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어, 어떻게… 쿨럭!”
정도현의 검기에 내상을 입은 류진후.
그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섰다.
놈은 분명 마력 억제제를 먹었는데 검기는 어떻게 쓴 거지?
‘설마 그놈들이 날 속인 건가?’
순백교에서 준 마력 억제제가 애초부터 가짜였다. 그것밖에 없었다.
“그 자식들이… 날 속여?”
류진후는 배신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이봐, 류진후. 어떻게 된 거야?”
문정후는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됐는지 그에게 질문했다.
류진후는 지켜보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대답을 못 했다. 식은땀만 주룩 흘렸다.
“왜 대답을 못 해. 설마 너희끼리 짜고 날 속인 거냐? 이거 웃기는 새끼네.”
“자, 잠깐만! 나도 그놈들한테 속았어!”
“닥치고 뒈져!”
문정후는 변명을 들어 주기 싫은지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는 93레벨에 「심장 포식」으로 능력치를 키워 낸 괴물.
류진후로선 무슨 짓을 해도 당해 낼 수 없었다.
퍼억-!
류진후는 주먹을 막아 냈다.
하지만 팔이 부러지는 듯한 격통과 함게 그의 몸이 붕 떠올랐다.
일격을 버텨 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류진후가 추하게 땅바닥을 굴렀다.
“커헉……!?”
“부팀장님, 괜찮으십니까?”
“허윽, 헉…….”
요원들이 쓰러진 류진후의 상태를 살펴봤다. 주먹을 받아 냈던 양팔이 부러져 덜렁거렸다.
“전투 준비!”
요원들이 그렇게 외치며 문정후를 향해 방어진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요원들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윽!”
“컥……!?”
마력을 끌어 올린 요원들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비틀댔다.
마력 억제제가 막 활성화되어 극심한 통증을 느낀 것이다.
정도현과 달리 그들에겐 약효가 제대로 먹혀들었다.
그러자 문정후도 다가오는 걸 멈추곤 의문을 자아냈다.
“뭐야? 너흰 또 왜 그래?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다들 뒤로 물러서세요!”
그러는 사이에 권하율은 후퇴하라고 외쳤다. 역시 류진후는 내통자가 맞았다.
‘마력 억제제. 그런 게 정말 실존했을 줄이야.’
그녀는 아침 식사 도중에 「독심술」로 류진후의 흉계를 알아챘다.
그래서 마력 억제제가 섞인 수프는 먹는 척만 하고 일절 손대지 않았다.
“무, 물러나!”
요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됐지만 팀장의 지시였기에 군말 없이 따랐다.
요원들은 부상당한 류진후를 들고서 뒤로 빠졌다.
권하율은 끌려온 그를 심문했다.
“류진후 부팀장, 요원들 상태가 이상해진 건 당신 짓이죠?”
“그, 그게 무슨…….”
“음식에 마력 억제제를 섞었잖아요.”
“……!”
그녀가 정답을 정확히 맞히자 류진후는 사색이 됐다.
뒤로 물러난 요원들은 그 말에 술렁거렸다.
“마력 억제제?”
“그게 뭐지?”
“소문은 들은 적 있어. 먹으면 한동안 마력을 제대로 못 쓴다고.”
“그런 게 있어?”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던데, 헛소문인 줄 알았지.”
“그럼 방금 느낀 통증이 설마…….”
요원들이 동시에 류진후를 쳐다봤다.
순식간에 범인으로 몰리자 그는 급히 변명했다.
“팀장님! 전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니, 애초에 제가 그런 짓을 왜 합니까?”
“이유는 네가 더 잘 알겠지.”
정도현이 끼어들었다. 훼방을 놓자 류진후가 눈을 부라리며 그를 째려봤다.
“문정후 손에 다 죽게 만들려고 판 짠 거잖아.”
“헛소리하지 마! 내가 그랬단 증거라도 있냐!”
“증거? 방금 네가 뭔 짓을 했는지 벌써 까먹었어?”
“……!”
류진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정도현은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박성원한테 달려들었고 나한테 저지당했잖아. 그때 너 뭐랬더라?”
“그, 그건…….”
“‘문정후, 이 녀석은 내가 맡겠다.’ 넌 분명 그렇게 말했어.”
요원들도 똑똑히 들었기에 다들 고갤 끄덕였다.
목격자가 너무 많았기에 류진후는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난 몰라! 아무 짓도 안 했다고!”
결국 그가 택한 건 오리발을 내미는 것뿐이었다. 그 모습에 정도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떼 봐. 그런다고 벗어날 수 있나.”
“큭…….”
정도현은 그렇게 말한 뒤 고갤 돌려 문정후를 바라봤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
“큭큭! 웃기는 놈이군.”
정도현 일행이 문정후와 대치했다.
삼대 일의 상황이지만 문정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정도현은 경계 대상이지만 나머지 둘은 80레벨에도 못 미치는 떨거지들이다.
