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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93화 (193/240)

193화

얼음의 대악마의 힘을 받아들인 설유천. 그는 평생 검이라곤 다뤄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악마가 내어 준 얼음의 대검을 쥐자 신기하게도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채앵-!

정도현의 현란한 손놀림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우직하게 검술을 연마해 온 일류 검객 같았다.

『‘겔리온’. 내가 직접 벼려 낸 마검이야. 어때?』

“크하핫, 최고로다!”

자의적으로 움직이며 전투를 보조해 주는 마검의 성능에 대만족한 설유천이 경박하게 웃어 댔다.

혹한의 대검이 훑고 지나간 곳에는 차디찬 얼음만이 남았다.

정도현은 마검에게 대항하고자 검으로 불꽃을 일으켰다.

콰앙-!

그러나 불꽃의 검강도 닿자마자 쩍쩍 얼어붙으며 바스러졌다.

‘레전드리 등급 무기인가.’

설유천의 능력치와 마력이 대폭 올라갔다.

검술의 깊이도 전혀 밀리지 않고 거기에 닿은 마력을 모조리 얼리는 사기적인 성능까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다른 플레이어였으면 진즉 얼어 죽었겠어.’

정도현의 피부 위로 살얼음이 소복하게 깔렸다.

한서불침을 익혔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위험했으리라.

“쩔쩔매는 꼴이 보기 좋구나!”

설유천이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대검을 풍차처럼 휘둘렀다.

단순하지만 강한 근력을 잘 활용한 검법이었다.

게다가 마검의 냉기도 회오리치듯 퍼져서 가까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크하하하핫!”

강대한 힘에 취한 설유천은 광인처럼 폭소하며 검으로 정도현을 마구 후려쳤다.

티잉, 팅-!

정도현은 칼을 방패처럼 들어 올려 참격을 막았다. 칼날이 마주칠 때마다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흐음. 잘 버티는 것 빼곤 특별한 게 없는데?』

둘의 싸움을 구경하던 얼음의 대악마는 살짝 김이 샜다.

설유천이 이겨야만 봉인에서 풀려나 자유를 되찾겠지만, 그녀는 내심 정도현이 뭔가 더 보여 주길 기대했었다.

설령 설유천이 지더라도 이미 봉인은 제법 느슨해졌다.

앞으로 십수 년만 더 기다리면 그녀의 힘만으로도 얼음을 깨부술 수 있을 터.

“이 끈질긴 새끼가!”

까앙-!

설유천이 있는 힘껏 후려쳤다. 정도현은 그걸 막으려다 벽까지 날아가 꽝 부딪혔다.

때리는 손맛이 제대로 느껴졌다. 설유천은 씩 웃었다.

“승부가 났구나, 애송아.”

정도현이 핏물을 뱉어 내곤 천천히 일어섰다. 충격이 제법 큰지 잠시 휘청대기까지 했다.

그 모습에 설유천은 속이 다 시원해져서 히죽거렸다.

“이젠 네놈이 무릎 꿇고 빌 차례다.”

“참나. 퍽이나 살려 주겠네.”

궁지에 몰렸는데도 변함없이 이죽대자 설유천의 이마에 굵은 혈관이 솟았다.

저 얄미운 혓바닥을 확 뽑아 버리고 싶었다.

슬슬 끝장을 내고자 다시 대검을 들어 올리고 자세를 잡았을 때.

“……?”

정도현이 착용한 장비 아이템이 돌연 싹 바뀌었다. 붉은색 갑주과 장검. 때깔부터 범상치 않았다.

설유천은 그 장비템들이 뭔지 몰라 멍하니 쳐다봤지만, 얼음의 대악마는 한눈에 알아보곤 경악했다.

『그건 태양 기사단의……!?』

정도현이 착용한 장비들은 머나먼 고대 시절 명성을 떨쳤던 태양 기사단의 무구였다.

고대의 기사들이 사용하던 장비 아이템이면 골동품이나 마찬가지지 않은가?

설유천은 그렇게 생각하곤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태양 기사단의 실체를 몰라서 그런 거였다.

『방심하지 마! 저건 용이 직접 만들어 낸 무구란 말이야!』

“…용이 만들었다고?”

태양 기사단은 붉은 용의 둥지를 수호하는 가디언.

그들은 용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용혈을 하사받아 용인으로 재탄생한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태양 기사단의 상징인 붉은 갑주와 장검은 붉은 용이 손수 제작해 준 물건이었다.

『저 갑주랑 무기, 전부 레전드리 등급이라고!』

“……!”

저게 전부 레전드리 등급이라고?

설유천도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가 쥐고 있는 혹한의 대검도 레전드리 등급. 그래서 안다. 레전드리 아이템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무기 하나만 들어도 이만큼이나 강해졌는데, 레전드리 장비템으로 싹 도배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꿀꺽.

설유천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래도 좇된 듯했다.

“잠깐…….”

뜨겁게 달궈졌던 이성이 팍 식었다.

설유천이 대화로 교섭해 보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화르륵-!

