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정도현은 정반대 속성의 마력을 합쳤다.
호루스가 마력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시범을 보여 준 덕에 따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조화심법」의 깨달음이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스스스-!
상극의 마력을 합쳤는데도 검강의 위력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증폭됐다.
‘말도 안 된다!’
호루스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반마력 제어술」. 그가 저 기술을 터득하는 데만 수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게다가 정도현은 자신처럼 신체 일부에 자연의 정기가 깃들지도 않았고, 뛰어난 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두 속성의 마력을 동시에 다룬단 말인가.
타앙-!
정도현이 반마력으로 짜낸 검강을 앞세우며 달려들었다.
호루스는 지팡이를 휘저어 불꽃과 얼음 그리고 모래의 주문까지 동시에 일으켜 일대를 폭격했다.
쾅, 콰앙, 쾅!
과연. 눈동자만 되찾으면 이길 수 있다더니. 허언은 아니었다.
호루스의 마력과 주문이 한층 강력해졌다. 평범한 검강으론 대응하기 벅찼으리라.
정도현이 반마력을 두른 검으로 주문을 모조리 썰며 나아갔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짐과 대등히 싸운단 말이더냐!』
호루스는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촉박해졌다.
두 눈을 되찾았는데도 인간한테 이렇게 고전할 줄 몰랐으니까.
“후읍!”
정도현이 짧게 숨을 들이켜며 팔을 휘젓는다.
콰과광!
칼날과 충돌한 주문이 터졌다.
정도현이 시원시원하게 길을 뚫으며 거릴 좁히자, 호루스가 기겁하며 뱀 지팡이를 창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창날에도 반마력이 깃들었다.
콰앙!
서로의 반마력이 부딪히자 거대한 폭발이 발생해 두 사람을 멀리 밀어냈다.
충격파가 황궁의 벽을 뒤흔들었다.
『…크윽!』
호루스는 균형을 잃고 데굴데굴 굴렀다. 반면 정도현은 넘어지지 않고 다리 힘으로 버텼다. 발밑에 고랑이 두 개 만들어졌다.
비척대며 일어선 호루스는 똑바로 서 있는 그를 괴물 보듯이 쳐다봤다.
『허억, 헉…….』
“후우…….”
둘은 제자리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다.
반마력 제어술의 가장 큰 단점이 나타났다.
상극의 마력을 뒤섞으면 당연히 반발하고 만다. 그걸 가라앉히려면 추가로 마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즉, 위력은 강력하나 마력 효율은 상당히 떨어졌다.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라 단시간에 승부를 낼 때 써야만 하는 기술이었다.
『…건방진 인간이여, 이름이 무엇이더냐.』
“정도현.”
『정도현, 짐을 죽이려는 이유가 뭐지?』
“경험치가 필요해서.”
『…경험치?』
그의 대답에 호루스는 기가 막혔다. 미친놈 같으니라고.
『짐과 손을 잡을 생각은 없더냐? 황실의 비밀 창고엔 금은보화가 가득하도다. 그 절반을 네게 주마.』
“필요 없어.”
호루스가 알던 인간은 하나같이 보물에 환장하던 탐욕스러운 족속이었다.
그런데 정도현의 눈빛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하긴. 엘릭서도 선뜻 내준 걸 보면 그런 거에 연연할 녀석이 아니겠지.
『기어코 짐을 죽여야겠단 말이지.』
호루스는 상대의 강함을 인정했다.
잃어버린 눈을 되찾았음에도 주문으로는 정도현을 어찌할 수 없었다.
놈을 이기려면 반마력을 버텨 낼 만한 강인한 육신이 필요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양쪽 눈을 되찾았으니 쓸 수 있다.
정도현은 제 무덤을 판 셈이다.
『영광으로 여기거라. 짐의 진정한 모습을 보게 됐으니.』
“……?”
호루스가 그렇게 말하며 체내의 마력과 양쪽 눈에 담긴 정수까지 싹삭 끌어모아 전신에 퍼트렸다.
