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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2화 (172/240)

172화

“이제 더 보낼 놈들도 없나 본데?”

정도현이 손을 탁탁 털며 말했다.

그를 중심으로 사방에 수백의 레드 플레이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누가 보면 취객들인 줄 알겠다.

취객과 이들의 차이점은 토사물 대신 피를 질질 흘린다는 것.

파바박-!

정도현은 점혈로 그들을 지혈시켜 준 뒤, 쓰레기 봉지 모아 두듯 한쪽으로 휙휙 던져 쌓아 뒀다.

차연주는 그걸 망연히 쳐다봤다.

‘혼자서 수백 명을 이겼어.’

일반인이 일반인 수백 명을 쓰러트리는 것도 한없이 불가능에 가까운데 무려 플레이어 상대로 해냈다.

물론 정도현은 유격전처럼 치고 빠지고 틈틈이 회복 포션을 마시며 싸웠다.

그게 아니었으면 아무리 그라도 힘들었으리라.

“…대체 얼마를 쓴 거예요?”

차연주는 못 참고 질문했다.

정도현이 마신 상급 체력, 마력 포션을 합치면 서른 개가 넘었다. 그걸 전부 돈으로 환산하면 대체 얼마일까.

중견급 길드의 몇 달 치 예산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그걸 수십 분 만에 탕진하다니.

돈을 물 쓰듯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연기하지 말고 일어나.”

정도현은 대뜸 그렇게 말하며 어딘가를 쳐다봤다.

기절한 척 누워 있던 운전수였다.

운전수는 눈을 뜨곤 표정을 확 찌푸렸다.

“…너, 대체 누구냐?”

운전수의 몸에 또다시 역귀가 쓰였다.

정도현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겁쟁이처럼 계속 숨어서 구경만 할 거야?”

“흥. 내가 왜 너랑 싸워 줘야 하지?”

싸워서 이겨 봤자 득 볼 게 없는데. 그 말에 정도현이 가볍게 반박했다.

“내가 강하니까.”

이건 또 뭔 개소리지. 역귀가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을 지었다.

정도현은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덧붙였다.

“너, 빙의 능력 있다며. 그럼 내 몸이 탐날 텐데? 방금 싸우는 거 지켜봤잖아.”

“…….”

역귀도 그제야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정도현은 자신의 몸을 미끼로 역귀를 유혹한 것이다.

‘뭐, 이딴 놈이 다 있지?’

다른 플레이어들은 몸을 뺏길 게 두려워서 역귀와 엮이려 하지 않는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정도현은 반대였다.

역귀는 어이가 없어서 차연주를 쳐다봤다. 그녀 역시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그래. 인정한다. 레벨은 좀 낮지만 다른 지배자들을 죽이고 다닐 법해.”

“입에 발린 말은 됐고. 싸울 거야 말 거야?”

“궁금한 게 있다. 왜 지배자들을 노리는 거지?”

역귀는 협상을 시도해 볼 생각인지 이러는 이유를 캐물었다.

그는 처음 묻는 거였지만, 정도현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마주쳤던 지배자들은 하나같이 저 질문을 던져 댔으니까.

“죽여서 레벨 올리려고.”

“…….”

정도현은 협상 테이블을 뻥 걷어찼다.

말문이 꽉 막히는 답변이었다.

역귀는 깨달았다. 정도현은 그가 만나 본 놈들 중에서도 가장 미친놈이란 걸.

“뭘 믿고 까부는 거냐? 몸을 뺏기면 넌 영영 죽는데.”

“안 뺏기면 되지.”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내 「빙의」는 정신계 주문 따위랑은 다르다.”

「빙의」는 상대의 영혼에 간섭하는 능력. 일개 인간의 정신력으론 저항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가 지금 조종 중인 운전수처럼 자아를 유지하는 것도 정도현은 불가능했다.

역귀가 본체로 쓸 육신의 혼은 통째로 흡수해 버리니까.

그렇게 하면 그자가 지닌 재능이나 스킬, 지식, 전투 경험 등은 고스란히 역귀의 것이 된다.

“내가 갈아 탄 육체만 수십 개가 넘는다.”

역귀는 여태 거쳐온 이들의 능력을 제 것으로 삼았다. 게다가 그것들로 상호 보완 하면서 한층 더 강해졌다.

“너도 대단하지만 내 힘은 개인이 쌓아 올릴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집단 지성이나 다름없지.”

“거, 말 되게 많네. 쫄려?”

“좋다. 네놈의 혼과 육신. 모조리 가져가 주마.”

역귀는 정도현이 던진 미끼를 물었다.

더 강해지고 싶단 원초적인 욕구를 이겨 내지 못했다.

그는 평생 강자들을 잡아먹으며 살아왔으니까. 모처럼 나타난 사냥감이다.

‘레벨은 좀 낮지만 괜찮겠지.’

정도현이 선보인 무위는 다른 구역의 지배자들 이상이었다.

