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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37화 (137/240)

137화

‘한 방 먹었군.’

놈에게 진실의 거울이 있었을 줄이야.

가장 보여 주기 싫었던 치부를 들켜 버렸다.

신호영은 짧게 혀를 차며 정도현을 노려봤다. 그러나 화를 내야 하는 건 그가 아닌 정도현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왜 건드렸어.”

“그러는 넌 왜 해방단을 무너뜨렸지?”

“…너였냐?”

정도현도 그제야 신호영의 정체를 알아챘다. 신호영은 해방단의 보스였다.

궁금증이 풀린 정도현은 칼자루를 바투 잡고 검을 치켜들었다.

칼을 겨눠도 신호영은 평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순백교 교주도 네가 죽였나?”

“궁금하면 본인한테 직접 물어봐!”

정도현이 그리 외치며 총알처럼 쏘아 나갔다.

소중한 가족을 잃었다.

분노가 거센 불길처럼 타오른다. 놈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었다.

카가강-!

맹렬히 몰아치는 검기. 신호영은 맨주먹으로 그걸 전부 받아 냈다.

정도현도 상대가 녹록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도 상점창이 있다더니.’

공주은과는 움직임부터가 다르다. 군더더기라곤 전혀 없었다.

게다가 주먹과 칼날이 부딪힐 때마다 검의 궤적이 자꾸 어긋났다.

‘맨손으로 검기를 흘린다고?’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해 무투로 싸우는 플레이어는 수도 없이 상대해 봤다.

그들은 대개 힘을 앞세워 깨부수거나, 쳐 내서 막아 내는 등 싸움 방식이 아주 단순했다.

그러나 신호영은 달랐다.

그의 권법은 힘이 실려 있으면서도 마치 물처럼 유연했다.

그들은 잠깐 사이에 수십 합이나 주고받았다.

“나쁘지 않군.”

신호영이 물건을 품평하듯 그리 중얼댔다. 정도현은 짜증이 치솟았다.

112레벨. 공주은과 딱 2레벨 차이.

그런데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신호영은 정도현을 쓱 훑어보며 중얼댔다.

“에픽 등급 방어구인가? 하지만 내겐 별 의미없다.”

퉁-!

그가 그렇게 말하며 주먹으로 칼날을 힘껏 후려쳤다.

정도현이 빙판에 올라선 것처럼 뒤로 쭉 미끄러졌다.

끼기긱-!

급정지한 차량처럼 그의 발밑에 시커먼 자국이 그어졌다.

정도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방금 느낌이 이상했어.’

체감상 신호영의 능력치는 플레이어들의 영혼을 바쳐 강해졌던 공주은과 비슷했다.

즉, 정도현이 못 버틸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 자꾸 맥없이 밀려난다.

검기를 흘리는 것도 그렇고. 저 녀석 아까부터 묘한 스킬을 써 대고 있다.

카앙! 캉!

정도현은 놈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냉철히 분석했다.

잠시 뒤, 그는 이질적인 현상을 눈치챘다.

‘내 검기가 녀석의 주먹과 반발하지 않아. 어떻게 한 거지?’

마력이 흐르는 강물이라고 치자.

서로 다른 강물이 부딪히면 서로 반발하면서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신호영의 물길은 반발하지 않고 오히려 융화됐다.

‘내 마력의 흐름을 읽고 일체화시켰어?’

녀석이 뭘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의 깨달음에 맞춰 검기도 동조했다.

카앙-!

정도현이 칼날로 주먹을 받아쳤다.

방금까진 속수무책으로 밀렸는데 이번엔 달랐다.

정도현의 몸이 땅과 하나가 된 듯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호영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몇 수 만에 간파하다니, 대단하군.”

정도현이 검기의 흐름을 시시각각 바꿨다.

그러자 신호영의 주먹은 더는 검기와 동화되지 못하고 반발해 밀렸다.

그러자 힘의 균형도 팽팽해졌다.

신호영은 이어서 설명했다.

“이건 이론만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마력을 세밀하게 다루는 재능이 없으면 평생 연습해도 못 하지.”

“어쩌라고.”

칭찬해 줬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정도현은 반격을 개시했다.

타다다당-!

그의 검기가 춤추듯 불어닥쳤다.

신호영은 주먹과 발을 이용해 막았다.

마력 제어술이 파훼된 탓에 이제 검기의 위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데도 신호영의 표정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그래 봤자 내겐 닿지 않아.’

정도현은 분명 강하다. 90레벨이라곤 도저히 안 믿겨질 만큼.

그러나 자신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신호영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쾅-!

검기의 위력이 폭발적으로 급증했다.

그가 뒤로 쭉 밀렸다.

‘…방금 뭐지?’

아무래도 치명타가 터졌나 보다.

그런데 데미지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손목이 시큰거릴 정도.

‘어떻게 이런 위력이 나온 거지?’

