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
백승아가 석화 주문을 쏴 대자 강지호는 기겁하며 데굴데굴 굴러서 피했다.
조카나 삼촌이나 하는 짓이 똑같았다.
“내 동생은 죽일 필요 없었잖아.”
백승아가 그렇게 중얼대며 다음 주문을 쐈다.
파바바박-!
돌조각들이 비수처럼 날아든다.
저것에 맞으면 상처 부위부터 서서히 돌로 변하리라.
강지호는 한 번 당해 봤기에 그 공포를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자, 잠깐만!”
백승아가 수인을 맺으며 다시 주문을 준비하자 강지호는 다급히 외쳤다.
그녀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가 무슨 소릴 지껄일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도, 동생을 죽인 건 미안했네! 그러니 제발 살려 줘…….”
강지호는 자존심 다 내려놓고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그로선 그녀를 이길 수 없다.
설사 기적적으로 이긴다 쳐도 그 역시 성치 못할 터.
조카처럼 팔다리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겠지.
“옛날 생각나네. 나도 똑같이 빌었었는데. 제발 동생만은 건들지 말아 달라고.”
“제발…….”
강지호가 엎드려 빌자 백승아는 동생이 죽은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와는 입장이 정반대였지만.
“그때 넌 어떻게 했더라?”
그녀는 아직도 악몽을 꿨다.
동생의 머릴 강지호가 짓밟아 터트리는 순간을.
백승아는 담담히, 그러나 분노를 담아 말했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일어나. 온 힘을 다해서 덤벼. 그래야 후회가 없지. 안 그래?”
그녀의 말에 넙죽 엎드려 있던 강지호가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진행 경로에 석판들이 우수수 솟았다. 마치 도미노 블록을 일렬로 세워 둔 것 같았다.
“씨발! 전부 네년이 잘못한 거잖아!”
콰직! 퍼엉!
강지호가 주먹으로 석판을 깨부수며 전진했다. 그러나 석판의 파편들은 껌딱지처럼 몸에 들러붙었다.
“크악!”
돌덩이들이 열매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강지호는 주문에 구속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되었다.
십여 년 전이면 힘으로 떨쳐 냈겠지만 지금은 늙고 약해져서 불가능했다.
격차가 너무 벌어졌다.
“이 새끼들아! 날 죽이면 너흰 뭐,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아!”
강지호가 분한 마음에 소리쳤다.
그는 싸움을 구경하던 정도현을 노려보며 경고했다.
“내가 실종되면 나랑 만난 네놈이 제일 먼저 의심을 살 거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고.”
“이런, 씨……!”
덥석!
욕설을 뱉으려던 강지호의 안면을 백승아가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하, 하지 마!”
그녀가 뭘 하려는지 직감하고 비명을 질렀다. 잔뜩 겁에 질린 그에게 백승아가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복수하려고 그동안 새로운 주문을 만들었거든.”
“새, 새로운 주문?”
“전신을 석화시켜도 죽지 않고 의식을 멀쩡히 남겨 둘 수 있어.”
“뭐, 뭐라고?”
그 말에 강지호는 숨이 턱 막혔다.
백승아의 주문으로 전신이 돌로 변하면 그 사람은 그걸로 죽는다.
그가 알기론 그랬다.
하지만 백승아는 수용소의 투견으로 지내면서 자신의 주문을 조금씩 개량했다.
그렇게 「메두사」와 어떤 주문을 고안해 냈다.
“「타르타로스」.”
신화 속에 나오는 지옥.
그곳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있다는 ‘타르타로스’.
그녀는 거기서 이름을 따와 붙였다.
이 주문의 효과를 생각해 보면 아주 적절한 작명이었다.
「타르타로스」에 걸리면 석상이 되어 늙거나 굶어 죽지도 않고 영영 고통받는다.
“구원받을 방법은 딱 하나야.”
누군가가 석상을 부숴 주면 된다.
그래야지만 영원한 고통에서 벗어나 안식을 맞이할 수 있다.
백승아의 친절한 설명에 강지호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너, 넌… 사람들을 죽인 범죄자잖아! 나한테 복수할 자격 없어. 없다고!”
“그러는 넌 내 동생 왜 죽였어? 걘 범죄 저지른 적 없는데? 대단한 사명이라도 있었나?”
그녀의 질문에 강지호는 말문이 턱 막혔다.
백승아의 동생까지 죽인 이유?
재밌을 것 같았으니까.
그녀가 애지중지하던 혈육을 눈앞에서 망가뜨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백승아가 싸늘한 음색으로 말했다.
“난 죽어도 할 말 없는 쓰레기가 맞아. 아무리 그래도 걘 건들지 말았어야지.”
쩌적! 쩌저적!
