사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시스템이 왜 존재하고, 어떻게 탄생했는지 파헤칠 사람은 그리 흔치 않았다.

물론 그런 괴짜들이 몇 있긴 했으나 여태껏 밝혀진 건 없었다. 추측만 무성할 뿐.

“시스템은 정확히 116년 전에 생겨났어요.”

그러나 이윤정은 메시아였기에 시스템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저절로 떠올렸다고 보는 게 맞겠지.

“116년 전에 생긴 게 뭐 어때서?”

“이상하지 않아요? 그 전에는 시스템이 존재치 않았단 거니까. 태초부터 있었다면 모를까.”

“사건이 있었군요. 시스템이 생겨났을 만큼 엄청난 대사건이.”

권하율이 질문의 요지를 짚어 주자, 이윤정은 고맙단 표정을 짓곤 고갤 끄덕였다.

“116년 전에는 지구란 이름의 차원이 있었고, 수백의 나라와 다양한 인종들이 살아 갔어요.”

“아, 그거 저번에 할아버지가 말해 줬었지.”

“그렇게 많은 나라와 인종 중에서 한국인만이 그 사건에서 살아남았어요.”

“그 사건? 시스템이 생겨난 계기 말하는 거야?”

“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국인만 살아남았을까. 그들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윤정은 잠시 심호흡하더니 사건의 실체를 밝혔다.

“태양신이 없앴어요, 한국인을 제외한 인류 전부를.”

“…태양신이?”

“왜 그런 짓을?”

태양신이 실존했다는 게 놀라웠지만 그 이상으로 궁금했다.

그는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정도현이 빨리 알려 달란 눈으로 이윤정을 바라봤다. 그녀가 말했다.

“태양신은 앞으로 닥칠 차원 게이트에서 살아남을 신인류를 찾으려 했어요.”

“신인류?”

“마력을 지닌 인간, 플레이어에 적합한 인종을 가려 내려 했었죠.”

“거기서 한국인이 선택됐단 건가요?”

“네.”

권하율은 물어봤다. 왜 다른 인종들을 없애고 한국인만 남겨 뒀을까.

“태양신은 인류를 시험하고자 가상 현실 게임을 만들었어요.”

“…가상 현실 게임?”

“지금 저희가 사는 세상이 그때 만들어진 가상 현실 게임이에요.”

그렇기에 여타 게임처럼 시스템과 아이템들이 존재하는 거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순간 말문이 막혔다. 서아린이 가장 먼저 따졌다.

“잠깐만, 여기가 게임 속이라고? 그럼 전부 가짜란 거야?”

“아, 그건 아니에요. 말이 게임이지, 실제론 태양신이 새롭게 만든 세상이니까.”

태양신은 인류를 속이고자 게임 구조를 참고해 이 세상을 창조했다.

그렇기에 당시 인류는 여기가 다른 차원의 세상이라곤 꿈에도 몰랐었다.

현실과 구분이 안 될 만큼 정교한 가상 현실 게임이라 알려지며 순식간에 인류를 매료시켰다.

“당시 게임의 최종 보스, 이클립스를 토벌한 게 바로 한국인들이었어요.”

태양신은 같은 국가 그리고 같은 인종끼리만 파티를 맺고 협력할 수 있게 정해 뒀다.

누가 먼저 게임을 클리어할지 국가 단위로 경쟁을 붙인 거다. 가장 먼저 최종 보스를 쓰러트린 자들에겐 특별한 상을 내려 준다고 약속하면서.

“특별한 상? 그게 뭔데?”

“그 게임은 베타 서비스였어요. 이클립스를 죽이면 모든 게 초기화되게 설정되어 있었죠. 하지만 이클립스를 죽인 파티는 특전을 받았어요. 그들은 레벨과 아이템이 그대로 보존됐죠.”

“그럼 다른 사람들은…….”

“한국인은 계정만 초기화됐고, 다른 인종들은 아예 소멸했죠.”

다른 인종들보다 마력을 특출나게 잘 다뤄 빠른 성장 속도를 보였던 한국인.

태양신은 이클립스가 격파되기까지 최소 10년은 바라봤었다.

그런데 한국인 플레이어들은 5년도 채 되지 않아 이클립스의 모가지를 따 버렸다.

심지어 최소 도전 인원인 열 명만으로 말이다.

이후 베타 서비스가 끝나고 한국인만이 게임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왔다.

그리고 이클립스를 무찌른 열 명의 플레이어는 최초의 플레이어라 불리게 되었다.

시스템이 탄생한 배경을 알게 된 정도현은 표정을 찌푸렸다.

“고작 그딴 일로 수십억의 사람들을 없앴다고?”

“태양신 입장에선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태양신에겐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었거든요.”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니.

신에게 수명이 정해져 있단 말인가?

그럼 그걸 정말 신이라 불러야 하는 건가.

정도현 일행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챘는지 이윤정은 설명을 덧붙였다.

“태양신이란 이름도 인간들이 멋대로 붙인 거니까요.”

태양신은 태양의 힘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생명체의 한계를 아득히 초월했을 뿐.

인간들이 생각했던 완전무결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는 아니었다.

다만 인간의 기준에선 신에 버금가긴 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나 세상을 갈아엎을 수 있었으니까.

“그럼 태양신은 죽은 건가요?”

“네. 지금은 시스템과 하나가 됐어요.”

