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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8화 (178/240)

178화

“시간 끌면서 뭐, 마법이라도 준비하는 거냐?”

정도현은 제갈성의 노림수를 곧장 간파했다. 제갈성의 눈빛이 조금 떨렸다.

정곡을 제대로 찔렸단 뜻.

“쫄지 마. 기다려 줄게.”

“…예?”

“뭔진 몰라도 맘 편히 준비해. 방해 안 할게.”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칼을 늘어뜨렸다. 누가 봐도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

제갈성은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고, 남궁진은 그의 여유에 발끈했다.

“저 새끼가 진짜!”

우릴 앞에 두고 저딴 식으로 건방을 떨다니.

채앵-!

남궁진은 더는 못 참겠는지 칼을 뽑았다. 팔뚝을 타고 전류가 칼날로 쭉쭉 흘러 들어갔다.

“남궁진 씨!”

제갈성이 흥분한 그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콰르릉!

황금빛의 난폭한 섬광이 직선으로 쏘아졌다.

“뒈져!!”

제왕의 검이 날아드는데도 정도현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나아가며 검을 내질렀다.

파지지직-!

서로의 검강이 부딪혔다. 남궁진은 그의 판단을 비웃었다.

뇌기를 정면으로 받아 냈다간 제아무리 고수라도 타격이 갈 터.

거기다 레벨 차이도 나니 검강의 위력은 배로 증가할 터.

‘직접 맞아 보지 않으면 몰라.’

꽈르릉-!

남궁진은 출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칼날에 담긴 벼락이 검을 벗어나 사방으로 마구 날뛰었다.

보기만 해도 살벌했다.

“이거 믿고 까분 거냐?”

“……!?”

그런데 정도현은 제왕의 힘을 받아 내고도 멀쩡했다.

뇌기가 몸속으로 침투하면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데. 마력 회로가 망가지는 고통은 참는다고 참아지는 게 아니었다.

남궁진은 뭔가를 깨닫곤 눈동자가 커졌다.

“어, 어떻게?!”

정도현이 그의 뇌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화염에 바람 이번엔 벼락까지.

개인이 세 종류의 속성 마력을 다룬단 말인가? 심지어 마법사도 아닌 검사가?

뭐 이딴 놈이 다 있어.

“말도 안 돼!”

“돼.”

터엉-!

정도현은 흡수한 뇌기를 다시 방출해 남궁진을 밀쳐 냈다.

남궁진은 땅바닥을 몇 바퀴 구르다 일어섰다.

뇌기를 다루는 심법을 익혀서 내상을 입진 않았지만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됐다.

다른 가문의 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제대로 쪽을 당했다.

“…씨발.”

남궁진이 아무리 다혈질이라도 검을 맞대 보면 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강한지 약한지 정도는.

안 그랬으면 진즉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성질머리였으니까.

약자 앞에선 한없이 강하고 강자 앞에선 약해지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확신했다. 혼자선 절대 저놈을 못 이긴다고.

‘제길! 제갈성, 아직 멀었어?’

‘다 됐습니다!’

제갈성을 독촉하자 반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남궁진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소리쳤다.

“네 안일함을 원망해라!”

짝!

제갈성이 손뼉을 치며 마력을 퍼트렸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힘이 정도현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렸다.

눈앞에 붉은 경고문도 떠올랐다.

[연환진(連環陣)의 영향으로 모든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일정 범위 내 적들에게 디버프를 거는 진법.

그뿐만 아니라 진법을 펼친 이와 아군들은 역으로 능력치가 크게 증가한다.

남궁진은 몸에 활력이 솟자 자신감도 되찾았다.

제갈성이 아군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급하게 펼친 진법이라 범위도 얕고 5분 정도밖에 유지 못 합니다.’

‘5분이면 충분해!’

‘내가 앞장서지.’

팽도철이 가문의 무공으로 근육을 한껏 부풀린 채 앞장섰다. 철벽처럼 든든하기 짝에 없었다.

남궁진과 제갈성 그리고 팽도철.

세 명의 기사가 정도현과 대치했다.

그런데 나머지 한 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제갈성이 당황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설윤정 양?”

북해빙궁의 기사, ‘설윤정’은 그들을 도울 생각이 없는지 멀뚱멀뚱 쳐다만 봤다. 남궁진이 답답하단 얼굴로 따졌다.

“야, 뭐 해! 시간 없다고!”

“제 임무는 언노운을 호송하는 거지, 저 남자랑 싸우는 게 아닙니다.”

“…뭐?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설윤정 양 말도 맞습니다. 그러니 힘을 합쳐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럼 언노운을 뺏길 텐데요.”

제갈성이 그리 설득했으나 설윤정은 고갤 저었다.

“언노운은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저 남자는 당신들이 막아 주세요.”

“야, 그걸 왜 네 맘대로 정해!”

사전에 상의한 내용이 아니었다.

