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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52화 (152/240)

152화

정도현은 혹시 몰라 신호영이 준 휴대폰을 버리지 않았었다.

놈과 싸운 지도 거의 한 달은 됐다.

다시 만나길 고대했는데 드디어 녀석한테 연락이 왔다. 타이밍이 얄궃긴 했지만.

정도현은 곧장 전화를 받았다.

“이제 몸 다 나았나 보네. 밥은 먹고 다니냐?”

[정도현, 그새 또 한 건 터트렸더군.]

“지금 어디야, 우리 얼굴 좀 보고 얘기할까?”

대사만 놓고 보면 여자친구한테 말 걸듯 다정했지만, 실상은 죽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진정해. 너랑 싸우려고 연락한 게 아니니까.]

“그럼?”

[지금 곤란한 상황 아닌가?]

“곤란하다니, 뭐가?”

정도현은 무슨 소릴 하려나 싶어서 들어 봤다.

[몇 주 전에 철혈의 여제를 죽였잖아. 그래서 남부 마탑주가 이 잡듯이 구역을 뒤지고 있고.]

“뭐야. 그건 어떻게 알았냐?”

[예지로 봤다, 네가 철혈의 여제를 살해하는 광경을. 그새 많이 강해졌더군.]

그러고 보니 신호영 옆엔 예언자가 있었지. 정도현이 미간을 좁혔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남부 마탑주를 직접 건드리긴 껄끄럽겠지. 내가 대신 처리해 주마.]

“…네가?”

할아버지를 건드린 놈한테 손을 벌리라니. 썩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놈이 대신 처리해 준다면 그도 나쁠 게 없었다.

정도현은 얘기나 한번 들어 보기로 했다.

“뭐, 어떻게 처리할 건데?”

[남부 마탑주는 말로 설득될 녀석이 아니야. 널 죽이기 전까진 절대 멈추지 않겠지.]

그러니 제거해야만 한다.

정도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깐족거렸다.

“뭐 그리 구구절절 말해. 그냥 암살하겠단 거잖아.”

[그래. 너도 그럴 생각이었지 않았나?]

“…….”

정도현은 불쾌했다. 저 녀석 말에 반박할 수 없었으니까.

어설프게 설득하거나 협상하다 역풍을 맞을 바엔 그편이 더 나았다.

“근데 마탑주는 만만찮을 텐데. 너 혼자서 되겠어? 너 약하잖아.”

[괜찮다. 마법사 상대로 최적의 아이템을 갖고 있으니까.]

“하긴, 네 「만물상점」엔 없는 게 없겠지.”

[뭘 부럽단 듯이 말하고 있어. 너도 갖고 있으면서.]

신호영이 그렇게 말하자 정도현은 잠깐 멈칫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신성한 용의 구슬. 넌 그 아이템으로 퍼펫을 되살렸었지.]

“…….”

[그런데 부활 아이템은 여태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어. 능력자는 성녀가 유일했고. 상점창에서 팔긴 하는데 판매 가격만 100억이 넘는다. 그걸 갖고 있다는 건 너도 상점창이 있단 소리겠지.]

100억? 플레이어 한 명 살리는 데 그만한 돈이 필요하단 건가.

그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물론 죽은 자를 되살리는 기적에 비하면 싼 편이지만.

[걱정하지 마라. 이걸 퍼트리거나 약점 잡을 생각은 없으니까.]

“아, 예. 퍽이나 그러시겠지.”

수틀리면 언제든지 이용할 거면서.

정도현이 그렇게 이죽대자 신호영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이번 일을 도와줄 테니 너와 동맹을 맺고 싶다.]

“그놈의 동맹, 동맹. 대체 넌 뭘 하고 싶은 건데?”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을, 이 세상에서 해방시키고 싶다.]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도현은 이렇게 말을 돌리거나 질질 끄는 게 질색이었다.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봐. 도통 뭔 소린지 모르겠네.”

[정도현, 넌 시민 등급이 뭐라고 생각하지?]

“시민 등급?”

그거야 다 아는 상식 아니던가.

마력 적성 검사를 통해 마력 반응 수치를 매긴다.

반응 수치가 높을수록 플레이어가 될 확률도 높았다.

즉, 누가 더 우수하고 열등한지 가릴 수 있다.

‘꼭 등급이 전부는 아닌 것 같지만.’

정도현은 마력 반응 점수가 최하라서 5급 시민이었다.

플레이어가 되고선 3급으로 격상됐지만, 태생 등급은 꼬리표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5급인 그는 3급 이상의 시민과 법적으로 결혼할 수 없었다.

[그래, 플레이어가 될 확률이 높은 우수한 인간. 그게 관리국과 교단의 주장이지.]

“…주장?”

[그래, 실제로 시민 등급과 각성 여부는 연관성이 없다.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지.]

