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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25화 (225/240)

225화

류씨 일가의 영지가 함락되고서 이틀이 지났다.

“류씨 일가가 고작 하계인 세 명한테 무너졌다니. 믿기지 않아. 아니, 정확히는 두 명이네. 하난 네 아들이잖아?”

“…….”

“…미안. 재미없었어?”

흑색 갑주를 착용한 중년의 여인이 도복 차림의 사내한테 살갑게 농을 던졌다.

활기가 넘치는 여인과 달리 남자는 조용했다. 누가 보면 벙어리라 여길 정도로.

분위기를 풀어 보려 했던 여인은 뜻대로 잘 안 되자 머쓱했는지 볼을 긁적였다.

“성한아, 너 정말 이대로 괜찮아?”

“뭐가.”

“위에서 네 아들도 죽이라 했다며.”

“그게 뭐 어쨌다고.”

신호영의 아버지이자 신씨 일가의 가주, ‘신성한’.

그는 위에서 내려온 천사들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일가의 전 병력을 이끌고 달려왔다.

내일 이른 아침엔 조씨 일가의 병력과 함께 함락된 류씨 일가의 성으로 향할 것이다.

“하나뿐인 네 아들이잖아. 게다가 「태양신공」도 대성했다며?”

“그래.”

그를 설득하려 애쓰는 갑옷의 여인은 신성한의 어릴 적 소꿉친구이자 조씨 일가의 가주, ‘조예령’이었다.

그녀는 신호영이 돌아왔단 소식에 내심 기뻤다.

그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딸을 잃고, 아들은 하계에 유폐했으며, 그 일로 안 그래도 몸이 약했던 아내마저 시름시름 앓다 결국 떠나보냈으니.

그에게 남은 건 쓸쓸한 고독함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그의 아들이 돌아왔다.

놀랍고 기특하게도 「태양신공」까지 대성해서.

“무조건 살려야지. 추방당했어도 「태양신공」을 대성했잖아. 네가 직접 후계자로 삼겠다 말하면 위에서도 분명…….”

“아니. 이미 거절했다. 끝난 이야기야.”

천사들도 같은 말을 했다.

후계자로 다시 삼을 마음이 있다면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고.

하지만 신성한은 싫다며 고갤 저었다.

그의 냉혹한 결정에 조예령은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만 같았다.

하나밖에 안 남은 자식보다 원리 원칙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신호영의 재능이 부족했다면 그녀도 조금쯤은 이해했으리라.

“「태양신공」을 대성했어! 그것도 우리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엄청난 천재잖아!”

“그 정돈 설명 안 해 줘도 안다. 시끄럽게 꽥꽥대지 마.”

“잘 알면서 왜 그러는데?”

신호영은 이대로 죽이기엔 너무도 아까운 인재였다.

만일 조예령이 신성한이었다면 지은 죄를 용서하고 다시 후계자로 삼았으리라.

조예령이 어릴 적처럼 씩씩대며 노려보자, 신성한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아무한테도 말 안 했던 속마음을 털어놨다.

“난 그 녀석한테 무거운 짐을 물려주기 싫다.”

“…뭐?”

내 아들은 규율을 어겼다. 거기에 예외는 없다.

뭐, 그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답변이 튀어나왔다.

조예령은 뭔가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중얼댔다.

“너, 혹시…….”

“난 이 기회에 승천자가 될 거다.”

승천자. 천사들의 축복을 받아 영원불멸의 육신을 얻은 영광의 일족.

그들은 세상의 바깥에서 숨어들어 온 자들을 몰아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너 미쳤어?!”

일가의 가주만이 알고 있는 승천자의 실체. 조예령이 버럭 소릴 질렀다.

승천자는 천사들의 축복 같은 신성한 의식으로 탄생하는 게 아니다.

천사들이 지닌 고도의 마법 공학술을 통해 기계로 개조되는 것일 뿐.

생전의 기억과 감정마저 통제당한 채, 그저 영원히 싸우는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승천자로 개조하려면 그 대상은 죽어야만 한다.

“너, 이번 전투에서 죽을 셈이야?”

“그래. 정확히는 아들과 함께 동귀어진할 거다.”

“대체 왜!”

“난 지쳤다. 전부 잊고 쉬고 싶어.”

지하실에서 딸의 시신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아들.

자신이 괜한 소릴 해서 이 지경이 됐다며 자책하다 요절해 버린 아내.

