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86화 (186/240)

186화

“저 안에 있군.”

“오래전에 버려진 도시 같은데, 이런 곳에 숨어 있었나.”

당군평과 이단심문관 부대는 황폐한 도시에 도착했다. 무한비도의 칼집이 윙윙 울린다.

이곳 어딘가에 언노운이 있다.

“여기서부턴 나 혼자 수색하겠네. 그림자를 처치하면 곧장 신호를 보내지.”

당군평은 그리 말하곤 「흑천신공」을 사용해 자신의 존재를 감췄다. 이단심문관들이 움찔했다.

분명 눈앞에 당군평이 서 있는데 마력 한 줌 느껴지지 않았다. 신기루라 해도 믿을 정도다.

이단심문관 대표가 딱딱한 말투로 당부했다.

“노파심에 하는 소리지만 혼자 무리하시다 작전을 그르쳐선 안 됩니다.”

“허허. 걱정해 줘서 고맙네. 하지만 나도 이번 작전에 목숨을 걸었어.”

당군평은 그들이 뭘 걱정하는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시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빠르게 멀어지는 그의 뒤통수를 째려보던 이단심문관 대표가 이를 갈았다.

‘저 능구렁이 같은 영감이.’

건방 떠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다 늙은 퇴물 주제에.

성가신 공간 이동 능력자만 없었으면 자신들이 돌입해 진작 해결했을 텐데.

“대장님, 만약 당군평이 약속을 어기고 언노운까지 노리면 어떡합니까?”

“그럼 우리 손으로 처단하면 그만이다.”

성녀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에겐 신의 철퇴를 꽂는다. 그게 우리의 역할이다.

사천당가의 독공 따윈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그들은 태양신께 간택받은 전사들이니까.

“놈에게 추적 주문은 걸어 뒀나?”

“예.”

“좋아. 놈이 한곳에 멈추면 우리도 돌입한다.”

공을 세워 성녀님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의 존재 의의였으니까.

「생명의 불씨」로 되살아난 자의 사고방식다웠다.

* * *

폐허 도시의 중추에 들어선 당군평이 마녀들의 화원을 발견했다.

결계로 감싼 구간을 통과하자 눈앞의 풍경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무너진 건물과 도로는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넓은 꽃밭이 펼쳐졌다.

참으로 아름다워 마치 별세계에 온 것 같았다.

그는 신기해서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크고 높다란 순백의 건물을.

건물 입구로 다가서자 칼집의 떨림이 뚝 멎었다.

‘이 안에 놈이 있다.’

그의 아들을 불태워 한 줌 가루로 만든 장본인이.

당군평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웬 까마귀가 날개를 퍼덕대며 마중 나왔다.

까마귀는 그의 앞에 멈추더니 부리를 달싹이며 말했다.

[역시, 제가 잘못 느낀 게 아니었군요. 당신은 누구시죠?]

“그러는 그쪽은 누구지?”

[이 공간을 만든 밤의 마녀입니다.]

“마녀였나.”

당군평은 조금 놀랐다.

「흑천신공」을 펼치고 잠입한 자신의 존재를 사전에 눈치채다니.

아무래도 수준 높은 마법사인 모양이다. 뭐, 눈치채 봤자 이미 늦었지만.

“이곳에 언노운이 있는 걸 알고 있다. 그대도 언노운과 한패인가?”

[…언노운? 그자가 여길 왔다고요?]

“시치미 떼도 소용없네.”

당군평은 밤의 마녀도 한통속이라 판단하곤 마력을 모아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피잉, 퍽!

쏘아진 화살이 공기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까마귀의 머리가 터졌다.

영악한 마녀와 수다나 떨고 있을 시간은 없다.

당군평은 땅을 박차며 안쪽으로 달렸다. 언노운, 그놈이 달아나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이미 들켰으니 도둑처럼 살금살금 움직일 필요도 없겠지.

쾅!

그가 바닥을 힘껏 걷어차며 공중 부양하듯 빠르게 쏘아졌다.

그렇게 몇 초쯤 움직였을까.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당군평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무런 기운도 못 느꼈는데?’

혹시 밤의 마녀가 만들어 낸 환각일까.

아니, 아니다.

달려오는 남자의 손에 들린 장검에서 시퍼런 검강이 맺혔다.

그제서야 코앞의 남자한테서 강대한 마력이 느껴졌다.

‘엄청난 고수다.’

당군평은 상대가 범상치 않단 걸 한눈에 알아봤다.

하지만 그건 품속의 칼집이 마구 떨리는 것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였다.

‘저놈이 무한비도를 갖고 있다.’

그럼 저 녀석이 성녀가 찾던 언노운인가?

하지만 레벨은 고작 107. 해방단의 총수치곤 너무 낮았다.

‘그렇다는 건…….’

언노운 본인이 아니라 녀석의 측근이겠지. 레전드리 무기인 무한비도를 왜 넘겨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콰앙-!

