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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34화 (134/240)

134화

정도현은 과욕을 부렸다.

110레벨을 잡았을 때 얻을 경험치가 너무 탐이 나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공주은의 능력을 받아칠 마검, 소울 이터를 쓰되 +5강을 먼저 꺼냈다.

그걸로도 충분히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110레벨의 벽은 높았다. 공주은의 숨겨 둔 한 수도 강력했다.

여력을 놔둔 채 이길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제 제대로 간다.”

정도현이 그리 말하며 +15강 소울 이터를 꺼냈다.

공주은도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는지 대검을 뚫어지라 쳐다봤다.

【저 여자를 베고 내게 영혼을 바쳐라!】

인간의 영혼을 먹어 치우고 점차 성장하는 마검, ‘소울 이터’.

녀석이 말을 했다.

강화를 거듭할수록 마검의 기운이 강해지더니, +10강을 넘기자 자아가 생겨 버렸다.

머릿속에서 시끄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도현이 표정을 찌푸렸다.

‘이래서 꺼내기 싫었는데.’

평범한 플레이어였으면 칼자루를 쥐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오염되고 놈의 광기에 잡아먹혔을 터.

하지만 정도현은 달랐다.

“입 닫아. 시끄러우니까.”

【건방진 놈! 내 힘을 빌려 쓰는 주제에 어디서 명령질이냐!】

정도현은 소울 이터의 지배력에 휘둘리지 않았다. 강고한 정신력 덕이었다.

정도현의 반항에 소울 이터는 게거품을 물었다.

하지만 녀석이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정도현은 놈의 외침을 무시하고 걸음을 내디뎠다.

“크윽!”

카앙-!

대검이 날아들자 공주은은 속절없이 뒤로 밀렸다.

플레이어 100명분의 영혼을 바쳐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올렸는데도 힘에서 뒤지다니.

+5강 소울 이터와는 차원이 다른 위력이었다.

‘100명분으로도 부족하단 거야?’

콰직!

낫이 부서졌다.

일반인들의 혼을 써서 낫을 만들어 봤자, 소울 이터 앞에선 몇 합 못 버티고 잡아먹힌다.

소울 이터는 평범한 사람의 영혼으로는 성에 안 차는지 불평했다.

【더 강인한 영혼을 바쳐라!】

“좀 닥치라고.”

【난 배가 고프단 말이다!】

소울 이터가 애처럼 반찬 투정을 해 댔다.

공주은 귀엔 저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그녀가 마치 화답해 주듯 플레이어의 영혼을 꺼내 낫을 빚었다.

전보다 훨씬 크고 단단해졌다.

카앙, 캉-!

소울 이터와 낫이 몇 차례 부딪혔다.

경쾌한 충돌음이 터져 나온다.

이번 영혼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소울 이터가 군침을 흘렸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구나. 인간, 더 빠르게 몰아쳐라!】

정도현은 이제 일일이 대답해 주기도 귀찮았다. 그냥 무시하고 싸움에 집중했다.

소울 이터는 내 말을 무시하지 말라며 자꾸 쫑알댔다. 저주받은 마검이 아니라 세 살짜리 애를 돌보는 것 같았다.

‘좀 더 몰아붙이면 승기를 잡겠어.’

말이 많아서 마음에 안 들지만, 소울 이터는 공주은 같은 능력자와의 싸움에서 아주 사기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정도현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콰아아-!

공주은의 몸에서 돌연 강대한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이 강렬한 압박감. 아까랑 똑같았다.

‘또 영혼을 바쳤어?’

쾅-!

속절없이 밀러던 공주은이 낫을 크게 휘둘렀다.

막아 내자 전투용 망치로 두들긴 듯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정도현이 쭉 밀렸고 공격의 주도권이 그녀에게로 넘어갔다.

카강, 카가가각-!

둘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공방을 주고받았다.

검기가 조각나 흩날리고 사방팔방 불꽃과 충격파가 일었다.

바닥과 벽이 쩍쩍 갈라진다. 몇 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불모지처럼.

