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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27화 (227/240)

227화

정지된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성한이 힘껏 도약했다.

불꽃의 날개가 로켓의 추진체처럼 그의 등을 떠밀자, 주변 시야가 엿가락처럼 늘어나며 순식간에 결계 앞에 도달했다.

그는 검을 마구 휘둘렀다.

화염의 칼날이 보호막과 맞닿을 때마다 폭발이 일며 결계에 금이 쩍 갈라졌다.

다만 폭발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세상은 우주 공간처럼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벌써 시간이 다 됐나.’

찰나의 시간 동안 결계를 수십 번이나 후려친 신성한은 이변을 감지하곤 성벽에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얼어붙었던 시간이 녹아내렸다.

달팽이처럼 세상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조금씩 가속하고 있다. 곧 정상 속도를 되찾을 터.

‘겨우 5, 6초 정도인가.’

아내와 함께 보낸 몇몇 소중한 추억들을 바쳐 얻어 낸 게 고작 몇 초라니.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며 속으로 불평한 그는 조예령을 품속에 끌어안은 뒤 땅을 박찼다.

그와 그녀가 성벽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직후.

콰과과과광-!

요란한 폭음이 터지며 결계가 뒤흔들렸다.

성벽 위의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충격파에 휩쓸려 저마다 비명을 지르고 넘어졌다.

“뭐, 뭐야!”

“결계가 심하게 손상됐다!”

“갑자기!?”

병사들은 당황했다. 연합군의 공성용 병기는 아직 불을 뿜지도 않았는데 결계는 왜 저 모양인가?

성벽 근처로 다가왔던 건 신성한과 조예령. 그 두 사람뿐이다.

그들은 신성한이 검을 뽑는 것까진 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고, 어느새 조예령을 품에 안고 자신들이 왔던 방향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쏴라!”

눈을 한 번 깜빡였더니 갑자기 짝사랑하는 남자 품에 안겨 있던 조예령.

그녀는 뺨을 붉힐 새도 없이 발포 명령을 내렸다.

그녀의 쩌렁쩌렁한 외침은 전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발포하라!”

연합군도 공성용 병기를 작동시켰다.

투콰아앙-!

고막이 찢어질 듯한 굉음이 바람을 찢고 성벽으로 날아가 꽂혔다.

가뜩이나 약해질 대로 약해진 결계에 마력탄이 우수수 꽂혔다.

결계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점차 불안정해졌다.

“아, 안 돼!”

“마법을 날려라!”

성벽의 병사들은 보호막을 수복할 시간을 벌고자, 정도현에게 보급받은 매직 스크롤을 꺼내 응수했다.

하지만 결계를 지키기엔 한발 늦었다.

결계는 이미 깨지기 일보 직전에, 복구보다 무너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병사들이 날려 댄 마법 주문을 피해 성벽에 도달한 마력탄들이 머릴 마구 들이받았다.

쩌적, 쩌저적. 콰앙-!

결국 성벽의 보호막이 산산이 깨져 꽃가루처럼 흩날렸다.

신성한은 훤히 드러난 성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외쳤다.

“진격하라!”

““와아아아!!””

그가 어떻게 했는지 아무도 이해 못 했다. 지금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절대 뚫지 못할 것만 같던 결계가 부서지고 성벽은 고스란히 노출됐다.

연합군은 며칠 굶주리다 먹잇감을 발견한 짐승처럼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주문과 화살비가 쏟아졌지만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승리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두려움은 자연히 사라졌다.

게다가 그들 앞에는 불꽃의 날개를 지닌 남녀가 있지 않은가.

신성한과 조예령이 검과 도끼를 휘두르며 길을 터줬다.

덕분에 그들은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하면 됐다.

“흐랴아압!”

쐐애액, 콰앙-!

불꽃을 가득 머금은 도끼가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 성벽에 박혔다. 결계가 사라진 성벽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반으로 쪼개졌다.

갈라진 틈새로 몇몇 병사들이 굴러떨어졌다.

“으하핫! 별것도 아니네!”

성벽은 산사태가 난듯 와르르 무너졌다. 시원하게 뚫린 걸 보니 그녀도 속이 다 후련했다.

조예령이 던졌던 도끼는 성벽의 잔해물에 파묻혀 버렸다.

물론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렸다.

투웅-!

그러자 도끼가 돌무더기를 밀어내며 튀어나와 부메랑처럼 주인에게 되돌아왔다.

“자, 이제 신나게 싸워 볼…….”

어깰 돌리며 몸을 풀던 조예령은 흠칫하며 고갤 쳐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공에서 푸른 섬광이 번뜩였다.

