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친위대 대장은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뭐라 말할지 고민하느라 대답이 늦어졌다.
“어디서 왔냐니까?”
푹!
정도현은 그의 어깨에 칼을 꽂고 빙글빙글 돌렸다.
칼날이 뼈를 갉아 대자 열심히 굴려보던 머리가 멈췄다.
친위대 대장이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며 정보를 뱉었다.
“부, 북부! 북부에서 왔다!”
“북부?”
정도현은 고문을 잠시 멈췄다.
그러자 친위대 대장이 숨을 헐떡이며 그를 노려봤다.
“허윽, 네놈… 박성원이 누군지 알겠지!”
그의 입에서 동료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정도현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 반응에 친위대 대장은 일그러진 얼굴로 낄낄댔다.
“내 동료들이… 녀석을 잡으러 갔다!”
“그래? 그쪽엔 몇 명이나 갔는데?”
“흐흐. 글쎄다?”
그는 순순히 말해 줄 생각이 없는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래?”
“…지금 뭐 하는 거냐?”
정도현은 잘린 다리를 주워다 남자의 몸에 도로 붙여 줬다.
친위대 대장은 그가 왜 이러는지 금방 깨달았다.
푹!
다리의 재생이 끝나자마자 허벅지를 사정없이 찔러 댔다.
“끄어어억!?”
친위대 대장이 눈을 까뒤집었다.
칼날은 그리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고통을 못 참겠는지 몸을 마구 비틀어 댔다.
“끄아악! 그, 그마아아안!”
누가 보면 엄살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점혈 성능 확실하네.”
정도현이 만족한 얼굴로 중얼댔다.
그는 무공을 고문에 응용해 봤다.
인체에 존재하는 수백 개의 혈도.
그중에서도 마력으로 내상을 입히면 격렬한 통증이 발생하는 혈을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놈이 본능적으로 마력을 일으켜 저항했지만, 그의 침투경 앞에선 무력했다.
친위대 대장이 숨넘어갈 것처럼 꺽꺽댔다.
덥석!
정도현은 한 손으로 그의 얼굴을 붙잡고 다시 질문했다.
“이제 기억이 좀 나냐? 그쪽에 몇 명 보냈어? 레벨은?”
“두, 두 명! 94, 92! 다 말했어! 그러니 제발…!”
“그러니까 순순히 말했으면 됐잖아. 왜 자꾸 스스로 매를 벌어?”
“흐, 흐으… 흐어어…….”
정보가 술술 튀어나오자 정도현은 고문을 멈추곤 그를 쳐다봤다.
아까까지 당당했던 그의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혈도 고문. 물고문보다 빠르고 확실했다.
전신이 불타는 듯한 통증이 사그라들자, 친위대 대장은 겨우 정신 줄을 붙잡고 말했다.
“그, 그 남자도 허억… 분명 잡혔을 거다…….”
“그래서?”
“나, 날 놔주면 그 남자도 풀어 주겠다!”
“인질을 교환하자고?”
“그래!”
정도현은 잠시 그를 쳐다봤다.
때마침 서아린의 전투가 끝이 났다.
그녀가 이쪽으로 오면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냈다.
“무슨 일이에요?”
“이 녀석 동료들이 성원 씨도 노렸대.”
“…성원 씨를요?”
서아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에겐 「초감각」이 있고, 여차하면 「정의 집행」도 있으니까.
몬스터가 아닌 레드 플레이어와 싸울 땐 박성원이 그녀보다 더 강했다.
서아린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한참을 기다리자 박성원이 연락을 받았다.
그는 격한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숨소리가 거칠었다.
“성원 씨, 괜찮아요?”
[아, 예. 수상쩍은 사람들이 공격해 와서 쓰러트렸습니다.]
“저희도 괴한들한테 방금 습격당했어요.”
[정말입니까? 다친 곳은요?]
“괜찮아요. 제 옆에 도현 씨도 있었고.”
[아, 맞다. 오늘 데이트…….]
뚝.
서아린이 급히 통화를 끊었다.
정도현은 친위대 대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박성원이 무사한 걸 알게 된 친위대 대장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마, 말도 안 돼…….”
그들이 조사할 때 박성원의 레벨은 고작 82.
게다가 D구역에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떨거지였다.
그런데 친위대 둘을 상대로 싸워 이겼다고? 도망친 게 아니라?
툭.
혼란에 빠진 그의 어깨에 정도현이 손을 올리며 물었다.
“그나저나 너흰 정체가 뭐야? 죽여도 경험치 안 주던데?”
“아, 그러게요. 저도 못 받았어요.”
