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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39화 (139/240)

139화

정도현이 진규현과 함께 병실로 돌아오자, 기다리던 이들이 그를 위로하고 다독여 줬다.

조문객과 다를 바 없는 그들의 태도에 정도현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할아버지 멀쩡히 살아 있다니까? 내일 되면 일어난다고!”

“도현 씨…….”

“충격이 컸나 봐.”

“그 마음 이해해. 나도 아내를 떠나보낼 때 많이 힘들었거든.”

“진짜 돌겠네.”

아무도 정도현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진성이와 다윤이마저 그를 측은하게 바라보겠는가.

하긴, 다들 오해할 만했다.

정도현도 신호영의 해명을 듣기 전까진 죽었다고 착각했으니까.

침대에 누워 있는 최진영은 누가 봐도 영락없는 시체였다.

“정 못 믿겠으면 엘릭서를 먹여 볼게. 다들 비켜 봐.”

내일이 되면 저절로 깨어나는데 지금 엘릭서를 쓰는 건 낭비였다.

하지만 다들 미친놈 취급해 대니 답답하고 억울해서 못 참겠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쓰러졌지 않은가.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면 엘릭서쯤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정도현이 최진영에게 다가가려 하자 권하율이 앞을 막아섰다.

그녀가 비장한 얼굴로 그의 어깨를 딱 붙잡았다.

“정도현 씨, 정신 차리세요.”

아무리 슬프더라도 현실에서 눈 돌려선 안 된다. 이럴 때일수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그녀가 그렇게 충고했다.

정도현은 복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반면 옆에 있던 서아린이 도끼눈을 뜨며 권하율에게 일갈했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한테 그런 식으로 말해야겠어요?”

“정도현 씨는 아린 씨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에요.”

“당신이 도현 씨의 뭘 안다고……!”

“두, 두 분 그만하세요!”

둘의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박성원이 다급히 끼어들며 중재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곱게 물러서지 않았다. 주고받는 목소리가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아까도 수상했어. 내 개인 특성은 어떻게 알아낸 거야, 당신?”

“이 상황에서 그게 중요한가요?”

“말 돌리지 말고 똑바로 대답해.”

이러다 칼부림이라도 벌어지는 거 아닐까. 둘 사이에 낀 박성원은 조마조마했다.

그의 힘으로는 그녀들을 뜯어말릴 수가 없었다.

그는 다급히 정도현에게 도움을 청했다.

“정도현 씨, 말리는 것 좀 도와… 어?”

그녀들이 투덕거릴 때 정도현은 최진영의 입속에 엘릭서를 흘려 넣었다.

그러자 뻣뻣하게 굳었던 그의 손가락이 몇 차례 꿈틀거리다 이내 눈을 떴다.

최진영은 정도현이 무사한 걸 확인하곤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도현아… 아, 다행이구나…….”

“할아버지. 정말 고생하셨어요.”

정도현은 최진영의 앙상한 손을 꼭 붙잡고 서글프게 웃었다.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혹시라도 신호영이 거짓말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깨어났다.

으르렁대던 여인들도 말싸움을 멈추곤 멍하니 그쪽을 쳐다봤다.

“할아버지!”

어색해진 분위기를 진성이와 다윤이가 날려 버렸다.

둘은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와 할아버지 품에 안겼다.

최진영은 아이들의 등을 토닥여 주며 빙긋 웃었다.

“도현아, 다친 곳은 없니?”

“예, 전 괜찮아요.”

“그래, 천만다행이로구나.”

최진영은 그렇게 말하곤 잠시 뜸을 들였다.

정도현은 눈치챘다. 저건 할아버지가 중요한 걸 말하고 싶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도현아.”

“예, 할아버지.”

“주제넘은 참견일지 모르겠지만, 오늘 일로 꼭 알았으면 좋겠구나. 누군가를 해치다 보면 언젠간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란다.”

“…네.”

정도현도 오늘 일로 뼈저리게 느꼈다.

신호영의 목적이 대화였기에 망정이지, 죽은 부하들의 복수였다면 할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거다.

“그러니 너무 업보를 쌓진 말려무나. 이 할애비는 살 만큼 살았으니 죽어도 상관없지만 넌 아니잖니. 네가 잘못될까 봐 무서웠단다.”

“…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요.”

정도현은 큰 교훈을 얻었다.

‘나만 강해져선 안 돼.’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해선 안 된다. 거기엔 한계가 있다.

동료들도 강해져야 한다. 그래야 오늘 같은 참사가 또 벌어지지 않을 터.

할아버지도 방금 얘기하지 않았는가.

쌓인 업보는 언젠가 돌아온다고.

그러니 그걸 견딜 수 있게 최대한 대비해야 한다.

‘소중한 걸 지키고 싶으면 지금보다 더 강해지란 말씀이시죠?’

정도현은 할아버지의 충고를 멋대로 곡해해 받아들였다.

