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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17화 (217/240)

217화

정도현은 5대 가문의 이터널 게이트들을 홀로 공략하고 다닌 지 한 달도 안 돼서 130레벨을 달성했다.

최상급 경험치 비약과 단독 공략으로 경험치를 독식한 결과였다.

그의 미친 성장 속도에 남궁제를 포함한 가주들 전원이 혀를 내둘렀다.

“F구역에서 저런 괴물이 어떻게 태어났을꼬…….”

남궁제는 정도현을 낳아 준 부모가 누굴지 궁금했다.

물론 자식 농사를 줄줄이 망친 그였기에, 플레이어는 혈통과 별 관계가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지만.

그래도 저런 걸출한 인물을 낳은 부모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좀 궁금했다.

“알아보니 F구역 태생은 아니더군요.”

“제갈성, 그 무슨 소린가?”

제갈성이 깃털 부채를 팔랑대며 뜻밖의 소릴 했다. 남궁제와 팽철연은 눈을 크게 뜨며 관심을 보였다.

제갈성은 사람을 시켜 따로 알아낸 정보를 털어놨다.

“버림받은 아이였습니다.”

“마력 적성치가 낮았던 거였나.”

“그럼 부모가 누군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겠군.”

마력 적성치가 최하 점수면 부모의 재력과 시민 등급에 상관없이 무조건 5급 시민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해마다 수천, 수만 명씩 태어나 F구역에 쓰레기처럼 버려진다.

5급 시민으로 태어난 자식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감내할 부모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A구역을 뒤집으려는 건가.”

남궁제는 이제야 정도현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제 목숨을 걸고 혁명을 꿈꾸는 이유를.

천사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마력 적성치라는 무의미한 숫자로 가축처럼 등급을 매기는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타협도 불가능하다. 그들은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이니까.

“그래서 자네들은 앞으로 어쩔 건가?”

남궁제의 말에 팽철연과 제갈성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뭘 묻는지는 이해했다.

언젠가 정도현이 A구역으로 올라가면 같이 가서 천사들과 싸울 건지 말 건지를 묻는 거다.

“팽철연, 자넨 세상을 바로잡는 것보단 가문의 식솔들 안전이 더 중요하겠지.”

“…그렇네. 난 여기 남고 싶네.”

“제갈성, 자네는?”

“저 같은 게 따라가 봤자 발목만 잡지 않겠습니까…….”

둘 다 목숨을 걸 각오는 없어 보였다.

물론 정도현이 따라오라 명하면 군말 없이 가야 할 처지였지만, 그들은 한 달 가까이 정도현을 지켜보곤 알았다.

“싫다는데 억지로 따라오라 할 녀석은 아니지.”

게다가 그들이 죽으면 당장 5대 가문을 완벽히 통제할 수단도 사라진다.

새로운 가주를 허수아비로 세운들 안팎으로 인정받지 못할 터.

정도현 입장에선 우환을 막고자 기존 가주들을 남겨 두고 싶겠지.

“난 녀석을 따라갈 생각이네.”

“…정말 괜찮겠나? 죽을지도 모른다.”

남궁제는 정도현을 따라 A구역으로 올라갈 각오를 끝마쳤다.

그 말에 팽철연이 걱정스레 쳐다봤다.

그가 죽으면 남궁세가는 볼 것도 없이 영락할 터인데.

저마다 이유는 조금씩 달라도 가주들은 가문을 수호하는 데 집착했으니까.

“그 녀석한테 지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정해진 섭리는 거스를 수 없다고.”

남궁제는 여태껏 허울에 집착했었다.

자신은 정점이니 그가 속한 남궁세가도 항상 최고여야만 한다고.

정도현에게 패하고 나서 깨달았다.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남궁세가도 슬슬 저물 때가 온 게야.”

“그럼… 가문을 포기하겠단 겁니까?”

“포기라니, 언젠가 내 후손 중에 나보다 더 대단한 놈이 태어나 다시 가문을 일으킬지 누가 아나?”

팽철연과 제갈성은 눈을 끔뻑였다.

권위적이고 오만했던 남궁제는 온데간데없고, 세속으로부터 초탈한 현자가 그들 앞에 앉아 있었다.

팽철연은 경탄을 금치 못했다.

“자네, 정말 많이 변했군.”

“나이 먹고 급변하면 슬슬 갈 때가 됐다던데. 몸은 괜찮으십니까?”

“으하핫! 난 멀쩡하네.”

