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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08화 (108/240)

108화

박성원과의 대련에서 패배한 류진후 부팀장.

그가 눈을 뜬 건 정도현과 요원들의 대련이 거의 끝나 갈 때쯤이었다.

부하 요원들이 고작 한 명한테 꼼짝을 못 했다.

도망치듯 숙소 건물로 온 류진후와 요원들. 다들 대판 깨진 탓에 초상집 분위기였다.

‘씨발, 그 새끼들 대체 정체가 뭐야?’

고작 D구역 놈들한테 이런 수모를 당하다니. 직접 겪었는데도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내일부터 수색 작전을 개시하면 그놈들이랑 또 마주칠 텐데, 쪽팔려서 어떻게 고갤 들고 다닌단 말인가.

“부팀장님, 어디 가십니까?”

“…답답해서 바람 쐬러.”

류진후는 까칠하게 대답하고선 숙소 건물을 빠져나갔다.

그는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 어딘가로 급히 연락했다.

그런데 그가 쥔 휴대폰의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 보아하니 도청을 막고자 불법으로 개조한 제품 같았다.

즉, 범죄자들이 갖고 다닐 법한 물건이란 소리.

“어이, 나다. 어떻게 됐어?”

[…심장 포식자에게 접근했던 신도가 사망했습니다. 아무래도 회유에 실패한 듯합니다.]

“이런, 씨… 이쪽도 문제가 생겼어.”

[문제요? 무슨 일입니까?]

“D구역 지부장이 따로 고용한 용병들이 있는데 보통이 아니야.”

류진후와 통화 중인 사람은 순백교 신도였다.

사실 그는 뇌물을 받고, 관리국이 입수한 극비 정보들을 순백교로 넘겨주고 있었다. 벌써 몇 년은 됐다.

문정후가 이 지역에 숨어든 걸 순백교가 빠르게 알아챈 것도 류진후가 정보를 공유해 준 덕이었다.

“실력 테스트 명목으로 놈들과 대련했는데 요원들이 전부 당했어.”

[…D구역 용병들한테 말입니까?]

그 말에 순백교 신도도 경악했다.

류진후가 몸담고 있는 처리반은 권하율 팀장을 포함해 정예 요원들로 구성됐을 터.

그런데 D구역 플레이어한테 졌다니.

선뜻 믿기 어려웠다.

[…아무튼, 심장 포식자의 회유에 실패했으니 그가 달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놈을 나중에 생포하려고?”

[예, 교주님께서 「심장 포식」은 반드시 손에 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심장 포식자가 죽게 놔둬선 안 됩니다.]

원래 계획은 문정후를 잘 구슬려서 순백교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정후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신도를 죽여 버렸다.

이제 남은 방법은 그를 납치해서 특성을 뽑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토벌 작전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그런데 정도현 일행이 합류하면서 류진후는 상당히 난처해졌다.

D구역 지부장이 저런 놈들을 용병으로 구했을 줄 생각도 못 했다.

[심장 포식자가 죽으면 교주님께서 류진후 씨한테 크게 실망할 겁니다.]

“…뭐? 실망?”

신도의 말투가 영 귀에 거슬렸다.

마치 자기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것처럼 말하지 않는가.

“이게 전부 내 탓이란 거냐?”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요하단 거죠. 「심장 포식」만큼 강력한 특성은 좀처럼 찾기 힘드니까요.]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너희가 그 녀석만 잘 설득했으면 이런 일도 안 생겼잖아.”

[진정하시죠. 그럼 이렇게 해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신도가 은근한 말투로 새로운 계획을 설명했다. 류진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요원들을 죽이라고?”

[작전을 확실히 망치려면 그 수밖에 없습니다. 팀을 배신하시죠.]

요원들을 죽이면 수색 작전도 실패할 터.

하지만 뒤에서 남몰래 방해하는 것과 아군에게 대놓고 칼을 휘두르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러다 걸리면 레드 플레이어로 낙인찍혀 전 구역에 수배령이 떨어진다.

남 일이라고 함부로 지껄이긴.

류진후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너 미쳤어? 그러다 일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대신 교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번 일만 성공시키면 류진후 씨한테 「심장 포식」을 주겠다고요.]

“…뭐?”

개인 특성을 주겠다 말에 류진후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누구보다 힘을 갈망했다.

순백교와 접촉한 것도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교주를 만나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들어서였다.

“…좋아. 까짓거 해 보자고.”

강해질 수만 있다면 관리국 요원 따윈 얼마든지 때려치울 수 있었다.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그런데 나 혼자서 요원들을 어떻게 다 처리하라고? 용병 놈들도 있는데.”

한 손으로 열 손을 당해 낼 순 없다.

어설프게 건드리면 이쪽이 당한다.

그의 질문에 신도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신도들을 통해 마력 억제제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마력 억제제? 그게 뭐지?”

[저희가 만들 수 있는 특수한 독입니다. 그걸 먹으면 두어 시간 정도 마력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죠.]