장검을 든 남자가 그녀 쪽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정도현!”

조예령은 상대의 이름을 외치며 도끼를 들어 올려 기습을 막아 냈다.

카앙-!

상대의 만만치 않은 힘에 그녀는 놀라면서 활짝 웃었다.

모처럼 만난 호적수다. 온 힘을 다해 싸울 수 있단 생각에 그녀는 손이 근질거렸다.

“만나서 반갑다!”

입으론 반갑다고 인사하면서 그녀의 손은 가차 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카각, 채앵!

정도현은 화염을 토해 내는 도끼날을 옆으로 흘려보내며 동시에 전황을 살폈다.

‘어떻게 결계를 부순 거지?’

물증은 없으나 그의 감이 말해 주고 있다.

성벽의 결계가 그렇게 된 건 틀림없이 신성한이 한 짓이다.

그의 개인 특성이 뭔지 확인해 두고자 가만히 지켜봤는데.

‘전혀 모르겠어.’

신성한은 성벽 근처에 있었다.

그런데 천천히 칼을 뽑으며 뭐라 중얼대더니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 직후 엄청난 폭발과 함께 결계가 뒤흔들렸다.

더 기이한 점은 신성한이 조예령을 품에 안고 성벽에서 멀어지고 있었다는 것.

그는 분명 놈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놓쳤다.

‘공간 능력인가?’

언뜻 보면 진규현의 「공간 도약」과 유사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보호막에 어마어마한 폭발을, 그것도 정도현의 눈을 피해 일으킨 게 설명되지 않는다.

‘대체 무슨 능력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정도현이 딴생각하는 걸 눈치챈 조예령은 도끼를 마구 내려찍으며 외쳤다.

“싸움에 집중해!”

쾅!

도끼에 담긴 어마어마한 괴력에 칼날이 부르르 진동했다. 손가락이 저릴 정도였다.

그는 궁금증을 못 참고 눈앞의 여전사한테 직접 물어보았다.

놀리는 건가 싶을 만큼 어색한 말투로 그녀를 칭찬하면서.

“이봐, 예쁜 누님. 결계에 뭔 짓을 한 거야?”

“그걸 순순히 말해 줄 멍청이가 어딨어!”

화르륵-!

조예령의 도끼가 성난 불꽃을 토해 냈다. 그녀의 등에서도 황금빛 날개가 펄럭였다.

「태양신공」을 극성으로 펼친 그녀는 눈앞의 모든 걸 찢고 불태워 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렇게 활활 불타면 불탈수록 정도현에겐 먹음직스럽게만 보인다는 걸.

“…어?”

화륵-!

도끼에 담긴 극양의 마력이 칼날을 타고 정도현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저렇게 다른 이의 마력을 흡수하는 건 「태양신공」을 대성한 그녀도 오랜 수련 끝에 겨우 할 수 있게 된 기술.

저 젊은 나이에 그런 경지까지 올랐단 말인가?

아니, 그것보다 극양의 마력을 흡수하다니. 「태양신공」을 익히지 않은 신체로 저랬다간 오장육부가 다 녹아내릴 터였다.

그런데 멀쩡하다는 말은…….

“너……!?”

정도현도 더는 숨기지 않고 「태양신공」을 펼쳤다.

그의 머리칼과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반짝이자 조예령의 표정이 굳었다.

하계인이 「태양신공」을 익혔다니.

설마 신호영이 전수해 준 건가?

‘아니, 그보다 저 나이에 대성했다고?’

신호영도 무지막지하게 빠른데, 정도현은 그보다 어려 보였다.

불세출의 천재란 말로도 수식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재능이었다.

당황한 조예령이 작은 틈을 보인 순간.

정도현의 눈빛과 칼날이 번뜩였다.

상대의 목과 심장을 비롯한 온갖 급소를 독사처럼 노렸다.

손놀림이 워낙 빨라서 칼이 수십 자루로 분열한 것처럼 보였다.

카앙, 카가각!

조예령은 뻗어오는 참격들을 전부 막아 냈지만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점점 빨라지고 있어?’

단순히 속도만 빨라지는 게 아니다.

검로가 더욱 복잡해져서 읽어 내기가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죽는다.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와 마주했다.

카각, 촤악-!

반응이 조금 늦었다. 칼날이 그녀의 옆구리를 훑고 지나갔다. 갑옷의 틈새로 피가 새어 나왔다.

“…큭!”

「태양신공」의 힘을 담은 공격은 상대의 재생력을 억누르고 방해한다.

