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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06화 (106/240)

106화

권하율과 서아린이 지하 훈련장으로 내려와 마주 보고 섰다.

권하율을 따라 파견 나온 C구역 요원들도 모두 구경했다.

자리에 앉은 요원들이 서아린을 보며 저들끼리 수군댔다.

“77레벨이 팀장님한테 덤빈다고?”

“아무리 실력 테스트라지만 좀 너무하신 거 아냐?”

“그러게. 우리 선에서 충분할 텐데.”

“팀장님이 아니라 저 여자가 먼저 붙자고 했다던데.”

“뭐? 왜 그런 짓을…….”

요원들은 주제 파악도 못 한다며 서아린을 비웃었다.

“그래도 얼굴은 괜찮네.”

“그러게요.”

“난 저렇게 기 센 타입이 좋더라. 가지고 놀 때 훨씬 재밌거든.”

저들 중 레벨이 가장 높은 요원이 끈적한 시선으로 서아린을 훑어봤다.

그러더니 그녀를 두고서 온갖 음담패설을 늘어놨다.

옆에 있던 요원들도 낄낄 웃으며 하나둘 동조했다.

박성원은 듣기 거북해서 슬쩍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느낀 요원들도 잡담을 멈추곤 고갤 돌렸다.

레벨이 가장 높은 요원이 표정을 확 구기며 시비 걸듯 말했다.

“뭘 야려. 눈 안 까냐?”

박성원은 그에게 한마디 해 주려고 일어났다. 그러자 정도현이 손목을 붙잡으며 말렸다.

박성원은 어쩔 수 없이 도로 앉았다.

요원들 눈에는 그가 겁을 먹고 물러선 것처럼 보였는지 빈정대거나 야유를 보냈다.

박성원이 분한 얼굴로 말했다.

“도현 씨, 저 녀석 그냥 보고만 있을 겁니까?”

“지금 말고 대련할 때 성원 씨가 혼쭐을 내주세요.”

“예? 제가요?”

시비를 걸었던 요원의 레벨은 87.

정도현이면 모를까 박성원에겐 버거운 상대였다.

“쉽진 않아도 성원 씨가 이길걸요.”

“정말요?”

요새 레벨을 바짝 올리긴 했다만 그는 아직 76레벨이었다.

무려 11레벨이나 차이 난다.

체급 차이가 너무 나서 싸움이 성립할 수가 없었다.

“제가 준 장비들 있잖아요. 이럴 때 써야죠.”

“아, 맞다.”

정도현이 챙겨 준 +10강 에픽 등급 아이템들.

던전 공략으로 한 달 내내 레어템만 끼고 다녀서 잠시 깜빡했다.

그것들을 쓴다면 이길 수 있을 거다.

어차피 대련이니 경험치도 못 얻는다.

안 좋은 장비템을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치사하게 템빨로 승부를 본다고?

그게 불만이면 그쪽도 좋은 템 구해다 입으면 될 일이다.

좋은 장비와 행운도 실력이다.

“그나저나 서아린 씨는 괜찮을까요?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한데…….”

“지면 어때요. 실전도 아니고 대련인데.”

“그래도…….”

이번 대련은 승패 상관없이 그녀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겸사겸사 권하율의 비밀도 파헤쳐 보고.’

권하율은 선공을 양보할 셈인지 검을 든 채 미동도 없었다.

서아린은 사양하지 않았다. 단숨에 거릴 좁혀 단검을 찔러넣는다.

샥-!

몸을 슬쩍 돌려 찌르기를 피했다.

서아린은 포기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 나갔다.

샤샤샤샥-!

검기는 담겨 있지 않지만 그녀의 단검이 인체의 급소들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센스가 확실히 좋네요.”

“…큭!”

권하율은 이어지는 공격도 가뿐히 피했다. 마치 서아린의 다음 움직임이 어떨지 훤히 보이는 것처럼.

게다가 여유로운 말투로 평가까지.

서아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시 팀장님이야. 대단하셔.”

“움직임이 기가 막힌다니까.”

“어떻게 저리 잘 피하시지?”

C구역 요원들은 권하율의 군더더기 없는 회피 동작에 감탄했다.

정도현도 적잖이 놀랐다. 서아린이 저렇게 농락당할 줄은 몰랐으니까.

‘벌써 움직임을 간파했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전투 관련 패시브 스킬로 무장한 정도현도 최소 이십여 합은 겨뤄야 상대의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서아린의 전투 방식은 남들보다 유연하고 복잡하다.

저렇게 보자마자 간파하는 건 불가능했다. 마치 서아린의 움직임을 예습한 것 같았다.

‘아니. 그건 아니야.’

정도현은 부자연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서아린의 움직임을 훤히 꿰뚫고 있지만 그런 것치곤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저기서 왜 흐름을 안 끊었지?’

반격을 가해 주도권을 가져올 찬스가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때마다 피하거나 막기만 했다. 보고 있자니 속이 답답했다.

물론 권하율이 유리한 건 변함없었다.