“그런 게 있다고?”

류진후가 씩 웃었다.

그래, 무식하게 힘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었다.

마력 억제제를 먹이면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을 거다.

* * *

비슷한 시각, 정도현은 권하율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권하율은 그에게 중요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류진후 부팀장이 수상쩍다고요?”

“네. 이번 작전을 망치려 하고 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거 확실한 겁니까?”

“네. 증거는 없지만요.”

“…단순한 감입니까?”

“아뇨.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내세울 증거는 없는데 확실하다고?

정도현은 그녀의 눈을 빤히 쳐다봤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저 말고 다른 요원들도 알고 있습니까?”

“아뇨. 증거도 없이 섣불리 말했다간 팀에 분열이 일어날 겁니다.”

“그럼 이번 작전에서 아예 빼 버리면 안 됩니까?”

놈이 분란을 일으킬 것 같으면 미리 치우면 그만이다.

정도현의 제안에 그녀가 고갤 저었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오히려 제가 난처해질 겁니다.”

“팀장의 뜻인데도요? 그만한 권한도 없는 겁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관리국 내부에서도 파벌이 있거든요. 전 어디와도 친해지지 못한 상태고요. 류진후 부팀장은 두둔해 줄 세력이 있습니다.”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좋게 말하면 권하율은 순수하고 청렴했다. 나쁘게 말하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이 부족하다.

아무래도 관리국 내부에 그녀를 안 좋게 여기고 음해하는 세력이 있는 모양.

증거도 없이 부팀장을 배신자로 몰아 봤자 도리어 역풍만 맞을 터.

정도현은 현 상황을 천천히 정리해 봤다.

“요약하면… 류진후는 이번 작전을 망치려 작정했고, 권 팀장님만 그 사실을 알아챘다. 혼자선 막기 힘드니 저한테 협조를 청한 거군요.”

“네. 그가 배신자란 증거를 잡고 싶습니다.”

“왜 하필 저죠?”

“정도현 씨가 보여 준 힘을 믿고 싶습니다. 부디 도와주세요.”

정도현은 질질 끌 것 없이 돌직구를 날렸다.

“좋습니다. 그 대신 권 팀장님이 아는 걸 전부 말해 주시죠.”

“…전부요?”

“예. 류진후가 작전을 망치려 한다는 걸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

그 부분을 명쾌히 설명하려면 그녀의 개인 특성을 밝혀야만 했다.

하지만 권하율은 가족 외에는 「독심술」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녀와 정도현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

비밀을 털어놔도 정말 괜찮은 걸까.

“얼추 짐작은 갑니다. 개인 특성으로 알아내신 거죠?”

“…예?”

“피의 맹약을 맺겠습니다. 권 팀장님의 개인 특성에 대해 타인에게 절대 발설하지 않기로.”

권하율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정도현을 믿을지. 아니면 혼자서 발버둥 쳐 볼지.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 혼자선 힘들어.’

심장 포식자는 위험하다.

류진후가 작정하고 방해한다면 그녀 혼자서 작전을 성공시키는 건 무리였다.

정도현 일행의 힘이 꼭 필요했다.

그녀는 이들과 만난 게 마치 신의 축복처럼 느껴졌다.

“…알겠습니다. 전부 말할게요.”

권하율은 정도현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려 주고, 그걸 약점으로 삼지 않겠단 피의 맹약을 받아 냈다.

그녀의 개인 특성을 알게 된 정도현이 고갤 끄덕였다.

“…독심술. 그런 거였군요.”

어쩐지 싸울 때 공방이 따로 놀더라.

커다란 퍼즐 한 조각을 맞추자 다른 의문점도 연쇄적으로 해결됐다.

동시에 온몸이 긴장감으로 조여 왔다.

「독심술」이 있다면 그녀는 지금도 자신의 속마음을 내다볼 수 있단 소리니까.

“그럼 제 생각도 읽으셨겠네요.”

“…아뇨. 못 읽습니다.”

“뭔가 조건이 있나 보죠?”

정도현은 속으로 안도하며 「독심술」의 발동 조건이 뭔지 물어봤다.

그런데 권하율이 고갤 저었다.

“발동 조건은 딱히 없어요. 제 시야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죠.”

“그럼 제 생각은 왜 안 읽었죠?”

“못 읽은 거예요. 정도현 씨가 처음이었어요. 제 「독심술」이 막힌 건.”

“…막혔다?”

“정신력이 너무 고강해서 안 된다더라고요.”

정신력 관련 패시브 스킬들이 막아 준 건가.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지. 굳이 내 생각을 읽을 것도 없이 동료들을 살펴봤다면….’

내 능력도 전부 까발려졌단 거잖아.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정도현의 표정이 바뀌자 그녀는 뭘 걱정하는지 얼추 짐작하곤 안심하라 했다.

“「독심술」은 그 사람이 막 떠올린 생각만 읽을 수 있어요. 중요한 비밀이나 약점 같은 부분은 무의식적으로 감추려 해서 알아내기 어렵죠.”