제갈성이 평소답지 않게 날카로운 농담을 던졌고 남궁제는 껄껄 웃으며 기분 좋게 받아 줬다.

예전 둘의 수직적인 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대화를 나누는 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었다.

셋 다 정도현에게 무릎 꿇고 똑같은 처지가 되어서일까. 그들은 예전보다 훨씬 가깝고 끈끈해졌다.

“오랜만에 던전을 들어가 보니 기분이 색다르더군.”

“정도현도 정도현이지만 자네도 참 독종이군. 그새 1레벨을 올리다니.”

남궁제는 부활의 페널티로 확 줄어든 레벨을 복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였지만, 정도현과 함께 싸우려면 원래의 힘을 되찾아야 했으니까.

전보다 더 강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그래서 그는 정도현한테 경험치 비약까지 빌려서, 대형 길드들이 관리하는 이터널 게이트를 매일 들락거렸다.

무보수로 던전을 공략하느라 돈이 왕창 깨졌으나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이십여 일 만에 떨어진 4레벨 중 1레벨을 도로 올렸으니까.

정도현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엄청난 복구 속도였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언제쯤 A구역으로 올라가려나.”

“안 그래도 오늘 아침 C구역에 내려갔습니다. 며칠 쉬고 온다더군요. 마침 다음 달 초에 제물들도 올려 보내니,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호오, 다음 달에 바로 가겠단 건가. 화끈해서 좋군.”

오늘 아침까지 던전 공략으로 정신없이 바빴던 남궁제는 미처 전해 듣지 못한 소식이었다.

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도현의 계획이 실패하면 함께 죽을 텐데도 그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늘 궁금했었어.”

신의 자손들도 붉은 피를 흘리는지.

* * *

정도현이 돌아오자 할아버지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이 그를 반겨 줬다.

진규현의 능력을 빌려 틈틈이 얼굴을 비추긴 했으나, 지금처럼 며칠 쉬러 온 적은 없었으니까.

“오빠!”

폴리모프 반지를 써서 어린애로 변한 이윤정이 쪼르르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누가 보면 몇 년 떨어져 지낸 줄 알겠다.

지지난 주에도, 일주일 전에도 봤으면서.

정도현은 애처럼 꺄르륵 웃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줬다.

서아린과 권하율은 부럽단 듯이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것도 잠시. 권하율이 안도의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B구역 일은 잘 마무리됐습니까?”

“예, 급한 불은 다 껐습니다.”

“레벨이 엄청 올랐네요.”

서아린은 그의 머리 위를 보더니 섭섭하면서도 불안한 눈빛을 자아냈다.

또 한 달 만에 그의 레벨이 부쩍 올랐다.

그녀도 얼마 전에 100레벨의 벽을 뚫긴 했으나, 130레벨에 도달한 그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했다.

이래선 전장에서 그를 도와줄 수도 없을 터.

“신호영, 할 얘기가 있어.”

“그래. 나가서 따로 얘기하지.”

지인들과 인사를 끝마친 정도현은 신호영을 조용히 불러냈다.

* * *

정도현과 신호영은 아파트 단지의 공원에서 앞으로의 일정에 관해 얘길 나눴다.

“슬슬 올라가려고?”

“응. 네가 길잡이 역할을 해 줬으면 해.”

마음 같아선 레벨을 좀 더 올리고 싶었으나 그건 불가능했다.

이터널 게이트의 던전은 입장자의 수준에 맞춰 난이도가 변경된다.

하지만 던전마다 최대 난이도가 따로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무한정 레벨 업 하는 게 불가능했다.

정도현은 이미 한계치까지 레벨을 올렸다. 이젠 던전의 몬스터들을 잡아도 더는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 때가 된 것이다.

“저번에도 말했듯 A구역으로 올라갈 방법은 한 가지다.”

“B구역 중앙에 세워진 탑.”

“그래. 그 탑의 승강기를 이용하는 거지.”

A구역은 상공 수십 킬로미터 위에 떠 있다. 일찍이 천공의 섬이라 불린 천사들만의 영역.

그곳에 가축으로 뽑힌 인간들이 하나둘 거주하게 되면서 도시가 세워졌다.

사람들은 그곳의 실체를 몰랐기에 동경심을 담아 낙원의 도시라 불렀다.

“하지만 승강기를 작동시키려면 특수한 열쇠가 필요하다.”

그 열쇠는 낙원의 도시를 관리하는 영광의 일족 손에 있다.

신호영은 추방됐으니 당연히 열쇠가 없었다.