그는 주문으로 싸우는 걸 포기하고 신체 강화를 택했다.
촤악!
그의 어깻죽지에서 한 쌍의 황금빛 날개가 돋았다.
야수화를 썼던 투랑처럼 신체가 깃털로 뒤덮였다. 다리와 발바닥도 매의 그것과 똑같아졌다.
반인반수에서 짐승에 더 가깝게 변했다.
『인간을 상대로 신격화를 쓴 적은 이번이 처음이도다.』
“…신격화?”
호루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지 수백 년. 더 나아가 수천 년간 제국을 통치해 왔던 선대 황제들까지 통틀어 ‘신격화’를 쓴 건 제국 역사상 최초였다.
호루스는 황금 날개를 양옆으로 펼치며 몸을 날렸다.
황금빛 섬광이 정도현의 코앞으로 쇄도했다.
카앙-!
정도현은 검을 들어 올려 창날을 막았다.
창에 마력이 담기지도 않았는데 힘이 어마어마했다.
‘완력만으로 검강을 버틴다고?’
호루스의 향상된 신체 능력이 마력의 유무 차이를 메꾸고도 남았다.
반마력의 폭발도 가뿐히 버텨 냈다.
게다가 그의 무기는 창이 전부가 아니었다.
샤샤샥-!
매의 발톱이 권투 선수의 잽처럼 날카롭게 뻗어 나왔다.
‘빨라.’
정도현은 눈동자를 정신없이 굴리며 발톱을 피하거나 튕겨 냈다.
하지만 전부 막지 못했다. 얼굴을 비롯해 몸 곳곳을 긁혀 피가 튀었다.
드디어 정도현에게 상처를 낸 호루스.
그의 얼굴이 환희로 젖었다.
『정도현, 짐의 일생일대의 호적수여! 그대를 기억하마.』
정도현은 묵묵히 방어에 집중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역습을 섞었지만, 호루스의 압도적인 신체 능력은 그마저도 막아 냈다.
카가각-!
매의 발톱이 사냥감을 붙잡듯 칼날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러자 검강에 불똥이 튀며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마무릴 지어 주마!』
호루스가 승부에 쐐기를 박아 넣었다.
발차기가 날아든다. 그걸 막아 낸 정도현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펄럭-!
호루스는 황금빛 날개를 퍼덕여 그를 추격했다.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에 따라잡았다.
퍼억, 퍼버벅!
호루스는 날아가던 정도현의 몸을 걷어차 반대쪽으로 날렸다. 그걸 또 뒤쫓아가서 뻥뻥 걷어찼다.
정도현이 피를 쏟으며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쓰러진 정도현 옆에 호루스가 우아하게 착지하며 말했다.
『유언을 남겨라, 정도현.』
호루스는 봉인에서 막 풀려났을 때처럼 근엄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만했다. 누가 봐도 대결의 승자는 호루스였으니까.
정도현은 온몸이 긁히고 찢겨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런데도 꿋꿋이 검을 지지대 삼아 일어섰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마취라도 한 것처럼 표정이 덤덤했다. 적이지만 보고 있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대를 인정하마. 인간이지만 정신력만큼은 반신족 못지않구나.』
“…반신족?”
『그렇다. 짐은 태양신의 정혈을 물려받은 반신족이니라.』
태양신은 태양교가 숭배하는 신.
호루스가 그 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그러니까, 네가 신의 자손이라고?”
『그래, 그렇게도 불렸었지.』
신의 자손들은 천사만 있는 게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천사 등에도 날개가 한 쌍 이상 달려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걔네 날개는 흰색이라 했었는데.’
호루스의 날개는 황금빛이었다. 그러니 다른 종족일 터.
전투 중이었지만 정도현은 궁금증을 못 참고 질문했다.
“넌 천사에 대해 알고 있나?”
천사를 언급하자 호루스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그대가 놈들을 어떻게 알고 있지?』
“안다고 해야 하나… 걔네가 인간들을 백 년 가까이 지배해 왔거든.”
