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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99화 (199/240)

199화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팽팽했던 결투는 이제 일방적인 폭력으로 변질됐다.

정도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성준휘는 바람에 나부끼는 종잇장처럼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공격을 흘리며 직격타만은 면하는 등 분발했다.

검술에 대한 재능만큼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좀 더 버티는 게 고작일 뿐, 싸움의 판도를 바꾸진 못했다.

“허억, 헉…….”

성준휘가 숨을 헐떡이며 정도현을 노려봤다.

정신없이 구르느라 온몸에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그와 달리 정도현은 전체적으로 멀끔했다.

그의 호흡과 눈빛에 흔들림이라곤 없었다.

성준휘는 저 모습이 익숙했다.

압도적인 강자의 자태였다. 원래는 그가 누려 온 것.

“아니야…….”

성준휘는 인정하기 싫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저딴 사기꾼한테 내가 진다니.

“크아아아!”

성준휘가 괴성을 내지르며 전신의 마력을 폭주시켰다.

콰직, 콰지직-!

순백의 검강이 불안정해지더니 스파크처럼 사방으로 이리저리 튀었다.

안정성을 버리고 대신 위력을 택한 것이다.

저렇게 검강이 날뛰면 몸이 망가질 텐데.

“죽어!”

성준휘는 상대를 갈가리 찢어 죽일 기세로 덤벼들었다.

카아앙, 파지직-!

검강이 맞부딪치며 반발한다. 둘의 마력이 벼락 줄기처럼 사방팔방 퍼져 나갔다.

검강의 위력은 다시 엇비슷해졌다. 이제는 허무하게 밀리지 않았다.

“크어어어!”

입에서 피가 질질 흘렀지만 성준휘는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휘저었다.

신성력으로 상처와 내상을 억누르고 싸움에만 몰두한다.

이렇게 필사적이면 한 대쯤 맞아 줄 법도 한데, 야속하게도 정도현은 차분히 날아드는 공격을 막거나 흘려보냈다.

얄미울 정도로 깔끔하고 부드러운 대처에 성준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씨발! 뭐, 이딴 괴물 새끼가 있어!’

도저히 이길 각이 안 보였다.

당장은 신성력으로 버텨도 곧 치유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내상이 번질 터.

그럼 몸이 버티지 못한다. 그 초조함이 성준휘의 칼끝을 미세하게 흔들었다.

정도현이 눈을 빛내며 그 찰나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성준휘는 아차 싶었으나 한발 늦었다.

“…컥!”

촤악-!

급히 온몸을 비틀며 회피했으나 검강이 어깻죽지를 긁고 지나갔다.

보호구와 함께 살점이 찢기며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 와중에도 성준휘는 악착같이 반격했다.

공격하는 타이밍을 절묘히 비집고 들어와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정도현은 호신강기를 두른 손으로 칼날을 쳐 냈다.

촤악-!

그래도 완벽히 막아 내진 못했다.

손바닥에 길쭉한 선이 그어지며 선혈이 흘렀다.

처음으로 상처를 입은 정도현.

성준휘는 기뻐할 새도 없이 거릴 벌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허억, 허억…….”

검강을 맨손으로 쳐 내고도 겨우 생채기만 나다니.

무슨 하북팽가의 무인처럼 금강불괴(金剛不壞)를 익힌 것도 아니면서.

정녕 그와 같은 인간이 맞는지조차 의심됐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메시아, 메시아. 그 망할 놈의 단어가 자꾸 그의 머릿속을 맴돈다.

정말로 저놈이 신이 내린 영웅이라면.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단 거니까.

성준휘는 그게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뭐야, 우냐?”

“…닥쳐!”

성준휘는 패색이 짙어졌는데도 망설이거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벌꿀오소리 같았다.

제 마음에 안 들면 상대가 누구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들이받는.

그야말로 분노 조절 장애의 화신 같은 동물.

“그 깡다구는 인정한다.”

정도현은 그를 칭찬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 정도면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성향이나 방향성은 달라도, 성준휘 역시 정도현처럼 제대로 미쳐 있었다.

그래서 저만큼이나 강해질 수 있었겠지.

물론 천부적인 재능이 없었으면 진즉 객사해도 이상하지 않을 성질머리였지만.

촤악, 서걱-!

정도현은 덤벼 오는 성준휘를 베고 또 베었다.

신성력으로 반쯤 썰린 모가지를 도로 이어 붙이고, 심장을 비롯한 인체의 급소를 몇 번이나 찔려도 불사신처럼 재생하며 달라붙는다.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좀비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몸이 썰리고, 마력 폭주의 고통 속에서도 그의 검로는 올곧고도 정교했다.

