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이단심문관들이 흉기를 앞세우고 덤벼들자 당군평은 얼굴을 찌푸렸다.
멍청한 놈들, 경고해 주면 뭐 하는가.
짐승처럼 말귀를 못 알아먹는데.
그는 무한비도에 「흑천혈독」을 담아서 던졌다. 수백 자루로 늘어난 비도가 그들을 노렸다.
“헉!”
“무, 무한비도!?”
만천화우를 접한 이단심문관들의 얼굴이 확 굳었다.
무한비도는 언노운한테 뺏긴 거 아니었나?
그들이 당군평한테 당당히 덤빌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무한비도의 부재였다.
제아무리 사천당가의 가주라 해도 무한비도가 없으면 만천화우를 펼칠 수 없다.
그럼 이쪽은 수적 우위를 살릴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들은 신성력이 있으니 독공에 쓰러질 일도 없다.
암기술에 독공마저 봉인된 당군평쯤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렇게 계산했는데.
“크악!”
“컥!”
“끄윽…….”
대전제부터 어긋나니 대참사가 벌어졌다.
수백 자루의 비도가 이단심문관들을 찔러 댔다. 그들은 온몸에 벌집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쓰러졌다.
열 명 중 살아남은 건 기껏해야 셋.
앞장섰던 동료들을 방패 삼아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당군평은 생존자들을 싸늘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죽기 싫으면 방해하지 마라. 마지막 경고다.”
“…….”
이단심문관들은 꼬릴 만 개처럼 쭈뼛쭈뼛 뒷걸음질 쳤다.
상대할 가치도 없다. 마력만 아깝지.
당군평은 그리 판단하고 고갤 돌려 정도현을 바라봤다.
“네놈도 곧 저리될…….”
정도현에게 엄포를 놓으려던 그는 뜻밖의 광경에 입을 다물었다.
꿀꺽, 꿀꺽.
그가 방해꾼들을 정리할 동안, 정도현은 자연스레 회복 포션을 마시고 있었다.
그 뻔뻔함에 당군평의 콧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네놈, 비겁하게 포션을!”
“비겁? 독 쓰는 사람이 할 소린가.”
몇 초 만에 쌩쌩해진 정도현. 그는 텅 빈 포션병을 어깨 너머로 던진 뒤 검강을 방출했다.
그런데 아까와 속성이 달랐다.
거센 바람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검강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른다.
“뭣……!?”
정도현이 또 다른 심법을 사용하자 당군평은 경악했다.
게다가 화염을 다루는 심법 역시 이전의 것에 뒤지지 않았다.
하북팽가 직계들의 전유물인 염화도(炎火刀)가 연상될 만큼 맹렬했다.
“자, 그럼 다시 가시죠.”
당군평이 전력을 발휘하자 정도현도 보란 듯이 비장의 패를 꺼냈다.
제아무리 강력한 독공이라도 극양의 마력 앞에선 주춤할 수밖에 없다.
“…죽어라!”
당군평은 승부수를 띄웠다. 남은 마력을 쥐어짜 다시 한번 만천화우를 흩날렸다.
불꽃의 검강으론 아까처럼 깔끔히 막아 내지 못할 터.
단 한 자루라도 좋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괜찮았다.
「흑천혈독」에 중독되면 그걸로 끝이니까.
‘아무리 극양의 마력을 다뤄도 막기 어려울 거다.’
사천당가의 고수들이 당군평에게 달라붙어 매일 독기를 뽑아내는데도 목숨 줄을 겨우 연명하는 게 고작이지 않던가.
완치하려면 성녀의 「생명의 불씨」나 만병통치약이라 불리는 엘릭서라도 마셔야 할 터.
중독되면 놈은 시름시름 앓다 죽거나, 그처럼 평생 후유증을 달고 살아갈 거다.
‘네놈이 몸을 고칠 방법은 없다.’
성녀에게 치료받는 건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고.
엘릭서는 5대 가주인 당군평조차 쉬이 구하기 힘든 귀한 아이템.
엘릭서의 핵심 제작 재료인 ‘황금 포도’는 수확까지 원체 오래 걸린다.
간혹 던전에서 황금 포도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확률은 극히 희박했다.
콰앙-!
정도현이 불꽃의 검을 마구 휘저으며 만천화우를 뚫고 돌진해 왔다.
귀청이 터질 듯한 폭음과 함께 비도들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전부 막진 못했다.
핏-!
몇 자루의 비도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집요하게 달라붙어 피부를 살짝 긁었다. 군데군데 생채기가 생겼다.
그걸 본 당군평이 입꼬리를 비틀었다.
‘됐다!’
