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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33화 (133/240)

133화

너무도 갑작스러운 만남에 공주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정도현의 머리 위에 뜬 레벨을 보고선 경악했다.

‘90레벨?’

언제 저렇게 많이 성장한 거지?

던전 공략으론 저만큼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없었을 텐데.

광서혁처럼 암흑가에서 레드 플레이어라도 사냥하고 다녔나?

“……!”

방금 몰살당한 간부들.

대뜸 진규현과 함께 나타나 경험치를 받으러 왔다는 정도현.

그녀의 머릿속에서 두 요소가 하나로 맞물리더니 곧 이런 가설이 도출됐다.

“설마 당신이 간부들을……?”

“어, 내가 죽였어. 꽤 짭짤했지.”

정도현은 순순히 인정했다. 잡담이나 나누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었으니까.

빠득!

공주은이 이를 갈았다. 범인이 제 발로 찾아와 죄를 자백하다니.

“왜 온 거죠? 죽고 싶어서 왔나요?”

“세상에 죽으러 오는 놈이 어딨어. 경험치 받으러 왔다니까?”

“…입만 살았군요.”

공주은이 싸늘한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녀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백령안’을 발동했다. 그러자 동공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백령안은 영혼을 투시하는 눈.

다시 말해 상대의 영혼에 새겨진 고유의 힘, 개인 특성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녀는 정도현을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

“안 그래도 궁금했어요. 어떤 개인 특성을 지녔는지… 어?”

[‘정도현’ 플레이어의 개인 특성: 1원 상점]

1원 상점이라니, 저게 뭐야?

공주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반응에 정도현이 고갤 끄덕였다.

“아, 그래. 너, 타인의 개인 특성을 엿볼 수 있다지?”

“1원 상점이라니, 그게 대체 뭐죠……?!”

“뭐긴 뭐야. 말 그대로지.”

“자, 잠깐만요!”

정도현이 대검을 번쩍 들며 전투태세를 갖추자, 공주은은 손바닥을 내밀며 멈추라고 했다.

“정도현 씨, 지금까지 한 짓은 전부 용서해 줄게요. 대신 제 밑으로 들어오세요.”

“뭔 개소리야.”

“당신의 특성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공주은은 해방단 보스의 개인 특성, 「만물상점」을 호시탐탐 노렸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게 나타났다.

1원 상점. 이름만 봐도 어떤 능력인지 느낌이 온다.

‘상점창 아이템을 1원에 살 수 있는 거겠지.’

물론 무제한으로 살 수 있는 건 아닐 거다. 제약이 있을 터.

그래도 겨우 1원이다. 뭘 사도 무조건 남는 장사였다.

“이제 좀 알겠네요.”

정도현이 어떻게 저리 빨리 성장했는지. 포션과 각종 아이템들을 단돈 1원에 구매해서 펑펑 썼겠지.

‘저 능력은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

정도현을 죽이면 개인 특성을 뽑아낼 수 있겠지만, 그녀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정도현이라는 인재가 탐이 났다.

단순히 1원 상점과 운만으로 이만큼 올라온 건 아닐 터.

그는 젊고 재능도 있었다.

게다가 순백교 간부들마저 그에게 모조리 쓸려 나간 상황 아닌가.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마당에 저만한 인재를 바로 없애자니 너무 아까웠다.

가능하다면 회유해야 한다.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 회개할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여기서 죽을지, 제게 충성할지 고르세요. 솔직히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않나요?”

“난 노예가 될 생각 없어.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정말 괜찮겠어요? 지켜야 할 가족들이 있잖아요?”

공주은이 날카로운 말투로 협박했다.

정도현의 뒷조사는 진즉 해 뒀다.

“당신 혼자 죽는 거론 안 끝날 거예요. 가족과 지인까지 모조리 찾아내서 죽여 버릴 겁니다.”

잃을 게 많은 사람은 그만큼 다루기가 쉬웠다.

공주은은 평소 해 왔듯이 세 치 혓바닥으로 그를 굴종시키려 했다.

그러자 정도현이 머릴 긁적이며 중얼댔다.

“안 되겠네.”

“말귀가 통해서 다행…….”

