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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54화 (154/240)

154화

정도현이 검강을 내뿜었다.

아직 레벨이 부족해 불완전하지만, 철혈의 여제 때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의 괄목할 성장에 신호영은 감탄했다.

‘몇 주 만에 더 강해졌다고?’

정도현의 레벨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는 그간 내실을 다졌다.

우선 능력치를 올리는 영약을 꾸준히 먹었다.

거기다 다른 무공들의 이치를 정리해, 검강을 보다 자세히 이해하고 다루는 연습도 했다.

그러자 검강의 마력 효율이 개선됐다.

「검강」 스킬북을 사용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깨달음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스킬 위력이 오른다니, 참 신기하다니까.’

만류귀종. 모든 물줄기는 결국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하나로 합쳐진다.

무공들 역시 그러했다. 정도현은 무공의 오묘함을 찬양하며 검을 휘둘렀다.

후우웅-!

그저 칼 한 자루일 뿐인데 태산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콰앙-!

검을 주먹으로 받아친 박태오.

섬뜩한 소리와 함께 팔이 역방향으로 꺾였다. 허연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크윽!”

박태오는 부러진 팔에 마력을 보내 재생시킨 뒤, 다급히 반대쪽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레벨 낮은 애송이라 방심했는데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 제대로 안 싸우면 역으로 당할 것 같았다.

‘시간 동결!’

박태오의 비전 주문이 정도현의 시간 흐름을 늦췄다.

“음?”

정도현도 몸이 느려졌음을 인지했다.

단순히 속도만 느려진 게 아니다.

‘육체의 반응이 늦어.’

평소에는 그의 생각에 맞춰 근육들이 즉각 움직였는데 지금은 좀 굼떴다.

시간으로 환산하면 찰나에 불과했다.

그러나 진검승부에서 그 차이는 꽤 치명적일 터.

“뒈져라!”

박태오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반응 속도가 느려졌으니 공격이든 방어든 분명 허점이 생기겠지.

“정도현, 조심해라!”

신호영이 그렇게 외치며 경고했다.

그러자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진규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형씨, 쟨 걱정할 필요 없어.”

“뭐?”

“표정을 잘 보라고. 태연하잖아.”

파바밧-!

정도현이 자신의 몸 곳곳을 손가락으로 찔러 혈도를 자극했다.

그러자 체내의 마력 흐름이 빨라졌다.

[마력의 흐름을 강제로 가속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효과가 끝나면 24시간 동안 능력치가 감소합니다.]

느려진 신체 반응이야 강제로 끌어 올리면 그만.

선천진기를 끌어내지 않고도 강해질 방법을 모색하다 그가 고안해 낸 스킬이었다.

정도현의 대처법에 신호영은 눈을 부릅떴다.

점혈을 저런 식으로 응용할 수 있다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카앙, 콰아앙!

정도현의 반응 속도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더 빨라졌다.

“이, 이게 무슨……?!”

시퍼런 검강이 소나기처럼 날아든다.

박태오는 기겁하며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정도현이 집요하게 따라가며 칼을 휘저었다.

서걱, 촤악!

칼날이 몸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살점이 뜯기고 유혈이 낭자했다.

비장의 주술이 막혀 버린 박태오가 할 수 있는 건 허우적대며 두들겨 맞는 것뿐이었다.

“…….”

신호영은 할 말을 잃었다.

싸움은 일방적이었다. 다 큰 어른이 애랑 놀아 주는 수준이지 않은가.

‘한 달 만에 저렇게나 강해지다니.’

지난번 정도현과의 싸움에서 그는 도망쳤었다.

하지만 그땐 「태양신공」을 쓰지 않았다. 만약 썼더라면 자신이 이겼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사력을 다해도 이길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섰다.

얼추 계산하면 승산은 반절 정도.

아니, 그보다 더 낮을지도 모른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정도현의 경이로운 성장 속도는 두려웠지만, 한편으론 희망을 선사했다.