게다가 저 육체,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젊었다. 볼수록 탐이 났다.

게다가 얼마 전엔 그 투랑도 당했다지 않은가.

‘투랑의 몸은 이미 너덜거려서 포기했었지만.’

정도현은 투랑과 달리 하자가 없어 보였다.

역귀는 운전수의 몸을 조종해 자신의 본체가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 * *

역귀의 본체가 머무는 곳은 암흑가의 홍등가. 그중에서 가장 높고 밝게 빛나는 건물 최상층.

그곳에 역귀가 있었다.

그는 명상하듯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퍽, 퍼억, 쾅!

아래층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에 찬 비명도 끊이질 않는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역귀는 미동조차 없었다. 당연했다.

그는 유체 이탈 한 상태였으니까.

그로부터 십여 분 뒤, 아래층의 소란이 뚝 그쳤다. 그제야 역귀도 눈을 떴다.

“왔군.”

저벅저벅.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삼십 개가 넘는 층을 오르며 덤벼 오는 적들을 모조리 쓰러트린 정도현.

그가 마침내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정도현이 문을 거칠게 열었다. 역귀로 추정되는 거구의 중년 사내가 보인다.

[???] [LV.118]

레벨로 봐선 역귀의 본체인 게 확실했다. 정도현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그에게 항의했다.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쓸데없이 시간 끌어. 부하들이 불쌍하지도 않아?”

“폭력을 즐기는 거 아니었나?”

“누굴 사이코패스로 보나.”

정도현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런 것치곤 레드 플레이어를 잔뜩 죽였지만, 그건 일반 몬스터보다 경험치를 많이 줘서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정도현의 반박에 역귀가 비꼬듯 말했다.

“경험치 때문이라. 그래도 좋아하지 않으면 보통은 그렇게까진 못할 텐데?”

“좋은 약은 입에 쓰다잖아. 견뎌야지.”

“크하핫! 너처럼 미친놈은 난생처음이다.”

역귀가 호탕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똑바로 서니 훨씬 커 보인다.

2m는 가뿐히 넘었다.

전신의 근육들도 너무 과하지 않고 조각처럼 균형 좋게 잡혀 있었다.

“왜 시간을 끌었냐고 물어봤었지.”

“……?”

“못 이길 게 뻔한데도 부하들을 보낸 이유. 뭐라고 생각하나?”

“그거야…….”

싸우기 전에 내 힘을 좀 빼 두려고 그런 거겠지. 포션 때문에 의미 없었지만.

정도현의 대답에 역귀는 고갤 저었다.

“틀렸다. 네가 포션으로 회복할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나 화병 나서 죽으라고 그랬냐?”

“아니. 네 전투 방식과 습관들을 분석하기 위함이었지.”

역귀는 아까부터 부하의 몸에 빙의한 채 모든 전투를 지켜봤다. 정도현이 어떻게 움직이고 대처하는지 분석했다.

물론 부하들 실력으론 그의 전력을 끌어낼 수 없었지만, 기본적인 틀은 같을 터.

“전투에서 습관이란 건 참 무섭지. 아무리 의식해도 고치기 어렵거든.”

역귀는 정도현이 어떻게 움직이고 공격해 올지 눈에 선했다.

지금껏 빙의하며 쌓인 경험과 재능을 통해 상대의 움직임을 정확히 계산하고 예측해 냈다.

물론 그게 가능했던 건 그를 대신해 맞아 준 부하들 덕이었다.

“부하들을 샌드백으로 던져 주고 내 움직임을 학습하셨다?”

“그래.”

“왜 그렇게까지 하는데? 그냥 내 몸에 바로 빙의하면 되잖아.”

정도현의 질문에 역귀는 어깨를 풀며 대답했다.

“네 몸에 완전히 「빙의」하면 이 육체는 더는 쓸 수 없게 되거든.”

“뭔 소리야? 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네 몸으로 갈아타면 지금 쓰는 육신은 영혼이 텅 비어서 불타 사라진다.”

이제 무슨 소린지 좀 이해가 됐다.

순백교랑 싸울 때도 몇 번이고 봤었지.

영혼이 분리된 육체는 불타 소멸한다.

역귀가 차지한 저 육체도 마찬가지일 터.

다른 몸에 섣불리 빙의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거군.

약한 이의 몸을 차지하면 그로선 오히려 손해니까.

“네 육체가 얼마나 강한지 테스트해 주마. 빼앗는 건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아.”

“아주 여유가 넘치시네.”

“네 공격 패턴은 전부 알아냈다.”

역귀가 자신만만하게 굴자 정도현은 검강을 펼쳤다.

부하들을 상대론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기술이라 역귀의 눈이 커졌다.

“그건 설마… 검강이냐?”

“뭐야, 알아보네?”

역귀는 수십 번이나 육체를 교체하면서 여러 이들의 방대한 기억과 정보를 얻었다.

그중엔 검술을 깊이 연구해 온 자도 있었다. 그자의 기억 속엔 검강에 대한 정보도 있었다.