“넌 진짜 안 되겠어.”

“…예?”

척.

정도현이 대검을 그녀에게 겨눴다.

그 행동의 의미는 명확했다. 공주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실력이 쓸 만해 보여서 좋게 말해 줬더니,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 되나요? 설마 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시죠?”

“뭐 이렇게 혓바닥이 길어.”

정도현이 문답무용으로 달려들었다.

공주은이 보기엔 참으로 같잖았다.

개미가 코끼리를 이겨 보겠다고 덤비는 격이니까.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죠, 죽이고 뺏는 수밖에.”

공주은의 옛 별명은 ‘망령 군주’.

죽은 자들의 영혼을 흡수하고, 그것들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바로 이렇게.

끼에에엑-!

그녀의 손아귀에서 수십의 망령들이 주르륵 쏟아졌다.

헐벗고 비쩍 마른 영체들이 저마다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헉!”

개떼처럼 몰려오는 망자들.

진규현이 기겁하며 「공간 도약」으로 멀찍이 물러섰다.

반면 정도현은 망령들을 향해 혼자 돌격했다. 참으로 무모하기 짝이 없다.

공주은은 그를 그렇게 평가했다.

하지만 정도현도 아무 대책 없이 달려든 게 아니었다.

“……!”

촤아악-!

영혼은 평범한 검으로 벨 수 없다.

하지만 정도현의 대검에 썰리자, 망령들이 소용돌이처럼 찌그러지며 칼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에 공주은이 눈을 부릅떴다.

“내 망령들을… 흡수했어?”

망령과의 영적 연결이 뚝 끊어졌다.

저 대검이 영혼을 잡아먹은 것이다.

‘사람의 영혼을 빨아먹는 검인가?’

저런 건 대개 저주받은 무기일 텐데.

성능은 강력하지만, 쓰면 쓸수록 사용자를 타락시키고 미치게 만든다.

어지간한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도 없을 텐데.

서걱, 촤악!

정도현이 쉴 새 없이 대검을 휘두르며 망령들을 소멸시켰다.

둘 사이의 거리가 바짝 좁혀졌다.

공주은은 수인을 맺으며 망령들을 더 소환했다.

저 꺼림칙한 검에 망령이 닿으면 곧바로 먹히니, 그 전에 타격을 입혀야 한다.

“타올라라.”

그녀의 중얼거림에 망령들이 정도현 주위를 빙빙 돌았다.

정도현은 포위망을 뚫으려 했으나, 그것들은 하나둘 시퍼런 도깨비불로 변하더니 일제히 터졌다.

콰과과광-!

연쇄 폭발로 시커먼 연기와 충격파가 공간을 뒤흔든다.

잿더미가 되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살벌한 위력.

그러나 공주은의 얼굴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걸 맞고도 안 죽었어?”

정도현의 영혼이 들어오지 않았다.

즉, 그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럼 빈사 상태에 빠진 걸까?

후웅-!

그녀의 추측을 비웃듯 폭발 현장에서 세찬 돌풍이 불었다.

정도현이 대검을 휘둘러 매캐한 연막을 멀리 날렸다.

얼굴과 몸 곳곳에 검댕이 묻었지만, 화상 자국이나 크게 다친 곳은 딱히 없어 보였다.

“저주 저항력이 엄청나네요? 수십 명의 원혼을 한꺼번에 터트렸는데 멀쩡하시다니.”

“세계수의 열매를 먹었으니까. 그러니 괜한 짓 하지 마.”

“…과연.”

세계수의 열매를 언급하자 공주은이 감탄을 터트렸다.

그건 1, 2급 시민만 먹을 수 있는 아이템. C구역 태생인 그녀는 소문으로만 접해 봤다.

먹으면 신체 노화가 극도로 느려지고, 온갖 질병에서 해방된다.

게다가 저주 내성도 엄청나게 키워 주니, C구역 플레이어들에겐 꿈의 열매였다.

“세계수의 열매도 1원에 샀나요?”

“알면서 왜 묻냐.”

“…당신은 절대 놓칠 수 없겠네요.”

공주은이 탐욕에 찬 눈으로 쳐다봤다.

끼에엑-!