순조롭게 성장만 한다면 정도현은 플레이어들의 정점에 설 수 있을지 모른다.

그가 수십 년간 헤맸던 난관을 헤쳐 나가 종착점에 도달할 수 있겠지.

콰앙-!

그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사이, 정도현이 마무리 일격을 꽂았다.

박태오는 전신이 짓이겨져 시뻘건 고깃덩이처럼 변해 있었다.

그의 다리가 풀리며 바닥을 뒹굴었다.

“끄으…….”

흡혈귀답게 꾸역꾸역 버티며 재생하려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권속.

보스 몬스터 철혈의 여제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세포 단위로 뭉개진 육체가 조금씩 생명력을 잃어 갔다.

죽음을 직감한 박태오는 어떻게든 살고자 버둥댔다.

“안 돼… 난 복수를…….”

그는 살해당한 연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복수를 끝마치기 전까진 원통해서라도 눈을 못 감겠다.

그런 그를 보며 정도현이 말했다.

“내가 죽였어.”

“…뭐?”

“철혈의 여제, 내가 죽였다고. 죽기 전에 알려는 줘야 할 것 같아서.”

“……!”

박태오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범인이 눈앞에 있었을 줄이야.

뿌득-!

그가 이를 갈며 죽일 듯이 노려봤다.

손을 뻗어 정도현의 목을 움켜쥐려 했으나 그의 팔은 이미 핏덩이가 됐다.

철퍽-!

팔이 제 형태를 잃고 물풍선처럼 터져 바닥에 주르륵 흘러내렸다.

“망할, 개자식…….”

박태오가 피눈물을 줄줄 흘렸다.

원수가 코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니. 답답함에 복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정도현은 그를 편히 보내 주고자 칼을 들어 올렸다.

푹-!

심장을 찌르자 박태오의 숨결이 사그라들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박태오의 신체 능력은 폭주한 철혈의 여제보다 좀 더 강했으나 경험치는 그보다 적게 줬다.

피지컬만 좋다고 강한 게 아니다.

박태오는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차라리 수인으로 변하지 않고, 마법사로서 덤비는 편이 더 까다로웠으리라.

게다가 정도현 역시 이전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으니까.

“구해 주러 와 줘서 고맙다, 정도현. 강새벽이 연락해서 온 건가?”

“어, 걔 밥도 안 먹고 너만 기다리더라.”

“…그 멍청이가.”

정도현은 그를 쓱 훑어보더니 상급 포션을 하나 던져 줬다.

그러자 신호영이 고갤 저으며 돌려줬다.

“고맙지만 난 못 쓴다.”

“왜? 돈 안 받을 거니까 그냥 마셔.”

“아니. 개인 특성 페널티 때문에 내 돈으로 구매한 아이템이 아니면 써도 효과가 없다.”

그러니 정도현이 회복 포션을 줘도 신호영에겐 맹물이나 다름없었다.

정도현은 아쉽단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럼 부활 아이템도 너한텐 효과가 없겠네.”

“그럴 거다.”

신호영이 고갤 끄덕였다.

플레이어가 죽으면 시스템은 24시간의 유예 기간을 준다.

그동안엔 시체도 플레이어로 취급되며 개인 특성의 페널티 역시 유효했다.

즉, 신호영은 부활 아이템으로 살릴 수 없었다.

“몸은 괜찮냐?”

“거의 다 나았다. 「태양신공」을 쓰면 재생력이 크게 올라가니까.”

“근데 왜 나랑 싸울 땐 안 썼냐.”

“태양교 때문이다.”

“태양교?”

신호영이 설명했다.

「태양신공」은 태양의 기운을 받아들여 신체를 강화하는 무공.

“「태양신공」을 쓰면 특유의 마력이 발산된다. 태양교는 그걸 포착해 날 추격해 왔지.”

“뭔 잘못을 했길래 교단이 널 추적하는데? 너 영광의 일족이라며.”

