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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06화 (206/240)

206화

황금색 불꽃 검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다가오는 정도현. 장요한은 그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마, 막아라!”

장요한은 다급히 호위대한테 소리쳤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괴물을 막으라고.

하지만 전투 사제들은 그에게 항명하듯 주춤주춤 물러섰다.

정도현에게 덤벼 봤자 무력하게 당하리란 건 자명했으니까.

게다가 이들은 성녀의 친위대처럼 제 주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충성심은 없었다.

툭, 챙그랑!

누군가를 필두로 전투 사제들은 각자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그들이 좌우로 비켜서자 길이 열렸다.

그 끝에 서 있던 장요한은 망부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자, 자네가 원하는 게 대체 뭔가?”

하루아침에 교황에서 모든 걸 잃은 늙은이가 되었다.

어이없게도 정도현 한 명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는 어떻게든 정도현과 손을 잡아 보려 말을 걸었다. 하지만.

서걱-!

정도현은 대답 대신 장요한의 목을 베었다.

교황의 머리가 떨어져 데구루루 굴러간다. 그 광경에 성기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교단의 지배자였던 사내가 처형당했다.

그걸 해낸 건 메시아.

그들로선 상상도 못 한 일을 태연하게 벌였다.

“와아아아아!”

“역시 메시아 님이셔!”

성기사들은 교황을 살해한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도리어 열광했다.

물론 거기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성기사들은 견습 시절에 사제들과 이것저것 비교당하며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아 왔다.

사제들은 마법 쪽에 재능이 있어 신성력을 활용한 치료 주문으로 시민들에게서 거액의 기부금을 받아 낸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사제들이 벌어 온 돈으로 먹고 자며 무식하게 칼만 휘두른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물론 성기사는 사제를 지킬 방패로서 중요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대체재가 없는 사제와 달리 성기사들을 대신할 전투계 플레이어는 많았다.

5대 가문의 무인들. 그들보단 좀 뒤처져도 대형 길드의 플레이어들까지.

그러다 보니 발언권이 강한 건 늘 사제였다.

그나마 성준휘가 팔라딘 자리에 앉고선 성기사들의 입지가 좀 올라왔다지만, 견습 성기사들은 여전히 사제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교단의 운영에 필요한 자금 대부분을 벌어다 오는 건 사제들이었으니까. 그건 성준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사제의 치료 주문이 없었으면 교단도 이렇게 몸집을 키우지 못했으리라.

그걸 이용해 일부 악질 사제들은 성기사들에게 갑질을 하거나 시비를 걸어 댔다.

그러나 윗선은 번번이 사제들 편을 들어줬고, 성기사들은 알게 모르게 악감정과 불만이 차곡차곡 쌓여 왔다.

그것들이 메시아란 불씨와 닿으며 폭약통처럼 펑 터진 것이다.

“그럼 다음 교황은 메시아 님이 직접 정하시려나?”

“이번엔 말귀가 좀 통하는 녀석을 앉혔으면 좋겠는데.”

“맞아. 사제 놈들이 거들먹대며 상전 행세하는 거 보기 싫었어.”

“꼴 좋다, 사제 놈들.”

그들은 이 기회에 악습과 부조리가 송두리째 뽑혀 사라지길 빌었다.

정도현은 그 교황마저 처벌했다.

이제 사제들도 알리라, 누가 위고 아래인지.

“시신은 전부 수습해서 한 곳에 모아 둬.”

“예!”

정도현이 검을 집어넣으며 성준휘한테 말했다.

B구역을 다스리던 황제를 베었다곤 보이지 않을 만큼 덤덤했다.

그 모습에 성준휘는 경외심마저 피어나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크, 존나 멋있네.’

자신이 한 게 아닌데도 뭐랄까.

성취감? 달성감? 성준휘는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 힘든 감정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란 바로 저런 거겠지.

“성준휘, 시신 수습은 부하들한테 맡기고 넌 나랑 따로 얘기 좀 하자.”

“아, 예.”

성준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정도현을 뒤따라갔다.

* * *

“…예? 교황을 살리겠다고요?”

“그래. 당장은 그놈이라도 필요해.”

성기사들의 반란으로 하루아침에 교황을 갈아 치웠다고 공표하면 다른 세력들이 크게 반발할 터.

