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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7화 (177/240)

177화

한편, 중부 사창가에 있던 정도현은 권하율과 만나 백승아 일행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백승아 일행을 살리고자 신호영이 자진해서 적들에게 붙잡혔다.

“백승아는 괜찮습니까?”

“네, 엘릭서 덕에 무사해요.”

마력만 회복되면 당장이라도 싸울 수 있겠지. 하지만 「과충전」을 써 버렸으니 기사들을 상대로 활약하긴 힘들 터.

게다가 엘릭서는 일주일이란 쿨타임이 존재하는 아이템. 백승아는 최선을 다 했다.

이젠 정도현이 나설 차례다.

“전투 현장으로 가죠.”

“벌써 5분은 지났는데. 이미 멀리 도망가지 않았을까?”

권하율과 함께 온 진규현이 말했다.

기사들의 위치를 모르면 「공간 도약」이 있어도 뒤쫓을 수가 없었다.

“걱정하지 마. 위치는 내가 아니까.”

정도현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미리 손 써 뒀다.

신호영에게 위치 추적용 반지를 줬으니, 너무 멀리 떨어지지만 않으면 어딨는지 감지할 수 있다.

전투 현장에서 그리 멀리 가진 못했을 터.

“정도현 씨, 저도 돕겠습니다.”

“권 팀장님은 교전 대신 신호영을 데리고 달아나 주세요.”

정체가 들키면 그녀도 골치 아파질 테니까. 그의 지시에 권하율과 진규현은 고갤 끄덕였다.

상대는 5대 가문의 기사들.

한 명 한 명이 B구역에서 턱을 빳빳이 들고 다닐 만한 강자였다.

그들이 돕겠다고 가세해 봤자 오히려 정도현의 발목만 붙잡으리라.

* * *

신호영을 생포한 기사들은 차량에 탑승한 채 어디론가 향했다.

막막했던 임무를 너무도 손쉽게 완수해서 그런지 다들 희희낙락했다. 무공의 영향으로 감정이 얼어붙은 북해빙궁의 여기사와 당재호를 제외한다면.

여기사는 쭉 무표정을 고수했고, 당재호는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당연히 언노운, 신호영이 당소예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호영을 붙잡고 보니 만리향이 풍기질 않았다. 그녀를 살해한 건 신호영이 아니었다.

범인은 따로 있다.

“당재호 님, 왜 그러십니까?”

안경을 쓴 기사, ‘제갈성’은 당재호의 낯빛이 칙칙하자 고갤 갸웃했다.

비록 사천당가의 힘만으로 생포하진 못했어도, 신호영을 가장 먼저 찾아낸 공로는 무척 컸다.

그와 추격대의 희생이 없었다면 자신들은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헤맸을 터.

성녀도 분명 그 점을 높이 사 줄 거다. 가문의 실추된 명예도 회복한 셈.

그런데 기뻐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혹 자신들에게 추태를 보인 걸 신경 쓰는 걸까.

‘인제 와서 새삼스럽게, 뭘.’

사천당가는 5대 가문 중에서도 전투 면에선 최약체로 꼽힌다.

독공을 통한 암살이나 의료, 잠행, 정보 수집 등에선 따라올 자가 없었지만.

그러니 영광의 일족인 신호영과의 전투에서 고전했다 한들, 그걸 트집 잡진 않을 터.

“저놈이 아니다.”

“예? 그게 무슨…….”

“내 약혼녀를 죽인 범인은 저놈이 아니야.”

“뭐야, 그럼 엄한 놈한테 당한 거였어?”

진상을 안 남궁진은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실실 웃었다. 당재호가 매섭게 째려봤지만, 그는 그저 어깰 으쓱했다.

제갈성도 당연히 신호영이 범인이라 생각했었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누가 죽인 거죠?”

“그거야 이놈이 알겠지.”

남궁진이 기절한 신호영의 뺨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점혈에 당해서 얼굴을 건드려도 깰 기미가 없었다.

당재호도 같은 생각인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깨워서 심문할 기세였다.

제갈성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동료애가 투철한 걸 봐선 곱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고문해 볼까? 뇌기로 지지다 보면 어지간한 놈들도 술술 말하던데.”

“그건 안 됩니다. 남궁세가의 무공은 내상을 입어서 너무 티 납니다. 필요 이상으로 다친 꼴을 보면 성녀도 가만있지 않겠죠.”

제갈성의 논리 정연한 설명에 남궁진은 아쉬운지 혀를 찼고, 당재호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당소예를 살해한 게 신호영이라 생각했다. 마음속 깊이 꾹꾹 눌러 뒀던 복수심이 마구 용솟음쳤다.