“그래서다. 난 A구역에서 추방된 후, B구역의 대성당에 유폐됐었다. 거기서 탈출했지.”

「만물상점」이 없었다면 아직도 그곳에 갇혀 살았을 것이다.

신호영은 설명을 이만 줄이고 뒷수습에 나섰다.

“시체는 불태우자. 남부 마탑도 박태오가 죽은 걸 알아챘을 거다. 마탑의 추적대가 여기로 오겠지.”

신호영이 박태오의 시신을 없애려고 발걸음을 옮길 때.

덥석.

정도현이 대뜸 그의 어깨를 붙잡고 멈춰 세웠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궁금한 게 더 있나? 그럼 일단 여길 뜨고 나서 얘기…….”

“내가 여기 왜 온 줄 알아?”

“…날 구하러 온 거 아닌가?”

“아니. 내 손으로 널 두들겨 패고 싶었거든.”

빠악-!

그가 그렇게 말하며 신호영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신호영이 비틀대며 몇 걸음 물러났다.

그는 뺨을 부여잡은 채 어처구니없단 눈으로 정도현을 쳐다봤다.

‘구해 준 게 아니라 손수 죽이러 온 거였어?’

그는 다급히 정도현을 설득했다.

“자, 잠깐… 좀 진정해라, 정도현.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리면 안 돼. 대의를 생각해 봐라! 우리끼리 싸워서 좋을 게 없어!”

“그런 건 난 잘 모르겠고.”

일단 좀 맞자.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달려들었다.

신호영은 다급히 경신술과 보법을 펼치며 거릴 벌렸다.

하지만 그건 정도현도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심지어 신호영보다 그가 더 능숙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마탑의 추격대가 여기로 오고 있을…….”

“그럼 빨리 맞고 끝내자.”

퍼억-!

정도현의 발차기가 상대의 옆구리에 벼락처럼 꽂혔다.

신호영은 순간 숨이 제대로 안 쉬어졌다. 그가 볼썽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컥… 자, 잠깐만…….”

쓰러진 신호영이 애처롭게 손짓했지만, 정도현은 그 위로 올라타 무자비하게 주먹을 갈겼다.

퍽, 퍼억!

신호영은 제대로 반격조차 못 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태양신공」의 힘을 쓴다면 얼추 비벼 볼 만하겠지만 그랬다간 마탑에 태양교까지 몰려올 터.

“한 번 죽여 버리려 했는데 못 살리니 봐준다.”

드디어 괴롭힘이 끝났다.

정도현이 일어나자 신호영은 힘없이 가드를 풀었다.

찢어진 살갗과 시퍼런 피멍으로 그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정도현이 왜 저렇게 팼는지 얼추 사정을 아는 진규현조차도 그가 불쌍해 보일 지경.

“…너무 심하게 팬 거 아냐?”

“저 정도면 하급 포션만 발라 둬도 하루면 나아.”

가해자는 당당했다. 이 정도면 정말 많이 참아 준 거니까.

마음 같아선 죽여 버린 뒤 경험치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다.

다만 강새벽, 그 여자애가 자꾸 눈에 밟혔다. 그 애만 아니었으면 확 죽여 버리는 건데.

‘살려 주는 대신 팍팍 뜯어내야겠어.’

「태양신공」. 얼핏 봐도 강력해 보이는 무공이었다. 혹시 모르니 익혀 두고 싶었다.

1원 상점에 검색해도 나오질 않으니 녀석한테 직접 배우는 수밖에.

정도현은 생각을 정리한 뒤 진규현한테 떠나자고 말했다.

“진규현, 저 녀석 은신처로 가자.”

“알았어. 이봐, 일어설 수 있겠어?”

“…문제없다.”

신호영이 끙끙대며 혼자 힘으로 힘겹게 일어섰다.

정도현은 마음에 안 든단 눈초리로 그를 째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많이 봐줬다.

팔다리 하나쯤은 뚝 부러뜨렸어야 했는데.

