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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66화 (166/240)

166화

서부의 지배자, 사막의 무녀 ‘차연주’.

그녀는 부하들의 보고를 받곤 심란했다.

“동부에 북부, 이번엔 남부까지…….”

최근 암흑가의 거두가 연쇄적으로 죽거나 실종됐다. 더 무서운 건 범인이 누군지 모른단 거다.

그나마 이번 투기장 사건으로 어느 정도 윤곽은 드러났다만.

‘보름 만에 투기장의 챔피언을 꺾고, 투랑한테 도전한 선수, 초신성.’

얼굴은 공개했지만 당연히 어디서도 그런 얼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종의 스킬이나 아이템을 통해 뜯어고쳤겠지.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98레벨이면서 어떻게 그만한 힘을 지녔을까. 개인 특성?”

물론 초신성이 투랑을 해치웠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사건 당일, 관중석에 심어 뒀던 그녀의 부하들은 보았다. 대결이 시작되기 전, 토끼 가면을 쓴 여자가 경기장에 난입하는 걸.

괴한의 레벨은 무려 124. 투랑이 달려들었으나 속절없이 밀렸다고 한다.

“초신성과 토끼 가면을 쓴 여자. 그 두 명이 한패일 가능성도 있어.”

관중석의 결계가 무너지면서 부하들도 관객들을 따라 밖으로 대피했다.

그래서 그날 승부의 행방은 당사자 외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얼추 짐작은 갔다.

‘그날 이후로 투랑은 자취를 감췄어.’

투기장도 문을 닫았고, 투견들은 제각기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게다가 투랑의 오른팔인 강유라마저 행방이 묘연했다.

투랑은 그날 가면 쓴 여자한테 패해 죽었으리라.

“여태 일들이 그 여자가 저질러 온 짓이라면…….”

다음은 그녀 차례일 확률이 농후했다.

악명 자자한 역귀보단 이쪽이 만만할 테니까.

하지만 자신을 얕잡아 봤다간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다.

이곳엔 어마어마한 군세가 집결해 있으니까.

그녀는 지하수를 탐사하던 중 지하 깊이 파묻힌 거대 유적지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먼 고대의 황제와 1만의 병사들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병사들의 시신을 개조해 자신의 수하로 삼았다. 다만 황제는 건들지 않았다.

그녀는 확신이 안 섰다.

황제의 시체를 언데드로 되살린들 자신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을지 없을지.

괜히 깨웠다가 큰 화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1만의 시체 병사들을 얻은 것으로도 충분한 수확이었으니까.

“끌고 나갈 수 없단 게 아쉽지만…….”

이상하게도 시체 병사들은 유적지 밖으로 나가라는 명령엔 따르지 않았다.

황제와 유적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사명이라 주장하듯이.

만약 병사들을 데리고 갈 수 있었다면 그녀는 서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까지도 장악했을지 모른다.

* * *

정도현과 신호영은 사막의 대도시에 입성했다.

그런데 대도시치곤 행인들 얼굴에 하나같이 활기가 없었다.

겉보기엔 크고 화려한 도시지만, 극소수만이 부를 독차지해서 살기 팍팍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물은 단연 최고의 자원.

신호영은 도시 중심지에 세워진 내성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안쪽에선 막대한 지하수를 끌어다 포도 농장을 가꾼다더군.”

“…포도 농장?”

“이곳 상류층이 포도주에 환장하거든, 바깥 사람들은 마실 물도 부족해서 고통받는데.”

척박한 사막에 포도밭을 가꾸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물이 소비될 터.

거기에 쏟아부을 물을 사람들에게 베풀었으면 좀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됐으리라.

신호영이 그렇게 중얼대며 마음에 안 든단 티를 팍팍 냈다.

“결국 마실 물이 부족한 게 원인이네.”

“아까 상점창에서 뭘 잔뜩 사던데. 물을 산 거야?”

“아니. 현실의 물건은 안 팔잖아.”

상점창은 오로지 아이템만을 취급한다.

그렇기에 식량이나 식수는 구매할 수 없다.

“대신 식수를 대체할 아이템은 팔지.”

“식수를 대체한다고?”

정도현은 아까 구매한 아이템을 꺼냈다. 활활 타는 불꽃처럼 생긴 화려한 열매였다.

“그게 뭐지?”

“사막의 불꽃.”

“…사막의 불꽃?”

낯선 명칭이었다. 신호영이 고갤 갸웃하며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사막의 불꽃] [재료 아이템]

- 모래사막에서 자라는 ‘썬 카투스’의 열매.

- 섭취 시 24시간 동안 갈증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한번 먹어 봐.”

신호영은 과일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사막의 불꽃이란 이름과 달리 수분을 잔뜩 함유하고 있었다.

촉촉하고 시원했다. 다만 맛은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미미한 단맛이 입속을 잠깐 맴돌다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이 열매의 진가는 맛에 있지 않았다.