“교단 본부는 분기마다 가축으로 선별한 아이들을 올려보낸다. 올라가려면 거기에 섞여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

문제는 없었다. 교단 본부는 이미 그가 장악했고, 폴리모프 반지도 있으니 평범한 아이로 위장해 숨어드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정도현, 정말 갈 거냐?”

신호영이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시작하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영광의 일족들 그리고 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천사들까지.

전부 상대해야만 한다. 물러설 길은 없다. 승리하거나 죽거나.

종착점엔 둘 중 하나뿐이었다.

“난 여동생을 죽게 만든 그 괴물들에게 복수하고 싶다. 하지만 넌 아니잖아.”

정도현은 천사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았다. 그저 태어나 보니 이런 세상이었을 뿐.

눈을 돌리면 평온한 인생을 보낼 수 있다. 그는 B구역까지 접수했으니까.

“영웅 심리. 그런 거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

“전에는 꼭 도와 달라면서?”

정도현이 피식 웃으며 되묻자, 신호영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땐 내가 품은 복수심과 사명감이 전부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잠시나마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 보니 그게 아닌 걸 알았다.”

신호영은 대성당에서 탈출해, 해방단을 설립하고 나서 줄곧 혼자였다.

타인과의 관계를 쌓는 게 두려웠다.

믿었던 사람에게 또 배신당할까 봐.

하지만 정도현 덕에 자신이 오해했음을 알았고, 주변 이들에게 차츰 마음을 열었다.

그러고서야 겨우 깨달았다, 인연의 소중함을.

“실패하면 너와 네 주변 사람들의 평온도 사라진다. 그래도 정말 괜찮겠나?”

설사 여기서 그만두더라도 그는 정도현을 비난하지 않을 거다. 어떻게 그러겠는가.

“당연히 안 괜찮지. 넌 뭐, 당연한 걸 묻고 있냐?”

“…….”

“그러니까 이길 거야.”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곤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밝혔다.

“저번에 말했잖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 안 하면 F구역에 아이들이 버려지는 걸 못 막는다고.”

“그래, 너도 그중 하나였지.”

신호영은 괜한 걸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정도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룰 수만 있다면 제 목숨도 과감히 거는 남자였다.

“…정말 고맙다.”

신호영은 어려운 결정을 내린 정도현에게 고갤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남들이 정도현을 뭐라 부르든 상관없었다. 신호영에게 있어 그는 영웅이었다.

자신은 끝내 되지 못한 영웅 말이다.

“영광의 일족도 가문이 나뉘어 있다고 했었지?”

“그래, 배신자는 세 명이었으니까.”

신, 류, 조씨 일가.

최초의 플레이어 10인 중 인류를 배신하고 천사들에게 붙은 배신자들의 후손이었다.

“넌 괜찮냐? 네 아버지랑 싸우게 될 텐데.”

“괜찮다. 이미 각오했어.”

“맹약 파기권이나 부활 아이템으로 되살리면…….”

“…아니,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야.”

피의 맹약을 파기시켜 자유를 주든, 부활시키든. 아버지라면 분명 가주로서 의무를 다하고 죽겠지.

신호영이 씁쓸한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정도현은 기운 내라고 했다.

“교단이 아이들을 올려보내기로 한 날은 다음 달 초야. 새벽이가 너 많이 걱정할 텐데 잘 타일러 둬.”

“…그래.”

정도현이 강새벽을 언급하자 신호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처음엔 귀중한 예지 능력자라 구해 냈지만, 어찌어찌 같이 지내면서 정이 붙어 버렸다.

정도현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고 하면 분명 걱정하겠지.

* * *

신호영은 정도현의 조언을 받들어 강새벽과 얘길 나누려 했다.

그런데 노크하고 이름을 불러도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자 강새벽은 어째선지 방구석에 틀어박혀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있었다. 마치 울고 있는 아이처럼.

“강새벽, 왜 그래? 어디 아픈 거냐?”

“…아저씨, 안 가면 안 돼?”

강새벽은 파묻은 얼굴을 들지도 않고 대뜸 그렇게 말했다.

신호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직 말하지도 않았는데 그녀가 자신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

“강새벽. 너, 미래를 본 거냐?”

“…응. 오늘 새벽에 꿈을 꿨어.”

강새벽은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가가 퀭했다. 제대로 잠을 못 잔 것처럼.

“무슨 일이 있었지?”

“도현 오빠가 날개 달린 사람들이랑 싸우다 죽었어.”

그러니 가면 안 돼, 아저씨.

그녀의 말에 신호영은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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