요 수십 년간 그는 지옥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그의 고백에 조예령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성한을 짝사랑했다. 그에게 정혼자가 없었으면 성인식이 끝나자마자 달려가 청혼했을지 모를 정도로.

그런데 그 남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 앞에서 삶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가슴이 갈가리 찢기는 기분이었다.

“…결국 힘드니까 도망치겠단 거잖아. 비겁한 새끼.”

“그래. 그런 셈이지.”

“그럼 아들까지 데려갈 필욘 없잖아. 너만 죽으면 되는데 왜…….”

“녀석이 선택한 거다.”

신성한은 아들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태양신공」을 대성해, 자신과 겨룰 정도로 성장한 채 말이다.

자신이 환영받지 못할 걸 알면서도 기어코 올라왔다면, 목적은 하나다.

여동생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이들을 향한 복수겠지.

“녀석은 천사들을 죽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그렇기에 그는 하늘의 뜻이라 받아들였다.

아들과 딸 거기에 아내마저 떠났을 때부터 줄곧 자살하고 싶었다.

하지만 천사들은 그에게 목숨을 끊을 자유조차 허락지 않았다. 다른 가주들과 싸우는 것도 피의 맹약으로 금지되었으니.

그로선 죽을 방도가 없었다.

새로운 후계를 낳으란 윗선의 명령으로, 마음을 주지도 않은 여자들을 억지로 품었고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가 낳은 자식들은 하나같이 각성하지 못하거나, 신호영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반송장처럼 살았다.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

마지막 남은 혈육을 제 손으로 죽여야 하는 건 괴로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마저도 감내할 만큼 그는 죽고 싶었으니까.

“굳이 아들이랑 싸울 필요 있어? 다른 침입자들도 있잖아. 남궁세가의 가주랑 정도현이란 남자도…….”

“아니, 그 둘은 날 못 죽인다.”

그는 윗선에서 보낸 전투 영상을 보았다.

남궁제는 승천자가 쏜 입자포에 휘말려 심하게 다쳤고, 정도현은 일대일로 승천자와 맞붙었다.

“승천자를 상대로 살아남은 게 용하다만. 둘 다 심각한 내상을 입었겠지.”

고작 며칠 사이에 부상이 다 나았을 리 없다. 그러니 셋 중 온전히 싸울 수 있는 건 신호영뿐.

“그러니 녀석은 내가 맡겠다. 나머지 둘은 네가 맡아 줘.”

“…….”

신성한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가 버렸다.

그가 제 할 말만 퍼붓고 매정하게 떠나자,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중얼댔다.

“나쁜 새끼…….”

몇 년 만에 만나서 하는 말이 ‘이젠 편해지고 싶다.’라니.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놈.

가주끼리 싸우지 말란 피의 맹약만 없었다면 뺨을 한 대 후려갈겼을 것이다.

* * *

다음 날, 땅거미가 질 무렵.

쉬지 않고 달렸던 연합군이 첫 번째 관문을 돌파해, 류씨 일가가 다스리는 영지 근처에 당도했다.

성벽 위에는 중무장한 병사와 수호자들이 활을 장전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조예령은 이해가 안 가서 고갤 갸웃했다.

“결사 항전이라도 해 보겠단 거야 뭐야?”

“류원기도 죽었고, 저들로선 선택지가 없었겠지.”

천사들은 자비롭지 않았다.

잘못을 저질렀으면 영광의 일족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벌한다.

어떻게든 아들과 딸을 살려 보고자 무릎 꿇고 사정해, 겨우 아들만큼은 지켜 냈던 그였기에.

류씨 일가의 앞날이 예상됐다.

분명 배신자 혹은 침입자들에게 잠시나마 영지를 빼앗겼었단 죄목으로 싹 다 처분당할 거다.

그리고 하계에서 쓸 만한 이들을 추려 내 새로운 영광의 일족으로 세우겠지.

“어차피 죽을 거, 그 전에 저항이라도 해 보겠단 거야?”

조예령은 안타깝단 눈으로 성벽을 지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바로 칠 거야?”

“아니. 이미 해가 저물었다. 내일 새벽에 공격한다.”

지금은 「태양신공」이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없는 시간대였다.

물론 신호영은 신공을 대성했으니 밤에도 싸울 순 있겠지만.

마지막 전투이니 서로 원 없이 싸워 보고 싶었다.

