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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71화 (171/240)

171화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재호는 가주와 원로들이 전부 집합한 회의실에 들어왔다.

원로들은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소가주, 이번 추태는 어떻게 책임질 건가?”

원로회 대표가 나서서 질책했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도 기다렸단 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외인이라도 가문의 성을 하사받은 기사가 죽어 버렸으니…….”

“그나마 포획 대상이 안 죽었으니 망정이지.”

“애초부터 그런 애한테 중책을 맡기는 게 아니었어!”

원로들이 당소예를 혹평하자 당재호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위험한 임무를 그녀가 자진해서 맡자 보기 좋다고 할 땐 언제고.

역했다. 죽 끓듯이 뒤집힌 저들의 태도가.

그래도 그는 꾹 참았다. 저들과 논쟁한다고 죽은 그녀가 살아 돌아오진 않으니까.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제가 수습하겠습니다.”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 아들아.”

가주가 입을 열었다. 저들끼리 떠들던 원로들도 목소릴 낮췄다.

당재호는 아버지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당소예가 죽을 때 만리향을 남겼다지요?”

“그렇다. 전투 현장으로 보낸 추적대가 만리향의 잔향을 확인했다. 잔향이 멀쩡히 풍기는 걸 봐선 범인도 어딘가에 살아 있단 거지.”

“저도 추적대에 합류하겠습니다.”

소가주 당재호가 직접 나선단 말에 원로들이 눈치를 살폈다.

상대는 추방됐어도 엄연한 영광의 일족.

영광의 일족은 극양의 심법 중에서도 최고봉인 「태양신공」을 익혔다.

독공을 주로 다루는 사천당가에겐 최악의 상성이었다.

그렇기에 가문의 기사들도 선뜻 나서지 못했었다.

당소예가 임무를 맡겠다 말했을 때 원로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자신들이 키워 낸 제자들을 보냈다가 혹시라도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했었으니까.

“상대는 영광의 일족이다. 자칫하면 크게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가주는 아들을 타이르듯 말했다.

하지만 당재호도 물러서지 않았다.

“사천당가의 명예가 실추됐습니다.”

귀족에게 명예란 목숨보다도 소중한 것. 그걸 되찾으려면 목숨을 거는 것도 당연지사.

당재호가 그리 말하자 원로들이 탄복하며 고갤 끄덕였다.

“소가주의 말도 일리가 있소.”

“이대로 우리가 물러나면 다른 가문들이 비웃는 건 물론이고 성녀의 눈밖에서도 벗어날 걸세.”

원로들까지 당재호의 말에 힘을 실어 주자 가주도 더는 말릴 수 없었다.

“좋다. 단,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거라. 이건 가주로서의 명령이다.”

“예.”

당재호는 인사를 올린 뒤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원로들은 소가주가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렸다며 마냥 기뻐했다.

하지만 가주는 그럴 수 없었다.

후계자이기 이전에 단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그래서 되도록 이번 임무는 맡지 말았으면 했다.

하지만 말릴 명분이 없었다.

‘내 몸만 멀쩡했더라면…….’

가주는 속으로 탄식했다.

마음 같아선 아들 대신 그가 나서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십여 년 전 독공의 성취를 높이고자 무리한 수련을 감행했고, 그 대가로 몸이 일부 망가졌다.

무공의 경지는 한층 고강해졌지만, 가문의 고수들을 통해 치료받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니 장거리 파견 임무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

‘부디 별일 없어야 할 텐데.’

* * *

당재호는 C구역으로 내려가 가문의 추적대와 접선했다.

“…만리향이 도중에 끊겼다고?”

“그, 그렇습니다.”

당재호의 표정이 멍해졌다.

추적대는 남부 투기장에서 찾아낸 만리향의 잔향을 뒤쫓아 움직였다.

그런데 얼마 못 가 향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잔향이 사라지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린다. 혹시 놈이 눈치채고 지운 건가?”

“소가주님, 그건 불가능합니다.”

추적대 조장은 논할 가치도 없단 듯 고갤 저었다.

아무리 기감이 예민해도 사천당가의 독공을 연마하지 않으면 만리향은 맡을 수 없다.

게다가 만리향은 아이템이라 몸을 씻는다 해서 지워지지 않을뿐더러, 디버프 효과도 일절 없기에 축복이나 정화 스킬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천당가는 한 번 포착한 목표는 반드시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됐단 거냐. 놈이 갑자기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기라도 했단 뜻이냐?”

“공간을 넘나드는 주문으로 도망쳤을 겁니다.”

“…공간 이동?”

그래, 성녀가 말해 줬다.

생포할 대상인 언노운 곁에는 공간 이동 능력자가 있다고.

‘하지만 그자는 몇 달 전에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언노운의 생포를 포기했던 성녀가 바삐 5대 가문에 도움을 청한 것이다.

