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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49화 (149/240)

149화

쾅, 콰앙!

정도현과 철혈의 여제는 날아다니듯이 움직이며 격돌했다.

곳곳에서 충격파가 터졌다.

그 여파가 어찌나 강렬한지 결계가 흔들릴 정도였다.

그 사실을 눈치챈 철혈의 여제는 인상을 구겼다.

‘이러다 「피의 미로」가 무너지겠어.’

결계가 사라지면 바깥의 현실과 연결된다.

만약 정도현의 동료들이 살아 있다면 합공당할지도 모른다.

피라미 몇 놈 합세하는 것 가지고 왜 그렇게 유난 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집단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시하다 진짜로 죽을 뻔했었으니까.

‘얼마 못 갈 거야.’

결계가 깨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머리가 점차 지끈거렸다.

힘을 쓸 때마다 그녀의 본능이 이성을 야금야금 먹어 치운다.

“크워어어어!”

그녀의 입에서 멋대로 괴성이 튀어나왔다. 핏빛 손톱을 마구 휘둘렀다.

정도현은 침착하게 받아 냈다.

힘에서 밀리는데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안 느껴졌다.

콰앙, 쾅!

그녀의 연격을 받아 내고도 그는 자세가 무너지지 않았다.

눈빛도 흔들림이 없었다.

도저히 쓰러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철혈의 여제는 저도 모르게 조급해졌다.

“캬아아앗!”

철혈의 여제는 본능에 완전히 몸을 맡겼다.

스스스, 촤르륵-!

그녀의 손톱을 감쌌던 붉은 마력이 전신으로 번졌다. 마치 갑옷을 두른 모양새였다.

정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러면 마력 소모가 엄청날 텐데. 빠르게 승부를 보겠단 건가?’

이유는 얼추 알 것 같았다.

그녀의 전투 방식이 점차 단순하고 거칠게 변해 간다. 꼭 미쳐 날뛰는 짐승처럼.

‘본모습으로 변하면 스스로도 통제가 안 되는 거야.’

콰앙-!

분석하는 와중에 묵직한 펀치가 꽂혔다. 막았지만 뒤로 쭉 밀렸다.

손아귀가 찢어진 것처럼 얼얼했다.

핏빛 갑주를 걸치더니 그녀의 힘이 곱절로 세졌다.

도핑제를 썼는데도 버텨 내는 게 고작이었다.

‘110레벨 보스라 다르긴 다르네.’

잘못 맞으면 진짜 골로 가겠어.

그래서 더 흥분됐다. 그만큼 경험치도 많이 줄 테니까.

그래서 비장의 카드도 일부러 안 꺼냈다.

“……!”

정도현이 입꼬릴 씩 올리자, 철혈의 여제는 이성의 끈이 뚝 끊겼다.

쿠웅!

그녀가 개처럼 넙죽 엎드렸다. 그러더니 땅을 박차며 펄쩍 뛰어올랐다.

그녀는 마력을 집중시켜, 자신의 육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점을 억지로 뛰어넘었다.

콰직, 빠드득!

그저 움직이기만 했는데 팔다리 근육이 찢어지고, 뼈가 우지끈 부러졌다.

자멸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그녀는 뱀파이어.

망가지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몸을 수복했다.

정도현은 너무 빨라서 피할 수 없었다.

어설프게 피하려 시도했다간 크게 다칠 거다.

정도현은 정면으로 받아쳤다.

“…쿨럭!”

부드러움의 묘리를 이용해 충격을 외부로 발산했지만, 완벽하게 흘리진 못했다.

철혈의 여제는 아예 몸이 부서질 각오를 하고 돌진했으니까.

주룩.

그의 입에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나왔다. 옅지만 내상을 입었다.

“캬아아악!”

피 냄새를 맡은 철혈의 여제가 잔뜩 흥분해서 소리 질렀다.

강자의 피를 마시면 그녀는 한층 강해지니까. 정도현이 경험치에 목매는 것과 같았다.

“…역시 욕심이었나?”

콰앙-!

바닥을 깨부수며 다시 뛰어오는 철혈의 여제.

그런 그녀를 쳐다보며 정도현이 중얼댔다.

목소리에서 미련이 듬뿍 묻어 나왔다.

‘검기로는 저 갑옷을 깰 수가 없어.’

이대로 싸우면 진다. 어쩔 수 없지.

그는 경험치 욕심을 버렸다.

파스스-!

그의 검기가 반절 수준으로 짧아지더니 환하게 빛났다. 불완전하지만 틀림없는 검강이었다.

“……!”

그걸 본 철혈의 여제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저건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제 속도를 주체 못 하는 상태. 회피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콰지직-!

검기를 튕겨 냈던 핏빛 갑주가 한 방에 으스러졌다. 거기다 팔도 함께 찢겼다.

“캬아아악!”

고통 섞인 비명이 터져 나온다.

잘려 나간 팔은 빠르게 자랐으나, 팔을 감싼 마력은 아깝게 허공으로 증발했다.

