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부패의 마녀는 정도현을 조수석에 태운 채 직접 차를 몰았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저희 둘이서만 가는 거예요?”
“어.”
“관리국에 신고해서 증원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시간을 줘선 안 돼. 권하율을 이용해서 또 뭔 짓을 꾸밀 줄 알고?”
그들은 인형의 마녀의 은신처로 향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말도 분명 일리는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병력이 얼마나 있는지 모른다. 고작 둘이서 쳐들어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난 병사들도 싹 잃었다고!’
부패의 주문이 있긴 했지만, 마력 소모가 심하고 딱 한 명한테만 걸 수 있었다.
저주에 걸린 대상이 죽지 않으면 부패의 주문은 쓸 수 없었다.
즉, 여럿이 한꺼번에 달려들면 그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겐 전위를 맡아 줄 언데드 병사가 필수였다. 그걸 정도현 때문에 전부 날려 먹었다.
“전 데려가 봤자 별 도움도 안 될 텐데…….”
“운전할 줄 알잖아.”
“그, 그럼 아지트에 도착하면 전 돌아가도 되나요?”
“안 돼. 그럼 난 돌아갈 때 걸어서 가냐?”
정도현이 혼자 쏙 빠질 생각 말라며 일축했다. 부패의 마녀는 울상을 지었다.
“그럼… 저 안 죽게 지켜 주실 거죠?”
“노력은 해 볼게.”
무책임한 대답에 부패의 마녀는 속으로 절망했다.
그는 그녀가 죽든 말든 별 관심도 없는 모양이었다.
‘설마 고자야?’
부패의 마녀는 그를 계속 유혹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로선 자존심이 진창에 처박힌 기분이었다.
이렇게 목석같은 남자는 살다 살다 처음 봤다.
둘은 한참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오래전 게이트 붕괴가 일어나 폐쇄 구역으로 지정된 땅.
들짐승의 발길조차 끊어진 이곳에 웬 저택이 덩그러니 있었다.
부패의 마녀는 시동을 끄며 말했다.
“도착했어요.”
“아지트치곤 화려하네.”
“…인형의 마녀는 다른 마녀들보다 돈 벌기가 쉬우니까요, 머릿속도 꽃밭이고.”
인형의 마녀는 재벌가 출신 몇몇을 남몰래 납치해 인형으로 삼아 뒀다. 그래서 돈에 허덕일 일은 없었다.
‘퍼펫이랑 능력 활용법이 거의 똑같네.’
다만 인형의 마녀가 퍼펫의 상위 호환이었다.
퍼펫은 일반인들만 조종할 수 있지만, 인형의 마녀는 시간만 들이면 플레이어도 지배가 가능했다. 게다가 거리 제한도 없었다.
“입구를 지키는 병력은 없나 보네. CCTV 같은 것도 안 보이고.”
정도현이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누가 보면 초대받은 손님인 줄 알겠다.
부패의 마녀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몰래 잠입해도 살아 나올 수 있을지 모르는데 저렇게 무작정 접근하다니.
‘그쪽이 강한 건 잘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무모하잖아!’
언뜻 보면 정도현이 말한 것처럼 감시 체계가 없는 듯했지만, 마녀가 그리 허술할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정문에 새겨진 마법진이 은은하게 빛나며 보호막이 펼쳐졌다.
게다가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인형의 마녀였다.
[어머. 벌써 왔어? 그나저나 부패의 마녀, 너 안 죽었네?]
“너, 너…!”
[아하, 그 남자한테 붙었구나? 나한테 복수하려고?]
부패의 마녀가 사냥개처럼 으르렁대자, 인형의 마녀는 멍청한 선택이라며 비웃었다.
고작 둘이서 기웃대다니. 그녀 눈에는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처럼 보였다.
“권 팀장님은 무사하냐?”
[그럼! 소중한 소재인데 망가뜨리면 안 되지. 조금만 더 있으면…….]
카앙-!
그녀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정도현이 검기로 정문을 쾅 내리쳤다.
권하율이 무사하단 걸 알았으니 됐다.
대화는 나중에 얼굴 보고 실컷 하면 된다.
쾅, 쾅!
연신 내리치자 보호막에 금이 쩍 갈라졌다.
[야, 너! 사람이 말을 하면 끝까지 들어야…….]
콰직-!
보호막과 함께 대문이 날아갔다.
동시에 집주인의 성난 목소리도 뚝 끊겼다.
“뭐 해? 안 들어오고.”
“…아, 예.”
정도현은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부패의 마녀는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둘은 커다란 정원을 지나 저택의 문 앞에 섰다.
정도현은 노크 대신 발로 힘껏 걷어찼다. 시원한 소리와 함께 문짝이 뻥 날아갔다.
“이 이상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인형들이 무장한 채 정도현 일행을 맞이했다. 얼핏 봐도 열이 훌쩍 넘는다.