핏-!

정도현의 피부에 조금씩 생채기가 났다.

그도 반마력 검강을 펼치느라 알게 모르게 대량의 마력을 써서 상당히 지쳤다.

이젠 정신력 싸움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패시브 스킬들로 무장한 정도현이 성준휘보다 몇 수 위였지만.

“꺼, 꺼으…….”

피범벅이 되고 한쪽 팔과 무기까지 잃은 성준휘. 그런데도 눈빛만큼은 투쟁심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툭, 툭.

그는 하나밖에 안 남은 주먹으로 정도현의 가슴팍을 두들겼다.

하지만 신성력은 고갈됐고, 체력도 다했기에 그의 공격은 어린애가 안마하는 수준이었다.

“그만하면 잘 싸웠다. 고생했어.”

정도현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제 잘난 맛에 살아온 날라리여도 실력과 정신력만큼은 정말 훌륭했다.

레전드리 세트 아이템까지 입은 그를 상대로 5분 넘게 버텼으니까.

아마 반인반마로 변했던 설유천과 붙었어도 어금버금했으리라.

푹-!

칼날이 성준휘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망가져서 삐걱대는 기계 장치처럼 팔을 휘적대다 끝내 무릎을 꿇었다.

“쿨럭, 컥!”

쓰러진 성준휘는 피 웅덩이를 만들어 낸 뒤 죽었다. 상당량의 경험치가 들어오며 1레벨이 올랐다.

“…….”

싸움이 끝났지만 연무장 일대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구경하던 이들은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정도현의 몸에는 군데군데 영광의 상처가 남았지만, 분명 이견의 여지가 없는 그의 압승.

성준휘가 저토록 무력하게 패배한 건 다들 처음 봤다.

설사 5대 가주가 상대였어도 저렇게까진 못하리라.

게다가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팔라딘 경이…….”

“…죽었어?”

성기사들은 간부들보다 더욱 큰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이 결투에 성준휘의 목숨이 걸린 줄 모르고 있었으니까.

팔라딘이 죽었다, 젊고 혈기 넘쳤던 교단의 실세가.

그의 죽음이 외부에 알려지면 분명 난리가 날 거다.

성기사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 줄 몰라 서로 눈치만 살필 때.

“모두 진정하세요.”

이 순간만을 기다렸단 듯 민하은이 나서서 상황을 수습했다.

그녀의 등장에 몇몇 성기사들은 짧게 탄식했다.

성녀의 능력이면 성준휘도 다시 되살아날 테니까.

“하지만… 능력을 쓰면 수명이 줄어든다지 않았어?”

“팔라딘 경이잖아. 무조건 살려야지.”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연습 대련에서 목숨까지 뺏을 필요가 있었나?”

다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웅성댈 때. 민하은이 손가락으로 「생명의 불씨」를 피워 냈다.

화르륵-!

황금빛 불꽃이 성준휘의 몸속으로 흘러들더니 망가진 육신을 서서히 복구시켰다.

“…쿨럭!”

민하은이 각혈하며 비틀대자 옆에 있던 수행원이 어깨를 부축했다.

그녀는 핼쑥한 얼굴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됐어!’

마침내 성준휘를 손에 넣었다.

이제 성기사단도 그녀의 수족이나 마찬가지.

교황과 그를 따르는 반절의 추기경들은 이제 그녀를 막지 못한다.

수틀리면 칼을 뽑아 숙청해 버리면 그만이니까.

‘이제 남 눈치 볼 필요도 없어.’

지금까진 교황 세력과 성기사단 때문에 마음껏 병력을 움직이지 못했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신호영을 찾아내 데려오는 것도 한층 수월해지리라. 모든 게 착착 풀려 나간다.

‘저 남자는 여전히 거슬리지만…….’

민하은은 사제들에게 치료받고 있는 정도현을 흘끔 쳐다봤다.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긴 했으나 도저히 신용할 수 없는 사내였다.

이름은 물론이고 얼굴마저 베일에 싸인 자.

거기다 알려져선 안 될 그녀의 약점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다.

‘당장은 제거할 수 없어.’

그 성준휘마저 쓰러트렸지 않은가.

당장은 없앨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 세상에 무적인 존재는 없다.

반드시 약점이 있을 터.

‘가주들과 성기사단의 힘을 합치면 가능하겠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개인의 힘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그녀가 그렇게 음흉한 계획을 착착 세워 갈 때.

