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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203화 (203/240)

203화

“…….”

오물오물.

금발의 여자는 정도현의 손가락에 피어난 황금빛 불꽃을 꿀처럼 쪽쪽 빨아먹었다.

잠시 뒤,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며 말했다.

“맛있어…….”

“…….”

정도현은 황당해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더 없냐고 물어보듯 그의 손가락을 할짝댄다.

하는 짓이 새끼 고양이가 따로 없었다.

정도현은 마력을 좀 더 끌어 올려 손바닥 위에 황금의 불꽃을 피워 냈다.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여자는 며칠 굶은 것처럼 허겁지겁 마력을 흡수했다.

이질적인 외모지만 이견의 여지가 없는 미녀가 손바닥을 싹싹 핥아 댄다.

옆에서 보면 야릇한 광경처럼 보이지만 엄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과 행동은 아기새가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 갈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순수했으니까.

사람으로 빗대면 막대 사탕을 핥아 먹는 꼬마애 같았다.

황금색 불꽃 덩어리를 몽땅 먹어 치운 여자는 허기가 좀 가셨는지 고갤 꾸벅 숙였다.

“…고마워요.”

그녀는 극양의 마력을 흡수하고 기운이 조금 돌아왔는지 고갤 꾸벅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걱정한 것보다 성정이 훨씬 온순했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이 여자는 몬스터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니까.

“이봐, 한 가지 묻겠다.”

“……?”

“밖으로 나가게 되면 널 가둔 인간들에게 복수할 거냐?”

정도현의 질문에 여자는 멍한 얼굴로 눈만 끔뻑였다.

무시하는 게 아니라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복수가 뭐야?”

“뭐?”

농담이나 시치미를 떼는 것도 아니다.

진짜로 복수의 개념을 모른다.

정도현은 어떻게 된 거냐 묻는 눈빛으로 노마법사를 쳐다봤다.

“지하에 갇힌 후로 아무것도 안 가르쳤으니 잘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나.”

“말을 안 가르쳤다고? 그럼 대화를 어떻게 하는 건데.”

“정신 감응이네.”

“…정신 감응?”

신의 자손들은 언어를 따로 익힐 필요가 없다.

그들은 정신 감응이란 특수한 스킬로 이성이 있는 존재라면 얼마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

텔레파시의 상위 호환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와 대화하는 셈이지.”

“…….”

몸은 숙녀인데 정신은 어린애라니.

정도현은 작게 한숨을 쉬고 그녀에게 단어의 뜻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줬다.

“복수는 네가 싫어하는 사람을 혼쭐내 준단 거야.”

“…싫어하는 사람?”

“예를 들면, 이 할아버지.”

정도현이 갑자기 자신을 걸고 넘어지자 노마법사는 마른침을 삼켰다.

“널 방에 가두고, 쇠사슬로 묶어 두고, 피도 뽑으면서 자꾸 못되게 굴었지?”

“응.”

아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던가.

그녀가 순순히 고갤 끄덕이자 노마법사는 목이 바짝 타들어 갔다.

여기서 복수하고 싶다 해 버리면 해코지당하는 거 아닐까.

이렇게 죽을 수 없었다. 이제 희망이 보이는데.

그는 덜덜 떨며 눈동자를 뒤룩뒤룩 굴려 댔다.

“이 못된 할아버지한테 복수하고 싶지 않아?”

여자는 고갤 도리도리 저었다.

뜻밖의 대답에 정도현은 눈동자가 조금 커졌고, 노마법사는 살았단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화나거나 밉지 않아?”

“화 안 나.”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어린애처럼 세상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어떻게 수십 년째 감금당하고도 분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정도현은 이해가 안 됐다.

인간의 감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그랬어. 세상엔 나쁜 사람도 많지만 좋은 사람도 그만큼 있다고. 그러니 함부로 미워하지 말라고 했어.”

“그, 엄마는 사람이셨니?”

“아니. 나랑 똑같아. 날개도 나보다 훨씬 많고.”

어머니가 천사 쪽이었군.

그나저나 천사가 그런 말을 해 줬다니. 이건 또 이거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다.

천사들은 당연히 인간을 짐승 언저리로 취급할 줄 알았는데.

‘이 여자의 어머니가 특이한 건가?’

아니면 다른 천사들도 신호영의 얘기와 달리 성품이 온화한 걸까.

잠시 고민해 보던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그들이 그토록 자비로웠다면 신호영과 여동생한테 서로 죽이라는 가혹한 형벌을 내렸을 리 없다.

인간 남성과 결혼한 그녀의 어머니가 특수한 거겠지.

“엄마랑 아빠가 어디 계신지는 알아?”

“…몰라.”

