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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104화 (104/240)

104화

[형제님. 그 청년에겐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그냥 조용히 넘어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신규원 주교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지만 거기엔 이런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괜히 일 키워서 얼굴 붉힐 일 만들지 말자고.

“무, 물론입니다! 주교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형제님의 깊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전화 한 통으로 상황은 역전됐다.

설마 정도현이 C구역의 주교와 연줄이 있었을 줄이야. 이건 생각지도 못했다.

어쩐지 자신만만하게 굴더라니.

잠시 뒤, 오승민은 통화를 끊고서 말했다.

“…자넬 의심해서 미안했네. 내가 큰 착오를 했어.”

“아닙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죠.”

“크흠! 돌아가자.”

그 말에 오승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저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제대로 농락당했다. 속에서 천불이 날 수밖에.

하지만 섣불리 건드릴 순 없다.

그랬다간 신규원 주교한테 제대로 찍힐 테니까.

교단의 사제들은 외부 세력보다 내부의 식구들을 더 두려워했다.

그는 사제들과 함께 도망치듯 관리국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떠나자 강민겸 지부장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니, 자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뭘 말입니까?”

“C구역 주교가 직접 연락해서 두둔해 주다니! 자네, 그분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인가?”

“아뇨. 전 모르는 사입니다.”

“……?”

모르는 사이라고? 그럼 왜 지켜 준 거지?

“제 지인이 그 주교님과 잘 아는 사입니다.”

“아…….”

정도현이 맨 처음 연락한 상대는 차상훈이었다. 그는 C구역 동부에서 알아주는 마약 사범이다.

그와 거래를 튼 상류층 중엔 동부 지역의 거물급 인사들도 여럿 엮여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신규원 주교였다.

신실한 사제가 뒤에서는 남몰래 마약에 손대고 있었던 것이다.

차상훈이 그와 무슨 뒷거래를 했는진 몰라도 덕분에 위기를 잘 넘겼다.

부패한 권력자들과 붙어먹는 건 싫지만, 확실히 이럴 때 편리하긴 하다.

“지인의 지인이었단 소리군. 하여튼 천만다행일세. 옆에서 지켜보는데 자네가 잘못되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 졸인 줄 아나?”

강민겸의 말투가 녹은 버터처럼 아주 부드러워졌다. 이 양반, 평소보다 훨씬 질척거린다.

신규원 주교랑 징검다릴 놔달란 거겠지.

그럼 오승민 주교한테 더는 휘둘리지 않아도 될 테니까.

“문제는 해결됐으니 이제 가 봐도 되죠?”

“어? 그, 그러게나. 아! 다음에 밥이나 한 끼 합세. 내 거하게 쏘지.”

정도현이 곧바로 자릴 뜨자 강민겸은 아쉽단 표정을 지었다.

* * *

강유성은 퇴원한 뒤로 집에만 처박혀 있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불과 보름 사이에 너무 많은 걸 잃었다.

팔다리를 하나씩 잃고 마탑의 의수와 의족을 달았다.

생활하는 데 불편함은 없지만 이제 던전 공략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강철 길드는 그를 은퇴시켰다.

말이 은퇴지 사실상 추방이었다.

그날 이후로 여자친구와 대판 싸웠다.

얼마 전에 완전히 파탄 났다.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는데 말이다.

더군다나 정도현을 만나보겠다던 삼촌은 흔적도 없이 실종됐다.

관리국의 조사에 의하면 레드 플레이어들한테 살해당한 것 같다고 한다.

삼촌이 없어지자 강철 길드는 대혼돈에 빠졌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뿌득-!

생각하면 할수록 이가 갈렸다.

정도현. 그놈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다.

녀석과 엮이고 나서부터 내 주변은 엉망진창이 됐다.

“씨발… 너도 소중한 걸 잃어봐야지. 그래야 공평하잖아?”

정보 길드를 이용해 놈의 뒷조사를 했을 때, 함께 사는 가족이 있다고 들었다.

강유성은 사람을 고용해서 놈의 가족을 모조리 죽여 버리기로 했다.

피는 못 속인다고. 삼촌이랑 생각하는 게 아주 똑같았다.

[전화를 받지 않아…….]

“…이것들이 감히 내 연락을 씹어?”

같은 공략팀 소속의 길드원들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길드에서 추방된 뒤로 아예 번호를 차단한 모양이다. 이 배은망덕한 것들.

“제기랄!”

그는 분한 마음에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이러면 곤란했다.

그는 암흑가에 발을 들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지간한 일은 삼촌한테 부탁하면 알아서 처리됐으니까.

그러니 따로 연락처를 아는 레드 플레이어들도 없다.

즉, 살인 청부를 맡기려면 암흑가에 직접 가야만 했다.

하지만 거긴 레드 플레이어들의 소굴이나 마찬가지. 그를 지켜 줄 사람이 필요했다.

마탑의 의수와 의족은 굉장히 섬세하다. 강한 충격이 전해지면 부품이 고장 날 터.

이제 그는 플레이어랑 싸울 수 없었다.

“씨발. 좋아, 혼자 가면 되잖아!”

