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55화 (155/240)

155화

A구역. 사람들에겐 낙원의 도시라 불리는 곳.

하지만 거긴 낙원 따위가 아니었다.

신의 자손들에게 잡아먹힐 인간들만 따로 모아 둔 일종의 사육장이었다.

“왜 1급 시민들만 한 곳에 따로 모아 놓는 거지?”

“관리하기 편한 것도 있고, 유전자 보존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1급 시민끼리 자손을 낳으면 그 아이도 1급일 확률이 높거든.”

물론 2급이나 그 아래 등급도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즉시 낙원에서 추방된다.

반대로 하위 구역에서 기적과도 같은 확률을 뚫고 1급 시민이 태어날 때가 있다.

그러면 그 아이는 태양신께 선택받았단 명목으로 교단이 회수해 낙원으로 올려보낸다.

부모들은 자식의 앞날을 축복해 준다. 장성하면 잡아먹히는 줄도 모른 채.

“낙원의 도시에 거주하는 자들은 세 부류다.”

신의 자손, 영광의 일족. 그리고 잡아먹힐 운명을 타고난 가축들.

영광의 일족은 신의 자손을 대신해 낙원이란 이름의 농장과 가축들을 철저히 관리한다.

“사람들이 잡아먹히는 건 영광의 일족 가주들과 원로회만 알고 있지.”

“넌 어떻게 알았는데?”

“내가 어렸을 적 호기심에 가문의 지하 창고를 들어간 적이 있었다.”

잠긴 문을 여는 것쯤은 그에게 간단했다.

「만물상점」에서 만능열쇠와 기척을 감추는 은신 아이템을 파니까.

영광의 일족이라 돈은 썩어 넘쳤고, 신호영은 레벨 조건에 구애받지 않고 상점창에서 산 아이템을 전부 쓸 수 있었다.

그는 상점창의 힘을 빌려 저택의 지하 창고에 도달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숨겨 왔던 진실과 마주했다.

* * *

지금으로부터 삼십여 년 전, A구역 낙원의 도시.

슬슬 잠들어야 할 늦은 시각.

끼익.

문이 열리며 쪼그만 두 아이가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홀로 누워 있던 젊은 여인은 두 팔 벌려 그 아이들을 환영했다.

“우리 귀염둥이들. 오늘도 엄마랑 같이 자고 싶었구나?”

아이들은 신호영과 그의 여동생 ‘신세희’였다.

둘은 어머니와 함께 자고 싶어서 그녀의 침소로 쫄래쫄래 왔다.

원래는 엄격한 아버지가 있어서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어젯밤 장로들과 함께 저택을 나섰다.

신의 자손들의 호출을 받고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아마 며칠은 돌아오지 못하겠지.

“난 혼자 잘 수 있는데… 세희가 엄마랑 같이 자고 싶다고 떼를 써서…….”

“그래, 그래. 우리 호영이 참 착한 오빠네?”

어머니는 변명하는 신호영이 귀여웠는지 머릴 쓰다듬어 줬다.

‘불쌍한 내 아들.’

신호영은 언젠가 가주 자릴 물려받기 위해 매일같이 혹독한 수련을 견뎌야만 했다.

그런데 기특하게도 그녀에게 힘들다는 불평 한마디 한 적 없었다.

고생하는 아들에게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이 정도뿐이었다.

어머니와 사이 좋은 남매는 어제처럼 침대에 다 같이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러다 신세희가 막 떠올랐단 표정으로 말했다.

“엄마, 엄마. 나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뭔데?”

“아빠의 지하 창고엔 뭐가 있는 거예요?”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신호영은 그녀의 안색이 바뀐 걸 눈치채곤 고갤 갸웃했다.

그녀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곤 금세 표정을 부드럽게 풀었다.

“우리 딸, 그건 갑자기 왜?”

“오빠는 나중에 가주가 되니까 들어갈 수 있는데 난 안 된대. 나도 뭐 있는지 보고 싶은데…….”

신세희가 칭얼대자 어머니는 흘끗 신호영을 쳐다봤다.

긁어 부스럼이라고, 동생한테 괜한 소릴 해선.

그도 잘못한 걸 알았는지 슬그머니 고갤 돌려 어머니의 눈길을 피했다.

어머니는 어떻게 수습하면 좋을지 고민하다 결국 입을 열었다.

“세희야, 호영아. 엄마가 아는 만큼 말해 줄게. 대신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자, 약속.”

“정말?”

신호영과 신세희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어머니와 약속했다. 평생 비밀로 간직하겠다고.

“거기엔 선물이 보관되어 있단다.”

“선물?”

“누구한테 주는 건데요?”

“그야 신의 자손님들이지.”

“와!”

그 말에 신세희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어떤 선물일지 궁금해 죽겠단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도 자세한 건 몰랐다.

지하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오로지 가주뿐이니까.