“…할 순 있단 거군요?”

“신체를 접촉한 채 유도신문을 하면 가능해요. 그땐 마력을 대거 소모하지만.”

그녀의 독심술은 신체를 접촉하면 위력이 강해져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대신 마력을 소모한다.

“「독심술」은 관리국도 모르고 있는 거죠?”

“네, 아직은 가족한테만 밝혔어요.”

“감춘 이유는 뭡니까?”

“저랑 비슷한 능력자가 예전에도 몇 있었어요. 전부 관리국의 도구로 쓰이다 죽었죠.”

하긴, 관리국이면 그녀를 어디 감금해 놓거나 항시 감시를 붙일 것이다.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겠지.

“작전 회의를 할 때 류진후 부팀장은 속으로 엄청 초조해했어요. 이번 작전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중얼댔죠.”

“누군가의 지령을 받은 걸까요?”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거예요.”

류진후 입장에선 절대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이기에 「독심술」로도 배후가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에게 지령을 내린 존재가 있단 것만 알아냈을 뿐.

손을 맞잡고 유도신문을 하면 알아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다.

그가 눈치를 채고 숨을지도 모르니까.

‘그렇다고 확 죽일 수도 없고.’

류진후를 죽였다 되살리면 전부 말하겠지만 흔적이 남는다.

바로 부활 페널티다.

그 녀석의 레벨이 갑자기 줄어들면 C구역 관리국이 깜짝 놀라서 조사하려 들겠지.

그러면 일이 귀찮아진다.

‘그 녀석, 분명 뭔가 저지를 거야.’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우린 녀석이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다 덜미를 붙잡으면 된다.

* * *

다음 날 아침. 류진후는 요원들의 아침으로 준비된 수프 통에다 마력 억제제를 몰래 섞었다.

권하율과 요원들 그리고 정도현 일행까지 의심 없이 수프를 넙죽 먹었다.

‘됐다.’

계획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번 일만 성공하면 개인 특성을 얻을 수 있다.

그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고 요원들은 차량에 탑승했다.

어젯밤, 암흑가 주민들의 신고 덕에 문정후의 소재를 파악해 냈다.

‘큭큭. 멍청한 것들.’

마력 억제제를 먹은 줄도 모르고.

전투에 돌입하고 나서야 깨닫겠지.

몸 상태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하지만 그때 가서 알아챈들 늦었다.

전부 문정후한테 심장이 뽑혀 죽으리라.

‘너만큼은 내가 죽인다.’

류진후는 박성원을 노려보며 그렇게 다짐했다.

* * *

문정후는 자신을 영입하러 온 순백교 신도를 죽였다. 놈들과의 인연은 그걸로 끝일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신도가 불쑥 찾아와선 이렇게 말했다.

곧 이곳에 관리국 요원들이 들이닥칠 거라고.

‘요원 중에 류진후란 자가 있습니다.’

‘류진후?’

신도가 말하길 그놈이 순백교랑 손잡은 내통자란다.

그 녀석이 아침 식사에 마력 억제제라는 독을 섞어서 요원들이 힘을 제대로 못 쓸 거라나 뭐라나.

‘그게 사실이면 사냥이 한결 수월하겠지.’

어차피 C구역에서 내려온 요원들은 처리하고 갈 계획이었다.

그래야 관리국도 그를 경계하고 섣불리 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 아닌가.

남의 도움은 필요 없었지만, 굳이 도와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왔군.”

아래층에서 느껴지는 다수의 발소리.

신도가 말했던 대로 요원들이 들이닥친 모양이다.

그는 손님을 맞이하고자 발에 힘을 싣고 바닥을 내려찍었다.

쩌저적-!

순식간에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쿵.

그는 그대로 맨 아래층으로 낙하한 뒤 요원들 앞에 당당히 착지했다.

그의 요란한 등장에 요원들이 주춤했다.

“크흐흐! 어서 와라.”

문정후는 누구부터 죽일까 고민하며 요원들을 살펴봤다. 그러다 누군가를 발견했다.

“…응?”

정도현. 그가 찾던 사냥감이 요원들 사이에 있었다. 문정후가 입꼬릴 씩 올렸다.

제 발로 와 주다니. 기특했다.

“문정후, 이 녀석은 내가 맡겠다!”

누군가가 그렇게 외치며 박성원한테 달려들었다.

신도가 말했던 내통자 류진후였다.

“뒈져라!”

그가 땅을 세게 후려치며 주먹을 내질렀다.

마력 억제제를 먹었으니 손쉽게 죽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뭐야, 알아서 정체를 까발려 주네?”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며 칼을 휘둘렀다.

꽈르릉-!

류진후의 눈앞으로 천둥의 검이 날아들었다. 정도현이 검기를 뽑아내자 그는 경악했다.

‘마력 억제제를 먹었는데 어떻게?’

“끄어억……!?”

류진후가 비명을 꽥 지르며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그는 입에 게거품을 물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 광경에 요원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문정후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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