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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89화 (189/240)

189화

정도현은 시신들을 불태우다 땅바닥에 떨어진 무한비도를 발견했다.

녀석은 전투의 여파에 휘말리기 싫었는지 거북이처럼 칼집에 스스로 들어가 숨어 있었다.

레전드리 등급이지만 정도현은 사용할 수 없다. 그야말로 계륵과 같은 무기.

정도현이 무한비도를 주워들고 한참 바라보자, 서아린이 다가와 팔뚝을 쿡 찔렀다.

“그거 공원에서 던졌던 거 아녜요? 못 다룬다더니 왜 꺼냈어요?”

“내가 꺼낸 거 아냐, 스스로 나온 거지.”

“인벤토리에서요?”

“응. 이 영감님이 원래 주인이거든.”

서아린은 고갤 끄덕였다. 레전드리 무기면 되찾으러 올 법하지.

그리 생각하며 무한비도를 흘끗 쳐다봤을 때.

우웅-!

칼이 뭐라 말하듯 마구 울려 댔다. 꼭 붙잡아도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얘 왜 이래?”

“칼집에서 꺼내 달란 거 아닐까요?”

칼집에 들어갈 땐 마음대로여도 나갈 땐 아니란 건가? 정도현은 속는 셈 치고 칼집에서 뽑아 줬다.

스릉!

무한비도는 산책 도중 극도로 흥분해서 주인을 역으로 끌고 가는 강아지처럼 서아린에게 달려들었다.

정도현은 급히 손아귀에 힘을 줘서 강제로 멈추게 했다. 서아린의 목숨을 노리는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

“……?”

무한비도는 그녀 코앞에 다가가니 만족한 듯 힘을 쭉 뺐다.

정도현은 얼떨떨한 표정의 서아린에게 말했다.

“이 녀석, 네가 맘에 드나 본데?”

“…네?”

정도현의 손길은 싫다며 한사코 거부했던 놈인데 서아린한텐 마음을 열다니.

성별 차이가 원인은 아닐 거다.

원래 다뤘던 주인들도 다 남자였으니까.

정도현은 의문을 풀고자 옆에 있던 동료들을 불러다 부탁했다.

“성원 씨가 한번 던져 볼래요?”

“예? 제가요?”

박성원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한비도를 받아 들었다.

그러자 무한비도가 싫다고 떼쓰는 애처럼 시끄럽게 흔들렸다.

샥!

박성원이 비도를 힘껏 던졌지만 엉뚱한 곳으로 꺾이며 떨어졌다.

진규현과 유가인이 해 봐도 마찬가지.

그렇게 무한비도는 돌고 돌아 결국 서아린 손에 들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녀석이 조용해졌다.

“왜 저한테만 살갑게 굴죠?”

“음…….”

처음엔 주인을 죽여서 미움을 샀다고만 생각했는데 실험해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무한비도의 마음에 들려면 조건이 있나 봐.”

“어떤 조건이요?”

“뭐, 궁합 같은 거 아닐까? 네 마력 파장이 원래 주인들이랑 비슷해서 마음에 든 걸지도.”

정도현은 어둠 속성 마력만큼은 도저히 다루지 못했다. 심지어 「조화심법」을 익혔는데도 말이다.

상대의 주문에서 어둠 속성 마력을 흡수하더라도 곧장 다른 속성으로 변환하지 않으면 다룰 수가 없었다.

몇몇 사람들은 알러지 때문에 특정 음식을 입에도 못 대는 것처럼. 혹은 물과 기름처럼 그의 신체와 어둠의 마력은 도저히 섞이질 않는 거겠지.

반면 서아린은 어둠의 마력을 아주 잘 다뤘다. 그래서 심법과 무공도 전부 그쪽 계통만 익혔고.

“그럼…….”

“그거 네가 써도 돼.”

“정말요?”

뜻밖의 선물에 서아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려 레전드리 무기다. 게다가 성장형 무기로도 바꿀 수 있을 테고.

그럼 지금보다 월등히 강해질 수 있을 터.

“소중히 쓸게요.”

서아린이 활짝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런 뒤 고갤 돌려 진규현을 흘끔 봤다. 그녀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진규현은 그녀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지 알아챘다. 저건 권하율에게 보내는 도발이겠지.

넌 이런 거 받은 적 없지?

진규현은 「독심술」이라도 생긴 것처럼 서아린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 * *

폐관 수련에 들어갔던 빙궁주는 보름 만에 밖으로 나왔다.

그가 복귀했단 소식에 모든 장로와 직계 일원이 집결했다.

그런데 옥좌에 앉아 있는 건 나이 지긋한 노인이 아닌 웬 은발의 미청년.

미청년은 턱을 괸 채 그들을 오시했다.

“아…….”

하지만 장로와 직계들은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보곤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1장로가 대표로 머릴 숙이며 축하했다.

“빙제의 경지에 오르신 걸 감축드리옵니다, 궁주시여.”

““감축드리옵니다!””

“다들 고맙네.”

남은 이들이 1장로의 말을 목청 높여 복창하자, 은발의 미청년이 만족스레 웃었다.