정도현이 경험치 어디 갔냐고 따졌다.
표정이 사채업자가 따로 없었다.
박성원이 위험에 처한 걸 들었을 때와 달리, 목소리에서 은은한 분노가 묻어 나왔다.
그의 살기에 친위대 대장은 기가 눌려 벌벌 떨었다.
“마, 말할 수 없다.”
“피의 맹약 같은 거냐? 말하면 죽어?”
“…그렇다.”
이 이상의 정보는 언급할 수 없는 모양.
정도현은 놈이 죽든 말든 상관없었지만 지금 죽으면 곤란했다. 정보를 캐내야 한다.
“북부에서 왔으면 철혈의 여제가 보냈겠지.”
“멋대로 생각해라.”
공포로 한풀 꺾였던 눈빛에 다시 독기가 차올랐다. 참으로 대단한 충성심이었다.
아무튼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들은 북부의 지배자, 철혈의 여제가 보낸 수하들이다.
정도현은 두 구의 시체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경험치를 안 준 걸 보면 흑마법사의 실험체랑 비슷한 것 같은데. 그럼 되살리지도 못하겠지.’
어떻게 해야 녀석의 입을 열게 만들 수 있을까.
정도현은 고민하다 서아린을 쳐다봤다.
좋은 의견 없냐고 묻듯이.
하지만 그녀도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정보가 너무 부족해요. 그래도 철혈의 여제가 보낸 건 확실하니, 그 여자를 조사해 보죠.”
“하긴, 그건 그래.”
철혈의 여제가 이들을 왜 보냈는진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보나 마나 시답잖은 이유겠지.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여자가 우릴 먼저 건드렸단 거다.
“그 여잘 알 만한 사람은…….”
암흑가 출신들한테는 이미 물어봤다.
하지만 그들도 지배자들에 대한 소문만 접해 봤지 잘 모른다고 했다.
잠시 고민하던 정도현은 누군가를 떠올리곤 곧장 연락했다.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받았다.
“권 팀장님, 혹시 지금 바쁘신가요?”
[아뇨, 괜찮아요. 어쩐 일이세요?]
찌릿.
권하율한테 연락하자 서아린이 옆에서 째려봤다.
그녀가 뭘 걱정하는지 정도현도 얼추 알고 있었다.
암흑가의 거물과 엮인 걸 알리긴 껄끄러운 거겠지. 권하율은 관리국 소속이니까.
정도현이 해 온 짓을 알면 연행하려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권하율은 영화 사랑 때문에 자신을 버리지 못할 테니까.
게다가 그녀의 「독심술」은 적을 심문할 때 아주 유용했다.
“도움을 좀 받고 싶어서요. 잠깐 만날 수 있어요? 좀 급하니까 진규현한테 부탁해서…….”
[알았어요. 그쪽으로 금방 갈게요.]
권하율은 조금 들뜬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화관에 같이 갔을 때처럼 말이다.
설마 영화 보자고 불러낸 줄 착각한 건 아니겠지?
사람 마음을 갖고 노는 것 같아 괜스레 미안해졌다.
* * *
막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쉬려던 권하율.
그녀는 누군가의 연락을 받더니 부리나케 옷을 갈아입고 화장도 고쳤다.
딸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자, 그녀의 부모는 얼떨떨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니, 나비는 또 왜 데려가?”
“산책 좀 시키고 올게요!”
“애오옹……!?”
권하율은 그렇게 말하며 단잠을 자던 나비를 납치하듯이 품에 껴안고 나갔다.
나비는 이게 무슨 봉변이냐며 서럽게 울부짖었다.
현관문이 닫혔다. 권하율의 어머니는 걱정스럽단 어투로 말했다.
“하이힐을 신고 산책이라니. 쟤가 요새 왜 저러죠? 뭐 힘든 일이라도 있나…….”
“흠…….”
저녁 뉴스를 시청하던 아버지는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가 머릴 긁적이며 말했다.
“고양이 산책은 핑계고, 남자라도 생겼나 본데.”
“예? 하율이한테 남자라니, 그럴 리가…….”
“고양이 산책하는 데 저렇게 꾸며 입고 나갈 필요가 없잖아. 남자 만나는 게 아니면 뭐겠어?”
「독심술」을 얻은 뒤로는 타인과의 관계가 없다시피 했던 그녀다.
게다가 본인도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공언했었고.
권하율의 어머니는 걱정과 설렘이 반씩 섞인 얼굴로 현관을 바라봤다.
“그게 진짜면 좋은 남자여야 할 텐데…….”
“너무 걱정하지 마. 하율이가 이상한 놈이랑 만나겠어? 속이 훤히 보일 텐데.”