“어떤 건데요?”

“…글쎄, 엄마도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 미안해, 우리 딸.”

어머니가 웃으며 꼭 껴안았지만, 신세희는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말한 탓에 궁금증만 더 커졌다.

신세희는 고갤 휙 돌려 신호영한테 말했다.

“오빠는 좋겠다. 나중에 성인식 치르면 아빠랑 같이 지하 창고에도 들어간다며.”

“…….”

천진난만한 그녀의 투정에 신호영은 속으로 울컥했다.

그는 가주가 되고자 피땀 흘리며 수행을 받았다.

하지만 신세희는 그와 달리 기본적인 심법 수련만 하고 말았다.

그녀는 「태양신공」을 대성하기엔 육신이 부적절했으니까.

그녀는 몇 년째 날개 발현조차 해내지 못했고, 아버지나 그와 달리 눈동자도 하나만 금색으로 변해 짝짝이가 되고 말았다.

그것 때문에 세희가 펑펑 울었었지.

‘후… 내가 참자.’

아직 한참 어린 애다. 쟤가 뭘 알겠어.

신호영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화를 추슬렀다.

물론 이 남매는 끽해야 두 살밖에 차이 안 났다.

다음 날 늦은 오후.

오늘도 고된 수련을 끝마친 신호영이 제 방에 누워 휴식을 취했다.

똑똑.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쉬는 시간에 문을 두들길 수 있는 건 저택 안에 몇 없었다.

그는 누군지 예상이 갔다.

“왜?”

끼익.

문이 반쯤 열리며 신세희가 머릴 빼꼼 내밀었다. 그녀는 그를 보며 배시시 웃는다.

저건 뭔가 부탁할 게 있을 때 곧잘 짓는 그녀 특유의 표정이었다.

“오빠, 나 부탁이 있어.”

“뭔데.”

“그게, 어제 엄마가 말했던 선물 있잖아…….”

“야, 그거 엄마가 말하지 말랬잖아.”

신호영이 기겁하며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저택을 돌아다니는 하인이 엿듣기라도 했다간 어쩌려고.

그럼 아버지 귀에 바로 들어갈 거다.

어떻게 알아냈냐고 추궁당하겠지.

신세희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했는지 고갤 끄덕이며 목소릴 바짝 낮췄다.

“오빠, 나 지하 창고에 들여보내 주면 안 돼?”

“…뭐?”

“선물이 뭔지 잠깐 보고 나올게.”

여동생의 부탁에 신호영은 말문이 막혔다.

지하 창고는 가주 외엔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금단의 구역.

신호영은 혼내듯이 그녀를 설득했다.

“너 제정신이야? 그러다 들키면 어쩌려고?”

“오빠 능력이면 안 들킬 수 있잖아. 응?”

그렇다. 그녀 말대로 그가 마음만 먹으면 열쇠 없이도 남몰래 지하 창고 문을 열 수 있다.

그에겐 「만물상점」이 있으니까.

게다가 「만물상점」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와 신세희가 유일했다.

아버지가 며칠 자릴 비운 지금이라면 완전 범죄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건 다른 거였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건데?”

“그치만 궁금한걸…….”

신세희가 울 것 같은 눈으로 칭얼댔다. 하지만 신호영은 단호히 고갤 내저었다.

“아버지가 나한테 누누이 말했어. 다른 곳은 몰라도 지하 창고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성인이 된 뒤에 같이 들어가자고 약속했단 말이야.”

“…응, 미안해.”

단박에 거절당한 신세희는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녀가 힘없이 방을 나갔다.

신호영은 애써 모른 척 침대에 드러누웠다.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다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래, 아직 창고에 들어가면 안 돼.’

아버지랑 약속했잖아. 세희의 부탁을 들어주면 그걸 어기는 거야.

난 잘못된 게 아니야.

신호영은 그렇게 생각하며 죄책감을 지웠다.

“….”

몇 차례 몸을 뒤척였다.

이상했다. 분명 고된 수련으로 몸이 피곤했는데 잠기운이 싹 달아났다.

그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난 차기 가주니까 조금 일찍 들어가도 괜찮겠지?”

그래, 조금 구경한다고 선물이 닳겠어?

여동생이 뿌린 호기심이 싹을 트고 급속도로 머릿속에 퍼져 나갔다.

이젠 그도 지하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서 못 배길 지경이었다.

그는 「만물상점」에서 잠입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구매했다.

모아 뒀던 용돈이 날아갔다.

그가 상점창을 닫으려다 멈칫했다.

‘세희도 데려갈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야.

자신은 차기 가주다.

훗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주에 오를 몸이었다.

그러니 지하 창고에 조금 일찍 들어가는 건 큰 문제가 아닐 터.

하지만 세희는 아니다. 그녀는 원래 발 들여선 안 된다.

“…에휴.”

