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10화 (110/240)

110화

정도현의 검기가 한층 거대해졌다.

그걸 본 문정후와 순백교 간부는 흠칫 놀랐다.

‘마력이 급격히 늘었어?’

‘저 자식, 뭘 한 거지?’

정도현이 칼을 가볍게 휘둘렀다.

그러자 반월의 검기가 하나씩 날아들었다.

콰지지직-! 쾅!

둘 다 얻어맞고 건물 밖으로 튕겨 나갔다.

정도현은 땅을 걷어차 그들을 뒤쫓았다.

“크윽!”

“너 이 새끼…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밖으로 나오자 녀석들이 벌떡 일어나서 그를 노려봤다.

“너희끼리 싸우지 말고 덤벼.”

그래야 나 혼자 경험치를 독식할 수 있으니까.

정도현이 상큼한 미소와 함께 도발을 날렸다. 둘은 이를 갈았다.

문정후가 옆으로 고갤 돌리며 먼저 제안했다.

“어이, 종교쟁이. 일단 저 녀석부터 죽이자.”

“…알겠다.”

삼파전 구도는 진정한 포식자의 등장으로 와장창 깨졌다.

둘은 정도현을 타도하고자 임시 동맹을 체결했다.

정도현이 검을 치켜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두 남자가 달려들었다.

“우오오오오!”

문정후가 정면으로 덤볐다. 성난 고릴라처럼 괴성을 지르며 연타를 마구 날린다.

주먹의 풍압만으로 머리칼이 마구 휘날렸다.

정도현은 주먹을 칼날로 툭툭 쳐 내며 눈동자를 굴렸다.

순백교 간부는 이미 측면으로 돌았다.

뱀처럼 은밀하고 교활한 녀석이다.

샤악-!

정도현의 등짝을 노렸던 간부의 단검은 허망하게 빗나갔다.

간부는 혀를 차며 문정후를 탓했다.

“쯧, 시선 끄는 것도 똑바로 못 하나?”

“뭐라고? 네가 못해 놓고 남 탓하지 마, 이 종교쟁이 새끼야!”

급조한 동맹답게 팀워크가 엉망이었다.

정도현은 활활 불타는 둘 사이에 기름을 끼얹었다.

“누구 잘못인지 가릴 필요 있냐? 그냥 상대가 나라서 그런 건데.”

“지랄하고 있네!”

문정후가 발끈해서 다시 덤벼들었다.

간부도 말로 표현은 안 했지만 열을 잔뜩 받았는지 잽싸게 뛰쳐나왔다.

“「가속」!”

간부는 아껴 뒀던 개인 특성까지 사용했다. 그러자 움직임이 배로 빨라졌다.

심플하지만 강력한 능력이다.

그의 능력에 정도현이 살짝 감탄하며 응수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주먹과 단검.

그것들을 일일이 쳐 내며 검술을 마음껏 펼쳤다.

둘의 합공에도 전혀 밀리지 않자 문정후의 표정이 초조해졌다.

“제기랄!”

“크윽!”

입안에서 비릿한 쇠 맛이 났다.

천뢰격과 충돌할 때마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뇌기가 마력 회로를 헤집는다.

내상을 입자 마력의 반응이 둔해졌다.

정도현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후우-!

그가 짧게 숨을 들이쉰 뒤 검기의 위력을 극대화했다. 그걸로 문정후를 노렸다.

문정후는 필사적으로 피하고 막아 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발버둥이었다.

“커헉!”

벼락의 검이 몸뚱이를 세게 후려쳤다.

충격파에 밀려난 그가 물수제비처럼 땅바닥을 통통 튀며 한참 날아갔다.

“나이스 샷. 한 놈 잡았고.”

빗자루처럼 바닥을 쓸고 간 문정후는 대자로 뻗었다.

쿨럭대며 거무죽죽한 피를 토한다.

죽지는 않았다만 더는 못 싸울 거다.

“「가속」, 「가속」!”

문정후가 당하자마자 간부는 기다렸단 듯이 숨겨 둔 패를 꺼냈다. 「가속」을 연달아 쓴 것이다.