쿠당탕-!

검강에 맞고 튕겨 나간 철혈의 여제가 땅바닥을 구르다 겨우 균형을 다잡았다.

“크르르…….”

뜨거운 맛을 본 그녀는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바짝 엎드린 채 경계심을 드러냈다.

정도현에겐 썩 좋지 않았다.

‘검강은 마력 소모가 너무 커.’

철혈의 여제가 아무리 이성을 잃었어도 마력 포션을 마시게 놔두진 않을 거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앙-!

정도현이 땅을 박찼다. 이번엔 그가 공격에 나섰다.

그가 기세등등하게 달려오자, 철혈의 여제는 곧장 거릴 벌렸다.

‘또 시간을 끌려고?’

그녀는 정도현이 먼저 움직이는 걸 보더니 이렇게 판단했다.

놈이 승부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니 시간을 끌면 자신이 유리해진다.

날카로운 직감이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실책이었다.

그녀는 정도현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

매섭게 달려오던 정도현이 돌연 멈췄다. 그러더니 상급 포션을 꺼내 쭉 들이켰다.

그녀가 거릴 벌려 준 덕분이었다.

꿀꺽, 꿀꺽!

텅 빈 유리병을 어깨 너머로 던졌다.

반절 가까이 줄어들었던 그의 마력이 빠르게 차오른다.

하지만 급한 불만 껐지 아직 이긴 건 아니다.

검강은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이 쭉쭉 빠져나가니까.

그리고 그녀도 한 번 속았으니 또 당해 주진 않을 거다.

“캬아아앗!”

제 꾀에 넘어간 걸 알아챈 철혈의 여제가 달려들었다.

거릴 벌려서 시간을 끌어 봤자 의미가 없단 걸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알아서 와주면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았다.

서걱-!

검강의 압도적인 파괴력에 그녀의 몸뚱이가 날아갔다.

팔다리를 찢고, 가슴팍에 칼을 쑤셔 박았다. 그대로 내리그어 복부와 내장을 가른다.

콰직!

심지어 마력 투구와 함께 머리도 반으로 쪼갰다.

그런데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끈질기게 재생하려 들었다.

“허억, 헉…….”

대량의 마력을 소모한 정도현이 숨을 헐떡였다. 검을 다시 들어 올렸을 때.

쿠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상이 뒤흔들렸다.

「피의 미로」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린 것이다.

붉은 안개가 걷히더니 처음 있었던 장소로 돌아왔다.

“캬으, 캬아악!”

퍼억-!

정도현이 잠시 멈칫한 틈에, 철혈의 여제가 발로 걷어차 그를 멀리 날려 버렸다.

정도현은 몇 초간 공중에 붕 떠올랐다.

그대로 낙하하며 쿠당탕 소리와 함께 바닥을 굴렀다.

“도현 씨!”

결계 밖에 있던 서아린이 몸을 던져 그를 받아냈다.

“쿨럭!”

정도현이 피를 왈칵 뱉어 내곤 고갤 들었다. 그가 입가를 닦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괘, 괜찮아요?!”

“…난 괜찮아. 고마워.”

그가 일어서려 하자 서아린이 어깨를 빌려줬다.

캬아아아아-!

그사이 철혈의 여제는 재생을 끝마치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포효에 주변 일대가 요동쳤다.

살벌한 기세에 서아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저거 철혈의 여제 맞죠?”

“어, 폭주한 상태야.”

저런 괴물이랑 일대일로 싸웠다고?

서아린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팔다리가 후들거린다.

“다들 물러나!”

정도현이 그렇게 외치며 다시 달렸다.

철혈의 여제를 포위했던 동료들이 그 말에 잠시 주춤하다 뒤로 물러섰다.

그들이 상대할 적이 아님을 몸소 느낀 것이다.

“캬아아악!”

철혈의 여제도 정도현이 자신을 죽일 유일한 호적수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고갤 돌려 그를 노려본다.

꾸드득-!

핏빛 갑주가 돌연 시커멓게 변했다.

그걸 본 정도현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지척까지 도달한 상태.

뒤로 빠져서 상황을 살필 여력은 없었다. 그랬다간 동료들이 위험해진다.

‘깨부순다.’

쾅!

사력을 다해 검강을 휘둘렀다. 주먹과 부딪히자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진다.

그런데 아까처럼 쉽게 썰리지 않았다. 칼날이 반쯤 파고들다 우뚝 멈췄다.

역시 색깔만 변한 게 아니었다.

‘강도가 말도 안 되게 올라갔어.’

이건 단순히 마력을 더 투자한 수준이 아니다.

그 이상의 대가를 바쳐 갑옷을 강화한 게 틀림없다.

‘…생명력인가?’

그래, 그녀는 자신의 수명을 바친 거다.

이게 그녀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불완전한 검강으로는 쉽사리 부술 수가 없었다.

