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1원 상점-105화 (105/240)

105화

정도현은 한규리의 정보 조직원들이 수집한 정보를 살펴봤다.

중앙 지역 암흑가에서 강유성과 레드 플레이어들의 시체가 발견됐다.

‘기껏 살려 줬더니 죽어 버렸네.’

그런데 사망자들한테서 기이한 공통점이 존재했다.

“……심장이 사라졌다고?”

흑마법사들이 플레이어를 죽이고 시신을 챙겨 가는 경우는 왕왕 있어도, 심장만 뽑아 가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심장만 없어졌다고?”

“응. 뭐 짚이는 거 있어?”

“……심장 포식자 같은데.”

“심장 포식자?”

귀여운 앞치마를 입고 설거지를 하던 백승아가 그렇게 말했다.

정도현이 관심을 보이자, 그녀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줬다.

“이십 년 전쯤에 C구역에서 활동하다 잡힌 범죄잔데. 플레이어의 심장을 먹으면 강해지는 녀석이야.”

“심장을 먹는다고?”

“응. 수용소에서 마주쳤었어. 그놈도 나처럼 투견이었거든.”

C구역에는 플레이어들 혹은 몬스터와 플레이어가 맞붙는 지하 투기장이 있다.

그곳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수용소 죄수거나 돈이 급한 레드 플레이어였다.

거기서 싸우는 선수를 투견이라 부른다.

투견으로 활동하는 죄수들에겐 수용소가 여러가지 편의를 봐준다.

원하는 간식이나 음식. 담배나 술도 적정선까지 허용해 준다.

백승아는 마법 주문을 연구할 자유 시간을 얻기 위해 투기장에 나갔다.

그녀는 착실히 승리해 인지도를 쌓았고 그러다 심장 포식자를 상대하게 됐다.

“누가 이겼었는데?”

“내가 졌어. 레벨 차이가 좀 났거든. 그래서 석화 주문이 잘 안 먹혔지.”

둘 다 인기가 많은 투견이었다.

그래서 이후로 그와 맞붙는 일은 없었다.

둘 중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치면 그만큼 투기장 사업에 손해였으니까.

그나저나 플레이어의 심장을 먹으면 강해진다니.

사람보다 몬스터한테 더 어울리는 개인 특성이었다.

“수용소도 위험하다 판단했는지 다른 투견의 심장을 먹지 말란 맹약을 걸었어.”

“그런 조건을 잘도 받아들였네?”

“따를 수밖에 없었을걸. 걔 담배 중독이었거든.”

심장 포식자, ‘문정후’.

그가 투견이 된 건 담배를 얻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백승아가 갇혔던 수용소에선 가장 오랫동안 살아남은 투견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녀석은 강해. 노련하고 전투 방식도 다채로웠어.”

“레벨은?”

“나랑 마주쳤을 땐 93. 제약 때문에 다른 투견들을 얼마 안 죽였을 테니, 레벨은 큰 차이 없을 거야.”

정도현은 문정후를 처치하기로 했다.

얘길 들어보면 만만치 않은 놈 같지만, 가만히 놔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 누나가 좀 도와줄까?”

“아니. 넌 할아버지랑 다윤이를 지켜줘.”

“……혼자 싸우게?”

정도현은 고갤 저었다. 백승아보다 강하다면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 혼자선 안 된다. 동료들의 힘을 빌려야만 했다.

“동료? 레벨이 몇인데.”

“77이랑 76.”

“……너무 낮은데?”

서아린과 박성원은 정도현이 던전 공략을 잠시 쉴 동안 열심히 사냥했다.

하지만 백승아가 볼 땐 전력으로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레벨이 전부가 아니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70레벨대가 93레벨한테 덤빈다니. 그건 미친 짓이었다.

“믿을 만한 애들이야. 둘 다 개인 특성도 있고.”

그 말에 백승아는 고갤 끄덕였다.

팀원들한테 개인 특성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용한 능력이면 큰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그녀가 내심 부러워하자 정도현이 넌지시 물어봤다.

“개인 특성, 갖고 싶어?”

“당연하지. 더 강해질 수 있잖아.”

정도현은 그녀에게 특성 강화의 비약을 주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강해지면 그만큼 할아버지와 다윤이도 안전해질 테니까.

“그럼…….”

정도현이 비약에 대한 얘길 꺼내려던 찰나.

지잉-!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민겸 지부장한테서 온 전화였다.

연락해온 타이밍으로 봐선 심장 포식자 건으로 도움을 청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침 잘됐네.’

정도현이 연락을 받자마자 다급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자네, 혹시 암흑가에서 일어난 사건 알고 있나? 시체들 몇 구 발견된 거.]

“예. 범인이 심장을 뽑아 갔다더군요.”