‘그나저나 그 녀석은 뭘 말하고 싶었던 걸까.’

신호영은 그에게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무시하고 계속 싸웠다.

얘기를 나누는 건 놈을 한 번 죽이고 난 뒤에 해도 되니까. 그러나 녀석을 놓치고 말았다.

‘거의 다 몰아붙였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도핑제 효과가 다 떨어지고 말았다. 능력치 페널티로 역공을 허용했고 중상을 입었다.

그 틈에 신호영은 뒤도 안 돌아보고 도주했다.

‘한동안 안 나타나겠지.’

신호영은 그 이상으로 심한 내상을 입었으니까.

이쪽은 엘릭서랑 회복 포션으로 곧장 회복했지만, 녀석은 자금줄이 떨어져서 그러지 못할 터.

정도현은 대형 먹잇감을 놓쳤단 아쉬움에 입술을 핥았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죽이고 심문해 주마.

* * *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내상이 말끔히 회복된 백승아는 강해지고 싶단 의욕으로 가득 찼다.

최진영을 지켜 내지 못한 것.

동생을 잃은 것.

전부 자신이 약해서 벌어진 일이다.

부활 페널티로 줄어든 레벨을 복구하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예전보다 더 강해져야만 했다.

그녀는 정도현에게 머릴 숙이며 말했다.

“부탁이야, 동생. 강해지고 싶어. 도와줘.”

내게 속죄할 기회를 달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강해지고 싶다.

그녀의 간절한 부탁에 정도현은 흔쾌히 고갤 끄덕였다.

사실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어도, 그는 백승아를 강하게 단련시킬 생각이었다.

할아버지의 호위를 맡길 적임자는 그녀였으니까.

“개인 특성을 얻게 해 줄 수 있어.”

“…개인 특성을?”

뜻밖의 정보에 백승아의 눈이 커졌다.

개인 특성. 그게 있으면 분명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으리라.

“근데 어떤 능력이 발현될진 알 수 없어.”

“괜찮아. 뭐가 됐든 있는 편이 낫겠지.”

백승아는 정도현이 건넨 특성 강화의 비약을 마시곤 새롭게 생긴 개인 특성을 확인했다.

“…「과충전」?”

“무슨 능력이야?”

석화 주문과 관련된 특성이 생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백승아는 설명을 쭉 읽었다.

「과충전」은 하루에 한 번 남은 마력을 비축해 ‘충전 스텟’으로 변환할 수 있다.

“그렇게 모아 둔 스텟을 원할 때 써서 몇 분 동안 능력치를 올릴 수 있어. 대신 내 레벨에 비례해 충전할 수 있는 양이 늘어나고, 한 번 발동하면 모아 둔 스텟이 싹 다 없어져.”

“음. 안 쓰고 아낄수록 점점 강력해지는 버프기네?”

나쁘진 않았다. 아니, 효과만 놓고 보면 강력해 보인다.

충전 스텟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더욱 강해질 테니까.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충전 스텟이 얼마나 쌓였든, 한 번 쓰면 전부 날아가.’

즉, 결정적인 순간에만 써야 한다.

아무 때나 쓰다가 막상 필요한 순간에 스텟이 부족하면 낭패였으니까.

양날의 검이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찰나.

“그럼 어디 충전해 볼까?”

백승아가 그렇게 중얼대며 「과충전」을 발동했다. 잠시 뒤, 그녀가 눈을 까뒤집고 픽 쓰러졌다.

“…백승아? 괜찮아?”

“으, 어으….”

백승아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얼빠진 신음을 흘렸다. 어깰 흔들어도 좀처럼 깨어나질 못했다.

그녀의 얼굴색은 마치 시체처럼 거무죽죽했다.

마력을 얼마나 충전했길래 이 꼴이 된 걸까.

“설마…….”

정도현은 무언가를 직감했다.

그가 그녀의 입속에 상급 마력 포션을 콸콸 쏟아부었다.

그러자 창백하던 혈색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잠시 뒤,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정도현은 한숨을 내쉬며 확인했다.

“설마 마력을 몽땅 충전한 거야?”

“…응. 어차피 동생한테 포션 많이 있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헌혈이랍시고 모든 피를 뽑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나 없었으면 죽었어.”

“미안. 좀 무식하긴 했네. 너무 흥분했나 봐.”

시스템의 본래 의도는 하루 동안 쓰고 남은 마력을 조금씩 모으는 것이리라.

그런데 백승아는 역으로 마력을 죄다 때려 부었다.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녀 말대로 정도현에겐 마력 포션이 차고 넘쳤다.

‘이러면 「과충전」의 충전 효율이 엄청나잖아?’

정도현과 백승아의 개인 특성이 맞물리며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다.

버프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이러면 충전 스텟도 시스템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모을 수 있을 터.

마구 남발하긴 어려워도, 좀 더 자주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한번 써 볼까?”