혹은 이 일을 빌미 삼아 교단을 집어삼키려 할 거다. 그러니 외부에 소문이 나선 안 된다.

“부하들 입단속 단단히 시켜 둬. 괜한 소문이라도 퍼지면 귀찮아지니까.”

“아, 그건 문제없습니다만…….”

“그래.”

“혹시 민하랑, 아니 민하은의 힘을 빌릴 작정입니까?”

그럼 교황은 민하은의 꼭두각시가 된다. 그건 좀 껄끄럽지 않은가.

성준휘의 우려에 정도현은 곧장 고갤 저었다.

“아니, 교황을 살리는 건 내가 한다.”

“예?”

“나도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있어. 하루가 지나면 안 되지만.”

정도현의 말에 성준휘가 입을 쩍 벌렸다. 죽은 사람을 되살린다니.

“호, 혹시… 흑마법 같은 건 아니죠?”

“아니. 부활 아이템이 따로 있어.”

정도현은 의심하는 그에게 부활 아이템을 보여 줬다.

난생처음 보는 아이템에 성준휘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그, 교황은 이걸 써서 살린다 쳐도……. 전투 사제랑 이단 심문관들은 어떡합니까?”

교황을 따르던 전투 사제들 십수 명.

성녀의 호위대인 이단 심문관들은 수십 명이나 죽었다.

그들이 단체로 사망하면 교단이 아무리 감춘들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걔네도 살릴 건데?”

“예? 하지만 어떻게…….”

부활 아이템은 이거 하나뿐이지 않느냐. 성준휘가 그렇게 말하자.

후두둑-!

정도현은 틈틈이 사 뒀던 부활 아이템을 꺼냈다. 경쾌한 소릴 내며 탁자 위를 굴러가는 수십 개의 구슬.

어마어마한 물량에 성준휘는 잠시 생각하는 걸 그만뒀다.

“교황은 내가 살리고, 나머지는 너랑 네 부하들이 살려.”

부활 아이템은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다. 그러니 조력자가 필요했다.

그에게 호의적인 성준휘와 성기사단이 제격이었다.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적당히 괴롭혀.”

“아, 옙!”

성준휘는 싱글벙글했다.

평소 거들먹대던 사제 놈들이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젠 상황이 역전되었다.

“뭐, 너희가 아무리 입을 다물고 있어도 소문은 금방 날 거다. 핵심 간부들의 레벨이 떨어졌으니까.”

“아, 부활 페널티…….”

교황을 필두로 간부급 전투 사제들의 레벨이 떨어졌으니까.

아무리 정보를 은폐해도 소문은 퍼지겠지.

교단의 치부를 가십거리로 써먹는 언론이나 정보 길드야 B구역에 차고 넘칠 테니까.

그 말에 성준휘가 골치 아프단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합니까?”

“뭘 어쩌긴. 교단이 늘 해 온 방식대로 처리해.”

“…늘 해 왔던 대로요?”

“우린 신경 쓸 필요 없어. 교황이랑 성녀가 알아서들 하겠지.”

“하긴, 그렇긴 하네요.”

팔라딘은 교단의 대표로 나서서 무언가 말하지 않는다.

그건 교황과 성녀의 역할이었다.

성준휘와 성기사단이 하는 일은 교단의 적을 향해 단죄의 칼을 휘두르는 것뿐.

그러니 뒤에서 잔머릴 굴릴 필요는 없었다.

“웃대가리는 그대로 두되, 교단은 오늘부로 완전히 개혁할 거다.”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그 부분은 교황이랑 성녀한테 따로 말해 둘 거니까 넌 신경 쓸 필요 없고.”

“옙. 저도 그게 더 편하고 좋습니다.”

대놓고 말하면 기분이 좀 나쁠 법도 한데 성준휘는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라 말해도 진짜 할 기세였다.

그를 신뢰하고 싹싹하게 구는 건 좋은데 과하니까 좀 부담스럽다.

* * *

다음 날 아침, 대성당 외각에 위치한 제 28훈련소.

견습 성기사들은 고된 아침 훈련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그들이 막 자리에 앉아 밥을 먹으려던 찰나.

견습 사제 무리가 뒤늦게 식당으로 들어왔다. 사제들은 그들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엔 견습 사제들이 먼저 식당에 도착해 아침을 먹고 나간다.