문정후와 동맹을 맺었어도 어차피 임시.

정도현을 죽이고 나면 문정후와도 싸워야 할지 모르기에 끝까지 아껴 뒀었다.

이 기술은 강력한 대신 짊어져야 할 리스크도 컸으니까.

“뭐야, 그거 중첩도 돼?”

간부의 움직임이 몰라보게 빨라졌다.

도핑제를 사용한 정도현과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채앵! 카가가강-!

둘의 검기가 부딪히며 뒤섞였다.

충돌할 때마다 작은 불꽃이 폭죽처럼 펑펑 터진다.

정도현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중얼댔다.

“이제 좀 싸울 맛이 나네.”

삐끗하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그런데도 정도현의 손짓은 여유로웠다.

반면에 간부는 죽을 맛이었다.

‘3중첩 가속인데 못 따라잡는다고?’

「가속」의 리스크는 가혹하다. 무리하는 만큼 몸이 망가지고 수명도 줄어든다.

물론 한 번 쓰는 것 정도는 그리 큰 부담이 아니라서 괜찮았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유지하거나 지금처럼 중첩해서 쓰면 몸의 부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3중첩 가속은 끽해 봐야 몇 분 정도 버틸 터. 그 이상 쓰면 심장이 못 버티고 터져 버릴 거다.

즉, 빨리 승부를 내야 할 때 써야 하는 양날의 검이었다.

이것까지 발동하고도 버텼던 적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카앙! 카가각!

간부의 움직임이 극도로 빨라지자 정도현도 전심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정도현은 버틸 여력이 있었다.

그와 달리 간부는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꾸득! 꽈드득!

고통스러웠다. 누군가가 자기 몸을 고무줄처럼 쭉 잡아당기는 것처럼.

간부는 연모하는 교주님 얼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버텼다.

“아직 1분도 안 됐는데 벌써 힘 다 빠졌어? 너 조루야?”

“크윽! 이 새끼가아아!”

정도현의 조롱에 간부는 분개했다.

그는 속으로 깊이 후회했다.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 교주님께서 당부하셨다.

혹여나 정도현과 마주치면 되도록 싸우지 말고 몸을 빼라고.

문정후를 포기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나라면 놈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판이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놈은 인간의 탈을 쓴 괴물이다.

교주님의 깊으신 뜻을 이제야 깨우치다니.

“…「가속」!”

그래, 난 너한테 졌다. 하지만 곱게 죽어 주진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속」을 한 번 더 발동했다. 죽더라도 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주기 위해.

샥-!

정도현이 상대의 움직임을 놓쳤다.

찰나였지만 간부는 정도현이 낼 수 있는 속도를 넘어섰다.

잔상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가온다.

놈이 쥔 단검이 독사의 송곳니처럼 반짝였다.

‘빠르다.’

이건 못 피하겠어. 동귀어진을 노린 건가. 참 대단한 광신도 납셨군.

“죽어라아앗!”

촤악-!

정도현은 급소를 지키고자 미련 없이 왼팔을 내밀었다.

팔이 찢기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팔 하나가 떨어졌는데도 정도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너무 덤덤했다.

정신력으로 버텨 낸 것이다.

누가 보면 고통을 아예 못 느끼는 줄 알 거다.

“…컥!?”

푹-!

살을 내주고 뼈를 취했다.

그는 팔을 내준 대가로 간부의 심장을 앗아 갔다.

서늘한 감촉이 간부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그가 피를 울컥 뱉고서 털썩 무릎 꿇었다.

“크, 흐흐…….”

그래도 간부는 만족했다.

정도현을 죽이진 못했으나 왼팔은 확실히 절단했다.

검사에게 있어 팔은 가장 중요한 요소.

이걸로 놈의 전력이 대폭 줄어들었다.

‘교주님께 도움이 됐다.’

내 인생은 의미가 있었어.

그 사실 하나면 죽더라도 편히 눈 감을 수 있다.

“…….”

끼에에에-!

간부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하늘 위로 훨훨 날아갔다.

껍데기만 남은 육신은 활활 불타 잿더미가 됐다.

“…….”

정도현은 칼을 회수했다.