이쯤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그는 오기가 생겼다.

그래. 어지간한 녀석들은 자신의 레벨을 보고 쫄아서 다가오지 못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중앙 지역의 암흑가로 향했다.

‘그린 베놈. 청부 살인으로는 가장 유명하다 했었지.’

다른 곳보다 단가가 비싸지만 그만큼 일 처리가 빠르고 확실하다 들었다.

물론 그가 맡길 의뢰는 플레이어를 죽이는 게 아니니 암살자의 실력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그래도 기왕이면 빈틈없이 하는 게 좋겠지.’

암흑가에 도착한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골목을 거닐었다.

제발 아무도 시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그린 베놈의 아지트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

끼익-!

문을 열자 위험하고 음산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강유성은 카운터를 보던 길드원에게 시민증을 내밀었다.

“…강유성? 혹시 강지호 길드장의 조카?”

“맞아.”

“어디 얼굴 한 번 까 봐.”

스륵.

강유성은 후드를 머리 뒤로 넘겨 얼굴을 비춰 줬다. 길드원이 시민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좋아. 안쪽으로 쭉 들어가 봐.”

강유성이 건물 내부로 들어오자 길드원들이 다들 쳐다봤다.

테이블 상석에 앉아 술을 마시던 남자가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누굴 죽이고 싶은데?”

“어려운 건 아니야. 어떤 플레이어의 가족을 죽여 줬으면 해. 노인이랑 꼬맹이. 이렇게 두 명이야.”

“뭐야. 일반인을 죽여 달라고?”

“꼬맹이는 플레이어긴 한데 제작 계통이야. 노인은 일반인이고.”

“그게 그거지.”

그가 맡길 의뢰는 맥 빠질 만큼 쉬웠다. 길드 간부가 놀리듯이 말했다.

“겨우 그런 거로 우릴 고용하려고? 돈이 썩어 넘치나 보네.”

“여기가 업계 최고라 들었으니까. 기왕 할 거면 확실히 해야지.”

“크! 우리 고객님이 안목이 좀 있으시네. 좋아. 플레이어는 누군데?”

“혹시 정도현이라고 알아?”

이름을 언급하자 맥주를 마시며 웃고 떠들던 길드원들이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간부는 입에 머금었던 내용물을 도로 잔 속에 뱉었다.

“그, 그분은… 왜?”

“그분?”

“너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간부가 헐레벌떡 위층으로 뛰어갔다.

잠시 후 그는 웬 남자를 데리고 내려왔다.

[윤우빈] [LV.83]

남자의 레벨에 강유성이 잔뜩 긴장했다.

‘뭐야? 저 레벨이면 길드장 아니야?’

겨우 이깟 의뢰에 길드장까지 개입한다고? 그는 이해가 안 됐다.

툭.

윤우빈이 강유성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야.”

“…예?”

“넌 왜 벌집을 들쑤시는 거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윤우빈의 돌직구에 강유성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느낌이 팍 왔다. 여기서 혓바닥 잘못 놀렸다간 큰일 난다는 걸.

“정도현의 가족을 죽여 달라고?”

“…예.”

“그래. 죽였다고 치자? 그럼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생각은 해 봤어?”

“…정도현이 누군지 아십니까?”

“알다마다. 저번에 건드렸다가 개박살이 났거든.”

강유성은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됐다.

정도현을 언급할 때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를.

윤우빈 패거리는 이미 그 녀석과 접촉했고 처참히 깨진 듯했다.

강유성은 다급히 변명을 뱉었다.

“저, 정도현을 건드릴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놈 가족들만 조용히 처리하고…….”

“이 새끼 이거 말귀를 못 알아먹네. 그게 그거잖아!”

퍼억-!

윤우빈이 그의 얼굴을 냅다 후려쳤다.

바닥에 자빠진 강유성이 급히 일어섰지만 이미 발차기가 날아든 뒤였다.

“컥!”

턱을 걷어차였다. 시야가 흔들리고 머릿속은 징징 울린다.

그런 와중에도 윤우빈과 간부의 대화는 선명히 들렸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일단 적당히 밟아 놔. 정도현이랑 통화 좀 해 볼게.”

“예.”

그 말에 강유성은 도망치려 발버둥쳤지만 금세 붙잡혀 바닥에 나자빠졌다.

이어서 길드원들의 구타가 쏟아졌다.

* * *

“으…….”

잠시 뒤, 강유성이 힘겹게 눈을 떴다.

몸 전체가 쑤셨다.

팔다리는 사슬로 꽁꽁 묶여서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속박용 아이템 같았다.

그를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은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다.

“안 죽여도 괜찮습니까?”

[그놈까지 죽으면 일이 꼬일 수도 있어. 어차피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는 놈이니까 목줄만 단단히 채워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윤우빈이 고갤 돌려 그를 쳐다봤다.

“야, 죽기 싫지?”

“흐윽… 사, 살려만 주세요…….”

“그럼 맹세해. 다신 정도현이랑 그 주변에 피해 끼치지 않겠다고.”

