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219화 (219/240)

219화

“…개당 1원이라고?”

포션들을 다 합쳐서 213원. 사실상 공짜나 다름없었다.

그 터무니없는 가격에 신호영은 정도현이 자신의 페널티를 제대로 이해 못 했다고 생각했다.

“네가 돈을 적게 받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판매자가 납득할 가격에 사야 시스템도 정당한 거래로 인정해 주거든.”

1원이든 1억이든. 판매자가 무의식중에 불만이나 거부감이 들면 부당한 거래로 취급한다.

그럼 「만물상점」의 페널티가 발동해서, 기껏 돈 주고 구매한 아이템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이것들을 1원에 팔아 봤자 신호영에겐 맹물이나 다름없었다.

“네가 생각하는 포션의 가치만큼 돈을 내야 한단 거다. 이제 좀 이해됐나?”

“그래. 그러니까 개당 1원에 팔겠다고. 빨리 입금이나 해. 정 못 믿겠으면 사서 하나 마셔 보면 되잖아.”

정도현이 사기꾼 같은 말투로 포션을 강매하려 들었다.

신호영은 한숨을 쉬며 돈을 입금했다.

아무래도 안 되는 걸 보여 줘야만 포기할 듯싶다.

신호영은 상급 포션의 마개를 뽑고 내용물을 쭉 들이켰다.

“자, 봐라. 마셔도 아무 효과가…….”

[상급 체력 회복 포션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미 체력이 최대치입니다.]

눈앞에 뜬 시스템 알림 문구.

신호영은 저도 모르게 텅 빈 포션병을 툭 떨궜다.

“써, 써졌어?”

원래는 ‘해당 아이템은 페널티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떠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회복 포션이 사용됐다.

그의 체력은 이미 꽉 찬 상태라 의미는 없었지만.

“어떻게…….”

“말했잖아. 1원이라고.”

“……!”

개당 1원에 주고 샀는데 문제없이 써졌다.

다시 말해, 정도현에게 있어 회복 포션들의 가치는 고작 1원이란 뜻.

그 말이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너 설마… 이걸 전부 1원에 산 거냐?”

“어.”

포션이 1원이라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수십 년째 「만물상점」을 이용해 왔던 그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런 헐값에 팔면 시스템은 도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다른 대가가 있는 거지?”

“뭐, 페널티가 있긴 하지.”

역시, 시스템이 아이템을 거저 줄 리가 없다.

분명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치명적인 페널티일 거다.

“상점창에서 산 아이템을 되팔아서 금전적인 이득을 보면 안 돼. 그걸 어기면 바로 죽어.”

“…그게 다냐?”

“엉.”

목숨을 앗아 간다. 분명 위험한 페널티였다.

하지만 지켜야 할 게 너무 쉽지 않은가.

아이템을 되팔지만 않으면 괜찮다니.

사실상 페널티가 없는 수준이었다.

“우린 같은 능력인데… 왜 이렇게 심한 차이가 나는 거지?”

“글쎄, 시스템 마음이라 나한테 따져도…….”

이건 차이가 아니라 차별에 가까웠다.

만약 자신에게 「1원 상점」이 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서, 어쩌면 천사들을 몰아냈을지도 모른다.

신호영은 많이 억울한지 진상 고객처럼 따졌다.

그러자 정도현이 머쓱한 얼굴로 말했다.

“음, 내 생각엔 복권이랑 비슷한 게 아닐까 싶은데.”

“…복권이라고?”

“복권은 행운 번호를 몇 개나 맞췄느냐로 등수를 매기잖아?”

플레이어로 각성해 개인 특성을 얻은 걸 복권에 당첨된 것이라 치자.

하지만 모두가 1등일 순 없다.

“그러니까 내가 2, 3등에 당첨됐다면 넌 1등에 걸렸다. 뭐, 그런 건가?”

“그런 셈이지.”

정도현의 그럴싸한 비유에 신호영은 맥이 빠졌다. 결국, 천운이자 정해진 운명이란 건가.

정도현은 세상을 바꿀 존재로 태어났으나 그는 아니었다.

끽해야 디딤돌쯤 되려나.

신호영의 어깨가 축 늘어지자, 정도현이 그의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좌절할 시간 없어. 빠듯하다고.”

이터널 게이트를 이용해 신호영의 레벨을 바짝 끌어올려야 한다.