이젠 공간 이동으로 도망칠 수 없으니까. 발견만 하면 붙잡을 수 있었다.

‘성녀가 잘못 파악한 건가?’

공간 이동으로 여길 벗어났으면 만리향이 도중에 끊어진 것도 전부 설명이 된다.

잔향은 발자국과도 같다. 대상이 직접 움직여야만 남는다.

이거 생각보다 골치 아프게 됐다.

추격대 조장이 그의 눈치를 보며 질문했다.

“소가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공간을 넘어 도망쳤어도 놈의 몸에 묻은 만리향은 사라지지 않아.”

“그 말씀은…….”

“흩어져서 잔향부터 찾는다. 가문의 명예가 걸렸다. C구역 전역을 뒤져서라도 놈을 잡아내야만 한다. 가장 먼저 잔향을 찾아낸 자에겐 가문의 성과 비전 무공을 하사하겠다.”

“……!”

당재호가 내건 약속에 추격대 전원의 눈이 뒤집혔다.

가문의 비전 무공을 익힌 기사는 정식 기사 중에서도 몇 없었다.

가문의 중책을 맡거나 후계자는 될 수 없지만, 직계와 똑같은 교육을 받는 거니까.

여기서 조장을 제외하면 추격대 전원이 견습 기사. 이건 그들 인생에 둘도 없을 기회였다.

“매일 자정마다 발견 여부를 보고하도록. 단, 잔향을 찾았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마라. 놈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내가 직접 잡겠다.”

“예!”

추적대원들은 포획 대상이 영광의 일족인지 모르고 있다. 그래서 당재호는 신신당부했다.

혹여나 더 큰 공을 세우려는 욕심에 나섰다 일을 그르치지 말라고.

추적대는 가문의 비전 무공을 배울 생각에 혈안이 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C구역 동부에서 잔향을 찾았단 소식이 들려왔다. 당재호와 흩어졌던 추격대는 곧장 그곳으로 모여들었다.

* * *

한편, 정도현은 차연주와 함께 중부로 향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차연주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역귀도 분명 어느 정도 낌새를 알아챘을 거예요.”

“그래. 네가 나한테 굴복했다 생각하겠지.”

역귀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신을 그렇게 만나고 싶으면 중부로 직접 찾아오라고.

아무래도 그녀가 좋은 의도로 만나자고 한 게 아님을 알아챈 모양.

즉,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서 기다리겠지. 그들은 지금 호랑이 소굴로 들어가는 셈이었다.

‘이젠 도망칠 수도 없어.’

차연주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도현이 역귀한테 당하면 그녀도 죽을 운명이니까.

“계획은 있는 거죠?”

“계획? 당연히 있지.”

정도현이 당당하게 대답하자 차연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정말로 아무 대책 없이 달려드는 줄 알았으니까.

하긴. 그도 목숨은 하나뿐일 테니까.

‘그때 쓴 빛나는 창처럼 강력한 아이템이 더 있을지도 몰라.’

정도현의 비범한 실력과 일 대 다수의 싸움에 특화된 아이템이 합쳐지면 승산이 있었다.

차연주가 기대 서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놈을 만나서 목을 베면 끝. 참 쉽지?”

“…….”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차연주는 울상을 지었다.

정도현은 역귀를 너무 만만히 보고 있었다.

역귀는 지배자들 중에서 활동 시기가 짧았다. 그래서 악명은 생각보다 널리 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역귀는 지배자들 중에서 명실상부 최강자라는 걸.

게다가 까다로운 빙의 능력 때문에 관리국도 붙잡길 포기한 괴물이다.

몇 시간이 지나 비행기가 중부 공항에 착륙했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고급 차량이 그들 앞에 딱 멈췄다.

“실례합니다. 차연주 님이 맞으십니까?”

운전수가 내리며 차연주에게 인사했다.

역귀가 보낸 하수인이 틀림없다.

차연주는 평소처럼 도도하게 고갤 끄덕였다.

운전수는 그녀 옆에 서 있는 정도현을 흘끗 보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역귀가 경계하던 자라기엔 레벨이 너무 낮았다. 그렇다고 차연주의 수하라 하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여유로웠다.

마치 저 둘의 계급이 역전된 것처럼.

“그럼 모시겠습니다.”

운전수는 궁금증을 접고 두 사람을 차에 태워 공항을 빠져나갔다.

차량은 한참을 달려 도심에서 멀찍이 떨어진 암흑가에 들어섰다.

끼익-!

잘 달리던 차량이 도로 한복판에서 멈췄다. 차연주는 창문 밖을 두리번댔다.

만나기로 했던 장소가 아닌 건 세 살배기 어린애라도 알 터.

그녀는 운전수를 째려보며 따졌다.

“지금 뭐 하는 거죠?”

“너야말로 뭘 하고 싶은 거냐, 사막의 무녀.”