정도현이 불꽃의 검강을 피워 내 개전의 봉화를 올렸다. 그런데 불꽃 크기가 좀 이상했다.

“아…….”

어두컴컴한 동굴 내부가 순식간에 환해졌다. 마치 대낮에 뜬 태양 아래에 있는 것처럼.

정도현 본인도 태양 기사단 장비의 세트 효과에 감탄했다.

‘화염 속성 마력이 말도 안 되게 증폭되는군.’

그는 평소처럼 불꽃의 검강을 펼쳤는데 길이가 족히 대여섯 배는 되었다.

‘위력은 어떨까.’

상대의 대검보다 길어진 검강을 가볍게 휘두르자.

콰아아앙-!

거센 폭발과 함께 설유천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커, 헉…….”

설유천은 어느새 저 멀리 날아가 벽에 처박혀 있었다.

고작 일격을 막았을 뿐인데.

얼음 투구와 갑주가 반쯤 녹아서 증발했고, 전신은 피투성이가 됐다.

“쿨럭, 컥……!”

설유천이 피를 한 움큼 토하고선 머릴 흔들며 일어섰다. 무릎이 후들거려서 몇 번이나 휘청댔다.

“이, 미친…….”

고작 한 방인데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거 몇 대 더 맞았다간 영영 못 일어날 것만 같았다.

화르륵-!

정도현이 다시 한번 불꽃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설유천은 옆으로 굴러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안심할 틈은 없었다.

정도현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귓가로 들린다.

쿵!

설유천은 다급히 대검을 땅바닥에 내리찍으며 얼음벽을 세웠다.

물론 그 정도로는 정도현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콰앙-!

찌르기 한 방에 빙벽이 뻥 뚫렸고 열기에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끄어어억!”

벽 뒤에 숨었던 설유천이 불길에 휩쓸렸다. 서리처럼 새하얗던 피부가 시커멓게 물들었다.

횃불처럼 활활 불타오르는 설유천.

정도현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지옥에서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외롭진 않겠지.”

“끄, 어어……!”

설유천은 원통한지 춤을 추듯 허우적대다 끝내 쓰러졌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전드리 장비템을 잔뜩 사용해서 경험치도 갈가리 찢어졌다.

윤정이의 복수를 한 대가라 생각하자.

불타던 시신은 금세 재로 변해 흩날렸다. 그 자리엔 혹한의 대검, 겔리온만 덩그러니 남았다.

정도현은 그걸 인벤토리에 챙긴 뒤, 얼음 기둥에 갇힌 악마를 쳐다봤다.

『와, 정말 대단한데? 이름이 뭐야?』

“네가 얼음의 대악마냐?”

『응. 뭐, 진명은 따로 있고. 그건 인간들이 멋대로 붙인 별명이지만.』

얼음의 대악마는 정도현에게 관심을 보였다. 강인한 인간과 거래할수록 악마는 큰 힘을 얻으니까.

정도현과 거래를 튼다면 단박에 봉인을 깰 수 있을지 모른다.

『혹시 이루고 싶은 소원 없어? 아까 여자 이름을 말하던데…….』

“신경 꺼.”

『일단 얘기라도 들어 봐. 좋아하는 여자가 죽은 거지? 내가 살려 줄 수 있어.』

얼음의 대악마의 제안에 정도현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고?”

윤정이는 육체는 물론이고 영혼마저 사라졌다. 그런데 무슨 수로 살린단 말인가.

정도현이 불신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자, 얼음의 대악마가 자신 있게 말했다.

『강령술을 응용하면 돼.』

“…강령술?”

『죽은 지 얼마 안 된 영혼이면 명계에서 꺼내 올 수 있어. 대악마들만의 특권이지.』

“영혼을 불러내서 뭘 어쩌게?”

『살아 있는 인간의 몸에 넣어야지. 그럼 되살아날 수 있어. 뭐, 이런저런 부작용은 있겠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단 낫잖아?』

다른 사람 몸을 빌려서 부활시킨다니.

실로 악마다운 발상이었다.

정도현의 싸늘한 반응에 얼음의 대악마는 열심히 설득했다.

『너 아직 젊잖아? 100년은 족히 살 텐데, 정말 연인을 떠나보내도 괜찮겠어?』

“연인이 아니라 친구야.”

『에이, 남녀 사이에 친구가 어딨어? 부끄러워하긴. 아, 혹시 짝사랑이야?』

얼음의 대악마는 어떻게든 그를 구슬려 보려고 계속 치근댔다.

그가 이대로 떠나면 그녀를 꺼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물론 십수 년만 더 기다리면 그녀 혼자서 봉인을 풀 수 있겠지만, 그동안 지루하지 않겠는가.

‘방금 화력이면 봉인도 깰 수 있을 거야.’

『정말 후회 안 할 거지? 나중에 찾아와도 늦으면 못 살린다?』

“남을 희생시켜서 지인을 되살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죄책감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텐데.”