그가 알기로 치명타 데미지는 일반 공격의 두 배.

그런데 정도현의 치명타는 체감상 세 배 정도로 뻥튀기됐다.

치명타 위력을 올려 주는 스킬이나 아이템이라도 있는 모양.

‘그래 봤자 요행에 불과해.’

신호영은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치명타는 여간해선 발동되지 않는다.

그러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

“……!”

콰앙-!

예상과 달리 또 한 번 치명타가 터졌다. 팔이 욱신거린다.

신호영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치명타가 또 터졌다고?’

쾅, 쾅, 쾅!

정도현이 칼을 열 번 휘두르면 두어 번이나 치명타가 터졌다.

남들은 수십 번 때려도 한두 번 터질까 말까 한데 말이다.

이건 명백히 이상했다.

‘설마 개인 특성인가?’

쾅!

신호영이 검기를 받아 내곤 몇 미터를 밀려났다. 이걸로 실력 평가는 끝났다.

정도현은 기대 이상, 아니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레벨이 엇비슷했으면 내가 졌을지도 모르겠어.’

자신의 무공을 몇 번 보곤 원리를 간파하고 그대로 따라 하기까지 했다.

엄청난 재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다. 놈은 천재였다.

대의를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인재였다.

“정도현, 너한테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신호영이 주먹을 내리고 전투할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도현은 그걸 무시하고 힘껏 검을 내리쳤다.

샥!

신호영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검기를 피했다.

그의 머리통 대신 땅바닥이 쪼개졌다.

사방으로 모래 먼지와 돌조각들이 튀었다.

“…진정하고 내 얘길 좀 들어 봐라.”

“닥쳐.”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정도현이 계속 달려들자 신호영은 답답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진실을 밝혔다.

“네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 있다.”

그 말에 정도현이 눈썹을 꿈틀했다. 하지만 손은 멈추지 않았다.

터엉!

신호영이 손등으로 칼날을 저지하고서 계속 말했다.

“점혈로 잠시 가사 상태에 빠진 것뿐이다. 마력으로 막아 둔 혈도가 풀리면 의식도 돌아온다.”

“개소리.”

정도현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흔들고자 비열한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호영이 반격 대신 피하기만 하자 정도현도 칼질을 멈췄다.

“…정말 살아 계신다고? 그 점혈인지 뭔지 하는 스킬을 써서 위장한 거야?”

“그래, 정 못 믿겠으면 혈도를 풀어 주겠다.”

신호영은 그렇게 말하며 고갤 돌려 인질이 누워 있던 곳을 쳐다봤다.

그런데 있어야 할 최진영이 안 보인다.

“……?”

신호영은 자신이 위치를 착각했나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댔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최진영은 안 보였다.

그가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을 때.

정도현이 뻘쭘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이미 빼돌렸는데?”

“…뭐?”

“내 동료가 데리고 도망쳤다고.”

빼돌렸다니?

아무리 정도현이랑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한들, 그 정도도 눈치 못 챘을 리 없다.

“네 부하 중에 그림자라는 놈 있었지? 「공간 도약」을 가진 녀석.”

“…그렇다만?”

“공주은이 그걸 뺏어다 다른 녀석한테 줬어. 난 그 녀석을 고용했고.”

정도현이 주의를 끌 동안, 다른 녀석이 몰래 「공간 도약」으로 인질을 구출했다?

그런 거면 이해는 된다.

아무리 그라도 「공간 도약」까지 감지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공주은은 이미 죽었다.’

공주은이 개인 특성을 하사했다면 틀림없이 간부급 신도였을 터.

하지만 뉴스에서 떠들어 댔지 않은가.

순백교 신도들도 영혼 낙인의 효과로 공주은과 함께 사망했다.

그렇다면 「공간 도약」을 받은 신도도 불타 죽었어야만 했다.

‘뭐가 뭔지 모르겠군.’

자세한 사정이 궁금했지만, 정도현의 태도로 봐선 순순히 말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눈을 뜨려면 네가 직접 상태를 봐줘야 하나?”

“아니. 내일 아침이 되면 저절로 점혈이 풀릴 거다.”

점혈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알아서 풀린다니 다행이었다.

엘릭서를 쓰면 풀 수 있겠지만, 혹시 몰라서 확인해 봤다.

신호영의 대답을 들은 정도현은 겨우 한시름 놨다.

“그럼 죽여도 되겠네.”

“……?”

급한 불이 꺼지자 정도현도 평소처럼 돌아왔다.

112레벨? 이건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정도현이 대놓고 살심을 드러내자 신호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오해하지 마라. 난 너와 대화하고 싶어서 불러낸 거다.”

“뭐 어쩌라고? 가만히 있던 할아버지를 인질로 잡아간 주제에.”

“그건 네 실력을 제대로 확인하고 싶어서…….”

“좇까.”

정도현이 칼을 휘둘러 변명을 잘라냈다.