단숨에 쳐 죽일 수 있었다.
“우오오오오!”
그가 주먹에 마력을 잔뜩 실어 내질렀다. 박성원이 앞으로 나서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쾅-!
주먹과 방패가 맞부딪쳤다.
뒤로 밀렸지만 박성원은 넘어지지 않고 꿋꿋이 견뎠다.
“…뭐?”
문정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고작 76레벨이 공격을 막을 줄이야.
하지만 놀라고 있을 틈은 없었다.
양쪽 측면으로 정도현과 서아린이 파고들었다.
“…이것들이!”
문정후는 둘의 합공을 주먹과 발차기로 받아치고 머리통을 깨부수려 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정도현은 설명할 필요가 없었고, 서아린도 무시할 수 없었다.
「묘인화」에 어둠의 마력이 담긴 서아린의 검기가 문정민의 마력을 무시하고 파고들었다.
“…윽!”
촤좌좍-!
팔뚝 곳곳에 칼자국이 나며 피가 줄줄 쏟아졌다.
찰과상이었지만 80레벨도 안 되는 플레이어한테 다친 게 문제였다.
이 날파리 같은 계집이!
문정후는 그녀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흐아아압!”
“……!”
터엉-!
그녀를 노리며 날아든 주먹을 박성원이 방패로 밀쳐 냈다.
이어서 정도현의 검기가 문정후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파지지직-!
마력 갑주를 깨부수고 짜릿한 충격이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문정후가 몇 걸음 물러섰다.
“크윽! 이 새끼들이 진짜!”
“이야, 튼튼하네.”
문정후는 확실히 만만치 않았다.
서아린과 정도현의 검기를 정통으로 맞았는데도 조금 주춤했을 뿐 거의 멀쩡했다.
‘그럼 쓰러질 때까지 패면 그만이야.’
그들의 빈틈없는 협공에 문정후는 물에 빠진 생쥐처럼 허우적댔다.
정도현 혼자였으면 이렇게까지 밀어붙이진 못했을 것이다.
그의 움직임과 전투 방식은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상세히 분석했으니까.
‘저것들만 없으면…….’
정도현의 동료들이 큰 변수였다.
저들의 연계는 깔끔하고 누군가가 위험해지면 곧바로 보완해 준다.
그는 마치 공략당하는 보스 몬스터가 된 기분이었다.
“이럴 수가…….”
심장 포식자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자 류진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93레벨에 개인 특성까지 있는 괴물을 고작 셋이서 몰아붙이다니.
이건 말도 안 된다. 그가 다 죽여 주는 것만 믿고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나?
“내뺄 생각하지 마세요.”
“……!”
서늘한 한기가 그의 목 옆에 닿았다.
눈을 돌리니 권하율이 검을 겨눈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티, 팀장님. 저, 전 진짜 아닙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래서 왜 배신했죠?”
꽈악!
그녀는 그의 머릴 밟고서 「독심술」을 사용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양질의 정보를 캐낼 수 있을 터.
권하율의 강압적인 심문에 류진후는 무심코 자신이 배신한 이유를 떠올렸다.
그의 생각들이 발끝을 타고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런 거였어.’
예상대로 그가 토벌 작전을 방해했던 이유는 누군가의 지시였다. 문정후가 요원들을 피해 도망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면 류진후가 간절히 원하는 걸 주겠다고 했다.
“누가 시켰죠? 돈 때문입니까?”
“끄, 끄읍…….”
대답하고 싶어도 뺨을 꾹꾹 밟아 대서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물론 그가 대답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이미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순백교?’
류진후가 떠올린 정보들은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순백교란 조직의 교주가 개인 특성을 주기로 약속했다니?
하지만 개인 특성을 어떻게 준단 말인가. 그게 무슨 아이템도 아니고.
권하율은 자기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도 헷갈렸다.
사실이냐고 물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
“류진후 부팀장, 입 다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거 알잖습니까. 자백하세요. 그래야 형량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겁니다.”
“…씨발. 자백? 형량을 줄여? 증거도 없이 개소리하지 마!”
류진후는 끝까지 반성할 생각이 없었다. 이걸 어떡하면 좋을까 고민할 때.
쾅-!
폭발음과 함께 건물 벽에 구멍이 뻥 뚫렸다.
무너진 벽과 먼지 속에서 세 사람이 걸어 들어왔다.
그들은 새하얀 도복을 입고 있었다.
“……!”
권하율은 그들이 누군지 몰랐지만 류진후는 한눈에 알아봤다.
순백교 신도들이었다.
류진후의 속마음을 통해 괴한들의 정체를 깨달은 권하율. 그녀가 바짝 경계했다.
“심장 포식자 쪽은 내가 맡겠다. 너흰 나머지를 처리해라. 권하율만 빼고 전부 죽여.”
순백교 신도들 중 레벨이 가장 높은 사내가 말했다.
남자 옆에 있던 거구의 사내가 정중하게 질문했다.
“류진후는 어쩔까요?”