정도현은 상대의 팔뚝에서 칼날을 뽑아내고 거릴 벌렸다.

하지만 철혈의 여제도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았다.

“키에엑!”

후웅-!

거대한 주먹이 그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정도현은 검을 들어 올려 막았지만 강렬한 충격이 몸을 뒤흔들었다.

주룩-!

목구멍이 뜨끈했다. 입속에서 또 한 번 핏물이 쏟아졌다.

이번엔 내상이 제법 깊었다.

공격을 날린 철혈의 여제도 멀쩡하지 못했다.

그녀의 팔 근육은 찢어지고 비틀려, 풍선처럼 펑 하고 터졌다.

그저 주먹을 내질렀는데 팔 하나가 통째로 날아갔다.

“…캬아아악!”

그녀도 고통스러운지 휘청댔다.

대량의 마력과 생명력을 버린 탓에 재생이 전처럼 빠릿하게 되지 않는다.

꾸물, 콰아아!

터져 버린 팔은 혈액이 대신했다.

급조해서 만든 팔은 찐득한 점액처럼 꿀렁댔다.

“쿨럭, 후우…….”

정도현이 검을 지지대 삼아서 일어섰다. 철혈의 여제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

서로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철혈의 여제는 자신의 승리를 직감했다.

그녀의 몸은 천천히나마 회복되고 있지만 정도현은 아니었다.

아무리 강해도 결국 인간. 그게 이 싸움의 승패를 갈랐다.

그런 줄 알았다.

“…네가 목숨을 걸었으니, 나도 목숨을 걸어야겠지.”

그녀의 발악에 정도현은 큰 감명을 받았다.

솔직히 그녀가 이만큼이나 해 줄 줄은 몰랐다.

푹, 파바밧!

정도현은 자신의 신체 곳곳을 손가락으로 찔러 점혈을 사용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마력 회로를 자극해 선천지기를 이끌어 냅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소모한 선천지기에 비례해 모든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감소합니다.]

[선천지기를 전부 소모할 시 즉시 사망합니다.]

‘선천진기’. 그건 생명의 근원이었다.

쉽게 말하면 마력의 상위 호환 격인 강력한 생명 에너지.

마력처럼 멋대로 끌어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정도현은 점혈을 써서 억지로 끌어냈다.

체내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생명력을 머금은 검강이 전보다 찬란히 빛났다.

“……?!”

철혈의 여제는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떨었다. 죽는다. 저건 정말로 위험하다.

철혈의 여제는 생존 본능에 사로잡혀 도망치려 했다. 그녀가 뒤돌자 정도현의 팔이 움직였다.

후웅-!

위에서 아래로. 칼을 힘껏 내리긋자 검강이 반월 모양으로 날아갔다.

콰지직-!

그녀의 머리와 하반신으로 길쭉한 선이 그어지더니, 도끼로 내리찍은 장작처럼 몸이 쪼개졌다.

“키, 에에……?!”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그것들은 거미줄처럼 엉키더니 어떻게든 몸을 이어붙이려 했다.

하지만 정도현이 그걸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어딜.”

그가 돌풍을 일으키며 달려왔다.

촤자자작-!

팔이 흐릿해지더니 수십 번의 참격이 쏟아졌다.

반으로 잘렸던 철혈의 여제는 아예 다진 고기처럼 갈가리 분쇄됐다.

“끄, 으…….”

철혈의 여제는 이제 말할 입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죽지 않았다.

정도현은 그녀의 저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상대해 본 적들 중에서 가장 끈질겼다.

“고생했다. 이제 편히 쉬어라.”

정도현은 재생하려는 육신을 썰고 또 썰었다. 거의 가루 수준으로 갈아 버렸다.

그러자 작은 벌레처럼 꾸물대던 핏물과 살점들이 드디어 움직임을 멈췄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 번에 2레벨이나 올랐다.

비장의 패를 꺼내서 경험치 양이 줄었을 텐데 이 정도라니.

정도현은 만족스럽단 미소를 지었다.

그는 끌어 올렸던 선천진기를 다시 가라앉혔다.

그러자 참을 수 없는 격통이 엄습해 왔다.

“끄으, 끄어어… 쿨럭, 컥!”

그는 고작 몇 분 만에 초주검이 되었다.

선천진기를 더 끌어다 썼으면 진짜 죽었을지도 모른다.

정도현은 피로 얼룩진 칼날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체내의 마력 회로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

이 정도면 몇 년은 족히 요양해야 할 수준이었다.

털썩.

정도현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이젠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귀도 먹먹했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허둥지둥 뛰어온다.

다들 뭐라 말하는데 잘 안 들렸다.

정도현은 울고 있는 서아린한테 부탁했다.

“엘릭서 좀… 먹여 줘…….”

그가 아기새처럼 입을 쩍 벌렸다.

서아린은 그가 미리 맡겨 뒀던 엘릭서를 입속에 콸콸 들이부었다.

그러자 정도현의 몸에 생기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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