『놈들도 짐처럼 태양신의 정혈을 물려받은 반신족들 중 하나다. 겉으론 고결한 척 굴지만, 속내는 시커먼 놈들이지.』
“…반신족들? 설마 반신족이 여럿이야?”
『그렇도다.』
곧 죽을 놈이라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눈을 고쳐 준 보답인 걸까.
호루스는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해 줬다.
태양신이 세상을 창조하고 자신의 힘을 나눠 준 네 종족이 있었다.
용, 천사, 하이 엘프 그리고 호루스와 같은 초월체.
『태양신께선 각 종족에게 하나의 임무를 내리셨다고 한다. 짐의 일족, 초월체들은 대대로 생명을 수호해 왔지.』
용은 세상의 균형, 천사는 창공, 하이 엘프는 대자연을 지켜왔다.
신의 자손들, 반신족은 처음엔 사이가 좋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관계가 틀어졌다.
『용들은 오만했고, 천사들은 인류를 편애했으며, 하이 엘프들은 너무나도 폐쇄적이었다. 초월체들은 다른 반신족들과 의견이 맞질 않아 화합을 포기했었다.』
“…천사들이 인류를 편애했다고?”
『그렇도다. 편애라 해 봤자 너희 인간들이 개나 고양이를 예뻐해 주는 것에 가깝겠다만.』
동등한 생명체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돌보는 개념이었군. 지금은 아예 가축으로 전락해 버렸고.
정도현은 내친김에 궁금했던 걸 다 물어보기로 했다.
“천사들은 백 년 전쯤 최초의 차원 게이트에서 나왔다 들었어. 그놈들이 왜 나타났는지 혹시 알고 있냐?”
『…차원 게이트? 혹시 대균열을 말하는 게냐?』
“대균열?”
『짐이 태어난 세상을 멸망시킨 주범이다. 공간을 흡수하는 괴이한 현상이지.』
호루스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쭉 설명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대륙 각지에 원인 모를 현상, 통칭 ‘대균열’이 발생했다.
어떤 전조도 없이 공간이 일그러지고 도시와 땅 그리고 생명들이 삼켜져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대균열로 대륙은 점차 구멍이 뚫렸고 서서히 멸망을 향해 치달았다.
반신족들은 태양신께 기도를 올리며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의 창조주는 응답하지 않았다.
결국 반신족들은 힘을 합쳐 자력으로 대균열을 막아 보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대균열을 멈출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용족들은 포기하고 자신들의 둥지로 돌아가 긴 잠에 빠졌다. 그 뒤로 그들이 어떻게 됐는진 잘 모르겠군. 아마 대균열에 휩쓸렸겠지. 하이 엘프들은 태양신께서 하사하신 신목, 세계수가 균열에 먹혀 사라지자 미쳐 버렸다. 엘프들을 이끌고 스스로 그 균열로 들어갔지. 천사들은 천공의 섬이 균열에 휘말려 함께 사라졌다. 짐과 백성들은 선조들이 잠든 고향 땅을 지켰지.』
그러다 황궁에 대균열이 발생했고 호루스는 그대로 먹혀 버렸다.
의식을 잃었다 눈을 떠 보니 그는 인간과 악마가 있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전이됐다.
『짐은 정보를 얻고자 이곳의 인간과 악마들과 교류했다. 그러다 대악마한테 속고 말았지.』
영생을 이루게 해 준단 달콤한 말에 넘어갔다.
백성들을 잃고, 악마의 술수에 넘어가 형제에게 배신당해 양쪽 눈을 뽑히고 봉인까지 당했다.
그렇게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겨우 풀려났다.
“잠깐만. 넘어온 지 수백 년이나 됐다고?”
『그렇다. 봉인 당했어도 짐의 의식은 또렷했도다. 300년은 족히 되었지.』
“아깐 천사들이 대균열에 먼저 삼켜졌다지 않았어?”
『그래. 듣고 보니 이상하구나.』
천사들은 호루스보다 몇 년 빨리 균열에 먹혀 사라졌다.