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다.

그 침울한 모습에 누군가가 웃어 댔다.

“큭, 크하핫! 꼴 좋다, 병신아!”

“벌써 깼냐?”

비웃은 건 천뢰격에 맞고 기절한 문정후였다. 정도현도 조금 놀랐다.

설마 자력으로 깨어날 줄이야.

“다른 놈들이었으면 못 일어났을 텐데. 생각보다 터프하네?”

“아, 불면증이 있어서 말이지. 쿨럭, 크으…….”

문정후가 그렇게 대답하곤 각혈했다.

정도현을 비웃긴 했지만 그도 치명상을 입어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문정후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팔을 잃어서 아쉽겠네? 그 재능이면 분명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을 텐데.”

“팔을 잃어? 누가?”

“누구긴 누구야. 너지, 병신아.”

그의 조롱에 정도현은 인벤토리에서 엘릭서를 꺼냈다.

도핑제 페널티도 없앨 겸 바로 원샷 했다. 그러자 잘렸던 팔이 서서히 돋아났다.

“…어?”

그 기적과도 같은 광경에 문정후는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정도현은 상급 회복 포션도 쭉 들이켜곤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자, 잠깐만.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수고했다. 이제 편히 쉬어.”

푹-!

정도현은 문정후의 숨통을 끊어 줬다.

몸속으로 경험치가 들어오면서 마침내 레벨이 올랐다.

정도현은 표정을 찌푸리며 불평을 토해 냈다.

“진짜 짜네. 팔 하나 바쳤는데 고작 1레벨이 끝이야?”

이래서 도핑제를 쓰기 싫었다.

순백교 간부를 죽였을 때 레벨이 안 오르자 억장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는 팔을 잘려서 표정이 어두웠던 게 아니다.

도핑제의 힘을 빌려 경험치 손실이 발생해서 그런 거였다.

“…어쩔 수 없지. 안 썼으면 내가 당했을 테니까.”

문정후 그리고 저 이름 모를 순백교 간부도 하나같이 만만치 않았다.

동료들과 연계해서 문정후의 체력을 미리 빼 두지 않았었으면 좀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저쪽은 아직도 싸우고 있나 보네.”

건물 쪽에서 총소리가 울려 퍼지고 뿌연 흙먼지가 굴뚝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다른 신도들과 일행이 치열하게 싸우는 모양.

정도현은 서둘러 달려갔다.

* * *

권하율은 쌍권총을 다루는 소녀와 싸우다 마력탄에 몇 대 맞고 말았다.

다행히 급소는 전부 피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꺄하하핫!”

소녀는 순식간에 탄창을 갈아 끼우고 총구를 겨눴다.

싸울 때 늘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 주던 「독심술」이 지금은 오히려 방해만 됐다.

소녀의 속마음을 읽어도 광기 어린 웃음소리밖에 안 들렸다.

소녀는 별생각 없이 마구 쏴 대고 있는데 명중률은 백발백중이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풀었다간 당하고 말 거다.

‘너도 천재라 이거지?’

검술 천재인 서아린에 이어 사격 천재를 만났다.

그녀는 박탈감에 마음이 허해졌다.

이쪽은 「독심술」을 타고났고, 죽어라 노력해서 수련했는데, 저 소녀처럼 잘 싸울 수가 없다.

심지어 레벨도 그녀보다 소녀 쪽이 더 낮았다.

“언니, 레벨 높은 거 치곤 좀 약하다? 혹시 방어밖에 할 줄 몰라?”

“…….”

소녀는 치사하게 팩트로 때렸다.

권하율은 분했지만 할 말이 없어서 입술만 꾹 깨물었다. 바로 그때.

끼에에에-!

건물 밖에서 꺼림칙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 괴상망측한 소리에 소녀는 총을 쏘려다 멈칫했다.

“뭐야, 대장이 당했어?”

소녀의 속마음에서 처음으로 당혹감이 피어났다.

아무래도 정도현이 해낸 모양이다.

혼자서 그 둘을 쓰러트렸다니. 정말 대단했다.

“쳇. 언니, 운 좋은 줄 알아.”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엉뚱한 곳으로 돌렸다.