백승아는 「과충전」의 위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굴렸다.

정도현도 궁금했기에 고갤 끄덕였다.

그는 권하율한테 연락해서 동부 관리국의 훈련장을 빌렸다.

“준비됐어?”

“응, 동생도 봐주지 말고 해.”

“그럼 셋을 세면 시작하겠습니다.”

정도현이 그녀의 대련 상대를, 권하율은 심판을 맡았다.

권하율의 초읽기가 끝남과 동시에 백승아는 「과충전」을 발동했다.

콰아아-!

백승아의 체내 마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권하율의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백승아 본인도 확 늘어난 마력량에 적응이 안 되는지 입을 쩍 벌렸다.

이들 중 차분한 건 정도현뿐이었다.

“지속 시간은 얼마나 돼?”

“어? 1분이라는데…….”

“1분이라. 아무리 하루 충전했어도 너무 짧네.”

정도현은 그렇게 중얼댔다.

만약 평범하게 마력을 충전했다면 저 정도 양을 모으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일주일? 한 달? 하여튼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터.

‘그만큼이나 투자한 것치곤 지속력이 너무 안 좋아.’

대신 위력은 뛰어나겠지. 그럼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볼까.

정도현이 푸른 검기를 뽑아냈다.

그러자 백승아도 석화 주문으로 전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백승아한테도 무공 몇 개 알려 주면 궁합이 잘 맞겠어.’

그녀는 마법사지만 신체를 강화할 수 있으니까. 그럼 근접전에서도 강력해질 터.

정도현이 보법을 펼쳤다.

타다닷-!

땅을 몇 번 밟자 그는 순식간에 백승아 앞에 도달했다.

단두대의 길로틴처럼 머리 위로 검이 뚝 떨어지자, 백승아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교차해 칼날을 막았다.

카앙-!

백승아의 마력에 검기가 튕겨 나왔다.

검기의 일부는 돌 부스러기로 변해 허공에 흩날렸다.

레벨 차이가 꽤 나는데도 석화의 주문이 먹혀들었다.

‘마력의 위력이 엇비슷해졌어.’

고작 하루 충전했는데 87레벨인 그녀가 90레벨 수준으로 강해졌다.

아니, 정도현의 능력치는 영약으로 더 높단 걸 감안한다면 90레벨을 넘어섰다.

‘미쳤네.’

정도현은 「과충전」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누가 개인 특성 아니랄까 봐 실로 사기적이었다.

고작 하루 충전했는데도 이 정도 효과라니.

‘만약 최대치까지 마력을 충전해 둔다면?’

신호영 같은 고레벨 플레이어가 덤벼도 동수를 이루거나 이길지 모른다.

정도현이 만족한 얼굴로 몇 걸음 물러섰다.

이 정도면 할아버지의 호위도 믿고 맡길 수 있겠다. 물론 당장은 레벨부터 더 올려야겠지만.

“쿨럭!”

그런데 백승아가 갑자기 짧게 기침했다.

그녀의 손가락 틈새로 붉은 액체가 몇 방울 뚝뚝 떨어졌다.

정도현과 권하율은 당황했다.

‘내상을 입었어?’

방금의 충돌로 내상을 입은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좀 이상했다.

그가 검기를 꺼내긴 했으나 전력을 다한 일격은 아니었다. 그녀도 깔끔히 방어해 냈고.

다칠 상황이 아니었다. 혹시 며칠 전에 입었던 내상이 도진 걸까?

“괜찮아?”

“아, 괜찮아.”

“어떻게 된 거야?”

“아무래도 「과충전」의 부작용 같은데.”

“…부작용?”

백승아가 입술을 쓱 닦으며 설명했다.

자신의 레벨에 맞지 않는 힘을 휘둘러 그 반동이 온 거라고.

“그럼…….”

“충전한 마력이 많으면 내 몸도 그만큼 망가지나 봐. 뭐,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백승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었지만, 정도현은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이런 문제가 있을 줄이야.

‘자칫하면 죽을지도 몰라.’

마력은 물, 육체가 그걸 담는 물병이라 치자.

억지로 담을 수 있는 한계 이상으로 물을 집어넣으면 병이 어떻게 되겠는가.

물이 흘러넘치다 나중엔 병이 못 버티고 깨질 거다.

“백승아. 「과충전」은 당분간 쓰지 마.”

“…뭐?”

백승아의 표정이 굳었다. 기껏 얻은 힘인데 쓰지 말라니.

“동생, 난 괜찮아!”

“그러다 크게 잘못되면 어쩌려고. 일단 레벨부터 빨리 복구하자. 내가 도와줄게.”

“…알았어.”

백승아는 꿍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그녀의 개인 특성과 달리 레벨을 올리는 건 상당히 성가시고 오래 걸렸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정도현의 레벨 업 방식은 남들과 다르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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