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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23화 (123/240)

123화

정도현의 중얼거림을 목격한 부패의 마녀는 어이가 없었다.

“뭐, 저딴 놈이 다 있어!”

경험치? 날 몬스터 취급하다니.

그녀의 입가가 분노로 일그러졌다.

저 건방진 놈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고 싶지만 위치를 들키고 말았다.

관리국의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일단은 물러나 숨어야 한다.

게다가 싸우는 걸 보니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정도현, 만만한 녀석이 아니야.’

부패의 마녀는 주문을 외워 인형의 마녀한테 사념파를 보냈다.

“인형의 마녀, 너도 봤지?”

[응! 저 남자, 솜씨가 제법이던데? 해골 병사들이 한 방에 박살 났어!]

“난 일단 후퇴할 거야. 너도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어? 후퇴한다고? 왜?]

“저놈한테 내 위치를 들켰어.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니야. 작전을 좀 수정해야겠어.”

계획을 미루자는 말에 인형의 마녀가 싫다고 칭얼댔다. 1분 1초라도 더 빨리 권하율을 손에 넣고 싶다면서.

그녀가 애처럼 떼쓰자 부패의 마녀는 짜증이 몰려왔다.

일 끝내고 받기로 한 보수를 떠올리며 겨우 속을 달랬다.

“아무튼, 난 빠질 거니까 너도…….”

탁.

신신당부하던 부패의 마녀의 귓가로 가벼운 착지음이 들렸다.

고갤 돌리니 방금까지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정도현이 보였다.

그는 마치 유령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부패의 마녀는 너무 놀라서 입이 안 다물어졌다.

“어, 어떻게 「플라이」 주문을! 당신 칼잡이잖아!”

“매직 스크롤이 있었거든.”

「플라이」는 다루기 까다로운 주문이었다. 그렇기에 상급 매직 스크롤은 되어야 담을 수 있다.

‘용병이 상급 매직 스크롤을 가지고 다닌다고?’

부패의 마녀는 이해가 안 됐다.

비행 주문, 「플라이」는 수십 초 동안 하늘을 날게 해 주는 주문.

물론 상황에 따라선 아주 유용했다.

하지만 공중에 뜬 상태에서 공격을 시도하거나 맞으면 지속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든 곧장 취소된다.

그런 제약이 있어서 전투에 활용하긴 어려웠다.

「플라이」보단 차라리 공격이나 방어용 주문이 담긴 매직 스크롤을 사는 게 나았다.

[무슨 일이야, 부패의 마녀?]

“…녀석이 왔어.”

[뭐?]

“그 남자가 지금 내 앞에 나타났다고.”

그 말에 인형의 마녀도 놀랐는지 잠시 침묵했다.

부패의 마녀가 아까부터 혼잣말을 중얼대자, 정도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근처에 다른 동료라도 있나 보네?”

“…건방 떨지 마.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굳이 알 필요 있나? 어차피 곧 죽을 텐데.”

정도현이 악당 같은 대사를 날리며 검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의 여유로움에 부패의 마녀는 자존심이 퍽 상했다. 그녀가 이를 갈며 지팡이를 들었다.

“나의 병사들아!”

스스슥-!

그녀의 그림자 속에서 해골 병사들이 올라왔다.

이번에 소환된 녀석들은 뼈가 흑요석처럼 시커멓고 광택이 났다. 한눈에 봐도 아까 소환한 병사들보다 특별해 보였다.

부패의 마녀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설명했다.

“아까 네가 처치한 건 일반인의 시체로 만든 병사였어.”

“그럼 그건?”

“플레이어를 사용했지. 너도 이렇게 만들어 줄게. 죽여!”

캬아아아-!

수십의 시커먼 해골 병사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아까 상대한 것들보다 월등히 빨랐다.

들고 있는 무기와 방어구도 훨씬 좋아 보였다.

그런데도 정도현은 망설임 없이 병사들 품으로 뛰어들었다.