『뭐야, 보기보다 고결한 성격이었네? 에이, 텄다 텄어.』

정도현의 목소리에서 진한 혐오감이 느껴지자, 얼음의 대악마는 혀를 차며 깔끔히 포기했다.

어쩔 수 없지. 또다시 혼잣말이나 늘어놓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그래도 설유천 덕에 수십 년의 기다림이 십수 년으로 확 줄었으니 버틸 만했다.

“넌 레벨 몇이냐?”

『응? 그건 왜?』

뜬금없는 질문에 얼음의 대악마는 의아함을 느꼈다.

그래도 오랜만에 만난 대화 상대이니 좀 더 어울려 주기로 했다.

『140레벨은 훌쩍 넘지. 뭐, 오랫동안 봉인 당해서 이젠 그 정돈 안 되겠지만.』

보스 몬스터이니 마검을 휘두르던 설유천보다 훨씬 강하겠지.

정도현은 고민했다. 이 악마를 꺼내서 죽일지 말지.

‘괜히 봉인을 풀어 줬다가 못 잡으면 대참사가 날 거다.’

물론 지금 착용 중인 태양 기사단의 세트 효과가 원체 어마어마해서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그 혼자 죽는 거로는 안 끝난다.

‘악마한테 잘 먹힐 레전드리 장비가 필요해.’

정도현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신중을 기했다.

상점창에 멸마(滅魔)를 키워드로 적어 넣고, 레전드리 등급만 나오게 설정했다. 몇몇 아이템이 나왔다.

악마를 죽이기에 딱 좋은 무기도 찾았다.

[롱기누스의 성창] [레전드리]

- 착용 조건: LV.115 이상

- 착용 시, 「저주 파괴」, 「멸마의 빛」, 「완전 치유」 발동 가능.

- 모든 능력치 7% 상승.

- 물리 피해량 350% 상승.

- 악마 및 마족 타격 시 반드시 치명타로 적용.

- 신성한 빛 세트 아이템 (0/5)

정도현은 롱기누스의 성창과 세트인 방어구들까지 싹 구매했다.

고작 5원을 투자해 레전드리 등급 성유물들을 구했다니.

이 사실을 태양교가 알게 되면 놀라 까무러치리라.

‘좋아. 안전벨트도 준비했으니 해 볼까.’

정도현은 회복 포션을 마신 뒤 얼음 기둥에 손을 얹었다.

얼음의 대악마가 뭘 하는 거냐며 물어봤지만 그냥 무시했다.

‘아까 설유천도 이렇게 했었지.’

얼음의 냉기를 흡수해 악마를 풀어 주려 했을 거다. 그러다 타이밍 좋게 그가 끼어들어서 방해했고.

정도현은 천천히 냉기의 마력을 뽑아냈다. 그러자 악마가 깜짝 놀랐다.

『어? 너 지금 봉인을 풀려는 거야?』

“입 닥쳐. 집중하고 있으니까.”

정도현은 몸살에 걸린 듯이 으슬으슬 몸이 떨렸다. 자칫하면 내상을 입을 것 같았다.

쩌적, 쩌저적!

요란한 소릴 내며 얼음이 갈라졌다.

설유천이 마력을 흡수할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세상에…….』

불꽃의 마력을 다룬 것도 모자라 냉기의 마력마저 제어하다니.

심지어 설유천보다 훨씬 능숙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균열이 얼음 전체로 퍼져 나가자 악마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됐어!』

쩌적, 콰앙!

얼음 내부에서 폭발과 함께 봉인이 깨졌다.

정도현은 얼굴로 튄 얼음 파편을 손으로 쳐 내곤 표정을 찡그렸다.

얼음의 대악마가 그새 못 참고 스스로 마력을 발산해 봉인을 깨부순 것이다.

얼음에서 나신의 여인이 흘러나오더니 땅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자빠지기 전에 받아 줄까 했지만, 어차피 죽여야 할 몬스터. 굳이 친절을 베풀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 [LV.135]

“…레이디를 땅바닥에 패대기치게 놔두다니. 너무 매정한 거 아냐?”

그녀는 잠에서 막 깬 사람처럼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가 땅을 짚자 풍만한 가슴이 출렁였다. 자연스레 남자를 유혹하는 몸짓을 보였지만 정도현에겐 별 효과 없었다.

“어차피 곧 죽을 텐데 무슨 상관이지?”

“…아, 그런 거였어? 난 또 나한테 반해서 구해 준 줄 알았지.”

얼음의 대악마는 천천히 일어서며 얼음 갑주를 짜 입었다.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간은 정말 멍청하다니까. 날 풀어 준 보답으로 목숨은 살려 주려 했는데. 왜 화를 자초하는 걸까?”

“아주 고결하신 악마 납셨군.”

“후훗! 너 되게 웃긴다? 완전 내 취향이야. 얼굴만 좀 잘생겼으면 좋았을 텐데.”

그녀가 허공에 손을 뻗자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혹한의 대검, 겔리온이 뽑혀 나왔다.

그녀는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정했어. 너도 내 사도로 삼아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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