[짚이는 놈이 있어. C구역에서 꽤 악명을 떨쳤던 레드 플레이어라더군. 그놈 별명이 심장 포식자야. 심장을 먹거든.]

“녀석을 잡으시려는 거죠?”

[그렇네. 다행히 C구역 관리국에서 지원 병력을 보내 줬거든.]

“…지원 병력이요?”

[그래. 자네도 용병으로 참가할 생각 없나?]

예상치 못한 외부 세력의 개입에 정도현은 잠시 멈칫했다.

위쪽에서도 심장 포식자가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D구역으로 병력을 파견해 주다니.

“알겠습니다.”

[고맙네! 자세한 얘긴 본부에서 나누자고. 지원 병력이 곧 도착할 테니까.]

* * *

[권하율] [LV.95]

강민겸은 C구역에서 온 손님을 응대하다 잠시 넋을 잃었다.

동부 관리국이 보내 준 팀장은 젊은 여자였다.

인형처럼 무표정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매력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쳤다.

‘다 늙어서 무슨 주책이람.’

강민겸은 쓸데없는 잡념을 떨치고 그녀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권 팀장님.”

“전 제 의무를 다하러 온 것뿐입니다.”

그녀의 말투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를 혐오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게다가 그가 내민 손을 잡아 주지도 않았다.

“…타인과 접촉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서요.”

철벽같은 그녀의 태도에 강민겸은 머쓱해져서 손을 슬쩍 내렸다.

‘소문대로 되게 까탈스럽군.’

권하율 팀장. C구역 동부 관리국 내에서 최연소 팀장이자 최강자라 들었다.

게다가 5년 전에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였다.

본인이 원했으면 대형 길드에도 들어갈 수 있었겠지만, 그녀는 범죄자들을 심판하고자 요원의 길을 택했다.

‘동부 최고 전력을 선뜻 보내 주다니.’

심장 포식자를 반드시 사살하겠단 동부 지부장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진다.

놈은 탈옥한 범죄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존재 중 하나였으니까.

“커피를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입맛에 좀 맞으십니까?”

“나쁘지 않네요.”

권하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짤막하게 대답했다.

강민겸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 정도현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실은… 이번 작전에 제가 따로 고용한 용병들을 지원하고 싶습니다.”

“용병이요?”

권하율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중요한 작전에 외부인이 끼어드는 게 썩 내키지 않는 모양.

그녀는 커피잔을 내려놓고서 심문하듯 물었다.

“인원수와 레벨은 몇이죠?”

“세 명이고, 높은 순으로 84, 77, 76입니다.”

“그럼 안 됩니다. 레벨이 너무 낮아요.”

84레벨은 몰라도 나머지 둘은 고기 방패 역할도 못 할 거다.

그녀의 신랄한 평가에 강민겸은 식은땀이 났다.

“그래도 84레벨 그 친구는 정말 진국입니다. 곧 도착한다니 실력을 테스트해 보시고 결정하시는 편이 어떠신지… 전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그렇게 포장한 것치고 괜찮은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요.”

그리고 쪽수만 많다고 유리한 게 아니다.

수준 미달이면 오히려 걸림돌만 될 수도 있다.

그녀의 주장에 강민겸은 괜스레 자기가 무시당한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데려가면 분명 도움이 될 텐데.’

정도현 덕분에 큰 위기를 몇 번이나 무마했던가.

게다가 최근엔 91레벨인 석화의 마녀도 혼자서 처리했다.

도움이 됐으면 됐지 걸리적거리진 않으리라 보장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들 그녀는 귓등으로도 안 듣겠지.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뭐,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실력 테스트는 해 보죠. 쓸만하면 데려가겠습니다.”

“예? 저, 정말입니까?”

그런데 권하율이 돌연 마음을 바꿨다.

강민겸은 어안이 벙벙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 활짝 웃었다.

이번 작전에서 정도현이 활약하면 그녀와 친분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정도현이 훗날 C구역에 올라가면 자그마한 도움은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희망 회로를 돌리자 권하율이 찬물을 확 끼얹었다.

“전 사적인 친분으로 누군가를 돕거나 밀어주지 않습니다.”

“…예?”

“정도현 씨를 부른 이유. 저와 엮기 위해서 아닌가요?”

권하율의 날카로운 지적에 강민겸은 뜨끔했다. 어떻게 바로 알았지?

“꼭 그런 건 아니고… 진짜로 이번 작전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건 정도현 씨의 실력을 확인해 보면 알겠죠.”

그녀가 그렇게 말하곤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강민겸은 할 말이 없어져서 뒤통수만 긁어댔다. 그러다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어? 그런데 정도현인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슨 소리죠?”

“제가 이름은 얘기 안 했는데…….”