레벨은 전부 80레벨 아래였지만 저들은 인형의 마녀가 만든 도핑제로 한층 강력해진 상태.
“이, 이제 어쩔 거예요?”
“어쩌긴. 뚫고 가야지.”
저들이 얼마나 강하든 말든 그보다 레벨이 낮다. 그러니 경험치도 안 줄 터.
정도현은 전력을 다하기로 했다.
그가 검기를 내뿜자, 부패의 마녀도 어쩔 수 없이 지팡이를 꺼냈다.
그러자 인형들 중 누군가가 비틀대더니 입을 열었다.
“설마 이 사람들 다 죽이게? 너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구나?”
“아깐 인형이니 뭐니 지껄이더니 이럴 땐 사람 취급하냐?”
“…….”
정도현의 반박에 시종의 몸을 빌린 인형의 마녀가 눈살을 찌푸렸다.
말투가 상당히 건방졌다. 철저히 짓밟아 망가트리고 싶어질 정도로.
그래도 죽이면 안 된다. 저건 귀중한 인형 소재니까.
인형의 마녀가 냉랭한 웃음을 보내며 말했다.
“좋아. 얼마나 대단한지 구경 좀 해 볼까?”
인형의 마녀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인형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정도현은 칼을 빠르게 휘둘러 반월참을 무더기로 쏘아 냈다. 마치 마법을 날리는 것 같았다.
촤좌좍!
앞장서던 인형들은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내장을 쏟아 내며 죽었고, 그 뒤를 따르던 이들은 아슬아슬하게 굴러서 피했다.
“저, 저게 뭐야?”
“…검기를 발사했어?”
마녀들은 처음 보는 기술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도현은 이 기세를 몰아 남은 인형들에게 달려들었다.
촤악! 서걱!
그가 칼을 휘두를 때마다 인형들의 사지가 떨어져 나갔다.
찐득한 피와 살점들이 바닥에 마구 흩뿌려졌다.
이건 싸움이 아닌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수십 초가 지나고 멀쩡히 서 있는 건 정도현뿐이었다.
시체와 유혈에 익숙한 마녀들도 참혹한 현장에 표정을 찌푸렸다.
“너, 암흑가 출신이야?”
“그랬으면 심사에서 떨어졌겠지.”
그의 무자비함에 인형의 마녀는 기가 막혔다. 사람들을 도륙 내고도 전혀 동요하질 않는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권하율과 전혀 달랐다.
“…권하율보다 강한 것 같은데 왜 용병으로 있는 거야?”
관리국 전속이라도 용병은 결국 용병.
길드에 들어가는 편이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터인데.
정도현은 대답해 주는 대신 검을 겨누며 경고했다.
“시간 끌 생각 말고 빨리 튀어나와. 집에 불 지르기 전에.”
“…들켰네.”
인형의 마녀는 혀를 내둘렀다.
그는 단순무식해도 그렇게 우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발 늦었어. 막 끝냈거든.”
“…끝내?”
“서, 설마!”
인형의 마녀가 히죽 웃으며 의미심장한 소릴 뱉었다.
부패의 마녀는 무슨 뜻인지 직감했다.
권하율을 기어이 인형으로 만든 것이다.
납치한 지 몇 시간밖에 안 됐는데 완성하다니. 평소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96레벨에 도핑제까지 주입하면…….’
엄청나게 강력해질 터. 게다가 인형은 권하율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인형들은 아직 한참 남았을 터.
과연 정도현 혼자서 그들 전부를 감당할 수 있을까?
“권하율의 외형은 건들 게 거의 없어서 수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
서걱-!
정도현은 신이 나서 떠들던 인형의 목을 가차 없이 날렸다.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데구루루 굴러갔다.
적들을 몰살시킨 정도현이 말없이 마력 포션을 꺼내 마셨다.
부패의 마녀는 그의 눈치를 살피며 쭈뼛쭈뼛 다가왔다.
“저, 저기…….”
정도현의 동료가 인형이 되었다.
이제 원래대로 되돌릴 수도 없다.
그녀도 그건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래도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단 도망치자. 그녀가 그렇게 말하려 할 때.
정도현이 무덤덤한 얼굴로 부패의 마녀를 쳐다봤다.
“시신들 한 곳에 다 모아 봐.”
“…예?”
정도현의 지시에 그녀는 물음표를 띄웠다. 갑자기 시신을 모으라니?
“그런 짓을 왜…….”
아니, 그보다 동료가 인형이 됐는데 거기에 대해선 일절 반응이 없다.
화를 내든, 눈물을 흘리든, 분해하든 뭔가 보여야 정상 아닌가?
그녀는 의아했지만 정도현이 시키는 대로 시체를 한 곳에 모았다.
“다 모았어요.”
“머리 다 자를 거니까 그것만 불태워.”
“예?”
“머리만 불태우라고. 설마 화염 주문 못 써?”