정도현이 낫을 아슬아슬하게 쳐내며 질문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바쳤어?”

“닥치고 죽으세요!”

“몇 개나 바쳤는진 몰라도, 모아 둔 거 전부 썼지?”

공주은의 목소리에서 진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 남자와 싸울 때도 이렇게 많이 쓰지 않았는데.’

공주은은 해방단 보스와 맞붙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그녀는 고전했고, 플레이어의 영혼을 100개나 소모했다.

그런데 그 남자보다 한참 레벨이 낮은 정도현을 상대로 총 157명분의 영혼을 소모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모았는데!’

그녀가 울분을 담아 낫을 휘둘렀다.

정도현은 그걸 흘리면서 계속 이죽댔다.

“그 낫, 부서지면 더 못 만들겠네?”

【안 돼! 계집, 영혼을 더 내놔라!】

낫에 실린 힘이 쭉쭉 빠져나갔다.

소울 이터와 맞부딪히며 영혼이 깎여 나간 탓이다.

낫의 내구도가 얼마 안 남았다.

그걸 깨달은 공주은의 얼굴이 갈수록 흙빛으로 변했다.

‘내가 진다고?’

그것도 고작 90레벨한테?

말도 안 된다. 이럴 순 없어.

그녀의 현실 부정을 비웃듯.

콰득-!

낫이 더 버티지 못하고 뚝 부러졌다.

공주은이 급히 물러섰지만 대검에 크게 베였다. 피가 콸콸 쏟아지며 그녀가 무릎을 꿇었다.

【크하핫! 참으로 맛있구나.】

낫의 재료인 플레이어의 영혼을 먹어 치운 소울 이터가 잠시 황홀경에 빠졌다.

하지만 녀석은 만족을 몰랐다.

더 많은 영혼을 먹고 싶어서 미쳐 날뛰었다. 그러기 위해선 정도현의 협조가 필요했다.

지끈!

확실히 마무리 지으려던 정도현은 미세한 두통에 멈칫했다.

소울 이터가 그의 정신에 마수를 뻗어 간섭하려든 탓이다.

합성 강화로 독립적인 자아가 생기고, 수십의 일반인과 플레이어의 영혼을 먹어 치워 녀석의 저주가 전보다 커졌다.

【저 여자를 끝장내고, 저 묘인 녀석도 죽여 버려라!】

소울 이터는 정도현이 자신의 충실한 꼭두각시가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정도현은 대검을 노려보며 말했다.

“쓸 만해서 참아 줬더니 이젠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네. 적당히 설쳐야지.”

【크하핫! 헛된 발악이로다. 인간 따위가 내 명에 거역할 수 있을 성싶으냐?】

정도현은 일부러 정신 방벽을 거뒀다.

집 앞에 도둑이 있는데 현관문을 활짝 연 격.

도둑은 당연히 좋다며 헐레벌떡 발을 들였다.

【크하핫! 그래. 이제야 순종하는…….】

철컥.

정도현이 마음의 문을 잠갔다.

그의 정신에 붙잡히자 소울 이터가 심히 당황했다.

【인간, 이게 무슨 짓거리냐?】

“미친놈한텐 매가 약이지.”

【네깟 놈이 발악해 봤자…….】

정도현은 눈을 감고 자신의 내부를 관조했다.

정신세계로 들어오자 소울 이터의 자아가 보였다.

그와 똑같이 생겼으나 눈동자가 시뻘겋고 광기로 번들댔다. 정도현이 인상을 팍 쓰며 불평했다.

“왜 똑같이 생겼냐, 기분 나쁘게.”

【이렇게 된 이상 죽여 주마. 그럼 네 몸도 내 차지가 되겠지!】

소울 이터는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정도현의 정신력은 그보다 월등히 강했다.

퍽, 퍼억!

소울 이터의 자아가 흠씬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정도현은 녀석의 목을 한 손으로 붙잡고 들어 올렸다.

이대로 없앨 순 있지만 그러면 영혼을 먹어 치우는 능력도 사라질 터.