남궁진이 빽 소릴 질렀지만 설윤정은 가볍게 무시했다. 그녀는 운송 차량에서 신호영을 꺼내 등에 업고 뛰었다.

정도현이 그녀를 막고자 움직였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팽도철과 남궁진이 정도현의 앞길을 가로막았고 배후는 제갈성이 점했다.

그사이 그녀는 저 멀리 달려 나갔다.

‘놓치면 안 되는데.’

권하율과 진규현이 근처에 있다. 상황을 보고 있을 테니 곧 저 은발 여자를 뒤쫓을 거다.

하지만 저 여잔 척 봐도 당소예보다 윗급의 기사였다.

잘 싸워도 몇 분 붙잡아 두는 게 고작이겠지.

물론 「공간 도약」이 있으니 여차하면 도망칠 순 있으리라. 하지만 저 여잘 놓치면 일이 복잡하게 꼬인다.

교단이나 B구역에 신호영이 갇히면 구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이놈들을 빠르게 쓰러트린 뒤쫓아야만 한다. 느긋하게 전투를 즐길 여유는 없었다.

‘경험치 손실이 좀 생기겠지만 어쩔 수 없지.’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까득-!

정도현은 100레벨부터 구매 가능한 최상급 도핑제로 만든 단약을 삼켰다.

“……!”

카앙, 쿠당탕-!

앞장서서 덤벼든 팽도철이 정도현의 검을 받아 내려다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갔다.

남궁진이 측면으로 파고들며 칼날을 찔러 넣었지만, 정도현은 왼손으로 장법을 날려 막았다.

“…큭!”

손목이 얼얼했다.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남궁진이 표정을 와락 구기며 연신 검을 휘둘렀다.

파직, 파지직!

정도현의 검에 닿을 때마다 뇌기가 빨려서 검강이 약해졌다.

“제기랄!”

교전을 거듭할수록 남궁진의 몸에 크고 작은 자상이 생겼다.

팽도철이 다시 뛰어와 전투에 복귀했을 땐 땅바닥이 남궁진의 피로 흥건했다.

제갈성이 뒤에서 공격 주문을 쐈으나 정도현의 「조화심법」 앞에선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그에게 날아든 주문들이 숨결을 통해 체내로 빨려 들어갔다. 진공청소기가 따로 없었다.

‘주문도 흡수한다고?’

정도현은 먹어 치운 주문의 마력을 「조화심법」으로 정제해 검강의 원료로 썼다. 마력 포션을 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제갈성은 멀리서 공격 주문을 날리는 건 안 통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제 몸에다 신체 강화 주문을 걸고 직접 뛰었다.

그렇게 세 명의 기사가 한 명한테 달라붙어 합공을 펼쳤다.

채앵, 챙!

네 명이 어우러져 칼춤을 췄다.

정도현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셋의 공격을 받아치거나 흘려보냈다.

십수 초마다 백여 합의 공방이 지나갔다. 기사들이 칼날에 베이고 찔리며 조금씩 비틀거렸다.

반면에 정도현은 그들의 피를 뒤집어썼을 뿐 이렇다 할 상처 없이 멀끔했다.

“커헉!”

“젠장 할…….”

기사들은 고작 5분밖에 못 버티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훗날 각 가문의 기사단장이 될 거라 촉망받던 기대주들은 허망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크게 다치지 않고 순탄히 이긴 것치곤 경험치가 꽤 많이 들어왔다.

무려 4레벨이나 올랐다.

기사들의 합공을 버텨 낸 걸 시스템이 높게 평가해 준 모양.

정도현은 좋아할 틈도 없이 설윤정이 달아난 방향으로 뛰었다.

* * *

설윤정은 멀리 가지 못하고 방해꾼들과 마주쳤다.

스스스-!

공간을 찢고 불쑥 나타난 권하율과 진규현.

설윤정은 놀라는 기색도 없이 다짜고짜 채찍을 휘둘렀다. 사람 크기만 한 얼음 가시들이 그들에게 날아들었다.

진규현은 기겁하며 연달아 공간을 넘었다.

그들이 서 있었던 곳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빙판길이 펼쳐졌다.

조금 떨어진 장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진규현이 꿍얼댔다.

“아니, 이보쇼! 다짜고짜 공격하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냐?”

“그 남자의 동료일 게 뻔하니까요. 혹시 아니었습니까?”

설윤정이 그렇게 되묻자 진규현도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정도현의 동료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어쩌지? 저 여자 되게 센 것 같은데…….”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죠.”

권하율은 정도현이 챙겨 준 상급 도핑제 단약을 입에 넣었다.

이걸 쓰면 10분간 능력치가 크게 상승한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정도현이 올 때까지 버텨 볼 순 있을 터.

그녀의 각오 어린 눈동자에 진규현도 도핑용 단약을 꺼냈다. 그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목숨 걸고 싸우는 건 다신 하기 싫었는데.”