탕-!

방아쇠를 당기자 저편에서 누군가의 비명이 터져나왔다.

“끄아아악!”

“류진후 부팀장!”

권하율은 소녀와 전투하느라 류진후한테 신경 쓰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정신없이 싸우는 틈에 살금살금 밖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다 소녀한테 딱 걸린 것이다.

그는 나무 막대기처럼 픽 쓰러졌다. 상의가 새빨간 피로 물든다.

“야, 돼지. 빨리 튀자!”

「멧돼지라고.」

서아린과 박성원을 상대하던 황금 멧돼지가 지축을 뒤흔들며 달려왔다.

멧돼지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눈빛과 기세는 여전히 억척스러웠다.

탁!

소녀는 멧돼지의 등에 올라타곤 그대로 벽을 깨부순 뒤 도망쳤다.

저들이 작정하고 달아나자 서아린과 박성원도 쫓을 수가 없었다.

“쿨럭, 컥…….”

권하율은 류진후의 상처에 포션을 뿌렸지만 한발 늦었다.

심장을 정확히 관통당했다. 그녀가 치료해 줄 새도 없이 숨이 멎었다.

류진후의 눈동자에 맺힌 생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

그녀는 시체를 품에 끌어안은 채 멍하니 주저앉았다.

류진후는 팀을 배신했다. 하지만 죽일 생각까진 없었다.

죗값을 받더라도 관리국이 정해 둔 규율대로 처벌받아야만 한다.

복수심에 상대를 죽여 봤자 악순환만 반복될 뿐이다.

“권 팀장님, 괜찮으십니까?”

“…아, 정도현 씨. 무사하셨군요. 전 괜찮습니다.”

정도현이 어느새 돌아왔다.

그의 옷은 피로 범벅이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 보인다.

정도현은 그녀가 안고 있던 시체를 흘끗 보곤 담담히 말했다.

“죽었군요.”

“…전부 제 탓입니다.”

류진후의 죄를 밝혀 내고 증거를 잡으려다가 이렇게 됐다.

권하율은 면목 없단 듯이 고갤 푹 떨궜다.

“권 팀장님 잘못이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죽은 겁니다.”

“아뇨, 죽을 놈이 죽을 짓 한 겁니다. 권 팀장님은 재수 없게 휘말린 것뿐이고요.”

“…그렇게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현이 단호하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권하율은 그의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서아린과 박성원도 먼지투성이 상태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서아린은 정도현과 권하율이 손을 잡고 있는 걸 보더니 눈매가 가늘게 변했다.

그녀의 무시무시한 적의를 느낀 권하율은 급히 손을 놓았다.

그리곤 고개 숙여 그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여러분들 덕분에 작전을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십수 분 뒤, 현장을 수습하러 관리국 요원들이 도착했다.

권하율과 정도현 일행은 관리국 차량을 타고 철수했다.

본부로 돌아가면서 권하율은 정도현 일행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조만간 C구역으로 올라오신다고요?”

“예, 일단 저부터 올라갈 생각입니다.”

“그럼 이주 심사를 받으시겠네요.”

D구역에서 C구역으로 올라오는 플레이어는 적었다.

거기엔 빡빡한 심사 시험이 한몫했다.

“그런데 F구역 출신이면 이주 신청을 넣어도 반려될 확률이 높아요. 사실상 안 된다고 봐야 하죠.”

“그렇습니까?”

“네, 기분 나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C구연은 밑구역 출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거든요.”

심사만 통과하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입구를 막아 놨을 줄이야.

그가 곤란하단 표정을 짓자 권하율이 넌지시 말했다.

“방법이 하나 있어요. 관리국 팀장급 요원한테 신원 보증을 서달라고 하면 돼요. 그럼 적어도 신청이 반려될 일은 없을 겁니다.”

“…신원 보증이요?”

“네, 그 플레이어가 문제를 일으키면 보증을 선 사람에게도 책임을 묻게 되죠.”

권하율은 그렇게 말하곤 정도현을 빤히 바라봤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정도현 씨의 보증인이 되어 드릴게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