수십의 병장기가 일제히 그를 노렸다.

정도현의 어깨가 움직이며 몇 갈래의 푸른 섬광이 쏘아졌다.

카앙-! 카가가강!

수십 합을 섞었는데 정도현의 몸에는 생채기도 나질 않았다.

반대로 해골 병사들은 검기에 썰려 몸이 두 동강 났다.

“뭣들 하는 거야!”

부패의 마녀는 씩씩거리며 해골 병사들에게 마력을 더 공급했다.

병사들의 덩치가 한층 커지며 힘과 속도도 빨라졌다.

그들이 핏빛 같은 안광을 빛내며 득달같이 달라붙는다.

정도현이 조금씩 물러서자 부패의 마녀는 입꼬리를 씩 올라갔다.

“까불더니 꼴좋다!”

그녀가 조롱하자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유리병을 꺼냈다.

회복 포션인가 싶었는데 그는 그걸 깨트려 칼날에 묻혔다.

치이익-!

그의 검에 닿은 해골 병사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더니 버터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부패의 마녀가 흠칫했다.

“…정화됐어?”

언데드는 술사의 마력이 닿는 한 계속해서 되살아나는 불사의 존재였다.

완전히 죽이려면 사제나 성기사의 신성력으로 정화해야만 한다.

‘사제나 성기사도 아니면서 어떻게?’

부패의 마녀는 금세 해답을 도출해 냈다.

방금 놈이 칼날에 뿌린 액체가 성수였다.

그녀의 정예병을 저 꼴로 만들 정도면 상급 성수쯤 되어야 할 터.

‘그렇게 귀한 걸 일개 용병이 어떻게 입수했지?’

콰가가각-!

정도현은 성수를 묻힌 검으로 해골 병사들을 모조리 격파했다.

“감히, 감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저 녀석 때문에 정예병의 반절이 소멸했다.

플레이어의 시체는 가격이 아주 비싸다. 레벨이 높은 녀석들은 매물도 거의 없었다.

“…널 병사로 만들어도 수지 타산이 안 맞아.”

부패의 마녀는 그렇게 중얼대며 지팡이를 그에게 겨눴다.

정도현은 잠시 숨을 고르며 그런 그녀를 쳐다봤다.

성수의 힘을 빌렸다 한들 정예병 수십을 베어 넘기느라 마력을 제법 소모했다.

“똘마니들 더 소환 안 하냐?”

“닥쳐. 여기서 더 잃으면 진짜 피눈물 나올 것 같거든? 그러니 내 손으로 직접 죽여 줄게. 영광으로 알아.”

부패의 마녀는 자신이 왜 부패의 마녀라 불리는지 똑똑히 알려 주겠다고 했다.

“썩은 피부에서 고름이 줄줄 쏟아지고, 온몸에 구더기가 기어 다니는 느낌, 상상해 봤어?”

“아니.”

“잘됐네. 내가 알려 줄게!”

파아앗-!

그녀의 지팡이에서 녹색 광선이 쏘아졌다.

생명체의 육신을 빠르게 부패시키는, 그녀가 고안해 낸 주문이었다.

정도현은 피하지 않았다. 저주의 주문이 그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깔깔댔다.

“너처럼 볼품없는 남자는 전부 썩어 문드러져서 없어져야 해.”

“말이 좀 심하네.”

“뭐야? 저주 내성이 좀 있나 보네. 그래 봤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부패의 마녀는 95레벨. 정도현이랑 9레벨이나 차이 났다.

저주 내성이 아무리 높아도 이 정도 레벨 격차면 오래 버티지 못할 터.

“슬슬 온몸이 가렵지? 손톱이 뒤집히고, 피부가 찢어질 때까지 긁어댈걸?”

벅벅.

말 끝나기가 무섭게 정도현이 뒤통수를 긁었다.

부패의 마녀는 드디어 저주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이게 다야?”

“…뭐?”