“내통한 걸 들켰으니 이제 쓸모없다. 처리해.”
“앗싸!”
죽여도 된다는 말에 옆에 있던 소녀가 웃으며 쌍권총을 꺼내 겨눴다.
타앙-! 타다다다당!
류진후와 권하율 쪽으로 총알이 마구 빗발쳤다.
권하율은 칼을 휘둘러 그것들을 쳐 냈다. 류진후는 벌벌 떨며 그녀 뒤로 숨었다.
“꺄하핫! 예쁜 언니, 그 녀석 지켜 주는 거야? 배신자인데?”
소녀가 깔깔대며 총구의 연기를 후 불어 날려 보냈다.
탄환에 마력이 담겨 있어서 하나하나의 위력이 공격 주문에 필적했다.
권하율은 식은땀을 흘렸다.
‘나랑 상성이 안 좋아.’
저런 상대는 「독심술」로 상대하기 너무 까다로웠다.
어딜 어떻게 노리고 맞출지 세세하게 생각하면서 쏘진 않으니까.
“모두 도망치세요!”
권하율은 요원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마력 억제제 때문에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으니까.
그녀도 순백교 신도가 나타날 줄은 몰랐다.
이대론 싸움에 휘말려 다치거나 죽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지시에 요원들은 급히 건물 밖으로 대피하려 했다.
그러자 권총을 쥔 소녀가 동료한테 소리쳤다.
“야, 복돼지! 저놈들 막아 줘!”
“돼지가 아니라 멧돼지야.”
“그게 그거지! 히힛!”
권총 소녀가 깐족대자 거구의 사내는 한숨을 푹 쉬곤 얼마 전에 새로 얻은 개인 특성을 발동했다.
그러자 전신이 부풀더니 이내 황금빛 멧돼지로 변신했다.
멧돼지는 도주하던 요원들을 가뿐히 추월해 유일한 퇴로를 차단했다.
“이, 이런!”
“젠장. 마력만 쓸 수 있었으면…….”
요원들이 분한 얼굴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멧돼지는 그들을 비웃으며 앞다리로 바닥을 긁어 댔다. 딱 봐도 돌진 자세다.
요원들이 위험에 처하자 권하율은 초조해졌다.
마음 같아선 저들의 대피를 돕고 싶었다.
하지만 권총 소녀가 총알을 쏴 대며 그녀를 보내 주지 않았다.
“다들 뒤로 물러나세요!”
그때, 그녀의 등 뒤로 듬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박성원과 서아린이었다.
요원들에게 붙어 주지 못했던 권하율은 겨우 한시름 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권하율의 표정이 굳었다.
‘저들이 여기로 와 줬단 건…….’
그럼 정도현 혼자 문정후를 상대하고 있단 말인가?
아니, 문정후만 있는 게 아니다.
신도들 중 레벨이 가장 높았던 사내가 저쪽으로 붙어 줬다.
* * *
[???] [LV.93]
정도현과 문정후 사이로 93레벨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 탓에 둘의 전투가 잠시 멈췄다.
정도현은 검을 슬쩍 내리고 방해꾼을 노려봤다. 상대는 익숙한 차림새였다.
“보아하니 순백교 같은데, 왜 끼어들지?”
“…정도현? 이번에도 네놈이 개입한 거였나.”
“날 알아? 난 너 처음 보는데.”
“알다마다! 네놈이 D구역 지부를 전부 쓸어버렸잖아. 그것 때문에 교주님께서 어찌나 슬퍼하셨는데…….”
남자의 목소리에서 강렬한 적의가 느껴졌다.
말투로 봐선 교주한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타입인 모양이다.
“이봐, 종교쟁이! 흥이 달아오르려던 참이었는데 왜 방해하고 지랄이냐!”
문정후가 남자한테 짜증을 냈다.
정도현의 동료들이 빠져서 이제 좀 싸울 만해졌는데 흐름이 뚝 끊긴 것이다.
남자는 문정후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심장 포식자, 이 녀석은 내가 처리할 테니 넌 빨리 도망쳐라.”
“…뭐? 그게 뭔 개소리냐! 저놈은 내 사냥감이다!”
“쯧, 멍청한 놈들은 꼭 맞아야 말을 듣지.”
남자가 혀를 차며 낙인의 힘을 발동했다. 그의 얼굴이 문신으로 뒤덮였다.
구도가 삼파전으로 변했다.
‘하, 이건 진짜 쓰기 싫었는데.’
정도현은 도핑용 환약을 입에 물었다.
경험치 손실 나서 안 쓰려고 있었는데.
동료들은 빠지고 웬 광신도가 끼어들었으니 전력을 다해야겠지.
“그래도 1+1행사라 다행이지.”
“……?”
“갑자기 뭔 헛소리냐?”
정도현이 마력을 끌어 올려 검기를 길쭉하게 만들며 생각했다.
이렇게 퍼 주면 순백교는 대체 뭐가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