권하율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벽에 걸린 호신용 샷건을 바라봤다.
조만간 손질 좀 해 둬야겠다.
* * *
권하율이 진규현과 함께 「공간 도약」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정도현을 보곤 미소 지었지만, 그 옆에 서아린이 서 있자 거짓말처럼 입꼬리를 내렸다.
“무슨 일로 부른…….”
멈칫.
권하율은 뭐라 말하다 입을 다물었다.
제압된 남자와 시체 두 구를 뒤늦게 본 탓이다.
그녀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일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이자들한테 습격당했어요.”
“…습격이요?”
“철혈의 여제가 보낸 것 같은데, 저흴 쭉 감시했어요. 그걸 들키자 덤벼들었고요.”
철혈의 여제란 말에 권하율의 눈이 동그레졌다.
그 여자는 북부에서 악명 자자한 괴물이었다.
“이유를 캐 보려 했는데, 여제에 대해 말하면 죽도록 금제가 걸린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그래서 북부 관리국도 그 여자를 못 잡고 골머리를 썩인다 들었어요.”
권하율은 자신이 아는 걸 쭉 말했다.
“철혈의 여제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보스 몬스터예요. 뱀파이어 로드죠.”
“…몬스터요?”
“이십여 년 전. 북부 변경에서 게이트 붕괴가 발생했는데, 거기서 놓친 보스가 철혈의 여제입니다.”
몬스터는 대부분 지능이 낮다. 보스 몬스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몇몇 특수한 종족은 인간과 비견되거나 그 이상으로 똑똑했다.
뱀파이어가 아주 좋은 예시다.
“뱀파이어 로드는 인간에게 자신의 피를 먹여 권속, 흡혈귀으로 삼을 수 있어요. 플레이어라도 흡혈귀가 되면 전적으로 충성하죠.”
“그럼 저들도 흡혈귀겠군요.”
저들은 눈이 시뻘겋고 송곳니도 삐죽 튀어나왔다.
‘보스 몬스터한테 잡혀서 몬스터가 된 거야.’
예전에 D구역에서 토벌한 식물형 보스몹과 마탑의 장로들처럼.
“도현 씨, 아까 본 영화의 흡혈귀랑 똑같이 생겼네요.”
“그러게. 그게 현실 고증이었구나.”
“잠깐만요, 영화라뇨?”
서아린이 자연스럽게 같이 영화 본 걸 언급하자, 권하율의 눈매가 뾰족해졌다.
그녀는 서아린의 생각을 읽고선 입술을 꾹 깨물었다.
둘이서 영화관을 갔을 줄이야. 부러웠다.
“권 팀장님, 이 녀석 심문 좀 해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권하율은 제압된 흡혈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흡혈귀는 또 고문당하는 건가 싶어 바짝 긴장했다. 하지만 고문 대신 질문이 날아왔다.
“왜 이들을 습격했죠?”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말하면 바로 죽을뿐더러, 그게 아니여도 정도현한테 점혈을 당해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상태였으니까.
‘멍청하긴. 말도 못 하게 해 놓고 심문을 어떻게 한다고.’
그는 한심하단 눈초리로 정도현을 쳐다봤다.
그런데 권하율 입에서 뜻밖의 얘기가 나왔다.
“그녀가 서아린 씨와 박성원 씨를 납치해 오라 시켰군요.”
“……!”
권하율이 단번에 정답을 맞히자 흡혈귀의 눈동자가 잠깐 떨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 정도는 넘겨짚거나 유추할 수 있었다.
“철혈의 여제는 지금 어딨습니까?”
남자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갤 돌렸다.
유도 신문이다. 한번 찔러 보고 자신의 반응을 떠보려는 거겠지.
“정도현 씨,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냈어요.”
권하율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흡혈귀는 상황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도 아니면서.
분명 거짓말이다.
“본거지를 알아냈어도 문제가 있어요. 북부 관리국의 도움을 받긴 어려울 겁니다.”
권하율이 사정을 설명했다.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선 관리국들은 서로의 관할에 간섭하지 않는다.
철혈의 여제의 본거지를 알려 준들, 북부 관리국은 믿어 주지 않을 거다.
그걸 어떻게 알아냈냐고 물어보면 이쪽도 할 말이 없으니까.
“괜찮아요. 저만 가도 충분하니까.”
“네?”
“진규현, 좀 도와줄 수 있어?”
“이미 불러 놓고 새삼스럽게 부탁은. 어딘데?”
적의 본거지에 혼자 쳐들어가겠다고?
정도현의 결단력에 권하율은 물론이고 다들 말문이 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