숨이 멎었던 성준휘가 눈을 번쩍 떴다.

“…….”

그는 멍한 얼굴로 일어섰다.

성기사들이 부축해 주러 왔지만 그는 됐다는 손짓과 함께 혼자 힘으로 일어섰다.

“팔라딘 경, 괜찮으신가요?”

민하은이 고혹적인 미소와 함께 그를 불렀다.

그런데 성준휘는 대답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민하은은 크게 당황했다.

‘뭐야?’

「생명의 불씨」로 되살아난 자가 그녀를 무시하다니?

지난 수십 년간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파, 팔라딘 경?”

연신 불렀지만 성준휘는 그녀를 지나치곤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녀는 고갤 돌려 그의 목적지를 확인했다. 그리곤 눈동자가 커졌다.

성준휘는 정도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민하은은 불길함을 느꼈다.

그가 정도현한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잠시만요! 팔라딘 경, 멈추세요!”

민하은은 다급히 그를 뒤쫓아 팔뚝을 붙잡고 명령했다.

탁.

하지만 성준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손길을 뿌리쳤다.

“꺄악!”

“서, 성녀님!”

가뜩이나 대량의 생명력을 나눠 준 탓에 몸 상태가 안 좋았던 민하은은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자 수행원들이 기겁하며 그녀를 부축했다. 그녀는 핏물을 퉤 뱉고선 부들거렸다.

‘왜 내 명령을 안 듣는 거야!’

내 덕에 되살아났으면 군말 없이 명령에 따라야만 하잖아. 그런데 어째서!

민하은은 억울한 마음에 성준휘의 뒤통수를 쏘아봤다.

어느새 정도현 앞에 멈춰 선 성준휘.

그가 정도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을 뭐라 부르면 되지?”

“메시아라 불러라.”

“그래, 메시아. 아니, 메시아 님.”

털썩.

성준휘는 돌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돌발 행동에 다들 숨을 훅 들이켰다.

성준휘가 남한테 무릎을 꿇다니?

자존심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사내가?

정도현도 이건 전혀 예상 못 했는지 눈썹을 꿈틀했다.

“뭐 하는 거지?”

“제가 졌습니다! 당신을 인정하겠습니다.”

정준휘의 말투가 깍듯해졌다. 고개까지 숙인 걸 봐선 어쭙잖은 연기도 아니었다.

그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자 정도현은 의아했다. 죽었다 살아나서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건가?

“갑자기 왜 날 인정하고 숙이는 거지?”

“그거야 절 이기셨잖습니까.”

정도현은 이해가 안 갔다.

졌으니 자존심 굽히고 굴복하겠다니.

다른 녀석도 아니고 성준휘가?

‘무슨 꿍꿍이지?’

놈의 저의가 굉장히 의심스러웠다.

정도현의 따가운 눈초리에 성준휘는 억울하단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입니다! 메시아 님. 전 지금껏 저보다 검을 잘 다루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성준휘보다 강했던 이들은 있었다. 하지만 검술의 완성도와 깨달음 면에선 늘 그가 우위를 점했었고, 결국 전부 추월했다.

그런데 정도현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더 높은 경지에 있었다. 심지어 젊기까지 했다.

“메시아 님께선 앞으로 더욱 강해지실 겁니다. 예전의 저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시겠죠.”

그가 뭔 짓을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독보적인 천재였다. 그렇기에 성준휘는 깔끔히 인정했다.

“…너 그런 녀석이었냐?”

“저도 놀랐습니다.”

성준휘의 고백에 정도현은 머릴 긁적였다. 거짓말하는 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그래도 민하은이 되살려서 언제 적으로 돌아설지 모르지.’

정도현은 사제들의 부축을 받으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민하은을 쳐다봤다.

그녀가 성난 얼굴로 성준휘를 불렀다.

“팔라딘 경! 살려 줬으면 최소한 고맙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뭐? 내가 왜?”

“왜, 왜라뇨? 제가 아니었으면 당신은 죽었습니다!”

민하은은 몸도 아프고 기가 막혀서 평소 온화한 척하던 가면까지 벗어던졌다.

그녀가 고성을 내지르자 주변의 사제와 성기사들이 놀라 수군댔다.

성준휘는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뭐래. 난 부탁한 적 없어. 네가 살려 주겠다며?”

“뭐, 뭐라고요?”

“그리고 아까부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명령하던데, 잘 들어.”

그는 민하은한테 으르렁대며 경고했다.

“난 나보다 약한 놈의 말은 듣지 않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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