기껏 보고 와서 얘기해 주면 혼자만 구경했다면서 치사하다고 투덜대겠지.

* * *

자정이 훌쩍 넘어 모두가 잠든 야심한 시각. 신호영과 신세희는 조용히 방에서 나왔다.

둘은 큼직한 은신용 망토 하나를 함께 뒤집어쓰곤 아버지의 집무실로 향했다.

“오빠, 고마워.”

“쉿.”

투명 망토는 모습과 발소리를 감춰 주지만, 목소리는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가 조용히 하라며 주의를 주자, 신세희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죽여 웃었다.

그렇게 둘은 몇 분을 걸어 아버지의 집무실 앞에 도착했다.

역시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열쇠도 아버지가 갖고 있을 터.

하지만 신호영은 엉뚱한 열쇠를 꺼냈다.

[일회용 만능열쇠를 사용했습니다.]

찰칵.

잠금이 해제되며 문이 열렸다.

둘은 집무실로 들어간 뒤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후…….”

둘은 갑갑하던 투명 망토를 벗으며 숨을 골랐다.

긴장감에 손바닥이 땀으로 끈적였다.

신세희는 신호영과 달리 아버지의 집무실엔 처음 들어와 봤다.

그녀가 구석진 벽을 가리켰다.

거기엔 또 다른 쪽문이 있었다.

“저기야?”

“그래.”

신호영은 다시 500만 원짜리 만능열쇠를 써서 잠금을 풀었다.

그러자 지하로 연결된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쪽에서 서늘한 공기가 솔솔 풍겨 왔다.

어두컴컴해서 한 치 앞도 잘 안 보인다. 신호영은 마력 랜턴을 들고 앞장섰다.

“안 넘어지게 발밑 조심해.”

“응.”

계단은 한참이나 아래로 이어졌다.

신세희가 못 참겠는지 입을 열었다.

“오빠, 얼마나 더 가야 해?”

“…거의 다 왔어.”

신호영은 아버지와 함께 지하 계단을 내려가 본 적 있었다. 다만 밤에 와 본 적은 처음이었다.

으스스한 분위기라 신호영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었다.

정작 신세희는 탐험의 두근거림이 앞서는지 긴장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장장 5분 가까이 걸어 내려간 그들은 마침내 도착했다.

이번엔 거대한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 안이 지하 창고다.

아버지는 늘 이 앞에서 그를 돌려보낸 뒤 혼자서만 들어가셨다.

신호영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만능열쇠를 꺼냈다.

“…그럼 연다?”

“응.”

만능열쇠가 가루로 변해 사라졌다.

동시에 굳게 닫힌 철문이 서서히 열렸다.

신호영이 팔을 쭉 내밀며 안쪽으로 불빛을 비췄다.

“으… 추워.”

지하 창고 안은 너무나 춥고 싸늘했다.

한겨울처럼 허연 입김이 나오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마치 거대한 냉장고 안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둘은 반사적으로 마력을 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신세희는 창고 내부를 두리번대며 중얼댔다.

“…그런데 선물 상자는 어딨어?”

선물 상자 대신 복잡한 기계 장치와 유리관들만 좌우로 길게 놓여 있었다.

신호영은 가장 가까이 있는 유리관에 다가가 그 안을 들여다봤다.

“……!”

유리관은 희뿌연 액체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기괴한 무언가가 액체 속에 둥둥 떠다녔다.

신세희도 그와 함께 유리관 내부를 확인했다. 그리곤 흠칫했다.

연분홍색, 주름이 잔뜩 잡힌 반원 모양 덩어리. 마치 커다란 호두 같았다.

하지만 둘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저건 호두 같은 게 아니란 걸.

뒤늦게 그것의 정체를 깨달은 신호영.

그는 뒷걸음질을 치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 이거….”

사람의 뇌야?

그가 예전에 보았던 과학책의 삽화랑 거의 흡사했다.

징그러워서 구역질이 절로 올라왔다.

이런 게 왜 보관되어 있단 말인가.

“오, 오빠… 이거…….”

그때, 신세희가 벌벌 떨며 유리관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엔 ‘지혜의 열매’란 글자가 적혀 있었다.

‘지혜의 열매라고?’

신호영은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열매라 은유했다면 저걸 먹는다는 소린데.

누가 먹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신의 자손들.’

어머니가 말했던 선물은 사람의 뇌였다.

그는 덜덜 떨며 여동생을 쳐다봤다.

그녀 역시 신호영 못지않게 두려운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당부했다.

“세, 세희야. 오늘 본 건 비밀이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할 수 있지?”

“어, 어? 으응…….”

신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겨우 고갤 끄덕였다.

신호영도 따라서 울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여동생을 달랬다.

그래, 우리 둘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 거야.

끼익-!

남매는 힘을 합쳐 철문을 닫곤 도망치듯 내려온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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