과장 좀 보태면 검기는 최소한의 재능과 노력으로 터득할 수 있지만, 그 상위 단계인 검강은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다.

그런 검강을 다루다니.

“…정말 무시무시한 재능이군. 설마 C구역에서 검강을 볼 줄이야.”

예상과 다른 오차가 발생했지만, 역귀는 금방 평정을 되찾았다.

그에게 그리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저 엄청난 재능이 내 것이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럼 실력 좀 볼까?”

척.

역귀는 벽에 걸린 대검을 붙잡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칼날에서 시커먼 검기가 치솟는다.

그걸 본 정도현이 살짝 감탄했다.

‘검기가 최상급 수준이야. 약간의 깨달음만 더해지면 검강도 쓸 수 있겠어.’

수십 명의 몸을 강탈하고 다양한 전투 경험이 축적돼서일까. 역귀의 마력 제어는 상당한 경지였다.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스톤 스킨」…….”

역귀는 대검을 든 채 버프 주문을 걸었다. 마법과 검술은 양립할 수 없는 종류의 힘.

그런데 역귀는 그걸 해냈다.

이게 바로 역귀의 개인 특성, 「빙의」의 힘이었다. 그는 빙의해서 흡수한 스킬을 전부 쓸 수 있었으니까.

물론 사용하고 있는 육체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긴 하지만.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올려 주는 버프 주문을 잔뜩 두른 역귀. 그가 걸음을 뗐다.

후웅-!

대검이 정도현을 덮쳤다. 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돌풍이 불었다.

대검에 비해 얄팍한 정도현의 롱소드가 끼어든다.

쾅-!

검기와 검강이 부딪혔다. 역귀의 표정이 굳었다.

“……!”

정도현은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았다.

손에 힘을 줘도 대검이 꿈쩍도 안 했다. 시커먼 검기가 조금씩 깨지며 연기처럼 흩어졌다.

아무리 검기가 대단해도 상위 호환인 검강 앞에선 소용없었다.

여유롭던 역귀의 표정이 굳었다.

“이놈이!”

쾅, 쾅, 쾅!

역귀는 대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검강이 아무리 단단해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고. 두들기다 보면 정도현 몸에 충격이 전해질 터.

카앙! 채재재쟁!

하지만 정도현은 자신의 키와 비슷한 길이의 대검을 잘도 받아넘겼다.

‘말도 안 돼!’

강자는 강자를 한눈에 알아보는 법.

검을 섞을수록 정도현의 엄청난 재능이 여실히 전해졌다.

역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정녕 개인이 품을 수 있는 재능이란 말인가? 심지어 아직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크흐흐! 합격이다!”

역귀가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그리 외쳤다. 더 이상의 실력 평가는 무의미했다. 이 육체는 내 것이다.

역귀는 「빙의」를 발동했다.

그러자 대검을 쥐고 있던 거한의 몸이 뒤로 기우뚱 뒤로 넘어갔다.

유체 이탈로 일종의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샤아아악-!

시커먼 연기, 역귀의 혼이 정도현의 몸에 들러붙었다.

「크하핫! 훌륭해. 마력이 이렇게나 정순하다니.」

역귀는 정도현의 영혼을 삼킨 뒤 육체를 완전히 차지하려 했다. 그런데 이질감이 들었다.

[신령한 부적이 발동합니다.]

「…응?」

투웅-!

역귀의 혼이 정도현의 몸 밖으로 튕겨 나갔다.

그의 영혼과 육신의 궁합이 잘 맞질 않아 제 발로 빠져나간 적은 있어도 이렇게 쫓겨난 건 처음이었다.

역귀의 혼은 허둥지둥 원래 쓰던 육체로 돌아갔다.

“네, 네놈! 방금 뭘 한 거냐?”

“귀신 쫓는 부적을 좀 사 뒀지.”

“부, 부적?”

정도현은 품에서 뭔가를 꺼내 보여 줬다. 그건 역귀를 내쫓아낸 아이템, 부적이었다.

저런 건 태어나서 처음 봤다.

‘저딴 종이 쪼가리가 내 빙의를 막았다고?’

역귀는 이를 갈았다. 그러다 정도현 손에 들린 노란 부적이 반쯤 시커멓게 탄 걸 보았다.

“크흐흐! 그 부적인지 뭔지 하는 거. 소모성인 모양이지?”

“어.”

“그럼 다 타서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시도해 주마!”

역귀가 기세 좋게 소리쳤다. 그러자 정도현도 웃으며 부적을 더 꺼냈다.

한두 장이 아니었다. 언뜻 봐도 수십 장이 넘는다. 역귀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정도현은 그 부적들을 칼날에 덕지덕지 붙여 대며 말했다.

“이걸 무기에 붙이면 귀신도 때릴 수 있다더라고?”

“뭐, 뭐?”

“처맞을 시간이다, 이 기생충 같은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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