회복 포션과 경험치의 비약을 지원받으면 거의 쉬지 않고 사냥할 수 있으니 폭발적인 성장도 가능할 터.

하지만 레벨 업보다 중요한 건 「태양신공」의 성취였다.

경지의 격차는 레벨 좀 올린다고 메꿔질 만큼 만만한 게 아니니까.

신호영은 아직도 반신반의했다.

“…정말 레벨만 올려도 「태양신공」의 경지가 올라갈까? 난 이십 년 가까이 답보 상태에 빠졌는데.”

“너한테 부족한 건 깨달음의 깊이나 재능이 아닌 육체야. 레벨을 더 올리면 자연스레 다음 경지에 도달할 거야.”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신호영은 오랫동안 장벽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과 재능이 부족해서 벽을 넘지 못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정도현은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그의 문제점은 오래전에 멈춘 레벨에 있다고 말이다.

“나도 얼마 전에 올라섰거든.”

“…올라섰다고? 설마 다음 경지 말이냐?”

“어. 레벨 올리니까 되더라. 저번에 네가 알려 준 깨달음들 덕에 가능했어. 넌 틀리지 않았다고.”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정도현과 신호영은 황금안의 경지에 머물렀었다.

후발 주자면서 자신을 추월했다니.

경외를 넘어 질투심마저 들 정도였다.

하지만 정도현은 말해 줬다.

신호영에게 「태양신공」을 배운 덕에 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즉, 신호영이 줄곧 해 온 노력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그는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네 머리칼은 그대론데?”

“난 「조화심법」 덕에 기운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으니까. 금발은 너무 튀어서 쪽팔려.”

신호영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레벨을 더 올리면 자신도 아버지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내심 포기했었던 인생의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고양감에 몸이 떨렸다.

“…고맙다.”

“강해진 만큼 A구역에서 팍팍 굴릴 거니까 나중에 불평하지나 마.”

“천사들을 몰아내고 세상을 바꿀 수만 있으면 죽어도 상관없다.”

“그렇다고 진짜 죽진 말고. 너 아니면 새벽이는 누가 지켜?”

둘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아, 미리 경고하는데. 시간 얼마 없으니까 험하게 굴릴 거야. 생각보다 견디기 힘들걸?”

“버티는 건 자신 있다. 어릴 때부터 가문에서 혹독한 수련을 받아 왔거든.”

“그럼 다행이고. 승아 누나는 아예 며칠 앓아누웠거든.”

신호영은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지간한 고행으론 눈 하나 꿈쩍 안 할 자신이 있다면서.

하나 그는 곧 깨달았다, 자신이 정도현을 너무 과소평가했다는 걸.

* * *

그렇게 또 한 달이 지났다.

그간 신호영은 정도현과 함께 5대 가문이 보유한 이터널 게이트를 전전했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서너 개의 던전을 공략했다.

심지어 정도현이 던전까지 따라 들어오는 바람에, 그가 상대할 몬스터는 더럽게 강했다.

처음엔 보스나 정예도 아닌 일반 몬스터 한 마리 상대하기도 벅찼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그래도 거기까진 상정 범위 내였다.

“…노말 아이템만 끼고 싸우라니. 넌 미쳤다.”

“나도 좋아서 그런 거 아니다? 다 너 잘되라 그런 거야.”

신호영은 전력을 다해야 겨우 잡을 법한 몬스터를 상대로 제대로 된 장비 없이 싸워야 했다.

덕분에 신호영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선을 넘나들었다.

최상급 회복 포션이 아니었으면 분명 죽었으리라.

“그래도 해냈잖아?”

“…….”

정도현의 뻔뻔한 말에 신호영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다.

[신호영] [LV.127]

그의 레벨이 112에서 127로 껑충 뛰어올랐다.

한 달 만에 무려 15레벨이나 올린 것이다.

안전함을 추구하는 정공법으론 결코 불가능한.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거뭇했던 그의 머리카락은 염색한 듯 노랗게 물들었다. 마침내 「태양신공」을 대성한 것이다.

“뿌듯하지 않아?”

“…뿌듯이고 나발이고. 일단 좀 자고 싶다.”

“그래, 그래. 남은 며칠 동안 푹 쉬어. 올라갈 땐 최상의 컨디션으로 가야지.”