동시에 가슴이 뛰었다. 이젠 범인을 죽여 그녀의 넋을 달래 줄 수 있게 됐으니.

‘넌 대체 누구냐.’

당재호가 범인에 대해 생각하며 애써 분을 삭일 때.

끼익-!

수송 차량이 전조도 없이 급정차했다.

차체가 앞뒤로 덜컹거렸다.

기사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내가 나가 보지.”

기사들 중 근골이 가장 장대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차에서 내렸다.

그는 하북팽가의 기사였다.

하북팽가는 도(刀)를 잘 다루고, 장골에서 나오는 괴력을 이용한 권각술에 능했다.

즉, 힘과 맷집만큼은 5대 가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났다.

그는 차량 앞쪽으로 걸어가 운전수를 불렀다.

“어이, 무슨 일이냐?”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에 사람이 끼어들어서…….”

“사람이 끼어들어?”

그들은 아직 유령 도시 구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몬스터라면 모를까, 이곳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

그런데 있었다.

불과 십여 미터 앞, 도로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이봐, 운전수. 저 자식 언제부터 저기 있었지?”

“예?”

“저놈 언제부터 저기 서 있었냐고.”

“아, 아까 전부터 계속 있었습니다만…….”

운전수의 대답에 그는 소름이 쫙 돋았다.

저 남자의 마력은 자연과 완벽히 동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코앞에 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눈으로 직접 보고 나서야 존재를 알아챘다. 실로 귀신 같은 남자였다.

[???] [LV.103]

“넌 뭐냐!”

챙-!

하북팽가의 기사가 도를 뽑아 들며 힘차게 외쳤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옆에 있던 운전수는 귀청이 따가워서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기사의 불호령에도 의문의 남자는 아무렇지 않단 얼굴로 대답했다.

“강도.”

“…강도?”

“경험치랑 차 안에 든 거 내놔.”

하북팽가의 기사는 눈치챘다.

저 남자의 목적이 신호영이란 걸.

그는 무기에 마력을 불어넣어 도강(刀罡)을 일으켰다.

“놈의 동료구나!”

쾅!

그가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동시에 상대의 손에 장검이 들렸다. 거기서 순백의 검강이 솟았다.

카앙-!

검과 도가 맞부딪혔다. 하북팽가의 기사는 반마력의 검강에 떠밀려 뒤로 쭉 날아갔다.

“…큭!”

손아귀가 찢어지는 듯한 통증에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콰가각-!

하북팽가의 기사는 두 다리로 땅바닥을 긁어 겨우 몸을 멈췄다.

검강의 위력이 심상치 않았다.

정면 대결할 엄두가 안 나는 건 가주님 이후로 처음이었다.

‘어딜 봐서 103레벨이냐!’

혹시 시스템이 고장 난 건 아닐까.

그는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팽도철’! 무슨 일이야?”

갑작스레 발생한 강대한 마력 충돌에 기사들이 하나둘 수송 차량에서 내렸다.

당재호는 하북팽가의 기사, 팽도철과 일 합을 주고받은 남자를 보곤 표정이 굳었다.

“너, 넌……!”

“당재호 님, 아는 사람입니까?”

이름은 가려졌고 얼굴도 초면이었지만 당재호는 그가 누군지 대번에 알아봤다.

놈의 몸에서 만리향이 풀풀 풍겼으니까.

드디어 만났다. 당소예를 죽인 녀석.

당재호는 성치도 않은 몸으로 마력을 끌어 올려 독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죽어라!”

독기를 둥그렇게 응축시켜 탄환처럼 날렸다.

하지만 상대는 검강에 불꽃의 마력을 키웠다.

상극의 마력의 균형이 어긋나면서 반마력이 풀렸지만, 그 대신 거센 불길이 치솟았다.

치이익-!

그에게 날아오던 기탄이 순식간에 전소했다.

“무슨……?!”

불꽃의 검강이라니?

하북팽가의 직계가 사용하는 염화도(炎火刀)는 들어 봤지만, 불꽃의 검강은 듣도 보도 못했다.

“저 새끼 뭐야?”

남궁진은 당재호한테 남자의 정체를 캐물었다.

방금 당재호가 보인 격한 반응에 뭔가 알고 있음을 눈치챈 거다.

“저놈이 내 약혼자를 죽인 놈이다!”

“…뭐? 저 녀석이?”

당재호가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정도현이 신기하단 눈빛을 자아냈다.

정체를 들킬 만한 흔적은 일절 안 남겼는데 어떻게 알아냈을까.

‘사천당가만의 비법이겠지.’

그의 집을 찾아낸 건 사천당가의 추격대였으니까. 확실히 알아 둬야지 같은 수법에 안 당할 터.