[갈증에서 해방됩니다.]

[해당 효과는 24시간 동안 지속됩니다.]

타는 듯한 목마름이 싹 가셨다.

열매의 효능에 신호영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거 하나면 물 없이도 하루는 거뜬히 버텨.”

“신기하군. 이런 열매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정도현은 예전에 필드형 던전에 자주 들락거렸다. 하지만 그곳은 식수를 얻기 힘든 오지. 그런 곳에서 그는 며칠 혹은 일주일 이상을 버텨야만 했다.

대량의 물을 매번 챙겨 다니기 귀찮아서 이것저것 검색하다 이 열매를 찾아냈었다.

“이걸 도시에 잔뜩 풀 거야.”

“이곳 인구가 수십만 명은 될 텐데?”

“농장을 만들면 돼. 선인장 하나에 열매가 수십 개씩은 열리니까.”

“그걸 키우는데도 시간이 걸리잖아?”

싹을 틔우고 꽃과 열매까지 맺으려면 하루 이틀로는 어림도 없다.

최소 년 단위로 기다려야 할 터.

그래서야 사막의 무녀를 어느 세월에 꾀어낸단 말인가.

“내가 아는 꼼수를 쓰면 십 분 안에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어.”

“그렇게 빨리 된다고?”

“보여 줄 테니 한적한 곳으로 가자.”

* * *

정도현과 신호영은 도시에서 조금 떨어진 모래 황야에 도착했다.

이 근방엔 오아시스나 마을도 없고, 아무런 자원도 나오지 않아서 사람들 발길이 뚝 끊긴 곳이었다.

정도현은 수십 개의 씨앗을 적당한 간격으로 심었다. 그런 다음 물뿌리개로 어떤 액체를 뿌려 줬다.

물치곤 상당히 시퍼렜다.

잠시 뒤, 모래가 들썩이며 싹이 텄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쑥쑥 커지더니 공처럼 동그란 선인장이 되었다.

꽃이 활짝 피고 그 아래로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마력 포션을 물 대신 뿌리는 녀석은 세상에 너밖에 없을 거다.”

“영양제 놓는다고 생각해.”

정도현과 신호영은 막 자란 열매를 수확해 땅에 다시 묻었다.

선인장 하나 키우는 데 얼추 중급 마력 포션 한 병이 필요했다.

돈을 내버리는 꼴이었다.

그렇게 수십 분이 지나자 황량했던 대지에 수천 개의 선인장이 솟아났다.

멀리서 보면 작은 선인장 숲이 생겨난 것처럼 보이리라.

“시민들한테 이 열매를 어떻게 나눠 줄 건지가 문젠데…….”

신호영이 그렇게 중얼댔다.

식수를 대체할 자원이 나타났다고 하면 사막의 무녀가 가만히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사람들이 열매를 못 먹도록 짓밟겠지.

“소문을 내서 알아서 찾아오게 만들자. 이곳 위치도 알려 주고.”

“뭐?”

기껏 수천 개의 포션을 쏟아부어 일궈 냈는데 위치를 공개한다고?

그럼 사막의 무녀가 필시 병력을 보낼 터.

여길 강제로 점거하고 열매를 따러 온 사람들에겐 돈을 걷겠지.

그럼 달라질 게 없었다. 오히려 나쁜 놈들 배만 불려 주는 꼴이다.

“그러지 못하게 막아야지.”

“음…….”

“계속 쫓아내다 보면 웃대가리가 직접 움직이지 않겠어?”

너무 단순무식한 접근법이었지만, 사막의 무녀를 불러낼 뾰족한 수도 따로 없었다.

신호영은 어쩔 수 없이 고갤 끄덕였다.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도시에선 웬 열매에 대한 소문이 파다했다.

그 열매를 먹으면 하루 내내 물 한 모금 안 마셔도 멀쩡하단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에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사기일 게 뻔했다.

그런데 며칠이 더 지났는데도 그 헛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풀려져서 돌아다녔다.

도시 밖으로 나가 수십 분만 걸어가면 소문의 열매가 선인장에 주렁주렁 열려 있단다.

게다가 다음 날이 되면 수확했던 열매가 또다시 자라 있단다. 심지어 선인장들도 짐승들이 새끼를 치듯 날마다 불어났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사람들이 그딴 헛소문을 믿는다고?”

“그, 그렇습니다. 식수를 사러 오는 주민들도 점점 줄었습니다.”

심지어 몇몇 상인들은 그 소문의 열매를 잔뜩 따 와서 시장에 내다 팔기까지 했다.

식수에 비하면 헐값이라 시민들은 너도나도 돈 주고 사 먹었다.

“쯧. 그딴 사기꾼들 상술에 홀라당 넘어가다니. 대가리에 든 게 없는 개돼지들 같으니라고.”

사막의 무녀를 따르는 하부 조직의 간부가 혀를 찼다.