그녀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갤 내저었다. 아버지 쪽은 아마 세상을 하직했을 거다.

무려 80년 가까이 흘렀으니까. 플레이어였어도 세월의 한계를 버텨 내지 못했겠지.

하지만 어머니 쪽은 다르다.

인간이 아니라 천사니까. 살아 있을 확률이 높았다. 만약 살아 있다면 분명 A구역에 있겠지.

“그럼 엄마 만나고 싶어?”

“응!”

그녀가 언제 서글퍼했었냐는 듯이 활짝 웃었다.

반들반들한 눈동자에서 기대감이 줄줄 흘러나왔다.

정도현은 진성이와 다윤이가 생각나서 그녀의 머릴 쓰다듬어 줬다.

그 광경을 보던 노마법사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나도 살려 주는 거지?”

“아니.”

“뭐, 뭐라고? 그 여자가 괜찮다고 했잖나!”

노마법사가 적반하장으로 따지자 정도현은 다시 칼날을 목에 들이밀며 대답했다.

“이 애는 용서했을지 몰라도 난 용서 못 해. 그리고 넌 다른 아이들도 수없이 건드렸잖아.”

“그, 그런……. 네가 뭔데 날 심판해!”

“메시아.”

“뭐, 뭐?”

“내가 메시아라고.”

정도현은 메시아나 구원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지하 실험실의 실태를 두 눈으로 보고서 결심했다.

이것들은 가만히 놔 둬선 안 되겠다고.

이미 썩을 대로 썩어 버렸으니 아예 도려내야만 한다.

“눈 꼭 감고 있어.”

“응.”

정도현의 말에 여자는 양손으로 두 눈을 가렸다. 그와 동시에 정도현의 손이 움직였다.

서걱-!

깔끔한 소리와 함께 목젖에 실선이 그어졌다. 핏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오며 거품이 인다.

“끄으, 끄륵…….”

노마법사는 눈동자를 까뒤집은 채 가래 끓는 소릴 뱉었다. 그러다 결국 썩은 고목처럼 기우뚱 쓰러졌다.

정도현은 시킨 대로 얼굴을 꼭꼭 숨긴 그녀를 승강기로 데려갔다.

그러자 그녀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질문했다.

“…다른 애들은?”

“금방 돌아와서 데리러 올 거야.”

“정말?”

“응. 아픈 애들은 치료해 줄 거고.”

신혈의 부작용으로 발작하며 괴로워하는 몇몇 아이들을 보며 정도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신호영, 미안하다.’

민하은은 지금 죽어선 안 된다. 그녀는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 * *

“서, 성녀님! 대성당 외곽에서 「태양신공」의 기운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졌습니다!”

“뭐, 뭐라고요?”

예상치 못한 수하의 보고에 민하은은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태양신공」의 기운이 대성당 내에서 감지됐다니.

‘설마…….’

신호영일 리는 없다.

그가 미치지 않고서야 대성당 안에 제 발로 들어왔을 리 없으니까.

그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하나뿐.

‘역시 북해빙궁에서 감지됐던 기운도 그 남자 거였어.’

설마설마했는데 정말로 「태양신공」까지 다룬다니.

스스로 메시아라 칭하는 사기꾼 주제에 뭐 이리 다재다능하단 말인가.

민하은은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래서 위치가 정확히 어딥니까?”

“그, 그게… 지하로 연결된 건물 쪽입니다.”

“……!”

민하은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거긴 또 어떻게 알고 간 거야?

그녀는 심장이 벌렁거렸다.

“설마, 설마……!”

지하 실험실에 감금된 신의 자손의 핏줄. 그 여자에게 극양의 기운을 나눠 준 건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민하은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와 이단 심문관들을 소집했다.

“교황한테 가서 알리세요. 가용 가능한 전투 사제들을 전부 집결시키라고!”

그녀 혼자만의 힘으론 안 된다. 교황 세력의 도움이 필요했다.

둘이 힘을 합쳐 당장 그 남자를 죽여 버려야 한다.

지하 실험실 그리고 추방된 신의 자손까지 알아냈으니 죽여서 입을 다물게 해야만 했다.

그녀가 별채를 막 빠져나왔을 때.

“멈추십시오, 성녀님.”

“……!”

얼마 못 가 웬 무리가 민하은의 앞길을 막아 세웠다. 성기사단이었다.

그녀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호통쳤다.

“비키세요!”

“죄송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성준휘의 지시인가.

아무래도 정도현이 그에게 성녀를 붙잡아 두라 일러둔 모양.

“부디 얌전히 따라오시지요, 성녀님.”

성기사들은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여차하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단 의지를 보였다.