* * *

“아저씨!”

신호영이 무사히 돌아오자,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던 강새벽이 반색하며 달려와 안겼다.

그녀가 품에 매달리며 엉엉 울었다.

영영 못 보는 줄 알았으니까.

“흑… 얼굴은 또 왜 그래요…….”

“좀 고전했다.”

신호영은 수중에 돈이 얼마 없어 하급 포션으로 급하게 치료했다.

처음보단 낫지만, 얼굴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다.

신호영은 옆에 있는 사람한테 얻어맞았다고 얘기할 순 없어서 대충 얼버무렸다.

“아저씨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오빠.”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강새벽은 정도현한테 꾸벅 고개 숙였다.

자길 두들겨 팬 당사자한테 감사하다니.

신호영은 심란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신호영이 무사히 돌아오자 강새벽도 긴장이 풀렸는지 곤히 잠들었다.

신호영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 위에 이불을 덮어 줬다.

그런 뒤 고갤 돌려 정도현을 쳐다봤다.

“정도현.”

“뭐.”

“묻고 싶은 게 있다. 넌 왜 그렇게 강해지려는 거지?”

신호영은 줄곧 궁금했었다.

정도현은 각성한 지 겨우 1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100레벨을 코앞에 뒀다.

“그냥?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개인 특성 덕에 남들보다 앞서가기 쉬워서?”

“아니, 분명 강한 동기가 있을 거다. 그렇지 않고선 네 행보는 도저히 설명이 안 돼.”

상점창이 있단 것만으론 저렇게 빨리 성장할 수가 없다.

그도 해 봤기에 잘 안다.

강력한 의지와 목적이 수반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고행길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적당한 수준에 멈춰서서 타협하고 안주했을 터.

“그걸 왜 물어보는데?”

“네 목적이 그릇됐다면 막을 거다.”

“영웅 심리에 너무 취한 거 아냐? 날 이길 자신은 있고?”

정도현이 비꼬며 물어보자 신호영은 고갤 저었다.

“아마 내가 지겠지.”

“그런데도 싸우겠다고?”

“그래, 그게 힘을 지닌 자들의 책무니까.”

신호영이 진중하게 말하자, 정도현은 잠시 고민했다. 솔직하게 말할지 말지.

숨겨서 괜한 오해를 살 바엔 그냥 털어놓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세상을 좀 바꾸고 싶었어.”

그 말에 신호영이 눈을 반짝였다.

세상의 개혁. 자신과 유사한 목표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고 싶은 거지?”

“5급 시민으로 판정받고 F구역에 버려진 아이들을 많이 봐 왔어. 나도 그중 하나고. 그런 애들이 더는 생기지 않았으면 했어.”

“그래서 힘을 갈구했나?”

“그래. 나 같은 놈이 뭐라 말해도 윗놈들이 들어 주겠냐. 고레벨 플레이어는 돼야 듣는 시늉이라도 하겠지.”

신호영은 안도했다.

목적은 조금 다르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같았으니까.

“정도현, 네 바람을 이루려면 신의 자손들을 없애야 한다.”

“뭐, 그렇겠지.”

관리국과 교단 위에 더한 놈들이 앉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놈들을 끌어내려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신호영, 넌 신의 자손들을 없애는 게 목표냐?”

“그래, 그걸 위해서 지금껏 도망치며 살아남았다.”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뭔데? 그냥 조용히 숨어 살아도 되잖아. 굳이 힘든 길을 택한 이유가 뭐야? 책무니 뭐니 말고. 네 진심을 말해.”

이번엔 정도현이 궁금증을 풀 차례였다.

방금은 힘을 가진 자의 책무니 뭐니 말했지만, 그건 진심 같지가 않았다.

정곡을 찔린 신호영은 서글픈 표정으로 실토했다.

“…나한텐 여동생이 있었다. 그 애의 복수를 하고 싶었어.”

그는 자신의 과거를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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