바로 죽이지 말고 제압한 뒤에 물어봐야겠다.

“저 새끼가 누군진 몰라도 죽여 버리면 되는 거지?”

“아니! 놈은 내가 죽인다.”

남궁진이 칼을 뽑으며 호승심을 불태우자, 당재호가 득달같이 나서서 막았다.

“놈은 우리 가문의 기사를, 내 약혼자를 죽였다. 그러니 내 손으로 단죄해야만 한다.”

“쳇.”

남궁진도 반박할 거리가 없는지 양보해 줬다.

꿀꺽.

당재호는 가문의 회복 단약을 하나 더 삼켰다.

하루에 여러 번 복용하면 부작용으로 몸에 큰 부담이 쌓이지만, 당장 내상을 억누르고 싸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재호다! 네놈에게 생사결을 신청한다!”

“……?”

정도현은 당재호의 결투 신청에 어안이 벙벙했다.

“너 혼자 덤비겠다고?”

“그렇다. 가문의 위신을 위해 네놈을 처단하겠다.”

그깟 명예 때문에 불리한 싸움을 자초하다니. 다른 기사들과 함께 덤비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지 않은가.

물론 정도현이 합리적 판단 운운하는 것도 웃긴 일이지만.

“그래, 네 마음대로 해.”

“건방진 놈!”

당재호가 독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단약의 약발이 다 떨어지면 내상으로 한동안 고생하겠지만, 저놈을 죽일 수만 있으면 그깟 고통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만천화우!”

파바바밧-!

그가 던진 무한비도가 수백 자루로 분열해 정도현을 덮쳤다.

거기다 칼날엔 수하들의 피로 정제한 혈독까지 발려 있었다.

정도현은 피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 받아치고자 검강에 새로운 마력 속성을 부여했다.

후우웅-!

그의 검강이 회오리처럼 빠르게 회전했다. 칼을 가볍게 휘두르자 사방으로 돌풍이 불어닥쳤다.

날아오던 비도들이 바람에 휩쓸려 서로 부딪히거나 땅바닥으로 고꾸라졌다.

“……!”

사천당가의 최대 절기가 허무하게 막히자 당재호는 눈을 부릅떴다.

물론 그의 만천화우는 아직 가주에 비해 너무도 미숙했다.

무한비도는 사용자의 기량에 따라 분열하는 개수가 정해진다.

그는 수백 자루가 최대지만, 가주는 전력을 다하면 천 자루가 넘어갔다.

하지만 아무리 그의 만천화우가 미완성이라도 고작 100레벨대 플레이어한테 막히다니.

“제기랄!”

마지막 남은 긍지마저 짓밟힌 당재호.

그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보랏빛 검강이 쇄도했지만, 정도현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궤적을 읽었다.

샥, 서걱-!

날아드는 칼날을 가뿐히 피하고 검을 휘둘러 한쪽 팔을 날려 버렸다.

그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끄아악!”

팔을 잃은 당재호는 비명과 함께 무너졌다.

정도현은 그가 과다 출혈로 죽지 않게 혈을 틀어막았다.

그런 다음 쓰러진 그를 발로 뻥 걷어차 저 멀리 날렸다.

“…….”

순식간에 결투가 끝났다. 지켜보던 기사들은 조용했다.

방금 싸움은 누가 봐도 고수가 하수를 농락하는 모양새였다. 마치 둘의 레벨이 뒤바뀐 것 같았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정도현은 오만하게 검을 까딱거리며 기사들을 도발했다.

남궁진이 발끈했으나 제갈성이 전음을 날려 말렸다.

‘잠시만요.’

‘왜?’

‘혹시 모르니 진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끌어 보죠.’

‘알았어.’

103레벨 상대로 무슨 호들갑이냐.

평소의 남궁진이었으면 그렇게 말했으리라.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다.

정도현은 불꽃에 이어 바람의 검강을 자유자재로 다뤘다.

게다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봐선 아직도 여력이 남은 듯했다.

최소 기사단장 혹은 가주급일지도 모른다.

“실례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제갈성은 정도현에게 말을 걸며 진법이 완성될 때까지 시간을 끌어 보려 했다.

정도현은 그의 눈빛을 읽고선 눈매가 예리해졌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나 본데.’

정도현은 놈의 장단에 놀아 주기로 했다.

저들이 전력을 발휘하면 그만큼 추가로 경험치가 들어올 테니까.

게다가 저들은 각 가문에서 에이스로 차출된 기사들. 그래선지 전원 레벨이 120을 훌쩍 넘어갔다.

‘다 잡으면 간만에 폭업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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