정도현과 당군평이 서로에게 검을 찌르고 휘둘렀다.
쾅, 콰앙!
마력 상성 탓인지 당군평은 아까와 달리 속절없이 밀렸다.
하지만 두 검강이 부딪히자 마력 반발의 여파로 「흑천혈독」이 대기 중에 퍼졌다.
그건 조금 떨어져서 전투를 지켜보던 이단심문관들 몸에 닿았다.
“꺼헉……!?”
“끄, 으으…….”
독기가 피부에 닿자마자 시커멓게 그을렸다. 숨도 제대로 안 쉬어지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잠시 뒤, 이단심문관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어졌다.
신성력을 타고난 이들은 어지간한 독성 물질은 면역이었다. 분명 그럴진대.
‘해독이 안 돼. 어째서!?’
신성력을 끌어 올렸지만 몸은 낫지 않았다.
죽음이 모두에게 평등하듯, 그 잘난 신성력도 「흑천혈독」 앞에선 맥을 못 추렸다.
기껏해야 제 인생을 돌이켜볼 잠깐의 시간을 번 게 다였다.
“아, 안 돼…….”
“쿨럭, 이럴 순 없어…….”
“죽기 싫어!”
이단심문관들이 피부와 눈, 코,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버둥댔다.
바닥에서 헤엄치듯 허우적대는 꼴이 꼭 살충제를 맞은 벌레가 따로 없었다.
신에게 선택받았다며 으스대던 이들이라기엔 너무도 허망한 최후였다.
“크아악!”
그와 동시에 치열했던 두 남자의 결투에도 끝이 찾아왔다.
푹, 화르륵-!
정도현의 검이 당군평의 몸을 찔렀다.
푸른 불꽃이 당군평을 집어삼키듯 휘감았다.
무릎 꿇은 당군평. 손아귀에서 무한비도가 흘러내리듯 떨어졌다.
“네놈도… 끝이다…….”
온몸이 불타는 고통 속에서도 당군평은 활짝 웃었다.
정도현도 이단심문관들처럼 「흑천혈독」에 중독됐으니까.
벌써 징조가 나타났다. 여기저기에 시커먼 얼룩이 꽃처럼 피었다.
극양의 마력으로 독기를 막고 있는 듯하나 「흑천혈독」 앞에선 무의미한 발버둥이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라…….”
그 말을 끝으로 당군평이 불길에 완전히 삼켜져 스러졌다.
아들처럼 활활 타올라 잿더미가 됐다.
“…쿨럭, 쿨럭!”
정도현이 비틀대며 각혈했다.
입뿐만 아니라 눈과 콧속에서도 뜨거운 선혈이 주룩 흘러나왔다.
몇 분만 더 늦게 결판이 났으면 진짜 죽을 뻔했다.
그래선지 시스템도 경험치를 두둑이 챙겨 줬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숨에 3레벨이나 올라 드디어 110레벨을 찍었다.
기뻐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중독부터 풀어야 한다.
그는 엘릭서를 꺼내 마셨다.
그러자 시커메진 피부가 서서히 원래 빛깔을 되찾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겨우 숨 좀 돌리려던 찰나.
“사, 살려 줘…….”
“응?”
중독되어 쓰러졌던 이단심문관 중 한 명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다른 녀석들보다 레벨이 더 높다. 아무래도 무리의 대장인 모양.
정도현은 뭐 하는 놈들인가 궁금해서 다가갔다.
‘교단 놈들이네?’
검정색 사제복으로 통일된 열 명의 사내들. 관리국의 집행자들처럼 음지의 일을 처리하는 비밀 부대겠지.
“에, 엘릭서…….”
남자는 정도현이 엘릭서를 꺼내 마시는 걸 봤는지 살려 달라 애원했다.
정도현은 엘릭서 대신 검을 뽑았다.
그러자 남자가 벌벌 떨며 말했다.
“나, 난… 성녀님의 친위대장이다…….”
“어쩌라고.”
정도현은 그대로 남자의 목을 베었다.
죽기 일보 직전인 상태라 당연히 경험치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괜찮다. 살려 내면 그만이니까.
정도현은 부활 아이템으로 친위대 열 명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살려 냈다.
“이게 무슨…….”
“부활 아이템이라니…….”
부활한 이들은 멍하니 정도현을 바라봤다. 성녀만이 가능했던 기적을 웬 플레이어가 해냈다.
친위대 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이제 막 110레벨이 된 플레이어가 단신으로 사천당가의 가주와 싸워 승리했다.
거기에 엘릭서와 듣도 보도 못한 부활 아이템까지 갖고 있다.
