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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22화 (222/240)

222화

류원기는 저택에서 곧장 뛰쳐나와 굉음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성문 쪽에 큰 화재라도 난 듯 시커먼 연기가 솟구쳤다.

류원기는 측근의 무전기를 빼앗듯 받아 내 성문을 담당하는 경비대장을 호출했다.

“성문에 무슨 일이냐!”

[가주님! 웬 놈들이 공격 주문들을 마구 날려 대고 있습니다.]

“습격당했다고?”

[결계 덕에 성문은 무사하나, 놈들이 셋째 도련님을 인질로 붙잡고 있어서 대응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뭐, 뭣이!”

괴한들에게 납치되어 사라졌단 아들이 성문 앞에 있단 보고에 류원기는 눈을 크게 떴다.

설마 그놈들이 제 발로 여길 찾아올 줄이야.

‘건방진 놈들 같으니.’

화르륵, 콰앙!

류원기는 화염 날개를 펼치며 땅을 박차 하늘로 솟구쳤다. 그런 뒤 단숨에 성문으로 날아갔다.

정말로 성문 앞에 웬 남자들과 꼴이 엉망인 아들이 보였다.

류원기를 발견한 류중현이 반색하며 소리쳤다.

“아, 아버지!”

탁.

류원기는 날개를 거두며 성문 앞에 사뿐히 착지했다.

“……!”

류원기는 납치범들을 쳐다보곤 깜짝 놀랐다.

고작 세 명인 것보다 놀라운 점을 발견했으니까.

눈에 익은 낯짝에 황금안. 심지어 머리카락마저 극양의 기운으로 물든 사내.

염색약이나 변장 아이템 따위의 눈속임은 아니다.

류원기도 저 남자와 같은 경지에 올랐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 남자, 「태양신공」을 대성했다.

그의 아들들은 물론이고 류원기조차 저 나이에는 대성하지 못했거늘.

실로 어마어마한 천재였다.

“…신호영, 네놈이 어찌 여기 있느냐?”

“오랜만이군요, 류원기 가주님.”

신호영은 예를 갖춰 인사했으나 류원기는 영 불쾌했다.

중죄를 범하고 낙원에서 쫓겨난 죄인 주제에.

제 자식들도 아직 해내지 못한 「태양신공」을 대성하고 돌아오다니.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찢어 죽이고 싶으나, 그를 이어 다음 가주가 될 재목인 류중현의 목숨이 저들 수중에 있었다.

나머지 아들들과 딸은 후계자가 될 재능이 없었다.

‘중현이를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

“…성문을 공격했다고 들었다. 이런 짓을 벌인 이유가 뭐냐?”

“관문을 지나고 싶습니다. 길을 열어 주시죠.”

“…관문을 지나?”

섬의 안쪽으로 들어가겠다니.

설마 제 아버지를 만날 속셈인가.

비록 추방됐으나 「태양신공」을 대성했으니, 지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아주 일리가 없진 않지.’

신호영이 엿봤던 비밀은 일가의 가주와 성인식 시험을 치른 후계자만이 알아야 할 내용.

당시 신호영은 나이가 어려서 성인식 시험을 치르지 못했을 뿐, 틀림없이 적법한 후계자였다.

즉, 언젠간 알게 되었을 비밀이었다.

‘제 손으로 여동생을 죽이고 낙원에서 추방되기까지 했으니 죗값은 충분히 치렀다.’

거기다 「태양신공」까지 대성하고 돌아왔다. 후계자 자격을 되찾더라도 크게 문제될 부분은 없다.

천사들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면 분명 신호영을 다음 신씨 일가의 가주로 삼으려 들 터.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신호영의 아버지는 그렇게 넘어갈 인물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누구보다도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고지식한 사내니까.

정해진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늘 그렇게 행동하기에 신호영을 내친 것이다.

만약 류원기가 당시의 그였었다면 적어도 낙원 밖으로 추방되는 형벌만은 막았으리라.