정도현과 함께 던전을 돌았던 백승아가 며칠 골골댔다더니. 그도 뼈저리게 느꼈다.

이렇게 혹사당하는데 맨정신으로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위로 올라가는 건 나랑 너 그리고 남궁제 영감님까지. 이렇게 셋이야.”

“팔라딘은?”

“걘 안 돼. 교단을 통제할 인물이니 살려 둬야지.”

“그럼 네 동료들은…….”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서아린과 박성원은 자신을 돕겠다며 이터널 게이트를 통해 레벨을 바짝 올렸지만, 시간이 너무 모자랐다.

110레벨대 수준인 둘은 따라오는 것조차 벅찰 터.

“고작 셋이서 세상을 바꾸라니, 하늘도 참 너무하군.”

신호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마치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듯한 상황 같았다.

정도현도 동감인지 천장을 올려다보며 중얼댔다.

“천사들을 죽인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고.”

“그래. 하이 엘프와 용족이 남았지.”

또 다른 신의 자손들이 언제 차원 게이트를 열고 나타날지 모른다.

그들을 전부 처리해야지만 완전히 마무리된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피곤할 텐데 푹 쉬어.”

“그래, 하암…….”

신호영은 피로에 찌든 얼굴로 방에 들어갔다.

정도현도 남은 며칠간은 훈련 대신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며칠이 지나 작전 당일이 되었다. 세 명은 교단 본부로 모였다.

교단 본부 입구에 놓인 대형 버스. 거기에 탑승한 건 수십의 아이들.

낙원의 도시로 올려보낼 제물들이었다.

자신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몰라 순진하게 떠들며 까르르 웃는다.

몇몇은 부모와 생이별한 게 무서운지 훌쩍대며 흐느꼈다.

정도현은 설렘과 슬픔이 공존하는 좁은 공간에 갇힌 아이들을 착잡하게 바라봤다.

교단 본부는 이 잔혹한 짓거릴 팔십여 년간 반복해 왔다. 그동안 대체 몇 명이나 희생됐을까.

“나는 약자는 강자에게 짓밟히고 잡아먹히는 것이 순리라 배우고 자랐네.”

정도현 옆에 서서 버스 안을 함께 바라보던 남궁제가 그리 말했다.

그 말에 신호영이 눈썹을 꿈틀했다.

정도현 앞에서 그런 소릴 내뱉다니, 혹시 한 판 싸우자는 걸까.

정도현도 고깝게 들렸는지 눈을 치켜뜨며 남궁제를 쳐다봤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영감님. 변명입니까?”

“변명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할 일에 명분을 만드는 걸세.”

“…명분이요?”

“그래. 강자가 약자를 짓밟는 게 순리라고 한다면, 자네가 천사들보다 강하면 아 또한 해결될 문제지 않겠나.”

천사들을 몰아내고 바꿔 봐라.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멸시하는 게 아닌 보듬고 배려해 주도록.

태어날 때부터 시민 계급을 매기는 일 없이, 모두가 평등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교육받으며 살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정도현은 눈을 감았다.

남궁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가슴을 관통했다.

“영감님, 뭐 독심술 쓰세요?”

“하핫! 그럴 리가. 그냥 감이지. 내가 자네였다면 왠지 그랬을 것 같았네.”

“슬슬 저희도 출발하죠.”

떠날 시간이 됐다. 정도현은 두 사람한테 폴리모프 반지를 나눠 줬다.

정도현은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떠올리며 반지의 마법을 사용했다.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알아볼 사람은 없을 테니까.

신호영은 혹시 몰라 아예 다른 모습의 아이로 변했다.

마지막으로 남궁제도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머릿속에 그렸다.

“……?”

정도현과 남궁제는 서로를 바라보곤 굳었다.

신호영은 변신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곤 그들이 당황한 이유를 깨달았다.

‘둘이 닮았어?’

둘의 어릴 적 모습은 친형제라고 해도 믿어 줄 만큼 닮았다.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도 공교로웠다.

신호영이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둘을 지켜볼 때. 정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

“영감님은 뭔가 알고 있지?”

남궁제가 어려진 모습이랑 영 어울리지 않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누군가 내 유전자를 빼돌려 자넬 만든 모양이구먼.”

“뭐?”

“종종 있는 일이지. 흑마법사가 고레벨 플레이어의 피를 구해다 실험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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