그게 거짓말이라고? 음모론 같은 이야기에 정도현은 귀를 의심했다.

“통계 자료로는 상위 구역에서 플레이어가 더 많이 태어났던데.”

[그야 상위 구역의 평균 수명이 훨씬 기니까. F구역은 아이들이 장성하기도 전에 죽어 버리는 경우가 부기지수잖아. 그리고 그 통계도 교묘하게 조작했다.]

“그렇단 증거는?”

[내세울 증거는 없다. 관리국과 태양교가 합심해서 감췄거든.]

“그럼 넌 그걸 어떻게 알아냈는데?”

정도현이 핵심을 찌르자 신호영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나는 낙원의 도시, 에덴에서 왔다.]

“낙원의 도시? 거긴…….”

[그래, A구역이지.]

“너, 1급 시민이었어?”

[1급 시민이면서 동시에 영광의 일족이다.]

1급 시민은 A구역의 낙원의 도시에서 생활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여기 내려와 있단 말인가?

정도현이 믿지 않자 신호영이 말했다.

[내 눈동자가 황금색인 게 증거다. 「태양신공」을 익히면 눈동자가 황금빛을 머금지. 신공을 대성하면 전신의 체모까지 황금색으로 바뀌고.]

“…태양신공? 그건 또 뭔데.”

[신의 자손들은 가장 먼저 굴복하고 충성한 영광의 일족에게 선물로 태양신공을 전수해 줬다. 난 그들의 후손이지.]

점점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신의 자손이니 영광의 일족이니 태양신공이니.

자기만 아는 얘길 줄줄 늘어놓았다.

[넌 F구역 출신이라 생소하겠지. 다른 구역 시민들은 학교나 교회에서 신의 자손과 영광의 일족에 대해 배운다.]

“5급 시민이라 미안하다, 됐냐?”

[비꼬는 게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편이 나아. 대부분의 시민들은 조작된 역사를 진실이라 믿고 있으니까.]

도화지에 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고치기 힘들지만, 아예 백지면 그려 넣기만 하면 된다.

“신의 자손은 뭔데?”

[태양신이 직접 창조한 종족이다. 교단의 벽화에 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지. 태양교의 성경에도 삽화가 있고.]

신호영은 신의 자손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간략히 묘사했다.

금발과 황금안, 백옥 같은 피부, 등 뒤에는 날개가 최소 한 쌍 이상 달려 있다.

“신의 자손들이 실존한다고?”

[그래, A구역 최심부가 그들의 거처지. 그들은 악마의 천적이기도 하다.]

“악마의 천적?”

[그래, 약 백 년 전에는 천사라고 불렸다더군.]

“천사?”

들어 본 적 없는 단어였다.

정도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도 그게 뭔지 모를 거다.

[태양교가 기록을 말살했거든.]

“그래, 천사인지 뭔지 하는 종족이 있다고 치고. 그럼 시민 등급은 도대체 뭔데?”

플레이어가 될 확률이 아니라면 왜 그걸로 계급을 매긴단 말인가.

그의 질문에 신호영이 숨겨진 진실을 밝혔다.

[시민 등급은 일종의 육질 등급이다.]

“육질 등급? 고기 말하는 거야?”

[그래,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등급을 매기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그게 뭔 헛소리야.”

그건 가축들이잖아.

정도현은 그렇게 반문하려다 뭔가를 깨달았다.

“천사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그래, 전부는 아니고 1급 시민만 잡아먹는다. 천사들 입맛엔 그게 가장 맛있을 테니까.]

정도현은 말문이 절로 막혔다.

[천사들은 백여 년 전에 열렸던 최초의 차원 게이트들 중 한 군데서 나왔다. 그들은 최초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몬스터로부터 인류를 지켜 줬지. 하지만 음습한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

천사들은 친근한 척 굴며 인간들의 호의를 샀다.

그러다 인류를 배신해 세상을 집어삼켰고, 모든 인류를 가축으로 삼았다.

최초의 플레이어들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 패했다.

[최초의 플레이어 중에 배신자가 몇 있었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나머진 전부 죽었지.]

“그 배신자들이 네 조상이냐?”

[그래, 나의 할아버지 혹은 아버지 세대지.]

신호영의 목소리에서 진한 혐오감이 느껴졌다.

[배신자들 때문에 인류는 가축으로 전락했다. 한낱 이계의 몬스터가 신의 자손을 자처하며, 팔십 년이 넘도록 세상을 지배해 왔다.]

“…그래서?”

[함께 이 세상을 해방시키자. 나 혼자선 불가능했다. 막막했지. 하지만 네가 도와주면 가능할지도 몰라.]

그에게선 사명감마저 느껴졌다.

정도현은 너무 갑작스럽게 알아선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너와 난 상점창을 갖고 있다. 꼭 운명 같지 않나?]

“그냥 우연이겠지.”