“네 아비가 널 다시 받아 줄 성싶으냐?”

“아뇨. 절 죽이려 들겠지요.”

“허, 그걸 알면서도 지나가겠다고?”

류원기는 도무지 이해가 안 돼서 한참 신호영을 바라봤다.

그러다 그 옆의 노인의 이름을 보곤 눈을 가늘게 떴다.

“…남궁세가의 사람은 여기 왜 있느냐?”

게다가 레벨로 봐선 가주급 인물인 게 틀림없다.

교단의 배신과 추방자에 이어 5대 가문의 수장까지 찾아오다니.

대체 하계에 무슨 바람이 분 걸까.

‘저놈은 또 누구지?’

두 남자 뒤에서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는 젊은 남자, 정도현.

류원기는 그를 찬찬히 살펴봤다.

레벨은 제법 높으나 이름과 얼굴은 생소했다.

그래도 저 둘과 함께 온 걸 봐선 예사 놈은 아니겠지.

류원기는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도 잘 알다시피 관문을 지키는 건 가주의 사명. 그러니 문은 열어 줄 순 없다.”

“그럼 아드님이 죽을 겁니다.”

“사사로운 정에 이끌려 맡은 바를 소홀히 해서야 되겠느냐.”

일가를 책임지는 가주는 천사들과 피의 맹약까지 맺은 몸.

그러니 자식의 안위보단 침입자를 격퇴하는 걸 더 우선시해야만 한다.

그 말에 류중현의 표정은 흙빛으로 변했다.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기우였다. 류원기는 자신의 후계자를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조건을 걸겠다.”

“조건 말씀입니까?”

“그래. 너희 셋 중 한 명이 나와 일대일로 싸워 이긴다면 관문을 통과해도 좋다. 대신 너희가 지면 내 아들을 풀어 주고 여기서 꺼져라. 그리고 다신 오지 마라.”

뜻밖의 제안에 신호영이 전음을 날렸다.

‘어쩔 거지, 정도현?’

‘아들 사랑이 각별하네. 마침 잘됐어.’

성문과 성벽을 둘러싼 보호 결계가 예상 이상으로 견고해서, 힘으로 뚫고 갔으면 제법 시간이 걸렸을 텐데.

류원기만 꺾으면 바로 지나갈 수 있다.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신호영이 고갤 끄덕이며 말했다.

“하겠습니다.”

“그래, 누가 싸울 건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도현과 남궁제. 둘은 동시에 앞으로 나섰다.

강자와의 싸움을 피하지 않는 모습.

누가 혈연관계 아니랄까 봐 하는 짓이 쏙 빼닮았다.

“영감님, 저한테 양보하시죠?”

“어허. 주인공이 처음부터 힘을 빼서야 쓰겠나? 그리고 이 늙은이도 밥값은 해야지.”

“포션 마시면 회복되는데요?”

“몸의 상처야 낫는다 쳐도, 마음에 쌓인 피로감은 안 사라지잖나.”

“영감님은 나이가 있어서 그 정도로 피곤하겠지만, 전 쌩쌩한데요?”

“허허, 태어나는 건 몰라도 가는 덴 순서 없네.”

둘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기가 싸우겠다며 말다툼을 벌였다.

류원기는 금방 끝내겠거니 생각하고 잠자코 기다렸다.

그런데 둘의 언쟁이 몇 분 넘게 끝날 기미도 없이 이어지자 짜증이 확 치밀었다.

“언제까지 노닥거릴 거냐!”

“거참, 성질머리하고는.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자넨 좋겠구먼. 친자 검사는 굳이 할 필요 없겠어.”

“뭐, 뭣이라?”

남궁제가 자신과 아들의 혈연관계를 걸고넘어지자, 류원기의 목에 핏대가 섰다.

친자 검사라니. 나나 내 아내가 발정난 개처럼 바람이라도 피웠을 거란 소린가?