그러나 진즉 끝낼 수 있던 싸움이 몇 분째 이어졌다.

혹시 서아린의 실력을 보려고 일부러 봐주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의 표정은 변함없이 차분했으나 눈동자에 작은 동요가 엿보였다.

서아린이 예상보다 잘 버텨서 당황한 듯했다.

서아린이 악착같이 달려들고 권하율은 그걸 받아치는 그림이 계속 이어졌다.

“기본기가 좋으시네요. 합격입니다.”

“…윽!”

채앵-!

서아린이 절묘한 타이밍에 상대의 빈틈을 노렸다.

정도현도 이번 공격은 분명 유효타로 이어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권하율은 그마저도 다 꿰고 있었단 듯이 움직였다.

“…윽!”

회심의 공격이 빗나가자 서아린은 크게 당황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권하율이 그녀의 발을 걸어 자세를 무너뜨렸다.

넘어진 서아린의 미간에 칼날이 드리웠다. 실전이었으면 그대로 죽었을 터.

“어떻게…….”

서아린의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흔들렸다.

패배까진 예상했어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한 방쯤은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벽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낙심하지 마세요. 당신은 잘 싸웠으니까.”

권하율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덤덤하게 말했다.

악의는 없지만 듣는 쪽에선 저게 더 열받는다.

서아린이 씩씩대며 정도현 옆으로 돌아왔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 뭐 좀 알아냈어요?”

“저 여자, 싸우는 게 좀 이상하던데.”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정도현과 서아린은 서로의 의견을 공유했다.

“움직임을 간파하거나 수를 읽는 건 되게 정확한데…….”

“반격해야 할 타이밍을 번번히 놓치고 연계도 어정쩡했어.”

“맞아요. 끝낼 수 있는 타이밍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했어요. 일부러 싸움을 질질 끈 걸까요?”

“일부러 그런 것 같진 않아.”

권하율의 방어와 회피는 흠잡을 곳이 없었다. 저것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세에 돌입할 땐 이전의 움직임과 비교하면 형편없었다.

‘회피와 방어는 일류인데 나머지가 너무 평범해.’

정도현이 권하율이었다면 훨씬 빨리 상대를 제압했을 것이다.

“도현 씨보다 보는 눈은 훨씬 좋던데, 그럼 공격도 매섭게 몰아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검술에서 공방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개념.

둘 다 못하거나 잘하면 모를까.

하나만 잘하는 건 좀 부자연스러웠다.

‘반쪽짜리 재능이 있을 수 있나?’

정도현과 서아린은 도저히 상상이 안 갔다. 그런데 권하율이 그걸 선보였다.

‘권하율. 대체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지?’

* * *

권하율은 대련에서 이겼으나 뒷맛이 찝찝했다.

‘레벨이 엇비슷했으면 내가 졌을거야.’

그녀는 정도현의 평가처럼 검술에 큰 재능이 없었다. 끽해야 범재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 비결은 그녀의 개인 특성, 「독심술」에 있었다.

그녀는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사람의 모든 기억을 살펴보진 못한다. 기껏해야 그 사람이 방금 떠올린 생각을 보는 정도다.

이 능력은 전투에서 빛을 발했다.

상대가 어딜 어떻게 노리고 덤벼들지 바로 알아챌 수 있으니까.

페인트를 섞는 등의 잔재주도 「독심술」 앞에선 전부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회피나 방어술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조급해진 상대가 알아서 빈틈을 내민다.

그녀는 낚시꾼처럼 미끼를 물 때까지 우직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만약 그녀에게 재능이 있었다면 이렇게 소극적으로 싸우지 않았을 것이다.

‘저렇게 시시각각으로 전투 스타일을 바꾸다니. 서아린 씨는 틀림없는 천재야.’

서아린은 공격이 막히면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덤벼들었다.

싸우는 내내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간담이 서늘했다.

「독심술」이 없었다면 몇 대 허용했을 것이다.

솔직히 부끄러웠다. 레벨 격차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도 조금 고전했다는 게.

‘게다가 개인 특성도 있어.’

서아린은 대련이라서 비장의 패를 꺼내지 않았다.

어둠 속성의 마력을 다루는 심법, 거기에 「묘인화」란 버프 스킬까지.

만약 실전이었다면 그녀도 승리를 장담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정도현. 저 남자는 대체…….’

정도현의 생각은 그녀의 「독심술」로 파악할 수 없었다.

심지어 손을 잡아봤는데도 마찬가지였다.

시스템 말로는 그의 정신력이 너무나 고강해서 그렇단다.

신체 접촉을 했는데도 생각을 읽을 수 없었던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녀도 저렇게 강한데 정도현 씨와 대련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엔 졌을지도 모른다.

하마터면 부하들 앞에서 큰 추태를 보일 뻔했다.

고비를 넘긴 그녀는 한결 편한 마음으로 다음 대련을 구경했다.

이번엔 정도현의 동료, 박성원이 싸울 차례였다.

“팀장님. 제가 상대를 지목해도 괜찮겠습니까?”