정도현은 까칠한 말투로 선을 그었다.

좀 충격적이긴 했지만, 신호영처럼 세상을 구하겠단 영웅 심리는 생기지 않았다.

그는 당장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게 더 급했다. 천사니 세상의 해방이니 하는 것들한테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들긴 하네.”

몬스터가 인류의 머리 꼭대기에서 군림하는 상황이. 정도현이 그렇게 중얼대자, 신호영이 알아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자 정도현이 새침하게 말했다.

“하지만 네 말도 전부 못 믿겠어. 지어낸 걸지도 모르잖아?”

[그래, 바로 받아들이기 힘들겠지. 내가 어떻게 하면 믿어 줄 거지?]

“일단 남부 마탑주부터 처리해. 자세한 얘기는 그다음에 나누자고.”

[알겠다. 며칠 안에 처리하고 다시 연락하마.]

놈에게 경험치를 양보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것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었다.

* * *

정도현과 통화를 끝낸 신호영.

그는 마탑주를 암살할 채비를 갖췄다.

그런 그를 강새벽이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아저씨, 진짜 괜찮겠어?”

“몸은 다 나았다.”

“그러다 또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회복된 지 며칠 안 됐으면서…….”

“위험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정도현은 반드시 같은 편으로 포섭해야만 한다.

상점창을 지닌 자들이 힘을 합치면 관리국과 지배층을 무너뜨리는 것도 꿈은 아닐 터.

‘내가 죽기 전에 이루지 못할 줄 알았다.’

그가 낙원의 도시에서 추방된 지도 어언 삼십 년이 넘었다.

추방될 당시에 느낀 배신감과 복수심은 이제 하얗게 불타 희미해졌다.

이제 그의 가슴에는 사명감과 오기만이 남았다.

그는 강새벽을 쳐다봤다.

그녀를 보니 죽은 여동생이 떠오른다.

생김새와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여동생도 죽기 전에 딱 저만했었지.

“아저씨, 제 말 듣고 있어요?”

“…걱정해 줘서 고맙다.”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

“갔다 오마.”

신호영 입에서 처음으로 고맙단 말이 튀어나왔다. 강새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약 삼 일이 지나도 못 돌아오면 정도현을 불러라. 그 녀석도 널 못 본 체하진 않을 거다.”

네겐 예지력이 있으니까.

그러자 강새벽이 고갤 저으며 말했다.

“안 어울리게 약한 소리 말고 꼭 돌아와요.”

“그래.”

강새벽은 낡은 휴대폰을 받아 들곤 생글생글 웃었다.

그에게 고맙단 말을 처음 들어서 들뜬 것이다.

그녀에게 배웅을 받은 신호영은 마탑주를 찾으러 나섰다.

그로부터 삼 일이 지났다.

강새벽은 방구석에 쭈그려 앉아 그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신호영은 돌아오지 못했다. 연락조차 없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터널처럼 공허했다.

그녀는 신호영이 준 휴대폰을 열어 정도현에게 연락했다.

* * *

“…….”

정도현은 강새벽의 연락을 받고선 신호영의 은신처로 왔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안 먹었는지 그녀의 얼굴은 핼쑥했다.

강새벽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우리 아저씨 좀 구해 주세요.”

“알겠으니까 일단 뭐 좀 먹어.”

정도현은 그녀를 위해 밥부터 차려 줬다.

1레벨 플레이어는 일반인이랑 다를 게 없었으니까.

꼬르륵.

음식 냄새가 퍼지자 강새벽의 뱃속에서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그녀는 완고했다.

아저씨를 구해 준다고 약속하기 전까진 밥을 안 먹겠다고 했다.

‘쪼그만 게 목숨 걸고 협박까지 하네.’

정도현은 기가 찼지만 일단 고갤 끄덕였다. 거절하면 극단적인 짓을 저지를 것만 같았으니까.

그는 깨작깨작 밥을 먹는 강새벽을 보며 정도현은 생각했다.

‘신호영.’

마탑주를 처리하겠다더니 도리어 본인이 당해 버린 모양이다.

‘진짜 병신인가.’

정도현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의 식사가 끝나자, 그는 가장 기본적인 걸 물어봤다.

“그런데 그 녀석 아직 살아 있는 건 맞아?”

“…네, 아저씨가 가기 전에 이 반지를 줬어요.”

강새벽이 은빛 반지를 보여 줬다.

해방단 간부들이 끼던 것과 똑같은 아이템이었다.

반지를 나눠 가지면 서로 어딨는지 알 수 있고, 파트너가 죽으면 알림이 온다고 했다.

“…두어 시간 전부터 한 곳에만 머물고 있어요.”

“그럼 붙잡힌 거 맞네.”

별수 있나. 답답하면 내가 뛰어야지.

“거기 어딘데?”

“…도와줄 거예요?”

“어. 놈한테 들을 게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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