그들은 전투 사제들과 달리 아침 기도 및 정신 수양을 위한 명상 외엔 하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침 기도를 주관하는 고위 사제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늦게 참석하는 바람에 일정이 지연됐다.

그래서 공교롭게도 딱 마주치고 말았다.

“훈련단장.”

“예, 사제님.”

견습 사제들을 통솔하는 사제가 거만한 말투로 불렀다.

그러자 훈련단장이 하던 식사를 멈추고 일어났다.

“저희 쪽에 사정이 생겨서 아침 식사가 늦어지게 됐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양보 좀 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양보라 하심은?”

“식사는 저희가 먼저 할 테니 여러분들은 밖에서 대기해 주시지요.”

“예?”

인솔 사제의 부당한 요구에 훈련단장은 이해가 안 돼서 눈을 끔뻑거렸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리는데 이게 무슨 개같은 경우인가.

평소에도 양보를 무슨 권리처럼 요구해 대던 작자였지만, 이번엔 상당히 불쾌했다.

“…사제님, 죄송하지만 저희가 왜 식당을 나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거야 여신도들이 견습 기사들을 불편해하니까 그렇지요.”

같은 공간에 있으면 불편한데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겠느냐고.

그렇게 말하자 훈련단장은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그게 뭔 개소리냐고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사제님도 아시겠지만, 식당이 준비하는 음식량은 인원수에 맞게 정해져 있습니다.”

“지금 받아 둔 걸 그대로 놔뒀다 나중에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안 된다. 지금 먹지 않으면 음식은 차갑게 식어 버릴 거다.

같은 공간에서 식사하기 불편하다는, 그런 어이없는 이유로 쫓겨나는 것도 서러운데. 식어서 맛없어진 밥까지 먹으라니.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더 열불이 나는 건 사제의 표정이었다.

마치 당연한 걸 요구하는 듯한 저 뻔뻔함. 확 그냥 얼굴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다.

“사제님,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너무하다뇨? 같은 식구끼리 그 무슨 섭섭한 소리십니까.”

같은 식구 좋아하시네. 마음에도 없는 소릴 찍찍 뱉어 대는 게 참 아니꼬웠다.

“죄송하지만 그 부탁은 못 들어드리겠습니다. 저희의 식사가 끝나면 오십시오.”

훈련단장은 그렇게 답한 뒤, 견습 성기사들에게 마저 먹으라고 했다.

그러자 인솔 사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동작 그만.”

인솔 사제는 식사를 재개하던 견습 성기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배고파서 음식을 입에 구겨 넣던 견습들의 손이 퍼뜩 굳었다.

사제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식탁으로 다가가 어느 견습의 식판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그걸 그대로 엎었다.

터엉-!

식탁과 바닥에 흩뿌려진 음식들.

인솔 사제의 패악질에 훈련단장이 발끈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훈련단장, 어린 양들을 위한 양보가 그리도 힘드셨습니까?”

“이건 양보가 아니라 강요하는 거잖습니까! 고작해야 몇십 분입니다.”

겨우 그걸 못 참아서 먼저 온 우릴 내쫓다니. 너무도 불합리했다.

그가 그렇게 따졌지만 인솔 사제는 콧방귀를 뀌었다.

“일을 키우면 그쪽도 좋을 게 없을 텐데요.”

“…큭!”

훈련단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말대로였다.

이번 사안을 윗선에 보고한들 되돌아오는 건 사제 측에 사과하라는 명령일 터.

“…….”

견습 기사들은 식사를 멈추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를 쳐다봤다.

훈련단장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댔지만 어쩔 방도가 없어 고갤 떨궜다.

“죄, 죄송합니다…….”

“목소리가 작군요. 더 크게 말씀하세요.”

인솔 사제는 입꼬릴 씰룩대면서 갑질을 부렸다.

훈련단장이 허릴 숙여 다시 사과하려던 찰나.

“뭐야, 뭔 일이야?”

식당 입구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솔 사제는 고갤 돌려 누군지 확인하곤 흠칫했다.

“다, 당신은……?!”

식당 입구에 서 있는 건 팔라딘 성준휘였다. 그리고 옆에는 정도현과 민하은도 있었다.

그들 뒤에는 웬 꼬마애들이 수십 명이나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성준휘는 인솔 사제를 노려보며 말했다.

“야, 너 지금 뭐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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