까득-!

둘은 동시에 도핑제를 씹었다. 그러자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들의 변화에 설윤정은 등에 업고 있던 신호영을 땅바닥에 가지런히 눕혔다.

사람을 업은 채로 싸워 이길 수준이 아님을 직감한 것이다.

‘감정이 전혀 안 느껴져.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권하율은 설윤정의 생각을 읽고 당황스러웠다. 그녀에게서 감정의 편린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공격할진 읽을 수 있어.’

복합적인 감정이 없으니 오히려 속내를 파악하기 더 쉬웠다.

촤아악!

설윤정이 냉기의 마력으로 채찍을 얼려 길쭉하게 늘렸다. 채찍이 바람을 찢으며 날아든다.

빠르다. 100레벨도 안 되는 권하율의 능력치론 반응하기 힘들 만큼.

그러나 권하율은 미리 생각을 읽고 가뿐히 피했다.

“…….”

설윤정이 말없이 채찍을 회수했다.

예상과 달랐다. 설령 막더라도 피하진 못할 줄 알았는데.

‘우연인가?’

촤악, 촤아악!

바람을 가르며 날아든 채찍은 번번이 빗나갔다. 우연이 아니었다.

‘내 공격을 완벽히 예측했어.’

교묘하게 페인트를 섞거나 채찍의 움직임에 변주를 줘서 눈을 현혹했다.

그러나 권하율은 용한 무당처럼 족족 피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됐다.

100레벨도 안 되는 플레이어가 자신의 움직임을 완벽히 예측하고 피하다니.

“…….”

설윤정은 권하율을 관찰하다 이상한 점을 알아챘다.

그녀의 시선이 자신의 팔과 무기를 보고 있지 않다는 걸.

‘내 움직임을 보지도 않고 공격을 예측한다니.’

상식적으로 그런 게 가능한가?

그녀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눈썰미나 반사 신경이 극도로 뛰어난 게 아니다. 뭔가 별개의 능력이 있다.

설마 짧은 미래라도 내다보는 걸까.

아니면 다른 꼼수를 부린 걸까.

‘시험해 볼까.’

설윤정은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권하율이 흠칫했다.

휘리릭, 촤악-!

얼음 채찍이 뱀처럼 구불거리며 날아든다.

하지만 상대를 보지 않고 아무렇게나 휘둘렀으니 당연히 맞을 턱이 없었다.

쾅-!

채찍은 엉뚱한 곳에 내리꽂혔다.

권하율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상대의 생각을 읽어도 공격 방향을 전혀 예측할 수 없으니까.

즉, 미리 움직여 회피할 수가 없었다.

쾅, 쾅, 콰앙!

채찍은 두 사람 주변으로 정신없이 날아들었다.

“…윽!”

얼어붙은 바닥이 채찍과 맞부딪혀 깨졌다. 세열 수류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튀었다.

아까처럼 미리 예측해서 움직이질 못하니 눈으로 보고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동작도 전보다 굼떴다.

파바박!

얼음 조각들이 권하율 몸에 푹푹 꽂혔다.

파편 크기는 끽해야 깨진 유리 조각 수준. 상처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몸속으로 한기가 파고들었다.

냉기의 마력에 그녀의 몸이 덜덜 떨린다.

“끄악!”

짜악-!

신호영 쪽으로 몰래 접근했던 진규현이 채찍에 맞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설윤정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말했다.

“제 움직임을 간파한 것도 아니고, 다친 걸 보면 미래를 내다본 것도 아니군요. 대체 무슨 능력이죠?”

“…….”

“말 안 해도 상관없습니다. 이미 승부는 났어요.”

설윤정이 그렇게 말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냉기의 마력에 잠식당해 권하율은 느려졌다. 이젠 미리 움직여도 피하지 못할 터.

승부가 났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그녀의 눈에 권하율의 희미한 미소가 들어왔다.

‘…뒤인가?’

설윤정은 급히 허릴 비틀며 뒤쪽으로 채찍을 휘둘렀다.

아니나 다를까 정도현이 달려오고 있었다. 기사 셋을 벌써 쓰러트렸다니.

‘죽었네.’

그녀의 힘으론 못 이긴다. 달아날 수단도 없었다.

감정이 없어진 설윤정은 담담히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카가각, 콰앙-!

얼음 채찍이 반마력의 검강에 터지며 와장창 깨졌다.

칼날이 그녀의 목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런데 목을 베기 직전에 정도현의 손이 멈췄다.

“……?”

설윤정은 그를 멍하니 쳐다봤다.

왜 자신을 끝장내지 않는지 이해가 안 돼서.

“너 설마… 이윤정이야?”

“…누구십니까?”

그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윤정. 그건 그녀가 어릴 적 북해빙궁에 거둬지면서 버린 이름이었으니까.

그 이름을 알 법한 사람은 끽해야 F구역 주민들뿐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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