저 노친네가 노망이 들었나.

“싸울 상대는 내가 정하겠다!”

류원기의 외침에 정도현과 남궁제는 논쟁을 멈췄다.

결투를 제안한 건 자신이니, 상대도 자신이 정하겠다.

그 말에 둘은 수긍했다.

여기서 뭐라 따졌다간 결투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될지 모르니까.

“남궁제, 네놈이랑 싸우겠다.”

“허허허! 아주 현명한 선택이오.”

“쳇.”

굳이 레벨이 가장 높은 상대를 고르다니.

정도현은 아쉬운지 혀를 찼고, 남궁제는 승리자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뜨거운 맛을 보여 주마.”

류원기는 뱀처럼 창날이 구불구불한 붉은 창을 소환했다.

그걸 본 남궁제의 눈이 반짝였다.

붉은 창에서 남궁세가의 신물, 창공검에 밀리지 않는 기운이 느껴졌다.

레전드리 등급의 무기다.

“그게 성인식 시험을 통과하면 받는다던 전용 무기인가?”

“흥. 신호영이 미리 경고해 줬나 보군. 하지만 알아도 소용없다.”

“아니, 자네 아들이 몇 대 맞곤 술술 불었네.”

“…네놈!”

아들의 치부를 들먹이자 류원기는 발끈했다.

불꽃의 날개가 맹렬히 타오르며 힘차게 퍼덕였다. 날갯짓 한 번에 끔찍한 열풍이 불어닥쳤다.

그러나 남궁제는 제자리에서 꿈쩍도 안 했다.

“……!”

열기가 마치 달아나듯 남궁제가 있는 곳을 비껴 갔다.

그 기이한 현상에 류원기는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네놈, 보호구에 열기 내성이 있구나.”

“허허. 얼마 전에 선물받았네. 듣기론 화산의 정기를 오랫동안 머금은 최상급 마정석을 제련해 만들었다더군.”

정도현이 선물해 준 레전드리 세트 아이템 덕에 이 정도 열기는 충분히 견딜 만했다.

류원기가 이를 으득 갈며 창을 빙그르르 돌렸다.

화륵, 화르륵-!

쥐불놀이하듯 창날을 따라 불길이 그려졌다. 그렇게 몇 바퀴 돌린 창을 다잡고 힘껏 찔러 넣자.

콰아아아-!

불꽃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 이번엔 범상치 않은 화력이었다.

“그래, 이래야 재밌지.”

남궁제도 바라던 바라며 창공검을 뽑아 휘둘렀다.

콰르릉!

칼날에서 쏘아진 벼락이 불꽃의 파도와 세차게 충돌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류원기와 남궁제 모습이 흐릿해지고 다른 곳에서 나타나길 반복하며 각자 무기를 휘둘렀다.

“아…….”

하계인이 자신의 아버지와 대등하게 겨루는 모습에 류중현은 잠시 넋을 놨다.

불꽃과 벼락의 검강이 부딪혀 산산이 터지는 광경은 예술 작품처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것들이 남긴 여파는 섬뜩했다.

대지가 뒤틀리며 쪼개졌다.

공기가 그들 주위로 빨려들었다 사방으로 확 퍼지며 태풍에 가까운 돌풍이 일었다.

두 사람은 걸어 다니는 자연재해나 다름없었다.

“「뇌룡참섬(雷龍斬殲)」.”

남궁제가 몇 걸음 파고들며 검로를 몇 방향으로 꺾어 흩뿌렸다.

그러자 검에 담긴 벼락이 용의 머리처럼 변해 아가릴 쩍 벌렸다.

거기에 삼켜지려던 찰나. 류원기의 붉은 창이 울어 대듯 공명했다.

“해방되어라, 「적사」.”

류원기가 무기의 이름을 읊자, 구불구불한 창날이 뱀처럼 변해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광선처럼 쏘아졌다.

콰가가각!

