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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18화 (218/240)

218화

“…정도현이 죽는다고?”

강새벽의 예언에 신호영은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도현이 죽는다니. 믿기지 않았다.

‘날개 달린 사람이면 천사인가?’

결국 천사는 이길 수 없단 건가.

신호영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자신과 정도현이 노력해 온 게 전부 부정되는 것만 같아서.

“…정도현한테 계획을 늦추자고 말해 보마.”

신호영이 그렇게 말하며 강새벽의 머릴 쓰다듬었다.

* * *

“내가 죽는다고?”

“그래, 네가 천사한테 패하는 모습을 봤대.”

신호영은 정도현을 따로 불러내 예언에 대해 털어놨다.

정도현도 충격이 컸는지 팔짱을 끼고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예언은 확정된 게 아니라 바꿀 수 있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럼 내가 살 방법도 있을 거야.”

희망적인 말에도 신호영의 안색은 여전히 어두워졌다.

A구역에 올라가지 않는 것. 그게 운명을 바꾸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다른 방법은 천사를 역으로 죽일 만큼 강해지는 것이고.

“레벨을 더 올리긴 어렵잖아.”

한계에 봉착했다고 정도현 본인이 말했었다.

그러니 남은 한 달 안에 레벨을 더 올리긴 어려울 터.

“레벨 업 말고도 강해질 방법은 있어.”

“마음은 알겠지만 너도 어지간한 건 다 시도해 봤을 텐데?”

“…….”

맞는 말이었다. 정도현은 던전을 공략하면서 동시에 다른 대비도 해 뒀다.

각종 전투용 스킬과 무공에서 얻은 무(武)의 깨달음을 정리했다.

거기에 여러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레전드리 아이템들도 철저히 준비했다.

“…….”

그런데도 힘이 부족하다. 강새벽의 예지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겠지.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개인의 힘만으론 분명 한계가 있어.”

신호영은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하게 현실을 꼬집었다.

당장 다음 달 초에 수백의 아이들이 A구역으로 끌려간다.

그 아이들의 운명이 어떨지 알기에 정도현은 서두르려는 거다.

그러나 감정적으로 나서선 안 된다.

네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니까.

일단 계획은 잠정 중단하고 때를 기다리자.

신호영의 설득에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기약 없이 기다려 봤자 희생자만 늘어날 뿐이야.”

“그럼 어쩔 거냐. 이대로 올라가 봤자 예언대로 될 뿐인데.”

“그 예언,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어?”

“뭐?”

“예지몽도 결국 꿈이잖아. 꿈은 모호해. 내용을 잊거나 왜곡해서 기억했을 수도 있어.”

강새벽의 예언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건가.

신호영은 고갤 저으며 자신 있게 반박했다.

“아니. 그럴 일은 없다. 강새벽의 예지몽은 상당히 강렬해서, 마치 본인이 겪었던 것처럼 생생히 떠오른다 했으니까.”

“새벽이가 그렇게 말한 거지?”

“그래.”

“그럼 새벽이가 예언을 바꿔서 말했을 가능성은?”

“…바꿔서 말하다니?”

“강새벽이 거짓말했을 수도 있잖아.”

정도현의 끝없는 의심에 신호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새벽이 그런 짓을 왜 하겠는가.

자신의 힘이 부족해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는 게 어지간히도 분했나 보다.

“네가 걱정된 거겠지. 날 따라가면 위험하니까.”

“…….”

정도현의 근거 없는 억측에 신호영은 멈칫했다.

예전 같았으면 한 귀로 흘려들었을 내용.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는 인연의 소중함을 깨우쳤다.

그래서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정말로 그랬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꾼 예지몽을 우리가 볼 방법 있지?”

“…꿈 영사기를 쓰면 돼.”

최근에 꿨던 꿈을 선명한 영상으로 비춰 주는 아티팩트.

그리 유용한 아이템은 아니지만, 강새벽의 개인 특성을 확인하기엔 제격이었다.

해방단을 이끌던 시절엔 그녀가 어떤 예언을 늘어놓든 꿈 영사기로 진위부터 확인했었는데.

“…나도 많이 물러졌구나.”

신호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동생 혹은 딸이나 마찬가지인 강새벽을 의심하기 싫다는 무의식이 투영된 걸지도.