“……!”

운전수의 말투가 싹 바뀌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차연주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역귀. 당신이에요?”

“그래. 굳이 얼굴 보면서 대화할 필요 없잖아.”

역귀의 영혼이 운전수의 몸에 빙의했다. 역시 순순히 만나 줄 생각은 없었구나.

차연주가 어떻게 해야 좋을지 궁리하며 식은땀을 흘릴 때.

덥석!

정도현이 운전수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그러자 역귀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네놈이냐? 지배자들을 죽인 게?”

“그래.”

“생각보다 레벨이 낮구나. 차연주를 어떻게 구워삶았는진 몰라도…….”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는데 이딴 식으로 굴면 예의가 아니지.”

정도현은 그렇게 말하며 손아귀에 힘을 줬다.

아무리 역귀의 영혼이 들어갔어도 육신은 일반인. 숨구멍을 틀어막자 운전수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개졌다.

“끄, 끄으…….”

역귀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정도현은 다른 손으로 입까지 틀어막았다.

운전수는 결국 산소가 부족해서 혼절했다.

정도현은 운전수의 얼굴에서 손을 뗐다. 묘한 이질감이 사라졌다.

역귀의 영혼이 운전수 몸에서 빠져나간 모양.

“튀었네.”

“다, 다짜고짜 기절시키면 어떡해요!”

차연주가 식겁하며 소리쳤다. 그가 이렇게 급발진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녀의 질책에 정도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어차피 포위당했어.”

“예?”

“주변에 쫙 깔렸다고.”

아까부터 주변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풍겨 오는 마력을 하나둘 세었다.

“음. 백 명 좀 넘네.”

“서, 설마… 도시 한복판에서 저흴 공격한다고요?”

“뭐, 어때? 여긴 놈의 앞마당이잖아.”

암흑가에서 사람 두 명 죽이는 게 뭐, 대순가.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자마자.

휘이잉-!

멀리서 공격 주문들이 포탄처럼 날아들었다.

콰아앙!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차가 시원하게 폭발했다.

정도현은 호신강기를 두른 뒤 운전수와 차연주를 껴안고서 포화 속을 빠져나왔다.

정도현이 운전수를 그녀에게 던져 주며 검을 뽑았다.

“그 남자 데리고 버텨.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자, 잠깐…….”

타앗-!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정도현이 몸을 날렸다.

잠시 뒤, 주문이 날아왔던 방향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잠복해 있던 대여섯 명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급소는 피해서 벴으니 지혈만 제때 하면 죽진 않으리라. 정도현은 남은 적들을 쳐다봤다.

“씨발, 죽여!”

“저 새끼랑 여잘 죽이면 30억이라고!”

눈앞에서 아군들이 당했는데도 레드 플레이어들은 의욕을 불태웠다.

정도현과 차연주의 목에 각각 15억이란 현상금이 붙은 탓이다.

정도현은 그들의 레벨을 확인했다.

그와 비슷하거나 낮은 놈들투성이었다.

‘죽여 봤자 경험치도 안 주겠네.’

보아하니 역귀가 버리는 패로 고용한 놈들 같았다. 체력과 마력이라도 뺄 수 있으면 이득이라 판단했겠지.

귀찮으니 빨리 정리해야겠다.

“컥!?”

“끄악! 내, 내 다리……!”

서걱, 촤악-!

종횡무진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푸른 섬광이 번뜩일 때마다 몇 명씩 쓰러졌다.

백 명이 넘는 레드 플레이어가 무력화되는 데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몇몇은 도망치거나 차연주를 노렸지만, 그녀도 서부의 지배자.

이런 어중이떠중이들한테 당할 급은 아니었다.

“후…….”

차연주가 흐르는 땀을 닦으며 참혹한 현장을 바라봤다.

정도현에게 덤볐던 자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선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누가 봐도 대승이었다. 하지만 차연주의 표정은 어두웠다.

‘당장은 막아 냈지만, 또 이만큼씩 몰려오면…….’

정도현이 아무리 강해도 사람이다.

다수의 적과 연달아 싸우면 지치기 마련. 역시 역귀가 함정을 팠을 줄 알았다.

차연주가 일단 후퇴해 다시 작전을 짜자고 말하려던 순간.

“마셔.”

“예? 이, 이건…….”

정도현이 그녀에게 뭔가 던져 줬다. 상급 포션이었다.

중견 혹은 대형 길드장들도 던전에 들어갈 때 보험용으로 한두 개밖에 못 챙길 만큼 귀한 아이템이지 않은가.

그런 걸 선뜻 내준다고?

포션을 쥔 손이 떨렸다. 마시긴 아까웠지만 정도현이 명령한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잡몹들 때려잡다 보면 보스도 나오겠지.”

정도현은 마치 온라인 게임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중얼댔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딱 그 말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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