윤우빈이 피의 맹약서를 들이밀며 계약을 강요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서명했다.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맹약을 맺자 길드원들은 사슬을 풀어 줬다. 그다음 아지트 밖으로 질질 끌고 가 쓰레기 투기하듯 내던졌다.

“다신 이 근처에 얼쩡거리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캬악, 퉷!”

쾅-!

길드원들이 으름장을 놓고 문을 시끄럽게 닫았다.

강유성은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꼭 노숙자 같았다.

뺨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씨발, 개새끼들…….”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불과 보름 전만 해도 남 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었는데.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흐윽, 흑…….”

그가 서럽게 울며 골목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여기저기 찜질을 당해서 몰골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암흑가에서 이런 꼴로 혼자 돌아다니는 건 덤벼 보라고 도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하이에나 같은 놈들이 냄새를 맡고 슬금슬금 다가왔다.

“어이, 형씨. 왜 질질 짜고 그래?”

순식간에 포위당한 강유성. 레드 플레이어들은 그를 살펴보다 고갤 갸웃했다.

“응? 어디서 본 얼굴 같은데…….”

“아! 강철 길드장 조카 아냐?”

“맞네. 근데 이런 덴 왜 온 거지?”

강유성은 다급히 도망쳤지만 금방 붙잡혀 으슥한 뒷골목으로 질질 끌려갔다.

그는 맞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두들겨 맞았다.

하이에나 무리는 그의 품을 뒤적이며 돈 될 만한 걸 찾아봤다.

“뭐야. 아무것도 없는데?”

“에이, 씨. 이미 다 털렸네.”

지갑은 텅 비어 있었다.

기절한 사이에 윤우빈의 부하들이 슬쩍한 것이다.

허탕을 친 그들은 분풀이로 얼굴에 침을 뱉고 배를 몇 대 걷어찼다.

“그냥 죽이고 경험치나 얻자.”

“너무 위험하지 않아?”

“그래도 강철 길드 소속인데…….”

“너희 소문 못 들었냐? 이 새끼 길드에서 쫓겨났잖아. 장애인 됐다고.”

누군가가 술집에서 주워들은 이야길 늘어놨다.

“봐봐. 의수랑 의족이지.”

“진짜네.”

“여기서 객사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쓸걸? 길드장이 실종된 마당에.”

하이에나들의 끈적한 시선이 강유성을 휘감았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재산인 목숨을 앗아갈 속셈이다.

“사, 살려 주세요…….”

강유성은 암흑가에 혼자 온 걸 후회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호위를 구해야만 했다. 하지만 인제 와서 후회한들 늦었다.

그는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

“저 녀석 뭐야?”

“이런, 씨… 도망쳐!”

레드 플레이어들이 저들끼리 웅성거리더니 황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강유성은 호기심을 못 이기고 슬며시 눈을 떴다.

레드 플레이어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고 있다. 그리고 웬 남자가 그 뒤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누구지?’

콰직! 퍼억!

레드 플레이어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픽픽 쓰러졌다.

괴한의 주먹질에 머리가 반쯤 박살 났다.

강유성은 겁에 질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푹!

레드 플레이어들을 학살한 남자는 시체의 가슴팍에 손을 찔러 넣었다.

뭘 하는 건가 싶었는데 심장을 통째로 끄집어냈다.

“……!”

남자는 그걸 과일 먹듯 으적으적 씹어 먹었다.

그 괴기스러운 행동에 강유성은 구역질이 올라와 입을 틀어막았다.

남자는 다른 시체의 심장들도 뽑아내 싹 다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손가락에 묻은 피를 핥으며 입맛을 쩝쩝댔다.

‘빨리 도망쳐야 해.’

강유성은 저 미친놈한테서 달아나고자 살금살금 움직였다.

그러나 남자는 귀를 쫑긋하더니 짐승처럼 고갤 확 꺾었다.

하관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털이 쭈뼛 선다.

“뭐야. 피라미인 줄 알았는데 메인디쉬였네?”

남자의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탐스러운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 같았다.

“히익! 사, 살려…….”

그게 강유성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푹-!

가슴팍에 칼날처럼 손이 쑥 파고들었다. 남자는 단번에 강유성의 심장을 뜯어 냈다.

심장을 꾸역꾸역 먹어 치운 남자의 눈앞에 시스템 문구가 떴다.

[심장 포식을 완료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소폭 상승합니다.]

[획득 가능한 능력치 한도를 채웠습니다.]

[72시간 후에 심장 포식이 가능해집니다.]

늘어난 능력치에 만족스레 미소 짓던 남자가 돌연 표정을 찡그렸다.

“…뭐야. 백승아가 죽었어? 아, 씨발. 그년 심장은 챙겨야 했는데.”

그는 먹어 치운 심장들의 기억을 정리하다 백승아가 사망한 걸 알게 됐다.

그녀의 심장을 노리고 여기까지 내려왔는데 헛걸음하고 말았다.

“어디 보자, 정도현… 이놈한테 죽었구만? 레벨은 낮아도 뭔가 있나 보네. 개인 특성인가?”

남자는 피 묻은 입술을 싹 핥았다.

꿩 대신 닭이라고. 백승아는 놓쳤으니 이 녀석이라도 잡아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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