안 봐도 사기꾼들이 퍼트린 거짓말일 게 뻔했다. 얼마 못 가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마냥 거짓말인 건 아닌 듯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열매가 진짜라고?”

“실은 제 아내가 어제 그 열매를 사 와서 아들한테 먹였다는데…….”

부하 직원이 솔직하게 털어놨다.

열매를 먹은 아들은 여느 때와 달리 뙤약볕 아래에서 신나게 뛰놀았다고.

그런데도 아주 쌩쌩했단다.

그의 아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열매를 먹은 몇몇 아이들도 똑같다고 했다.

“그 열매 하나만 사 와 봐.”

“아, 알겠습니다!”

간부는 부하에게 지갑을 던져 주며 말했다.

부하는 헐레벌떡 시장으로 뛰어가 어렵사리 열매를 사 왔다.

과연. 소문대로 타오르는 불꽃을 빚어서 만든 것 같았다.

간부는 열매를 요모조모 살펴보다 눈을 크게 떴다.

“…이거 아이템이잖아?”

일반인은 안 보이겠지만 그의 눈에는 열매의 정보가 똑똑히 보였다.

보아하니 던전에 자생하는 이계의 과일 같았다.

그럼 도시 근처에 게이트 붕괴가 발생했단 소린가?

아니. 그건 불가능하다.

‘도시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다면 관리국이 눈치챘겠지.’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심었단 소리.

선인장이 한두 그루도 아니고 수천, 수만 단위로 자랐다면 개인이 벌일 만한 일은 아니다.

분명 조직 단위로 움직였겠지.

“대체 누구 짓이지?”

이 도시는 사막의 무녀가 꽉 쥐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이템을 퍼트린다?

사막의 무녀에겐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으면 소식이 일파만파 퍼졌을 터.

‘상부에서 여태 말이 없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상부에서 한 일이거나, 이번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거나.

하지만 사건의 규모로 볼 땐 후자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사막의 무녀가 이 열매를 퍼트렸단 결론이 남는다.

‘하지만 굳이 왜?’

혹시 맛이 특출 난가?

아삭.

한 입 먹어 봤지만 별로 달지도 않고 밍밍했다. 시원한 맛은 있지만 돈 주고 사 먹을 정도까진 아니다.

그의 눈에 갈증이 해소됐다는 알림이 떠올랐다.

“쯧. 이래서 식수를 안 샀군.”

그는 무녀님의 판단이 이해가 안 됐다.

이런 유용한 아이템을 시민들에게 헐값으로 푼 이유를 모르겠다.

소문을 들어 보면 아무나 가서 열매를 따오는 것 같던데. 그가 그렇게 중얼댈 때.

지이잉-!

문자가 날아왔다. 그는 내용을 확인하곤 눈을 부릅떴다.

“…뭐야 이게?”

상부에서 지시를 내렸다.

소문의 열매가 시민들에게 퍼지지 못하도록 막고, 열매가 열리는 곳을 점거하라고.

그는 그제야 눈치챘다. 이번 사태는 상부에서 주도한 게 아니었음을.

“그럼 어떤 새끼들 짓이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가.

남자는 부하들을 소집한 뒤 도시 밖으로 향했다.

* * *

또 며칠이 지났다. 사막의 무녀는 점조직들이 올린 보고를 듣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또 수호자들한테 당했다고요?”

“며, 면목 없습니다.”

갑자기 발견된 수만 그루의 선인장.

거기서 자라는 열매 때문에 식수의 판매량이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훨씬 싸고 효율도 좋은 열매가 있는데 누가 물을 사 먹겠는가.

소식을 접한 사막의 무녀는 수하들을 시켜 그곳을 무력으로 점거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실패했다.

그곳을 지키는 두 명의 수호자들 때문이었다.

“…고작 두 명한테 수백 명이 당했다니.”

그중에는 간부급도 여럿 섞여 있었다.

다행히 살아서 돌아오긴 했지만, 심한 내상으로 병상에 드러누운 이들이 태반이었다.

‘설마 그자들인가?’

수호자들은 운둔자의 로브로 모습을 감췄다.

사막의 무녀는 수호자가 두 명인 게 마음에 걸렸다. 어쩌면 그들이 남부의 투랑을 처치한 자들일지 모른다.

“무녀님, 이제 어쩌면 좋겠습니까? 싸울 만한 인력이 거의 안 남았습니다.”

“…그 둘을 여기로 데려오세요.”

“이곳으로 말입니까? 하지만…….”

그들이 순순히 따라오겠는가. 며칠을 치고받고 싸웠는데. 함정이라 생각할 게 뻔했다.

하지만 차연주는 비릿하게 웃었다.

“제 예상이 맞으면 순순히 따라올 겁니다. 그들의 목표는 절 만나는 걸 테니까요.”

누군진 몰라도 이곳에서 처리해 주겠다.

여기엔 1만의 병사들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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