아무리 민하은의 친위대라도 최정예 성기사들과 정면으로 싸워 이기긴 힘들었다.

하지만 딱 하나. 이 막막한 상황을 뚫고 나갈 방법이 있었다.

“전원 신혈단약을 사용하세요.”

민하은의 지시에 수십의 이단 심문관들이 각자 품에서 붉은 알약을 꺼냈다.

극소량의 신혈과 포션을 뒤섞어 굳힌 것으로, 섭취하면 일정 시간 동안 엄청난 힘과 재생력이 생기게 된다.

이단 심문관들의 수상쩍은 행동에 성기사들이 급히 칼을 뽑았다.

하지만 막기엔 늦었다.

“눈동자가……?!”

약을 삼킨 이단 심문관들의 눈동자가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범상치 않은 변화에 주춤거리는 성기사들. 힘을 손에 넣은 이단 심문관들이 히죽 웃으며 달려들었다.

“대형을 갖춰라!”

그래도 정예 부대답게 기사단장의 외침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대응했다.

검강이 담긴 칼날이 이단 심문관들의 몸에 틀어박혔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했다.

“어?”

덥석, 콰드득!

칼날이 급소에 꽂혔는데도 그대로 밀고 들어와 머릴 붙잡았다. 그런 뒤 힘껏 돌렸다.

기사의 목이 부러지며 즉사했다.

다른 기사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뭐야?”

“이 새끼들 왜 안 죽어!”

팔다리는 물론이고 급소를 찌르거나 베었는데도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었다.

게다가 고통에도 무뎌졌는지 광전사처럼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든다.

좀비 부대가 따로 없었다.

이단 심문관 한 명 한 명의 무력은 성기사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재생력과 물량을 앞세우며 밀어붙였다.

기사들의 힘으론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후, 후퇴하라!”

기사단장은 이대론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다급히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성기사들이 포위를 풀고 도망치자 민하은은 친위대에게 명했다.

“저들은 무시하고 지하 실험실로 이동하세요.”

성기사들의 반란을 수습하는 건 교황에게 맡기고 그녀는 정도현 쪽을 확인하기로 했다.

게다가 신혈단약의 효력은 그리 길게 가지 않는다. 끽해야 15분 정도.

게다가 효과가 끝나면 힘과 재생력을 얻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아마 한 달은 족히 요양해야 할 터.

‘그 전에 그 남자를 죽여야만 해.’

이들을 전부 자폭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죽인다.

* * *

정도현과 이름 없는 여자는 승강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런 뒤 곧장 권하율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진규현이 1분도 채 안 걸려 공간을 찢고 도착했다.

“흐아아암! 또 새벽에 불러내냐…….”

평소 잠이 많은 진규현이 하품을 하며 투덜대다, 정도현 옆에 있는 금발 여자를 보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그 여잔 또 누구야?”

“나중에 다 설명할게. 일단 이 여자 데리고 집에 가 있어. 그리고 신호영도 바로 데려오고.”

정도현은 그렇게 말한 뒤 여자의 손을 꼭 잡고 타이르듯 말했다.

“얌전히 기다릴 수 있지?”

“…응. 빨리 와 줘.”

그녀는 부모와 강제로 떨어졌던 순간이 떠올라 파들파들 떨었다.

정도현은 부드럽게 웃으며 훌쩍이는 그녀를 타일렀다.

“…….”

둘의 다정한 모습에 진규현은 마른세수를 했다.

서아린과 정도현이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낸 걸 알고 권하율이 침울해했던 게 엊그제였는데.

이번엔 웬 금발 미녀를 품에 끼고 있었다.

눈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딱 봐도 태가 남달랐다.

권하율의 경쟁자가 또 하나 늘다니.

저 녀석, 아닌 척하더니 사실 여자 밝히는 거 아닐까?

“그 여자는 네 집에 놔두고, 신호영을 데려오면 된다는 거지?”

“그래, 부탁할게. 그리고 신호영한텐 이 여자 절대 건들지 말라고 당부해 줘.”

진규현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사라졌다.

그 직후, 강렬한 마력들이 미사일처럼 이쪽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거기엔 익숙한 마력도 하나 섞여 있었다.

‘민하은. 성기사들을 뚫고 왔군.’

역시 숨겨 둔 한 수는 있었던 건가.

성준휘는 교황을 생포하러 갔으니 성녀 쪽은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했겠지.

그래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잘됐다.

“도망칠까 봐 걱정했는데, 알아서 와 주면 나야 좋지.”

정도현은 그렇게 중얼대며 검을 뽑았다. 신호영도 곧 공간 도약으로 넘어오리라.

민하랑과 민하은 그리고 신호영.

20여 년 만에 이 셋이 다시 모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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