태양신은 죽기 전에 남은 힘을 쥐어짜 이 세상을 만들고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게 태양신이 소멸하자, 몬스터들이 살아가던 다른 차원의 세계도 급속히 불안정해졌다.

대륙 곳곳에 균열이 발생했고, 그게 차원 게이트로 이어지며 이 세상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태양신은 자신의 사후 이후 인류가 몬스터들 때문에 멸망하지 않길 바란 걸지도 몰라요. 태양신도 초월하기 전에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래서 한국인들을 인류 대표로 정하고 힘을 몰아 줬다고?”

그렇게 인류가 걱정됐으면 수십억 명의 인간 대신 몬스터들을 멸종시켰으면 되지 않은가.

정도현이 그렇게 반박하자 이윤정은 고갤 저었다.

“인과율 때문에 직접 나설 순 없었을 거예요. 태양신은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인류를 배려했어요. 이 세상, 방주(Ark)에 태울 수 있는 인원도 제한되어 있었고…….”

그녀가 태양신의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해 줬으나 정도현은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 뭐, 그런 건가?

“그래서 결과가 이 모양이야?”

방주에 타지 못한 수십억 명을 버렸으나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인류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최초의 플레이어 중 세 명이나 인류를 배신하고 천사들 측에 붙었으니까.

그 결과, 살아남은 인류는 가축 신세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라도 바로잡아야죠. 오빠, 부탁해요.”

“알아, 나도 안다고.”

정도현은 고갤 끄덕이며 일어섰다.

문제는 배신자들이 일으키고 그 뒤처리를 해 줘야 하는 게 불쾌했지만, 그가 아니면 인류를 구할 사람이 없었다.

어쩌겠는가.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졌던 일인데.

정도현은 류중현한테 받았던 엘리베이터 열쇠를 서아린에게 건네며 말했다.

“둘은 위험하니 먼저 내려가. 윤정아, 넌 어쩔 거야?”

“오빠랑 같이 싸울게요.”

“…정말 괜찮겠어?”

메시아로 각성한 이윤정은 분명 강대한 마력을 지녔다.

하지만 태어나 싸움이라곤 일절 안 해 본 그녀가 천사들과 제대로 싸울 수 있을까.

“걱정되면 시험해 볼래요?”

그의 우려에 그녀는 빙긋 웃으며 허공을 움켜쥐었다.

파아앗-!

그녀의 손아귀에 순백의 빛이 모여들더니 마치 창처럼 변했다.

“들어와 봐.”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빛의 창이 뻗어 왔다.

정도현은 고갤 꺾어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급소를 노린 이윤정. 그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손을 놀려 창을 휘둘렀다.

정도현은 뒤로 물러나며 검을 뽑아 응수했다.

채재재쟁-!

순식간에 수십 합을 주고받은 두 사람.

손끝으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에 정도현은 고갤 끄덕였다.

이윤정은 틀림없이 강하다.

드래곤 하트를 흡수하지 않았으면 아마 이기기 힘들었겠지. 이만하면 테스트는 충분히 했다.

“좋아, 합격.”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검을 집어넣자 이윤정도 빛의 창을 집어넣었다.

든든한 지원군이 와 준 덕에 그도 한시름 놨다.

정도현과 이윤정이 날개를 펼쳐 하늘로 떠오르자, 서아린과 권하율이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죽지 말고 돌아와요!”

“대답 기다릴게요.”

그녀들의 말에 정도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관문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신호영과 조예령은 신성한의 시신을 수습해 되살렸다.

목이 부러져 죽었던 그가 눈을 뜨자, 조예령은 엉엉 울며 품에 안겼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넌 누구지. 침입자냐?”

그는 조예령을 알아보지 못했다.

드래곤 하트로 폭주했던 정도현과 싸울 때, 소중했던 이들과의 추억은 전부 대가로 소진했으니까.

그가 기억하는 건 자신의 이름과 책무뿐이었다.

“아버지…….”

스릉-!

아들의 부름에 신성한은 대답 대신 검을 뽑았다.

하지만 막 되살아난 상태라 일어서자마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그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들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조예령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너무 늦었어. 심마(心魔)가 찾아왔어.”

“심마라니, 그게 무슨…….”

“예전에 성한이한테 직접 들은 거야.”

심마는 무인의 몸과 마음의 균형이 어긋나면 덜컥 찾아온다고.

신성한은 「시간 정지」의 대가로 기억의 대부분을 잃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든 건 자신이 누구였는지와 싸우는 방법뿐.

그러니 몸과 마음의 균형도 무너질 수밖에.

“저대로 놔두면 곧 주화입마에 빠져서 완전히 미쳐 버릴 거야.”

관문을 지키며, 저길 지나가려는 자들을 모조리 베려 들겠지.

그녀의 말에 신호영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수십 년 만에 겨우 만났는데 자신을 기억조차 못 하고 살인귀로 변한다니.

참으로 잔혹한 결말이었다.

이게 영광의 일족으로 태어나 천사들의 수족으로 살아온 대가인가.

“주화입마를 고칠 방법은 없습니까?”

“본인이 이겨 내는 것 말곤 없어. 하지만 저래선…….”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어떻게 심마를 떨쳐 내겠는가.

조예령의 말에 신호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강새벽이 꿨던 예지몽이 아무래도 지금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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