검기를 주먹으로 받아친 신호영이 인상을 구기며 훈계하듯 말했다.

“재능은 있는데 말귀는 못 알아먹는군. 너무 오만해.”

“어쩌라고.”

카가가강-!

정도현이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신호영은 차분히 받아 내거나 흘려 내며 충고했다.

“네 실력으론 날 이길 수 없다.”

피해는 줄 수 있지만 딱 거기까지.

끝까지 싸우면 정도현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질 터.

‘아예 버릇을 고쳐 놔야겠군.’

대화는 그다음이다.

신호영은 손바닥을 펼쳐 주먹 대신 장법을 날려 댔다.

정도현은 순간 협소한 방 안에 갇힌 기분이었다.

툭.

쏟아지는 손바닥들을 정신없이 쳐 내던 중 하나가 복부에 닿았다.

[침투경에 적중당했습니다.]

[착용한 방어구의 방어력을 일부 무시합니다.]

“…쿨럭!”

투콰앙-!

그렇게 힘이 실린 공격도 아니었는데 몸 안에서 묵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도현이 피를 울컥 토하며 몇 미터나 밀려났다.

그는 피로 물든 입술을 쓱 닦았다.

“…방어력을 무시해? 이건 또 뭔 희한한 스킬이야?”

“침투경이란 무공이다. 상대의 몸속에 마력을 물처럼 스며들게 한 뒤, 일시에 격발시킨 거지.”

“…무공?”

무공. 낯선 단어를 접한 정도현이 눈을 끔뻑였다.

맨손으로 검기 이상의 위력을 낸다니. 믿기지 않았다.

“정도현, 네게 제안할 게 있다.”

뜨거운 맛을 봤으니 이제 좀 숙이겠지.

그렇게 생각한 신호영은 아까 못다 한 말을 계속했다.

정도현은 가볍게 무시하고 1원 상점에다 무공을 검색해 봤다.

그러자 녀석이 사용했던 침투경을 비롯해, 각종 무공의 스킬북이 나왔다.

‘이런 것도 있었구나.’

그는 90레벨 이하의 무공 스킬북을 전부 구매했다.

스킬북 설명에 웬 심법들도 적혀 있어서 쭉 읽어 봤다.

‘음, 무공마다 궁합이 괜찮은 심법들이 있고, 그 심법을 익히고 무공을 쓰면 위력도 한층 강해진단 거네.’

정도현은 심법을 여러 개 익혀 뒀다.

물론 「조화심법」을 익히기 전까진 동시에 쓰는 게 불가능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이 펼칠 무공에 맞춰서 심법을 골라 쓰면 되니까.

그러니 무공의 효율도 극한까지 짜낼 수 있을 터.

이 좋은 걸 여태 모르고 살았다니.

인생 절반 손해 봤다.

“…정도현, 내 말 듣고 있나?”

신호영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가 자신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걸 눈치챈 것이다.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구매한 스킬북을 전부 꺼내 사용했다.

그러자 수십 종류의 무공과, 그와 관련된 방대한 지식이 머릿속으로 홍수처럼 마구 흘러 들어왔다.

정보량이 어찌나 많은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낡은 책들이 빛의 알갱이로 변해, 정도현에게 흡수되는 걸 본 신호영.

그는 그게 뭔지 눈치챘다.

“…스킬북?”

잠시 뒤, 정도현이 감았던 눈을 떴다.

전신의 감각이 전보다 한층 농밀하게 다가왔다.

그는 써 보고 싶은 무공을 떠올리고, 그에 걸맞은 심법을 펼쳤다.

“……!”

샥-!

정도현이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신호영이 눈을 부릅떴다.

‘경신술에 보법까지?’

몸을 가볍게 만드는 경신술과 보법을 동시에 펼치자 정도현의 움직임이 전보다 몇 배는 더 빨라졌다.

후웅-!

측면으로 검기가 날아든다.

신호영이 기겁하며 호신강기를 일으켜 칼날을 막았다.

[침투경에 적중당했습니다.]

[착용한 방어구의 방어력을 일부 무시합니다.]

“……!”

콰앙-!

검기의 위력이 강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위력은 그대론데 방어력을 관통해서 훨씬 묵직하게 느껴졌다.

몇 미터나 밀려난 신호영.

작지만 내상을 입었다.

그가 피를 한 움큼 뱉고선 망연히 중얼거렸다.

“검으로 침투경까지 쓰다니…….”

침투경은 맨손으로 펼치는 무공.

저렇게 무기를 들고 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정도현은 스킬북으로 침투경의 묘리를 완벽히 이해해 제 것으로 삼았다.

그래서 검술에 접목하는 것도 가능했다.

침투경의 성능에 만족한 정도현이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 「만물상점」인지 뭔지에선 스킬북 안 파냐? 아, 너무 비싸서 못 샀으려나?”

“…뭐?”

개인 특성을 들키자 신호영의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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