그녀는 망령 몇을 재료로 써서 커다란 낫을 만들었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낫을 돌리자, 정도현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근접전도 할 수 있었어?”

“쉽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달려들었다. 110레벨이 그저 장식은 아니었는지 상당히 빨랐다.

카앙!

대검과 망령의 낫이 부딪히자, 충격파가 터지며 정도현이 밀렸다.

콰가각!

그는 대검을 땅에 꽂고 몸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미간으로 날카로운 살기가 날아들었다.

정도현은 급히 대검을 방패처럼 내밀며 낫을 막아 냈다.

카앙-!

묵직한 충격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정도현은 통증을 꾹 참고 대검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공주은이 폴짝 뛰어 대검 위에 안착했다.

“위험해!”

멀찍이 물러나 지켜보던 진규현이 경고했다.

대검 위에 올라탄 공주은이 머리 위로 낫을 내리찍었다.

정도현의 두개골을 장작처럼 쪼갤 기세였다. 그녀가 승리를 확신했을 때.

“「영혼 속박」.”

“……!”

콰아아아-!

그가 시동어를 내뱉자 옥빛의 대검이 울부짖었다.

아까 대검이 먹어 치운 망령들이 튀어나와 공주은의 팔다리를 뱀처럼 휘감았다.

낫이 그의 정수리에 닿기 직전 멈췄다.

“…큭!”

움직임이 봉쇄된 건 찰나였다.

끽해야 1초. 하지만 플레이어들의 싸움에서 1초는 제법 컸다.

퍼억-!

정도현이 그녀의 턱을 걷어찼다.

공주은이 피를 울컥 뱉으며 뒤로 날아갔다. 90레벨이 낼 만한 위력이 아니었다.

쿵!

바닥에 머리부터 떨어진 공주은.

그녀는 비틀대며 일어섰다. 골이 울려서 눈앞이 어질거린다.

‘치명타가 터졌다.’

그녀가 주춤하는 사이, 정도현이 달려들며 소리쳤다.

“맷집은 좀 딸리나 보네?”

“…큭!”

대검을 내리찍자 공주은이 낫을 들어 올려 막아 냈다.

쩌적-!

낫에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저 대검과 접촉할 때마다 영혼이 갉아 먹힌 탓이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오래 접촉하면 안 돼.’

그렇게 생각하며 힘겨루기를 끝내려 할 때.

퍼억-!

정도현의 발차기가 그녀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그녀의 얼굴이 바닥에 처박혔다.

치명타가 또 터졌다.

데미지가 3배 정도 들어갔을 테니 꽤 어질어질할 거다.

전부 니케의 목걸이 덕이었다.

정도현이 대검을 힘껏 내리찍었다.

그러자 공주은이 기겁하며 옆으로 굴러 겨우 칼날을 피했다.

“허억, 헉…….”

벌떡 일어난 공주은이 충혈된 눈으로 정도현을 노려봤다.

저 망할 마검만 아니었으면 진즉 끝냈을 텐데.

“…사람의 영혼을 먹는 검이라니. 딱 봐도 저주 아이템 같은데, 그런 위험한 걸 써도 괜찮겠어요?”

“네가 지금 남 걱정할 때냐?”

정도현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공주은도 물러서지 않고 낫을 크게 휘둘렀다.

터엉, 콰지직!

망령의 낫이 대검과 부딪치고 얼마 못 가 부서졌다.

이어서 목을 노렸으나 아슬아슬하게 비껴 갔다.

촤악!

목 대신 상반신에 길쭉한 자상이 생겼다.

피가 주르륵 쏟아지며 공주은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이겼어? 진짜 이겼잖아!?”

싸움을 구경하던 진규현이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댔다.

정도현이 절대 끼어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해서 초조하게 지켜만 봤는데, 녀석이 진짜로 해냈다.

정도현이 대검을 번쩍 들었다.

그대로 공주은을 반으로 갈라 버릴 속셈 같았다.

“허억, 헉…….”

공주은이 상처를 부여잡은 채 표독스럽게 정도현을 노려본다.

진규현은 고갤 저었다.

이미 결판은 났다.

저렇게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선 피하거나 막지 못할 터. 분명 그래야 했다.