두 남자의 검이 격돌하며 충격파가 발생했다. 검강의 위력은 백중지세.

레벨은 낮아도 깨달음의 수준이 남달랐다.

검을 맞댄 채 힘겨루기에 접어든 둘.

당군평이 상대를 쏘아보며 말했다.

“자네가 언노운인가?”

“그러는 어르신은 누굽니까?”

“사천당가의 가주, 당군평일세.”

“아. 답답해서 직접 뛰러 오셨구나.”

채재재쟁-!

둘은 대화를 나누며 동시에 검을 섞었다. 불꽃 튀는 공방전이 이어졌다.

당군평은 단검을 휘두르면서 중간중간 독공과 암기도 날렸다.

정도현은 정신없이 몰아치는 공세를 받아 내며 움직임을 따라왔다.

그 모습에 당군평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토록 젊은데도 자신과 호각으로 맞서다니. 적이지만 참으로 대단했다.

‘독기를 맞고도 눈 하나 꿈쩍 안 하는군.’

게다가 전력을 다한 건 아니지만 무려 사천당가의 가주가 직접 펼친 독공을 맞고도 안색 하나 안 바뀌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튀어나왔을꼬.’

당군평은 복수심도 잠시 잊고선 전투에 집중했다.

그렇게 백여 합 이상을 주고받은 두 사람. 당군평이 먼저 거릴 벌리며 말했다.

“솜씨가 대단하군.”

“어르신도 정정하시네요.”

당군평의 칭찬에 정도현도 입꼬릴 올리며 화답했다.

과연 가주란 위명에 걸맞은 실력자였다.

동료들 레벨이나 좀 올려 줄 생각으로 왔는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어르신, 언노운은 왜 찾으십니까?”

“몰라서 묻는 건가? 놈이 내 아들을 죽였잖나.”

그러고 보니 그런 식으로 증거를 남겼었지. 정도현은 고갤 끄덕이며 다시 질문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찾아왔습니까? 만리향은 확실하게 제거했는데.”

“허, 만리향의 존재도 이미 파악했나?”

가문의 최대 기밀을 마치 기초 상식처럼 입에 담자 당군평은 혀를 내둘렀다.

“자네가 무한비도를 갖고 있어서 알았네.”

“…무한비도?”

자세한 설명은 해 줄 마음이 없는지, 당군평은 다시 자세를 잡으며 전투 준비를 했다.

전신에서 새어 나오던 보랏빛 독기가 시뻘겋게 물들었다.

“새파랗게 어린 후배 상대로 진심이 되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구먼.”

당군평이 그렇게 중얼대며 품에서 무한비도의 칼집을 꺼냈다.

저걸로 뭘 하려는 걸까 싶었던 그 순간.

스스슥!

정도현의 측면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무언가가 빼꼼 머릴 내밀었다.

무한비도였다.

‘뭐야?’

이번엔 정도현도 제법 놀랐는지 눈동자가 커졌다.

인벤토리에 고이 넣어 둔 녀석이 제멋대로 공간을 뚫고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칼집의 능력 같았다.

자유를 되찾은 무한비도는 제 주인의 품으로 날아갔다.

당군평은 무한비도를 움켜쥐고 검강을 담아 힘껏 휘둘렀다.

무한비도가 투척용 무기긴 해도 레전드리 등급 장비.

여타 단검들에 비하면 기본 공격력이 남달랐다.

“…큭!”

카앙-!

검강의 위력이 급증했다.

막아 냈으나 저릿한 충격이 팔뚝을 타고 번졌다. 정도현의 얼굴이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화악-!

게다가 시뻘건 독기가 연막처럼 터지며 피부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당재호가 다뤘던 혈독보다 독했다.

당재호가 제 몸마저 갉아 먹을 정도로 단련해 온 독공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호신강기로 떨쳐 냈지만 그만큼 마력이 소모됐다.

“그것마저 버텼는가, 경이롭군.”

정도현이 붉은 독기를 뒤집어쓰고도 쓰러지질 않자, 당군평은 경의를 표하며 가문의 최고 절기를 준비했다.

“날 너무 원망하지 말게. 자네가 죽는 건 언노운과 엮인 탓이니. 탓하려거든 그를 탓하게.”

타앗-!

당군평이 높이 도약하며 만천화우를 펼쳤다.

그의 손을 떠나 쏘아진 무한비도는 순식간에 증식하며 정도현을 덮쳤다.

시뻘건 독기를 머금은 천여 자루의 비도들은 마치 붉은 폭우와도 같았다.

‘끝이다.’

당군평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천 자루가 넘는 비도를 일일이 쳐 낼 수도 없는 노릇이거니와, 건물 내부라서 피할 곳도 마땅찮았다.

그러나 정도현은 만천화우를 한 번 겪어 봤다. 그러니 막아 낼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후우웅-!