“소멸당하기 싫으면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켁, 커흑… 아, 알겠다…….】

“반말 말고 존댓말로.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아, 알겠습니다!】

소울 이터의 정신 교육을 끝마친 정도현이 살며시 눈을 떴다.

진규현의 얼굴이 보였다. 그가 자신의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갑자기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어서 걱정됐던 모양.

“야, 너 괜찮아? 그 검, 저주 아이템이라 하던데, 뭐 잘못된 거 아니지?”

“멀쩡해. 자꾸 귀찮게 굴길래 교육 좀 하고 왔어.”

【…….】

아까 같았으면 뭐라 시끄럽게 떠들었겠지만 이젠 잠잠했다.

물론 소울 이터도 이대로 순순히 포기하진 않았을 거다. 호시탐탐 기회가 오길 노리겠지.

하지만 당분간 이 녀석을 쓸 일은 없다.

정도현은 고갤 돌려 공주은을 쳐다봤다.

“허억, 헉…….”

그녀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는지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지나간 곳에 시뻘건 핏물이 줄처럼 그어졌다.

그래봤자 빈사 상태. 얼마 가지 못했다.

정도현이 앞길을 막아서자 공주은이 흠칫하며 고갤 들었다.

“자, 잠깐만… 살려 주세요! 제 능력 아시잖아요? 분명 쓸모가 있을 거예요!”

“유언은 그게 다야?”

정도현이 평소 쓰던 장검을 꺼냈다.

그러자 소울 이터가 한 차례 진동했다.

공주은의 영혼을 먹고 싶었던 모양.

정도현은 소울 이터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놈이 뭐가 이쁘다고 간식을 준단 말인가.

“사, 상점창! 당신 말고도 상점창을 쓰는 사람이 있어요!”

우뚝.

그가 검을 내리치려다 멈췄다.

나 말고도 상점창을 쓰는 녀석이 있다고?

눈빛을 보니 막 지어낸 말은 아닌 듯했다. 그녀는 뭔가 알고 있다.

정도현이 슬쩍 칼을 내렸다.

“그게 누군데?”

“얘기해 주면… 절 살려 준다고 약속하세요!”

“그래, 약속할게.”

“누굴 바보로 알아요? 피의 맹약을 맺어야죠!”

말뿐인 약속은 절대 믿을 수 없다.

정도현은 경험치에 눈이 먼 사내다.

그녀를 골백번 죽일 수만 있다면 그리하고도 남을 테지.

“그러지, 뭐.”

정도현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러자 공주은과 진규현이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경험치에 눈이 뒤집힌 녀석인데 이리 쉽게 포기한다고?

오히려 더 의심스러웠다.

그들의 의혹은 사실이었다.

정도현은 경험치를 포기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맹약 파기권 쓰면 되지.’

정보를 듣고 난 뒤에 피의 맹약은 깨 버리면 된다.

저들은 그런 아이템이 있는지도 몰랐겠지만.

정도현이 피의 맹약서를 꺼내자 진규현이 급히 말렸다.

“야, 상점창 쓰는 녀석이 누군지 나도 알아.”

“그래? 누군데?”

“해방단 보스야.”

진규현이 정답을 가로채자 공주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자신의 개인 특성을 너무 과신했다.

신도들에게 배신당할 일은 절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중요한 비밀도 전부 공유했고 스스로 무덤을 팠다.

“표정 보니까 맞나 보네?”

“아, 아…….”

서걱-!

정도현이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다.

공주은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어 툭 떨어졌다.

끼에에에에-!

그녀가 죽자 영혼이 빠져나와 도망치듯 어디론가 날아갔다.

영혼 낙인의 저주는 본인도 벗어날 수 없는 건가.

화르륵-!

껍데기만 남은 공주은의 육체가 활활 불타 사라졌다.

동시에 방대한 경험치가 정도현의 몸으로 흘러 들어왔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무려 3레벨이나 올랐다. 오랜만의 폭업에 그의 입꼬리가 씰룩댔다.

93레벨. 이제 관리국 팀장들과 거의 비슷해졌다.