터억-!

대검을 공주은이 맨손으로 붙잡았다.

칼날에 손바닥이 찢어지며 피가 뚝뚝 흘렀다.

그러나 막았다.

그가 아무리 힘을 줘도 대검은 요지부동이었다.

정도현이 속으로 당황했고, 지켜보던 진규현도 그 이상으로 경악했다.

“7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 영혼 100명분……. 방금 바친 영혼의 수입니다.”

공주은이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다.

가슴팍에 난 상처도 그새 아물었다.

정도현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했다.

‘영혼을 소모해서 능력치를 올린 건가?’

그런 버프 스킬이 있었나. 이게 그녀가 감춰 둔 비장의 패겠지.

정도현은 영혼을 먹는 검, ‘소울 이터’를 버리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공주은이 매섭게 따라붙었다.

땅을 가볍게 한 번 걷어찼을 뿐인데 바닥이 쪼개진다.

“어딜!”

그녀의 주먹이 정도현의 명치에 제대로 꽂혔다.

쾅, 콰과광-!

정도현은 핀볼처럼 바닥과 벽면에 부딪혀 몇 번 튕겼다.

“플레이어들의 영혼을 모으느라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아세요?”

콰드득-!

그녀는 땅바닥에 버려진 정도현의 대검, 소울 이터를 주워 들었다.

그러더니 양손으로 붙잡고 힘을 가해 산산조각 냈다.

쪼개진 칼날들이 유리 파편처럼 떨어진다.

그녀를 물리칠 비장의 무기가 망가졌다.

“후우… 기분이 어떠신가요, 배신자 씨?”

공주은이 숨을 고르곤 고갤 돌려 진규현을 쳐다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그녀가 비웃으며 말했다.

“도망치게요? 부질없어요. 신도들이 당신을 밤낮으로 추격할 테니까.”

언제 습격해 올지 몰라, 두 발 뻗고 잠도 못 자는 신세가 될 거다.

「공간 도약」도 결코 만능은 아니다.

장거리 이동엔 마력이 많이 들고, 쿨타임도 그만큼 늘어난다.

당장은 도망쳐도 결국 잡히는 건 시간문제일 터.

깊은 절망감에 무릎이 절로 꺾였다.

“묘인이 되더니 머릿속도 고양이가 됐나요? 멍청하게 제 주인도 못 알아보다니. 그러길래 제가 대우해 줄 때 잘했어야죠.”

공주은이 그렇게 중얼대며 부러진 대검을 휙 버렸다.

바로 그때, 무너진 잔해 속에서 정도현이 일어섰다.

그는 입속에 고인 핏물을 퉤 뱉으며 말했다.

“…역시 110레벨은 만만치가 않네. 욕심이 너무 과했나.”

“흥, 끈질기긴. 이제 좀 주제 파악이 되셨나 보네요. 하지만 이미 늦었어요.”

그녀의 능력을 카운터쳤던 마검, 소울 이터는 이제 없다.

게다가 영혼들을 제물로 써서 능력치까지 올라간 상황. 정도현에게 승산은 없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끝장내 주마.

그녀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쿵.

정도현이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꺼냈다.

그건 소울 이터였다.

“…뭐?”

마검이 하나 더 있다고?

공주은의 표정이 굳자, 정도현이 너스레를 떨었다.

“뭘 놀라? 고작 에픽 등급인데. 이런 거 수십 자루는 더 있어.”

에픽 등급이 고작이라니.

C구역 플레이어들한테도 에픽 장비는 상당한 고가였다.

물론 정도현한테는 1원짜리였지만.

“…그래서 뭐, 어쨌다고요? 그게 몇 자루나 더 있든, 이제 당신은 저한테 안 돼요.”

“방금 건 +5강이었어.”

“…뭐라고요?”

“인정할게. 경험치 욕심을 너무 냈어. 110레벨은 처음 사냥해 봐서 좀 흥분했거든.”

“당신, 지금 무슨 소릴…….”

정도현은 새로 꺼낸 +15강 소울 이터를 쥐고 자세를 잡았다.

오싹-!

공주은의 머리털이 쭈뼛 섰다.

겉모습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왠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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