“아, 아뇨. 기초 주문 정도는 쓸 수 있는데요…….”
살인의 증거를 지우고자 시신을 불태우려 한다면 이해가 된다.
그럼 왜 머리만 제거한단 말인가?
이유가 궁금했지만 정도현은 설명 대신 재촉하는 눈빛을 보냈다.
화르륵-!
그녀는 정도현이 자른 수급을 한데 모아 싹 불태웠다.
모든 시신의 머리가 없어지자 정도현은 한 명을 부활시켰다.
시신에서 잘린 머리가 돋아나고, 토막 난 몸도 원상 복구 됐다.
“허억, 헉!”
이윽고 망자가 뜨거운 숨결을 뱉으며 눈을 떴다. 그걸 본 부패의 마녀는 입을 쩍 벌렸다.
“주, 죽은 사람을… 아이템으로 되살린 거였어요?”
“뭘 놀라? 너도 이걸로 살아났잖아.”
“당연히 성녀처럼 개인 특성인 줄 알았죠! 저한텐 말 안 해 줬잖아요!”
“아, 그랬나?”
부패의 마녀가 억울하다며 따지자, 정도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무시했다.
그는 되살아난 플레이어를 수하로 삼고서 명령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살려서 저택 밖으로 빠져나가. 바깥에 차가 한 대 있을 거야. 거기서 조용히 대기해.”
“아, 예!”
정도현이 부활 아이템을 건네며 지령을 내리자, 남자는 얼빠진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몰랐지만,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여지자 감격에 젖었다.
그렇기에 정도현의 지시에 군말 없이 따랐다.
부패의 마녀가 되살아난 남자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저, 저거 어떻게 된 거예요?”
“인형의 마녀는 뇌를 건드려서 조종한다며? 그래서 뇌를 파괴했지.”
“…예?”
부활 아이템, 신성한 용의 구슬은 죽은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은 시신을 빈사 상태로 되살려 낸다.
그 과정에서 죽을 때 당시 입었던 상처와 소실된 신체 부위도 전부 원래대로 복구해 준다.
‘개조한 뇌도 고쳐 줄지 말지 모르니까.’
“그래서 그냥 머리통을 없앴어. 그럼 정상적인 머리로 돋아날 테니까.”
“…….”
부패의 마녀도 무슨 소린지 이해는 했다.
다만 너무나 과격한 방식이라 말문이 막혔을 뿐.
플레이어가 조종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두뇌. 그러니 파괴한다.
이걸 비범하다 해야 할지, 야만스럽다고 해야 할지.
“이봐.,인형의 마녀는 어딨어?”
“지하에 숨겨진 공간이 있습니다. 수술실도 있으니 거기에 있을 겁니다.”
“내려가는 통로는?”
되살아난 남자는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의 위치를 알려 줬다.
드르륵-!
남자가 알려 준 방을 뒤지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정도현과 부패의 마녀는 지하 공간으로 내려갔다.
* * *
뇌 수술이 끝나고 권하율이 눈을 떴다.
인형의 마녀는 걸작을 완성한 장인처럼 환희에 찼다.
“…인형의 마녀.”
“어?”
그런데 권하율의 말투가 이상했다.
다른 인형들처럼 공손하지가 않았다.
아가씨로 부르란 명령을 심어 뒀는데 그녀가 저항한 것이다.
“…아하, 나보다 레벨이 높아서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나 보네?”
권하율은 인형의 마녀보다 1레벨 더 높았다.
그래서 몸의 주도권을 뺏겼어도 자유롭게 말할 순 있었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를 인형으로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라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이런 인형도 신선해서 나쁘지 않은걸?”
“…….”
인형의 마녀는 권하율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중얼댔다.
어차피 명령에 복종하는 건 변함없으니까.
못생겼으면 불량품이니 처분했겠지만 권하율은 그녀 취향이었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굴복시켜 줄게.”
“그럴 일은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 정도현, 그 남자가 여기 왔는데도?”
“……!”
정도현을 언급하자 그녀의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남자 친구도 사이좋게 인형으로 만들어 줄게.”
“…정도현 씨는 저보다 훨씬 강합니다.”
“아니, 이젠 네가 더 강해.”
꾸욱-!
인형의 마녀가 그녀의 팔에 도핑제를 놓았다. 권하율의 마력이 야생마처럼 거칠게 끓어올랐다.
“아, 벌써 내려왔네.”
지하실에 배치한 인형들 몇 개의 기운이 사라졌다. 정도현이 내려온 것이다.
“그럼 우리도 가 볼까?”
인형의 마녀는 권하율을 데리고 직접 움직였다.
인형들이 망가진 건 아깝지만, 그런 싸구려들은 나중에 다시 만들면 그만이다.
정도현과 부패의 마녀 같은 좋은 소재는 암시장에서 구하기 어려웠다.
그 둘도 인형으로 만들 생각에 그녀는 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