‘100레벨에 도달하면 고레벨 플레이어로 인정받게 돼.’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던 첫 번째 종착점이 이젠 어렴풋이 보였다.

물론 여태 모아 온 경험치보다, 지금부터 100레벨이 되는 데 필요한 경험치가 훨씬 많겠지만.

“…솔직히 이길 줄 몰랐어. 진짜 다행이다.”

“고생했다, 진규현.”

“고마워. 네 덕분에 이제 마음 편히 살 수 있겠어.”

정도현과 진규현이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규현은 정도현이 마음에 들었다.

사고방식이 좀 위험하지만, 천성이 나쁜 놈 같진 않았다.

지잉-!

휴대폰이 울렸다. 정도현이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확인했다.

“많이도 왔네.”

“여자친구?”

“아니, 내 고용주.”

정도현은 권하율이 보낸 문자를 뒤늦게 확인했다.

지하 방공호에 있을 때부터 쭉 보냈는지 밀린 문자가 한가득이었다.

“네가 살아 있는지도 물어보네? 너랑 통화하고 싶다는데.”

“뭐? 난 왜?”

“나도 모르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

진규현은 정도현의 휴대폰을 빌려 권하율과 통화했다.

[정도현 씨, 괜찮아요? 무사한 거죠?]

“그게… 정도현은 무사하고요. 전 진규현입니다.”

[아! 살아 계셨군요. 다행입니다.]

“팀장님이 절 찾았다던데, 무슨 용건이십니까?”

[통화로 말하긴 그렇고, 직접 만나서 얘길 좀 나누고 싶은데요. 괜찮으신가요?]

설마 날 잡으려고 불러내는 건가?

진규현이 고양이 귀를 쫑긋 세우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옆에서 듣던 정도현이 고갤 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그럴 사람은 아니니까.”

“…정말 믿어도 돼?”

“잡을 거였으면 내가 벌써 잡았겠지.”

그 말에 진규현도 고갤 끄덕였다.

무슨 소릴 할지 모르겠지만, 강제로 체포하진 않을 거다.

정도현의 가짜 테러 덕에, 그는 본의 아니게 아무 짓도 안 한 셈이 됐으니까.

그는 정도현과 함께 권하율이 기다리는 장소로 「공간 도약」 했다.

* * *

공주은이 죽고 며칠이 흘렀다.

C구역 전역이 떠들썩했다.

돌연 몸이 불타 돌연사한 자들이 속출한 것이다.

관리국이 보고받은 사망자만 천 명이 훌쩍 넘었다.

이 괴기한 현상에 C구역 시민들은 본인도 그리될까 봐 벌벌 떨었다.

한편, 뉴스 속보를 보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순백교 교주가 죽었나 보군.”

“거봐요, 아저씨. 내 말대로 됐죠?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니까요.”

예언자, 강새벽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따졌다. 남자는 말없이 일어섰다.

그러자 강새벽이 샐쭉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제 어쩔 거예요?”

“순백교 교주가 당했고, 신도들도 그녀와 함께 사망했다.”

C구역의 거대 세력 하나가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그 빈자리를 차지하고자 다른 녀석들이 움직일 터. 곧 C구역에 많은 피가 흐르리라.

“이번 일도 아마 그 녀석이 벌였겠지.”

“그 정도현이란 남자요?”

“그래.”

해방단을 무너뜨린 것도 그놈 짓이었다.

C구역에 올라온 지 뭐, 얼마나 됐다고 순백교를 무너뜨린단 말인가.

놈에겐 특별한 뭔가가 있다.

“녀석을 만나 봐야겠어.”

어떤 능력을 가졌는진 몰라도, 자신의 계획에 큰 도움이 될지 모른다.

“아저씨, 그래도 괜찮아요?”

“뭐가.”

“동료분들 죽었던 날… 아저씨 울었잖아요.”

골리앗과 엔지니어.

오랫동안 그를 따랐던 해방단 간부들.

남자는 그들의 얼굴이 무심코 떠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정도현은 해방단을 무너뜨린 장본인이다.

마음에 안 들었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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