그런데 정도현은 저주로 괴로워하긴커녕 짜증 섞인 눈으로 노려봤다.

정말 이게 끝이냐고 따지는 말투였다.

부패의 마녀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 저주가 안 통해?’

그럴 리가 없어!

파앗, 파아앗!

그녀는 현실을 부정하듯 몇 번이고 저주를 날렸다. 전부 적중했지만 정도현에게 이렇다 할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왜, 왜… 안 통하는 건데!?”

나보다 레벨이 높은 것도 아닌데 어째서? 미지의 공포에 부패의 마녀는 덜덜 떨며 뒷걸음질 쳤다.

정도현은 그녀가 물러나는 만큼 다가가며 중얼댔다.

“아, 씨. 이러면 경험치도 쥐꼬리만큼 줄 텐데.”

“뭐, 뭐?”

“약한 놈 죽여 봤자 경험치 안 준다고. 아, 네 동료는 좀 세냐? 불러 봐.”

노골적인 멸시에 부패의 마녀가 이를 갈았다.

내가 F구역 출신 용병한테 저딴 소리나 들어야 한다고?

“…죽여 버리겠어!”

“또 뭐 있어?”

그녀는 아껴 뒀던 비장의 패를 소환했다.

그어어어-!

해골마를 탄 칠흑의 해골 기사가 그림자에서 솟아났다.

“데스 나이트! 저 자식을 당장 죽여!”

주군의 명령이 떨어지자 ‘데스 나이트’는 시커먼 검기를 방출했다.

이성이 없는 언데드가 본능만으로 검기를 다루다니. 정도현도 살짝 감탄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플레이어가 만든 몬스터는 아무리 잡아도 경험치를 얻지 못한다.

‘꽝이네.’

뭐, 더 뽑아먹을 게 없나 싶어서 기회를 줬더니만. 시간 낭비였다.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상급 성수를 몇 개 꺼내 강속구로 집어 던졌다.

쨍그랑, 치이익!

말을 타고 돌진해 오던 데스 나이트는 미처 성수를 피하지 못했다.

유리병들이 깨지며 내용물이 터져 나왔다.

히이잉-!

해골마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온몸이 바스러졌다.

데스 나이트는 그대로 낙마했다.

성수의 기운과 녀석의 마력이 반발했다. 전신에서 희뿌연 증기가 올라왔다. 몸 곳곳에 금이 쩍쩍 갈라졌다.

“쿠오오오오!”

그래도 비장의 패답게 녀석은 바로 소멸하지 않았다.

데스 나이트가 검을 치켜들고 달려왔다.

정도현은 귀여운 조카, 다윤이와 진성이의 재롱을 보듯 씩 웃으며 맞받아쳤다.

카아앙-!

두 검기가 부딪혔다.

데스 나이트 쪽이 요동치더니 칼날과 함께 검기가 와장창 부서졌다.

정도현은 그대로 데스 나이트의 몸뚱이까지 썰었다.

“크, 어어…….”

데스 나이트의 몸이 가루로 변하고 지지대를 잃은 두개골이 뚝 떨어졌다.

녀석은 원통한지 힘없이 울부짖었다.

이내 머리도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꿀꺽, 꿀꺽-!

정도현은 여유롭게 마력 포션을 마시며 반쯤 열린 비상구 문을 쳐다봤다.

부패의 마녀는 데스 나이트가 시간을 끌어 줄 동안 뒤도 안 보고 도망쳤다.

그래 봤자 마법사다. 몇 층밖에 못 내려갔겠지.

마력을 전부 회복한 정도현이 그녀를 추격했다.

* * *

“헉, 헉……. 제길…….”

허둥지둥 계단을 뛰어 내려가던 부패의 마녀는 얼마 못 가 숨을 헐떡댔다.

시간 벌이용으로 계단마다 정예 해골 병사들을 배치했지만, 차례대로 박살이 나고 있었다.

‘뭐, 저런 괴물이 다 있어!’