미청년은 북해빙궁주 본인이었다.

젊음을 되찾은 건 설윤정의 심장으로 만든 빙정을 흡수하고 「빙백신공」을 대성한 결과였다.

게다가 반쯤 얼어붙었던 감정선도 봄날 눈 녹듯이 사르르 풀렸다.

북해빙궁주, ‘설유천’. 그는 평생을 목표로 했던 빙제의 경지에 올랐다.

“그래, 내가 없는 동안 바깥에선 별일 없었나?”

설유천은 거만하면서도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목소리가 그리 크지도 않은데 귓가에 쏙쏙 꽂혔다.

1장로는 송구스럽단 듯이 그가 부재했던 동안의 일을 보고했다.

“며칠 전, 성녀가 저희 쪽에 사람을 보냈었습니다.”

“무슨 용건으로?”

“저번에 실패한 임무의 연장선입니다. 사천당가의 가주가 당했으니 다른 가주들이 나서 줘야 할 사안이라 주장하더군요.”

“흐음. 다른 가주들 의사는 어떻던가?”

“가주들 대신 기사단장들이 나서기로 했습니다.”

기사단장. 각 가문이 거느린 기사들 중에서도 가장 강한 자만이 맡는 직책.

그들은 가주를 제외한 직계들마저 능가하는 무위를 지녔다.

게다가 가문의 비기도 익혔기에 혈통만 다를 뿐 사실상 직계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을 움직일 정도면 가주들도 성녀의 체면을 최대한 배려해 준 셈이었다.

가주들이 우르르 움직였다간 온갖 이들의 구설에 오를 테니까. 성녀도 그걸 알기에 만족하고 한발 양보했겠지.

설유천은 말썽 피우기 직전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북해빙궁은 내가 직접 나서겠다고 알리거라.”

“알겠습니다.”

설유천이 그리 말할 줄 예상했는지 1장로는 별 반응 없이 수긍했다.

다만 몇몇 장로와 직계들은 궁금하단 얼굴이었다. 굳이 그가 직접 나설 이유가 있는가.

다른 이도 아닌 가주급 인사가 직접 움직이게 되면 언론의 관심이 집중될 터인데.

“아…….”

의문을 품었던 이들은 동시에 깨달았다.

설유천은 오히려 그걸 노린 거다. 그는 야망과 과시욕의 화신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남궁세가에 자격지심을 품은 사내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소싯적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렸던 남궁세가의 직계와 비무를 치렀고 굴욕적으로 패했었다. 그 소년들이 훗날 각 가문의 가주와 궁주가 되었다.

당시의 쓰라린 경험이 지금의 설유천을 만들어 냈다.

‘남궁제, 똑똑히 알려 주마.’

빙제의 경지에 올라선 내 진정한 힘을.

설유천은 과거의 굴욕을 갚을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찼다.

“아, 그러고 보니 3장로.”

“예, 말씀하소서.”

“언노운이 그 계집한테 준 통신용 마도구 분석은 어떻게 됐나?”

“마탑에 맡겨 역으로 상대를 추적할 수 있게 개조했습니다.”

“주문쟁이 놈들이 이럴 땐 도움이 되는군.”

“다만, 한 번 마력이 연결되어야 상대방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답니다.”

“흐음. 그래? 놈과 연락을 해야 한단 말이지?”

설유천은 흥미가 돋는지 통신용 마도구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3장로가 건넨 수정구를 손에 쥐곤 천천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위이잉-!

잠시 뒤, 수정구가 반짝이며 웬 남자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그 남자는 설유천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넌 뭐야?]

“네가 언노운인가? 아니면 그놈의 수하?”

[누구냐고 물었다.]

“설윤정, 그 배신자 년한테 맡긴 수정구가 왜 나한테 있는지 궁금하겠지?”

정곡을 찔렸는지 남자가 입을 다물었다. 설유천은 그런 반응이 유쾌한지 실실 웃어댔다.

“그 계집은 감히 북해빙궁을, 궁주인 이 몸을 배신했기에 처단했다.”

[…….]

남자의 반응은 조용했다. 하지만 눈빛에서 선명히 느껴진다, 동요와 분노가.

설유천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쐐기를 쑤셔 박았다.

“멍청한 년이었지. 내 앞에서 거짓말을 늘어놨으니. 네가 언노운이 아니라면 놈에게 가서 전하거라. 네놈은 내가 직접 잡겠다고.”

설유천은 그렇게 말하고 공급하던 마력을 끊었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그가 3장로한테 질문했다.

“이제 녀석이 어딨는지 알 수 있나?”

“…예, 곧 수정구에 좌표가 떠오를 겁니다.”

“흠. 어디 보자.”

수정구에 표시된 좌푯값을 지도와 대조해 보니 C구역 동부 도심지가 나왔다.

“이 지점이면… 아파트 단지가 있습니다.”

“놈도 거기 있겠군.”

언노운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결정적인 단서를 찾았다. 1장로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기사단에게 출정할 준비를 시키겠습니다.”

“아니. 기사단은 되었다. 빙강시만 데리고 가지.”