그의 호흡이 바뀌며 푸른 검강이 빠르게 회전했다. 이내 검이 바람을 토해 냈다.

“……!”

바닥에 검을 힘차게 꽂아 넣자 바람의 장벽이 생겨났다.

터더더덩-!

기세 좋게 날아가던 비도들이 돌풍에 떠밀려 사방으로 튕겼다.

“그 심법은 대체…….”

당군평은 제 눈을 의심했다.

정도현이 쓴 바람의 심법은 5대 가문이 보유한, 신공이라 불리는 심법에도 전혀 뒤지지 않았다.

저런 걸 어디서 익혔단 말인가.

‘만만찮은 놈이다. 피해 없이 이기긴 힘들겠지.’

벌써 몇 분째 교전했다.

안쪽에 언노운이 있는지도 확실치 않고, 설령 있었더라도 지금쯤이면 그림자를 통해 도주했을 거다.

‘어찌하면 좋을까.’

당군평은 고민했다. 이대로 정도현과 계속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 이상 독공을 펼치면 몸에 큰 부담이 간다.’

지금도 전력에 가깝게 독공을 펼쳤다.

그런데도 정도현은 버텨 냈다.

「흑천신공」을 익힌 그의 눈엔 상대의 마력 흐름이 훤히 보인다.

‘체내의 마력으로 독기를 몰아 내고 있어.’

물론 계속 막진 못할 거다. 정도현의 마력에도 한계는 있으니까.

하지만 이 이상 전투하면 애써 고쳐 온 몸이 또다시 망가질 터.

‘이 이상 몸을 축낼 순 없다.’

그가 싸워야 할 적은 언노운이다.

저놈은 이단심문관들한테 맡겨야겠다.

당군평이 검강을 거둬들이고 단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정도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보다시피 노쇠한 몸뚱이라 오래 싸우기 힘들거든. 내 목표는 자네가 아니라 언노운을 붙잡는 걸세.”

“…내빼시겠단 겁니까?”

정도현의 눈매가 샐쭉해졌다.

슬슬 몸에 시동이 걸리던 참인데 누구 맘대로 끝낸단 말인가.

정도현은 그가 도망치지 못하게 진실을 말했다.

“어르신, 언노운이 아니라 접니다.”

“……?”

“제가 어르신 아들을 죽였다고요.”

뒤돌아서려던 당군평이 멈칫했다.

그는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정도현을 들여다봤다.

‘진실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체내의 마력이 미세하게 떨린다.

당군평은 상대가 누구든 그 변화를 잡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정도현의 마력에는 흔들림이 전혀 없었다. 즉, 놈이 사실을 말했다.

당군평은 이를 갈며 물었다.

“…정말로 자네가 내 아들을 죽였나?”

“예. 항복하면 살려 준다 했는데, 가문을 배신할 바에는 차라리 죽겠다며 자결하더군요.”

아들이 가문의 명예를 택하고 죽었단 말에 당군평은 눈물 한 방울을 흘렸다.

“…내 아들답구나.”

“다시 싸울 맘이 드셨습니까?”

“그래.”

스릉.

당군평은 검집에 집어넣었던 무한비도를 다시 뽑았다.

몸속으로 거둬들인 독기도 방출했다.

그런데 독기의 색깔이 또 변했다.

새까맣다. 달과 별빛들이 모조리 사라진 밤하늘처럼.

“「흑천혈독」.”

당군평은 최후의 절기를 펼쳤다.

그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살점조차 남기지 않겠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군.’

하는 짓이 어쩜 저리 똑같을까.

정도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칼자루를 바투 잡은 뒤 자세를 다잡았다.

당군평이 내뿜는 독기가 심상찮았다.

이번에 중독되면 아까처럼 막아 내진 못할 터.

‘오래 싸우면 중독으로 죽겠어.’

보아하니 당군평도 제 독기를 감당하지 못해 시간이 흐르면 자멸할 듯싶었다.

당군평과 정도현. 양측 다 목숨을 건 진검 승부였다.

두 남자가 막 싸움을 재개하려던 찰나.

“이게 무슨 짓거리냐!”

건물 밖에서 또 다른 무리가 끼어들었다. 이단심문관들이었다.

이단심문관의 대장이 당군평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일갈했다.

“언노운까지 죽이려 작정한 거냐!”

그 말에 당군평은 고갤 슬쩍 돌려 이단심문관 부대를 쳐다봤다.

피눈물이 뚝뚝 흐르는, 그야말로 악귀와도 같은 얼굴에 이단심문관들이 주춤했다.

당군평이 살기 어린 표정으로 경고했다.

“날 방해하지 마라. 안 그럼 네놈들도 죽이겠다.”

“다 늙은 퇴물 주제에… 쳐라!”

대장의 외침에 이단심문관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폭주한 당군평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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