하지만 천사들이 등장한 시기는 100여 년 전에 발생한 최초의 차원 게이트.
『알 것 같구나. 대균열에 빨려 들어간 시기는 별 상관없나 보군.』
“그게 무슨 소리야.”
『시간의 흐름이 다르단 거다. 천사들은 짐보다 먼저 균열에 먹혔지만, 이 세상의 시간으로는 약 100년 전에 나타났다.』
호루스와 그의 백성들은 천사들보다 몇 년 늦게 대균열에 휘말렸었다.
하지만 이쪽 세상 기준으론 수백 년 전에 도착했다.
즉, 최초의 차원 게이트에서 나타난 건 천사들이 아니라 호루스였다.
‘대균열과 차원 게이트가 연결되는 건 무작위란 거네.’
그렇다면 다른 반신족들도 언제 나타날지 모른단 건가. 아니면 호루스처럼 이미 도착했을 수도 있다.
모종의 이유로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걸지도.
정도현은 복잡한 정보는 뒤로 미뤄 뒀다. 당장 진상을 알 길은 없었으니까.
정도현은 호루스의 머리 위를 보며 말했다.
“그런데 반신족치곤 레벨이 너무 낮은 거 아냐?”
『무엄한 놈! 짐은 대악마에게 속아 언데드가 되어 버렸도다. 그 탓에 신성(神聖)을 대거 잃어 버렸지.』
“그럼…….”
『짐의 원래 레벨은 150이 넘었었다. 신격화까지 사용하면 모든 악마가 벌벌 떨었지.』
그럼 지금 저 신격화 상태도 전성기 시절에 비하면 한참 약해졌단 거군.
확실히 어마어마했다. 반신이라 자칭할 만하다.
“다행이네, 네가 언데드라서.”
『그게 무슨 소리냐?』
“안 그랬으면 내가 못 이겼을 거 아냐.”
『……?』
호루스는 정도현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정신이 나가 버린 건가 싶었다.
『실성한 거냐, 아니면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게냐?』
“둘 다 아닌데.”
궁금한 건 얼추 다 물어봤다. 슬슬 끝내야겠지. 템빨에 의존해야 하는 게 아쉽지만.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빛의 창, 브류나크를 꺼냈다. 거기에 브류나크의 세트 아이템들까지 모조리 착용했다.
[광명의 신 5세트 효과가 적용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10%만큼 상승합니다.]
[패시브 스킬, 「광명의 축복」이 적용됩니다.]
[언데드 몬스터와 전투할 시 모든 능력치가 100%만큼 상승합니다.]
[패시브 스킬, 「자동 추적」이 적용됩니다.]
[언데드 몬스터에게 브류나크를 던질 시 자동으로 추적해 공격합니다.]
[패시브 스킬, 「즉사」가 적용됩니다.]
[언데드 공격 시, 낮은 확률로 체력 여부와 상관없이 바로 사망합니다.]
레전드리 아이템들로 완전 무장 한 정도현. 그의 몸에서 찬란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호루스는 제 눈을 의심했다.
『어, 어떻게 인간이 신성을……?!』
신성은 정도현이 아닌 레전드리 장비들에서 흘러나온 거였지만 호루스 입장에선 그게 그거였다.
“자, 간다.”
정도현은 친절하게 예고하고 브류나크를 힘껏 던졌다.
그러자 세트 아이템 효과 중 하나, 「자동 추적」이 발동했다.
이제 정도현은 팔짱 끼고 가만히 구경만 해도 된다.
브류나크가 알아서 적을 섬멸해 줄 테니까.
카앙-!
호루스는 브류나크를 옆으로 쳐 내 멀리 날려 보냈다.
하지만 브류나크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우뚝.
빙빙 돌며 아래로 떨어지던 브류나크가 허공에서 정지했다.
녀석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창날을 돌려 호루스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맹렬한 기세로 다시 쏘아졌다. 살기를 감지한 호루스가 경악했다.
『이, 이게 무슨……!?』
파바바밧-!
새하얀 섬광이 호루스 주변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며 마구 찔러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