그건 「태양신공」의 재생의 불꽃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의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치이익-!

조예령은 스스로 옆구리를 지져 지혈했다.

그녀의 발 빠른 조치에 정도현은 대견하단 눈빛을 보냈다.

조예령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막내딸이랑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데 감히 저런 시선을 보내다니.

“우쭐대지 마!”

거릴 벌린 조예령이 도끼를 빙빙 돌리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정도현은 그녀가 뭘 하려는지 알아챘다. 무기의 진명을 외쳐 진정한 힘을 해방하려는 거겠지.

“해방되어라, 「신벌」.”

파지직-!

도끼가 극양의 마력을 빨아먹더니 이내 벼락을 토해 냈다.

도끼날에서 벼락 줄기가 위협적으로 튀며 땅바닥에 흉터를 냈다.

꽈아악-!

조예령은 숨을 훅 들이켜고 도낏자루를 힘껏 움켜쥐었다. 그런 뒤 전력을 담아 투척했다.

꽈르릉-!

도끼가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정도현은 칼날을 눕혀 도끼를 막아 냈지만 그대로 쭉 밀려났다.

“하하핫! 「신벌」은 막아도 막은 게 아니거든!”

「태양신공」을 대성했어도 벼락의 기운까진 못 막겠지.

방금 던진 도끼엔 가주조차 주춤할 위력이 담겨 있었다.

피하지 않고 감히 받아 냈으니 뇌기에 전신이 마비되어 잠시 몸을 못 가눌 거다.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곤 정도현에게 달려들었다. 앞으로 손을 뻗으며 날렸던 도끼도 불러들였다.

이번엔 머리통을 깨부숴 주마.

탁.

되돌아온 도끼를 붙잡은 그녀는 이질감을 느꼈다. 어째 허했다.

방금 충전해 뒀던 뇌기의 절반가량이 사라졌다.

‘뭐야? 투척 한 번에 이만큼 증발했을 린 없는데?’

그 많던 뇌기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그녀가 그리 생각했을 때.

파직, 파지직-!

정도현의 검강이 불꽃에서 금빛 뇌전으로 뒤바뀌었다.

그걸 본 조예령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뭐, 뭐야?!”

타앙-!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는 뇌기에 몸이 굳지 않았다.

남궁제가 전력으로 쏴 댔던 뇌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버틸 만했다.

게다가 그는 불꽃만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기운 잘 받아 갑니다, 예쁜 누님.”

“이런, 씨……!”

콰지지지직-!

벼락의 검이 도끼와 함께 그녀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열기로 지져서 겨우 막아 뒀던 상처가 다시 벌어져 피가 쏟아졌다.

허리도 부러졌는지 하반신의 감각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쿠당탕!

조예령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저 멀리 굴러갔다.

“쿨럭, 컥…….”

조예령은 도끼까지 놓친 채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목구멍으로 핏물이 역류해 숨쉬기도 힘들었다.

졌다. 가주가 된 이후로 처음이니 수십 년 만의 패배였다.

시야가 가물가물해서 보이진 않지만, 마력은 느껴졌다.

정도현이 자신을 끝장내고자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아, 으.”

생사의 갈림길 앞에 서자, 조예령은 가족보다 누군가를 먼저 떠올렸다.

신성한. 그 고집불통의 바보를.

나까지 죽어 버리면 그 녀석은 누가 돌봐 준단 말인가.

‘움직여.’

조예령은 손가락을 까딱하며 도끼를 불렀다. 하지만 저 멀리 굴러간 도끼는 꿈쩍도 안 했다.

도망쳐야 하는데 내상을 입어서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젠, 장…….”

정도현이 그녀 앞에 도착했다. 단두대의 칼날처럼 그의 검이 목을 향해 떨어졌다.

그녀는 죽음을 직감하곤 눈을 질끈 감았다.

바로 그때. 귓가로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채앵!

맑은 충돌음과 함께 정도현의 검이 가로막혔다.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구한 건 신성한이었다. 「시간 정지」를 써서 겨우 늦지 않을 수 있었다.

기억이 날아간 반동으로 머리가 깨질 듯이 지끈거렸지만, 그는 꾹 참고 연이어 개인 특성을 발동했다.

“…바친다.”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함께 시간이 또다시 멈추었다.

이번에 바친 건 그가 어릴 적 조예령과 뛰놀았던 즐거운 추억들.

허락된 시간은 몇 초였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

정지된 시간이 움직이고.

서걱, 촤악!

정도현의 가슴팍과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동시에 뜨거운 폭발이 덮쳐와 그를 저 멀리 날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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