붉은 뱀은 용의 아가릴 찢고 남궁제의 가슴팍까지 꿰뚫었다.

“크헉!”

급소를 찔린 남궁제의 입에서 피가 울컥 나왔다.

류원기는 길쭉해진 창날을 원래대로 줄여 회수했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승부가 났다. 항복하면 죽이진 않을 테니 꺼져라.”

류원기는 남궁제의 힘이 생각보다 강해서 속으로 놀랐다.

설마 하계인을 상대로 전용 무기 해방까지 쓸 줄이야. 「적사」가 아니었으면 결과는 반대가 되었으리라.

뇌기로 입은 내상을 추스르고자 그가 회복에 전념하려 들 때. 남궁제가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다행이구나.”

“……?”

“영광의 일족이 아주 허명은 아니라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남궁제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변하고 길게 찢어졌다.

심상치 않은 변화에 류원기는 다급히 창날을 찔러넣었지만.

카가각-!

용의 비늘에 창날이 미끄러지며 비껴 갔다.

상처는 났으나, 그마저도 순식간에 살점이 매워지며 몸에 꽂힌 창날을 밖으로 밀어냈다.

“이, 이게 무슨……!?”

용의 비늘에 뿔과 날개. 그리고 꼬리까지.

괴물로 변한 남궁제의 모습에 류원기는 혼비백산했다.

덥석-!

남궁제는 도망치려던 류원기의 창대를 붙잡았다.

“싸움은 이제 시작인데, 어딜 빼시나?”

“으, 으아아악!”

류원기는 자신의 무기까지 내버리곤 날개를 펼쳐 성문 쪽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남궁제도 날개를 퍼덕이며 바짝 뒤쫓았다.

콰르릉, 투콰앙-!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와 함께 남궁제가 류원기 등짝에 매달렸다.

“무기를 버리고 등을 보이다니. 무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이, 이거 놔라! 망할 괴물 자식!”

류원기와 남궁제가 공중에서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벌였다.

격식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개싸움이었다. 그렇게 치고받던 둘은 지상으로 추락했다.

남궁제는 류원기 위에 올라타 주먹으로 얼굴을 흠씬 두들겨 팼다.

용인으로 변하자 둘의 힘 차이가 현격히 벌어졌다. 더는 싸움이 성립하지 않았다.

뇌격이 담긴 주먹에 족히 수십 대를 맞은 류원기. 그가 반쯤 풀린 눈으로 중얼댔다.

“어째서… 이클립스가…….”

“음?”

남궁제는 이건 또 뭔 소린가 싶어서 잠시 매질을 멈췄다.

이클립스는 성서에 적힌, 메시아가 쓰러트린다던 불길한 용 아니던가.

“류원기,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이클립스라고?”

“으, 으으… 곧 세상에 종말이 온다…….”

“정신 좀 차려라. 이 못난 놈아.”

류원기는 겁에 질려 아무 말이나 마구 뱉어 냈다.

남궁제는 그의 뺨을 두들겨서라도 정신이 돌아오게 만들려 했다.

“……!”

그런데 돌연 머리 위에서 거대하고 뜨거운 마력이 느껴졌다. 마치 태양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처럼.

그는 뭐가 내려오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급히 몸을 던져 벗어났다.

그가 류원기한테서 어느 정도 멀어진 직후.

콰아아아앙-!

하늘에서 거대한 빛의 기둥이 떨어져 대폭발을 일으켰다.

거기에 휩쓸린 류원기는 비명을 내지르며 잿더미로 변했다.

치이익-!

빛의 기둥이 내뿜은 고열에 남궁제의 피부가 숯덩이처럼 변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신호영은 식은땀을 흘렸다.

‘저건 뭐지?’

대폭발이 터진 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지금껏 본 적 없었던 거대한 마력이 느껴진다.

머릿속에 떠오른 존재는 하나.

신호영이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댔다.

“설마… 천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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