“남을 의심하는 걸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의심은 신뢰의 또 다른 표현법이니까.”

“…무슨 뜻이냐?”

“누군가를 믿고 싶으면 의문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지. 그래야만 그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 있어.”

“정말… 너다운 말이군.”

“할아버지한테 배웠지.”

신호영은 고갤 끄덕였다.

꿈 영사기로 예지몽 내용을 확인하겠다 말하면 강새벽은 분명 기분 나빠 하리라. 자신을 의심한단 소리니까.

하지만 이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더없이 중요한 계획을 성공시키려면 말이다.

“만약 거짓말이 아니면 단단히 삐지겠군.”

“그땐 나도 같이 머리 숙이고 사과할게.”

신호영이 뒷감당을 걱정하자, 정도현은 짓궂게 웃으며 죽마고우처럼 어깨동무했다.

* * *

꿈 영사기를 사용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강새벽은 당황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히 짚고 싶어서.”

“상황이랄 것도 없었어요. 아까 말한 게 다예요. 도현 오빠가 날개 달린 사람이랑 싸우다 죽었어요.”

“어떻게 죽었는데?”

정도현이 자세히 캐묻자 강새벽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카, 칼이요. 기다란 검으로 가슴팍을 찔렸어요.”

“그래? 검을 다루는 놈이라 이거지?”

정도현이 싱긋 웃으며 눈동자를 들여다보자 강새벽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녀가 슬그머니 고갤 돌리며 단호히 말했다.

“아무튼 A구역엔 가면 안 돼요. 분명 죽을 거예요.”

“새벽아, 왜 거짓말하는 거니?”

“…네?”

농담처럼 가벼운 어조였다. 하지만 강새벽은 누군가가 심장을 꽉 움켜쥔 기분이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사기꾼이라도 정도현 앞에선 어림도 없다.

하물며 평범한 소녀가 어찌 그의 눈을 속이겠는가.

“강새벽, 너 우리한테 뭘 숨기는 거야.”

“…….”

신호영도 그제야 그녀가 거짓을 늘어놨음을 눈치챘다.

그의 추궁에 그녀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재차 캐묻자 울 것 같은 눈을 하고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그냥 안 가면 안 돼요?”

대체 꿈에서 뭘 봤길래 이러는 걸까.

툭.

신호영은 그녀의 수혈을 짚어 잠깐 잠들게 했다.

꿈 영사기는 대상이 잠든 상태에서도 쓸 수 있었으니까.

신호영은 곧장 꿈 영사기를 꺼내 그녀와 연결했다.

치지직-!

잠시 뒤, 꿈 영사기가 빛을 내뿜으며 벽면에 어떤 영상을 보여 줬다.

“이건…….”

영상 속에선 신호영과 검을 휘두르는 중년의 사내가 치열히 싸우고 있었다.

둘 다 황금빛 머리칼을 휘날리고, 등 뒤엔 불꽃으로 이뤄진 한 쌍의 날개가 퍼덕였다.

치열하게 치고받던 둘의 싸움이 끝났다.

신호영의 주먹이 상대의 명치를 꿰뚫었다.

상대가 죽기 직전에 휘두른 검은 신호영의 미간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췄다.

영사기가 내뿜는 빛줄기가 서서히 약해지더니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정도현과 신호영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 남자, 마지막에 일부러 공격을 멈췄어.’

마지막에 망설이지 않았으면 상대가 이겼거나 최소한 동귀어진은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중년의 사내는 그러지 않았다.

‘누군지 알겠군.’

얼굴만 봐도 느낌이 딱 왔다.

나이는 꽤 먹었으나 신호영과 비슷한 분위기의 용모.

금발과 황금안 그리고 「태양신공」까지.

영광의 일족. 그것도 세 가주 중 한 명인 신호영의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내가 죽인 게 아니라 신호영이 죽였군.’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또 어딨을까.

정도현은 고갤 돌려 옆을 흘끔 쳐다봤다.

투둑, 툭.

신호영의 뺨을 타고 눈물 방울이 또르르 떨어졌다. 어깨도 파르르 떨렸다.

“…이래서였어.”

그녀가 거짓말까지 하면서 가지 말라고 했던 이유가.

제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지 않길 바랐던 거겠지.