머릴 굴리며 정도현의 정체를 유추해 보던 친위대 대장은 뭔가 떠올리곤 몸이 퍼뜩 굳었다.
“서, 설마… 메시아 님이십니까?”
“뭐?”
정도현은 그게 뭐냐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C구역 출신이면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녀야 했을 테니 메시아가 뭔지 알았겠지만, 정도현은 F구역 출신이었다.
그러니 그게 뭔지 알 턱이 없었다.
정도현이 이해를 못 하자 친위대 대장은 열과 성을 다해 설명했다.
“메, 메시아란 성서의 예언에 나오는 구원자를 말합니다.”
“구원자?”
“저 하늘의 태양을 집어삼키고 온 세상을 암흑천지로 만들 종말의 존재, ‘이클립스’로부터 우릴 구원할지어다. 성서에는 그리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클립스? 그건 또 뭐야.
사이비들이나 늘어놓을 법한 종말론에 정도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중에 신호영한테 따로 물어봐야지.
친위대 대장은 잔뜩 흥분해서 침까지 튀겨 가며 말했다.
“트, 틀림없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예언 속 메시아 님이십니다!”
“그딴 거 난 잘 모르겠고. 이거나 먹고 빨리 회복이나 해.”
정도현은 빈사 상태인 그들에게 회복 포션을 무더기로 던져줬다.
그러자 다들 감동한 얼굴로 넙죽 고개 숙였다.
말투는 까칠해도 자신들을 부활시켜 준 데다 치료까지 해 주지 않는가.
그들은 포션을 주워 들곤 입을 쩍 벌렸다.
“사, 상급 포션!”
“이 귀한 걸 어떻게 열 개나…….”
“멍청한 놈! 저분은 메시아 님이시다. 성서의 예언을 잊은 거냐?”
“아!”
성서에 적혀 있기로 메시아는 온갖 기적을 일으키고 다닌다.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불치병을 앓는 환자도 고쳤으며, 악마와 마귀들도 그의 손짓 한 번에 멸해졌다.
또한 수천 명이 먹을 음식을 품에서 꺼내기도 하며 바다 위를 맨발로 걷기도 했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아이들도 안 믿어 줄 것 같은 얘기에 정도현은 한심하단 듯 그들을 쳐다봤다.
그러다 고갤 갸웃했다.
‘근데 막상 해 보면 다 될 것 같은데?’
저들이 언급한 기적들은 아이템만 있으면 다 되니까. 구하기 힘든 것도 어차피 그에겐 다 1원짜리니 부담 없이 사서 쓸 수 있다.
“뭐, 할 순 있겠네.”
“아아, 역시!”
“메시아 님, 저희와 함께 올라가시죠. 성녀님과 교황 성하께서 크게 반기실 겁니다.”
“아니, 됐어.”
“예? 어, 어째섭니까?”
“그보다 몸은 다 회복됐지? 다들 일어나 봐.”
정도현의 뜬금없는 지시에 그들은 의아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정도현은 어깨를 풀면서 말했다.
“덤벼.”
“예?”
“다 같이 덤비라고.”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이건 아무도 예상 못 했는지 다들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현은 검을 뽑고 전투 자세를 잡았다. 칼날엔 검강까지 둘렀다.
눈빛은 누가 봐도 그들을 해칠 마음으로 가득했다.
친위대들이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메, 메시아 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 일단 진정 좀 하시고…….”
“안 싸우면 너희 부활 페널티로 죽는다?”
정도현의 충고에 친위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 눈앞에 정말로 시스템 경고문이 떴다. 정도현과 싸우지 않으면 죽는다는 내용의.
친위대 대장이 침을 꼴깍 삼키며 질문했다.
“메시아 님, 이러시는 이유라도 알려 주십시오! 저희가 무슨 결례를 저질렀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레벨 올려야 해.”
“…예?”
이게 뭔 미친 소리야.
그들은 순간 농담인가 싶었지만 정도현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이딴 게 메시아라고?’
친위대의 마음속에 의심암귀가 피어났다. 저딴 소릴 지껄이는 게 메시아일 리 없다.
그래, 저건 악마다. 친위대 대장의 눈초리가 싹 변했다.
“저놈은 메시아 님이 아니다! 대형을 펼쳐라!”
대장의 외침에 대원들이 산개해 정도현을 포위했다.
이단심문관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자들로만 엄선된 성녀 친위대. 그들 한 명 한 명이 정예 기사와 맞먹었다.
그런 이들이 무려 열 명. 우리가 질 리 없다.
분명 그럴 터인데. 친위대는 식은땀이 흘렀다.
반면에 정도현은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먼저 들어오라 손짓했다.
저승사자가 현실에 존재한다면 딱 저렇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