“…빙강시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놈과 싸우다 귀중한 병력을 잃을 순 없지.”

빙강시란 말에 장로와 직계들이 흠칫했다.

빙강시는 빙정을 만들고자 희생된 이들의 시신으로 만든 특수한 언데드였다.

체내에 냉기의 마력이 흐르기에 시체지만 육체가 전혀 부패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생전의 기량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죽은 몸이라 한계 이상으로 빙공을 펼치더라도 어느 정도 버틴다.

언데드 몬스터 중 최고봉인 데스 나이트의 상위 호환 격이었다.

“빙강시는 파괴되면 그걸로 끝이지만 기사들은 아니지.”

기사들이 싸우다 심장이 훼손되기라도 하면 빙정으로 만들지 못한다.

“애지중지 키워 온 열매를 수확하기도 전에 잃을 순 없지.”

“알겠습니다. 그럼 지하실로 가시죠.”

빙강시들이 보관된 지하 창고는 북해빙궁의 신물, ‘빙룡마궁’을 지닌 궁주만이 열 수 있었으니까.

설유천은 빙강시들을 깨운 뒤 곧바로 출발할 계획이었다.

* * *

“…….”

정도현은 연락이 끊겨 버린 수정구를 말없이 바라봤다.

상대는 스스로 북해빙궁주라 밝혔다.

상당히 젊지만 가주란 거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윤정이가…….”

죽었다, 방금 그 재수 없는 새끼한테.

분노가 끓어올랐다. 할아버지가 납치됐을 때처럼.

꽈악-!

비슷한 상황을 한 번 겪어 봐서일까.

터질 뻔한 감정을 겨우 억누를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지금은 할아버지와 애들도 잠든 늦은 시간이니까.

“…좀 이상하다 싶었어.”

무려 보름이나 연락이 없었다.

그녀 쪽에도 무언가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고 연락해 주길 기다렸다.

너무 안일했다. 설마 북해빙궁주가 거짓말을 솎아 낼 수 있을 줄이야.

피의 맹약으로 모두의 눈을 가렸을 줄 알았는데.

“…내가 죽였어.”

윤정이를 가문으로 돌려보내선 안 됐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곁에 데리고 있었어야만 했다. 그랬더라면 놈에게 죽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정도현은 권하율한테 연락했다.

통화를 걸기엔 늦은 새벽이었지만 그녀는 용케 바로 받았다.

정도현은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부탁했다.

“권 팀장님, 진규현 좀 깨워서 저희 집으로 보내 주세요.”

[네? 무슨 일이시길래…….]

“많이 급한 일입니다.”

정도현의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권하율도 더 묻지 않았다.

몇 초 뒤,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진규현이 나타났다.

곤히 자던 그를 억지로 흔들어 깨웠는지 눈은 반쯤 감겨 몽롱했고, 하품도 늘어지게 해 댄다.

“하아암… 갑자기 뭔 일이야…….”

“미안해. 정말 급한 일이라 불렀어.”

“…엉?”

진규현은 고양이 귀를 쫑긋 세웠다.

이 녀석, 방금 뭐라고 했지?

‘미안하다고?’

평상시 농담조가 아니고 꽤 진중했다.

그가 알던 정도현은 늦은 시간에 불러냈다고 사과하거나 저렇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게다가 눈빛도 어딘지 모르게 아련해 보였다.

저런 모습, 저번에 본 적 있다.

할아버지가 납치됐을 때 딱 저랬었지.

뭔진 몰라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걸 깨닫자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대체 무슨 일인데.”

“…저번에 만났던 내 친구, 윤정이가 죽었어.”

“그 은발 아가씨? 아니, 어쩌다?”

“가문을 배신한 걸 북해빙궁주한테 들켰어.”

진규현이 작게 탄식했다.

피의 맹약이 걸린 일원마저 의심하고 숙청했단 건가.

아무래도 우리가 5대 가문을 너무 만만히 본 모양이다.

“그래서 어쩔 건데?”

“놈에게 복수해야지.”

“…북해빙궁으로 쳐들어가게?”

“근처까지 옮겨만 줘. 일 끝나면 다시 부를게.”

정도현이 담담하게 계획을 털어놨다.

진규현은 말도 안 된다며 반대했다.

아니, 반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도현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너… 울어?”

정도현은 눈물을 닦아냈다.

진규현은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아연실색했다. 진규현은 머릴 긁적이다 결국 항복했다.

“…위치 어딘지 알고는 있고?”

“응, 통신구로 좌표는 확인할 수 있어.”

진규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위험한 일에 끼는 건 질색이지만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정도현은 그가 제한 구역을 나와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였으니까.

“알았어. 까짓거 해 보지, 뭐.”

“고마워.”

“그나저나… 승산은 있는 거지?”

“있어.”

그는 110레벨을 찍고 새로운 스킬북을 구매해 익혔으니까.

한서불침(寒暑不侵). 냉기나 열기 관련 공격에 막대한 내성을 얻는 스킬.

다른 자라면 몰라도 빙공을 다루는 북해빙궁주를 상대론 이보다 더 좋은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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