부패의 마녀는 굽이 부러진 하이힐을 벗어 던지고 맨발로 달렸다.

아무리 뛰어도 비상구 계단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인형의 마녀!”

[응? 왜 그래?]

“나 좀 도와줘! 그 남자 괴물이야. 나 혼자선 역부족이라고!”

그녀는 인형의 마녀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거 말곤 떠오르는 방법이 없었다.

[헤, 그 남자가 그 정도야?]

“장난하는 거 아냐! 나 지금 쫓기고 있다고! 그놈한테 내 저주도 안 먹혀.”

[아, 그렇구나. 참 안됐네.]

그녀의 정예병들이 하나둘 소멸하고 있었다. 이제 몇 구밖에 안 남았다.

“제발! 나중에 뭐든 할 테니까 나 좀 살려 줘!”

[음, 알았어. 그쪽으로 인형들 보내 줄게. 그 틈에 빨리 도망쳐.]

“고, 고마워!”

부패의 마녀는 겨우 안도했다.

인형은 그녀의 정예병보다 훨씬 강하다.

게다가 살아 있는 인간들이니 정도현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겠지.

정도현을 처치하진 못하더라도 도망칠 시간은 벌어 주리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 뒤에서 섬뜩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아…….”

정도현이 칼을 쥔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내려온다.

털썩.

부패의 마녀는 다리가 풀려 버렸다.

그녀는 인형의 마녀에게 재차 사념을 날려 보냈다.

“사, 살려 줘….”

[인형들 보냈어. 30초 안에 도착할 거야.]

30초? 그때까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한다.

부패의 마녀는 두려움을 삼키고 애써 웃었다.

“저, 저기. 아깐 내가 잘못했어…….”

그녀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글썽이며 싹싹 빌었다.

정도현도 남자니 조금은 혹하리라.

유혹에 넘어오지 않아도 괜찮다.

시간만 벌면 충분했다.

“살려만 주면 뭐든 해 줄게. 그, 그래! 내가 권하율 그 여자보다 훨씬 만족시켜 줄 수 있…….”

“입 닥치고 네 동료나 빨리 불러.”

“…힉!”

정도현이 그녀의 목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죽음을 마주하자 부패의 마녀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부, 부를게요! 지금 다른 건물에 있어요.”

“다른 건물 어디? 레벨은 몇이야?”

[거의 다 왔어! 10초만 더!]

10초! 아주 조금만 더 하면 된다.

부패의 마녀는 정도현의 질문에 순순히 답해 줬다.

“궈, 권하율이랑 식사했던 건물 지하 주차장에 있어요! 레벨은 저랑 똑같이 95고요.”

“목적이 뭐야? 왜 우릴 감시했지?”

“권하율을 납치하려고 했어요! 전 그냥 인형의 마녀가 도와 달라고 해서…….”

[5, 4…….]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5초가 이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그래도 이제 살았다. 부패의 마녀는 속으로 안도하며 도망칠 준비를 했다.

[3, 2, 1.]

카운트다운이 끝났다. 그러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

부패의 마녀는 멍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 구해 주러 오긴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였다.

그녀는 다급히 사념파를 보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미안, 거짓말이었어. 그래도 네 덕에 권하율은 무사히 빼돌렸어. 정말 고마워!]

“뭐, 뭐라고……?!”

[그럼 안녕. 지금까지 즐거웠어.]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뚝 끊겼다.

부패의 마녀는 제대로 농락당했다.

정도현은 그녀의 표정과 중얼거림을 듣곤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다.

“동료한테 버림받았나 보지?”

“자, 잠깐만요! 제, 제가 그년 잡는 거 도와드릴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싫어. 그럼 경험치를 못 얻잖아.”

“당신 여자 친구가 납치됐…….”

콰직!

부패의 마녀는 뭐라 따지려 했지만, 정도현은 망설임 없이 그녀의 머리를 칼로 쪼갰다.

자세한 얘기는 경험치를 얻고 나서 들어도 늦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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