“예, 뭐. 상관없습니다.”

권하율의 귓가로 박성원의 생각이 보였다.

어떤 요원의 이름과 적의가 함께 느껴진다.

“류진후 씨. 내려오시죠.”

“허, 저놈 봐라?”

류진후 부팀장이 박성원한테 지목당했다.

부하 요원들과 잡담을 나누던 그가 표정을 구겼다. 이마에 굵은 핏대가 팍 솟았다.

“내가 우습게 보여? 넌 뒈졌어.”

“류진후 부팀장. 이건 대련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지 마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권하율의 경고에 류진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가 경기장으로 내려오자 박성원은 에픽 등급 장비들을 착용했다.

그러자 몸을 풀던 류진후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너 이 새끼, 템빨로 밀어붙이려고?”

“꼬우면 그쪽도 돈 주고 사서 쓰세요.”

“뭐? 저 새끼가 진짜!”

“류진후 씨!”

박성원은 정도현에게 배운 도발을 써먹었다. 효과는 굉장했다.

류진후가 발끈하자 권하율이 흥분하지 말라고 재차 경고했다.

류진후는 속으로 울분을 삭였다.

‘장비템 좋다고 나대긴. 좆밥 새끼가.’

질질 짤 때까지 흠씬 두들겨 패주마.

얼굴도 잘생겨서 볼수록 짜증이 치솟는다.

류진후가 침을 탁 뱉고 자세를 잡았다.

박성원도 검투사처럼 창과 방패를 앞세우고 무릎을 굽혔다.

‘이건 류진후가 이기겠지.’

권하율은 류진후의 승리를 점쳤다.

그녀와 달리 류진후는 싸움에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도 부팀장 직위를 달았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오냐오냐 자란 탓에 성질머리는 좀 더럽지만.

그녀의 예상은 두 남자가 부딪힘과 동시에 깨졌다.

“크헉……?!”

쿠당탕-!

류진후가 방패에 맞고 뒤로 몇 바퀴 굴렀다. 엄청난 괴력이었다.

그는 급히 고갤 들었지만 이미 창날이 얼굴로 날아든 뒤였다.

터엉-!

급히 주먹으로 창날을 쳐냈다.

하지만 측면에서 방패가 날아들었다.

안면을 가격당한 그의 얼굴이 바닥에 쾅 처박혔다.

마력이 실려 있지 않아서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하지만 실전이었으면 위험했을 것이다.

아무리 방심했다곤 하나 저딴 놈한테 두 번이나 당해 주다니. 너무 수치스러웠다.

“이 새끼가!”

류진후가 벌떡 일어나 맹수처럼 덤벼들었다.

하지만 박성원은 그의 공격을 「초감각」으로 예측한 뒤 가뿐히 피했다.

그리곤 상대의 약점을 향해 창날로 푹 찔렀다.

투웅-!

마력이 실리진 않아서 살갗은 뚫리지 않았다.

그 대신 북을 두들긴 것처럼 묵직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꺼헉!”

류진후는 순간 숨이 안 쉬어졌다.

박성원은 창을 부드럽게 돌려 명치를 힘껏 가격했다.

류진후가 한쪽 무릎을 꿇고 기침을 컥컥댔다.

박성원이 마무리를 지으려 하자 그가 다급히 손을 뻗으며 말했다.

“자, 잠깐만…….”

류진후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지만 그건 상대의 동정을 유발하기 위한 연기였다.

두들겨 맞아서 아픈 건 사실이지만, 싸울 여력은 충분했다.

박성원의 창이 멈췄다.

‘멍청한 놈!’

류진후가 고갤 확 치켜들며 상대를 덮쳤다.

하지만 「초감각」 앞에선 뻔한 기습이나 속임수는 통하지 않았다.

퍼억-!

박성원은 옆으로 돌며 류진후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머릿속에서 번갯불이 번쩍 튀었다.

“…….”

류진후가 게거품을 문 채 기절했다. 지켜보던 이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고작 76레벨한테 류진후가 당할 줄이야.

“…합격입니다.”

권하율은 박성원의 실력을 인정했다.

류진후가 방심하다 허망하게 지긴 했어도 이긴 건 이긴 거니까.

부하 요원들은 기절한 류진후를 들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자 정도현이 그들을 막아서며 말했다.

“권 팀장님. 저도 구경만 하자니 좀 심심해서 그런데…… 대련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예? 아뇨. 그럴 필요는…….”

“팀장님이 내키지 않으시면 요원분들이랑 하겠습니다.”

그 말에 권하율은 속으로 안도했다.

정도현을 직접 상대하는 건 무서웠다. 그의 생각은 전혀 읽을 수 없으니까.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누구와 대련하실 건가요?”

“요원들이요.”

“그러니까 정확히 누굴 말하는 건지…….”

권하율은 뭐라 말하려다 멈칫했다.

그가 뭘 원하는지 뒤늦게 이해하곤 입을 쩍 벌렸다.

정도현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모든 요원을 지목했다.

“다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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