“신호영, 힘들면 빠져도 돼.”

“…아니. 내가 하겠다.”

신호영은 눈물을 닦아 내며 고갤 저었다.

어차피 그가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버지는 정도현과 마주쳐 싸우게 될 터.

그렇다면 자신의 손으로 보내 드리는 게 맞았다.

싸우기 전에 설득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버지를 이길 자신은 있어?”

“…당장은 무리야. 영상 속의 난 지금보다 훨씬 강했어.”

황금안의 경지를 넘어 머리카락까지 금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신호영이 이룩한 「태양신공」의 경지는 이미 이십여 년째 답보 상태.

다음 경지로 올라갈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다.

“남은 한 달 동안 그게 가능할까?”

이십여 년을 방황했는데도 이루지 못했는데. 신호영이 자신 없이 말하자 정도현은 피식 웃었다.

“「태양신공」의 경지를 올릴 방법, 내가 알아.”

“…뭐? 정말이냐?”

“그래. 아주 간단해. 레벨을 더 올리면 돼.”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지금보다 일을 더 하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에 신호영은 장난치는 거냐고 되물었다.

“한 달 동안 레벨을 올려 봤자 얼마나 올릴 수 있다고.”

1레벨? 정말 죽도록 노력한들 2레벨은 올릴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난 한 달도 안 돼서 130레벨 찍었잖아.”

“그건 너니까 가능한 거다.”

그래, 정도현이니 가능한 성장이었다.

회복 포션과 경험치 비약을 무제한 수준으로 퍼마시며 경험치를 독식했으니까.

하지만 「만물상점」의 페널티로 자신이 직접 구매한 아이템이 아니면 쓸 수 없는 신호영에겐 불가능한 방법.

“그래. 네 돈 주고 산 아이템이 아니면 사용해도 적용이 안 되지. 그럼 돈 내고 사면 되잖아?”

“뭐?”

“정당한 값을 치르면 쓸 수 있다며?”

그렇다. 신호영은 만물상점에서 판매한 아이템만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틀린 설명이었다.

다른 플레이어가 지닌 아이템을 신호영이 쓸 방법이 딱 하나 있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가격대와 시장 가격대의 적정선 사이의 제값을 치르는 것.

“그래. 경매장이나 마탑에서 파는 포션을 돈 주고 사면 나도 쓸 순 있겠지. 하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없다.”

포션이든 장비 아이템이든.

그의 만물상점은 시장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그것도 무제한으로 파니까.

굳이 비싼 값을 주고 다른 사람과 거래할 이유가 없었다.

만물상점은 이름 그대로 모든 걸 판다.

단지 그의 돈이 부족해서 못 살 뿐이지.

신호영의 설명이 끝나자 정도현은 피식 웃었다.

“그 페널티 조건을 미리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

“난 네가 상점창에서 구매한 아이템이 아니면 아예 못 쓴다고 생각했거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아니, 틀렸어.”

“…틀렸다고?”

그런 꼼수가 있단 걸 알았다면 진즉 써먹었으리라.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자 신호영은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갤 갸웃했다.

꼼수를 이용한다니. 대체 어떻게?

“내가 대량으로 구매한 최상급, 상급 포션들을 너한테 팔면 문제가 해결되잖아?”

“…뭐?”

뚱딴지같은 소리에 신호영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건 또 무슨 헛소릴까.

신호영이 설명을 요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자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최상급, 상급 포션을 각각 수십 개씩이나 꺼냈다.

“이거 다 팔게.”

“…미안하지만 최근에 영안경을 사느라 모아 둔 돈을 거의 다 썼다. 포션 살 여윳돈은 없어.”

“에이,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싸게 줄게.”

아무리 싸게 줘도 무려 최상급, 상급 포션이다.

최상급이면 한 병에 최소 이, 삼천만 원은 호가할 터. 상급도 천만 원은 족히 될 테고.

대형 길드나 5대 가문의 고레벨 플레이어들도 위험할 때 목숨을 건질 용도로나 한두 개 챙겨두지.

저렇게 수십 개씩 갖고 다니진 않는다.

“개당 1원.”

“……?”

“다 해서 213원이야. 그 정도는 있지? 계좌로 입금해.”

파격적인 가격 할인에 신호영은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이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래.

사장님이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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