달그락.

찻잔을 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권하율은 잠시 심호흡하곤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아까 얘기하셨어요.”

“예? 제가요?”

“네. 하셨어요.”

권하율은 무작정 우겼다.

그러자 강민겸은 무심결에 말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녀는 속으로 안도했다.

그로부터 몇 분 뒤, 정도현 일행이 관리국 본부에 도착했다.

* * *

“이분이 지원을 와주신 권하율 팀장님이네.”

“정도현입니다.”

“서아린이에요.”

“박성원이라 합니다.”

정도현은 권하율 팀장이 눈에 거슬렸다.

95레벨이라니. 저 정도 강자가 개입하면 경험치 얼마 못 얻을 텐데.

“…….”

정도현 일행이 인사했는데 권하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멍하니 정도현만 쳐다봤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러자 강민겸이 걱정돼서 질문했다.

“권 팀장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에?”

권하율은 잠에서 막 깬 것처럼 맹한 소릴 뱉었다.

아까와 전혀 딴판이었다.

그녀는 정도현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 결심한 표정으로 손을 척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네.”

정도현은 그녀와 손을 맞잡았다.

그 광경에 강민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깐 타인이랑 접촉하는 게 싫다고 했었는데?’

그런데 왜 정도현한텐 먼저 손을 내밀어 주는 거지? 그냥 핑계였나?

“아…….”

악수를 나눈 권하율의 눈동자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이상한 반응에 옆에서 지켜보던 서아린의 눈초리가 샐쭉해졌다.

그러는 사이 강민겸이 정도현에게 털어놨다.

“이렇게 와줘서 고맙네. 그런데 자네들이 이번 작전에 참가하려면 실력 테스트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실력 테스트요?”

“나야 자네 실력을 잘 알지만, 권 팀장님은 모르시니까.”

“상관없습니다. 권 팀장님과 대련하면 됩니까?”

“…아뇨. 정도현 씨는 안 해도 될 것 같네요.”

“예?”

권하율이 갑자기 말을 바꿨다.

그러자 강민겸은 당황스러웠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더니 어느 장단에 맞춰 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 아깐 꼭 테스트를 해 봐야 한다고…….”

“아뇨. 정도현 씨는 안 해도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만 해 보죠.”

정도현만 쏙 빼놓고 일행들을 테스트하겠단 말에 모두 의아해했다.

서아린이 궁금증을 못 참고 질문했다.

“잠깐만요. 왜 그렇게 되는 거죠?”

“…오해하지 마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라뇨. 제가 무슨 오해를 했단 거죠? 그런 거라니. 똑바로 설명해 주시죠.”

“아, 그게, 그러니까…….”

서아린이 집요하게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말투도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권하율은 뭔가 실수했는지 말을 얼버무렸다.

“서아린, 진정해.”

정도현이 흥분한 그녀를 말렸다.

좀 이상해도 C구역에서 지원을 와준 팀장이다.

미운털 박혀서 좋을 거 하나 없었다.

“권 팀장님이 원치 않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에 권하율의 표정에 맺힌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마치 지옥에서 빠져나온 것 같았다.

그녀의 반응에 정도현은 뭔가 수상쩍단 느낌을 받았다.

사생결단을 내는 것도 아니고 겨우 연습 대련인데.

‘혹시 겁이 많은 걸까?’

아니. 그런 단순한 이유일 리 없다.

‘나랑 대련하길 꺼리는 것 같은데.’

정도현은 그녀에게 아무런 짓도 안 했다. 인사를 나누고 악수한 게 전부였다.

‘뭔가 비밀이 있어.’

그게 뭘지 궁금했다. 한 번 떠볼까.

정도현은 서아린한테 눈짓으로 슬쩍 신호를 줬다. 그녀가 알아들었다며 고갤 끄덕였다.

“나머지 두 분만 제 부하 요원들과 대련해 주시면 됩니다.”

“건물 지하에 연습장이 있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잠깐만요, 권 팀장님.”

지하 연습장으로 향하려던 권하율을 서아린이 불러세웠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그게 뭐죠?”

“기왕 대련하는 거, 팀장님이랑 붙어 보고 싶은데. 괜찮겠죠?”

서아린이 당돌하게 먼저 대련을 요청했다. 그러자 권하율이 태연히 고갤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정도현이 청했을 때와 달리 흔쾌히 대련을 받아들였다.

박성원이 기겁하며 서아린을 말리려 했다.

하지만 정도현이 그의 팔을 붙잡으며 고갤 저었다.

‘뭘 숨기고 있는지 봐야겠어.’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해서 서아린이 이기진 못할 거다. 그래도 쉽게 무너지진 않을 터.

그녀라면 권하율의 비밀을 끄집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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