그의 지시에 연합군은 일사불란하게 막사를 세웠다.

신성한은 적군이 야습해 올 걸 경계했으나 성 내부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뭐지?’

늦은 밤, 신성한은 적들을 관찰하다 의아한 점을 발견했다.

성벽 위에 배치된 병사들의 수가 처음보다 확연히 줄었다.

저러니 꼭 전시가 아닌 평시 같았다.

“이상하군.”

그의 눈엔 공격할 거면 어디 해 보라고 도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자포자기일까. 아니면 뭔가 다른 노림수라도 있는 걸까.

‘허세인지 아닌지는 내일 아침이 되면 알겠지.’

* * *

“돌격하라.”

“전군, 돌격!”

연합군은 날이 밝자마자 집결해 총공세를 가했다.

성벽이 아무리 높고 두텁다 한들.

마력으로 구동하는 공성용 장비와 마법 주문 앞에선 물에 푹 젖은 종잇장이나 다름없었다.

신성한의 지시에 부관이 우렁찬 목소리로 복창했다. 그러자 수호자들이 성벽을 향해 돌진했다. 선두엔 조예령도 있었다.

“햐아압!”

후우웅-!

그녀는 성벽을 향해 힘껏 도끼를 던졌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날아간 도끼가 성벽을 감싼 결계와 꽝 부딪혀 튕겨 나왔다.

그녀가 한 손을 들자, 땅바닥에 처박혔던 도끼가 들썩이더니 스스로 날아올라 주인 손아귀로 되돌아왔다.

“결계부터 쳐부숴라!”

“와아아아아!”

그녀의 공격이 막혔지만 뒤따르는 수호자들은 오히려 용기백배했다.

단 일격으로 저들의 보호 결계에 선명한 금이 갈라졌으니까.

그들까지 가세하면 분명 몇 분도 못 버티고 부서지리라.

“사격 개시!”

“쏴라!”

물론 적군도 연합군이 접근해 오는 걸 손 놓고 구경만 하진 않았다.

경비대장의 호령에 맞춰 수호자와 일반 병사들이 동시에 화살을 퍼부었다.

수백 발의 화살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래 봤자 발버둥일 뿐이지!”

조예령은 화살을 전부 쳐 내며 다시 결계를 도끼로 찍었다.

콰직, 콰지직!

가격할 때마다 결계가 뒤흔들리며 금이 커졌다.

“결계를 수복하라!”

결계를 담당하던 마법사들이 허둥지둥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흔들림이 멎고 깨진 틈새가 서서히 아물었다.

그들의 필사적인 저항에 조예령은 혀를 찼다.

“어디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조예령은 어릴 때부터 머리 쓰는 데엔 젬병이었다. 대신 힘으로 밀어붙이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쾅, 콰앙!

그녀와 수호자들이 결계를 때려 부수면 마법사들이 부랴부랴 고친다.

그런 소모전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쯤 했으면 마법사들의 마력도 서서히 바닥났으리라.

“…응?”

그러나 그녀를 비웃듯 보호 결계는 더욱 촘촘하고 진한 색을 머금었다.

강도가 약해지긴커녕 처음보다 단단해졌다.

조예령은 멍한 눈으로 흠집 하나 없는 성벽을 바라봤다.

“끄악!”

“컥!”

반면에 그녀를 따라왔던 병사들은 하나둘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보호 결계만 멀쩡한 게 아니었다.

화살을 마구 쏴 대는 적군들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어떻게?’

그녀는 성벽 위를 올려다보곤 그 비결을 깨달았다.

포션이었다. 화살을 쏘다 마력이 다한 병사들은 뒤로 빠져, 회복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런데 포션의 크기가 범상치 않았다.

‘상급 포션?’

수호자도 아니고 일개 궁병들한테 상급 포션을 보급하다니. 돈을 땅바닥에 내버리는 행위였다.

조예령은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곤 퇴각 명령을 내렸다.

“물러나서 전열을 가다듬어라!”

기세 좋게 달려든 연합군은 부상자들을 챙겨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그러자 성벽의 병사들이 그들을 비웃듯 승리의 함성을 내질렀다.

“…….”

후열에서 전황을 지켜보던 신성한도 당혹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도 단번에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 안 했다.

다만 결계를 깨트리긴커녕 적군에게 아무런 피해도 못 줄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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