둘이 대화를 나누던 사이에 강지호의 하반신이 돌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리의 감각은 선명히 느껴진다. 단지 그의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뿐.
수십 초가 더 지나자 목 아래까지 돌로 변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을 비롯한 주요 장기들은 여느 때처럼 멀쩡히 활동하고 있었다.
“바다에 푹 담가 줄게.”
“아, 안 돼!”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강지호의 머리까지 돌로 변했다.
절규하는 얼굴의 석상이 되었지만, 머리 위에 떠 있는 정보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강지호는 생각하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머지않아 생각하는 것도 포기하겠지만.
* * *
강철 길드장이 실종됐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용무로 며칠 자리를 비운 줄 알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훌쩍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길드원들은 레드 플레이어한테 당한 거 아니냐며 수군댔다.
강철 길드와 관리국에 비상이 걸렸다.
다른 곳도 아니고 3대 길드장을 건드리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가장 유력한 범인 후보는 보름 전에 나타났던 석화의 마녀, 백승아였네.”
“그 여자는 제가 죽였잖습니까?”
“그래, 나도 알지. 자네랑 싸우는 영상도 버젓이 남아 있고. 그런데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지 않나.”
D구역 지부장, 강민겸은 정도현을 은밀히 불러냈다.
다행히 강민겸은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백승아의 시신이 증발한 것을 토대로 그녀가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내세웠다.
마법 주문으로 죽은 척 속임수를 쓴 게 아니겠냐며 말이다.
“그런데 강지호 길드장이 실종된 날, 자네 집을 찾아갔다던데.”
“예.”
“무슨 얘길 나눴나?”
“강철 길드에 들어오라고 제안하셨습니다. 물론 전 거절했고요.”
“허, 그 양반, 자존심이랑 고집이 워낙 세서 거절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욕봤겠군.”
강민겸은 잠시 뜸 들이다 조심스레 말했다.
“실은… 자넬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실종된 바람에,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자넬 지목한 자가 있어.”
“누굽니까?”
“강지호 길드장과 가깝게 지내던 ‘오승민’ 주교일세.”
낙원 교단. 태양신을 숭배하는 사제와 신도들로 구성된 종교 집단이었다.
모든 구역마다 지부를 설립했고, 관리국은 물론이며 마탑 이상의 영향력을 지녔다.
다만 전면에 나서서 목소릴 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평소에는 관리국 뒤에 숨어서 저들 입맛대로 세상을 좌지우지했다.
“주교님께서 절 왜 의심하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음, 그러니까…….”
“그건 내가 직접 설명하지.”
끼익!
문이 열리며 자줏빛 사제복 차림의 노인이 들어왔다.
옆에는 수행원으로 보이는 검은 사제들도 있었다.
당사자가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강민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오승민] [LV.85]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D구역 교단 지부를 총괄하는 주교님께서 몸소 행차하셨다.
“자네가 정도현이로군.”
오승민은 정도현의 맞은편 자리에 앉고서 염소처럼 길게 기른 턱수염을 매만졌다.
눈빛에서 상당한 적의가 느껴진다.
“난 자네가 석화의 마녀와 손을 잡고 범행을 벌였다고 판단했네.”
“실례지만… 그렇게 판단하신 근거를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저 무엄한!”
“주교님의 말씀에 토를 달다니!”
검은 사제복을 입은 수행원들이 발끈하며 일갈했다.
하지만 오승민이 한쪽 손을 들고 그들에게 나서지 말라고 신호를 줬다.
사제들이 고개 숙이곤 몇 걸음 물러났다.
“자넬 의심하는 이유? 간단하네. 자넨 석화의 마녀와 치열하게 싸웠어. 영상으로 증거가 남았으니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겠지. 하지만.”
정도현의 몸은 아주 말끔했다. 그 어떤 곳도 돌로 변하지 않았다.
영상 마지막 부분을 보면 주문에 당해서 신체의 상당량이 돌로 변했는데도 말이다.
“난 강지호 길드장과 함께 석화의 마녀를 토벌했었네. 그래서 누구보다 그 마녀의 무서움을 잘 알지.”
당시 강지호도 그녀의 주문에 당해 몸 곳곳이 돌이 됐다.
오승민과 사제들은 정화 주문을 걸어 주고 중급 성수도 뿌려 봤지만, 석화의 주문이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게 고작이었다.
결국 오승민은 강지호를 치료하기 위해 C구역 교단에 요청해서 상급 성수를 받아 왔었다.
그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지체되었고 강지호 몸에는 흉터가 잔뜩 남았다.
“석화의 마녀는 그때보다 더 강해졌네. 그런데 자네 몸에는 조그만 흉터도 없지. 혹 마녀가 자네의 석화를 풀어 준 거 아닌가?”
“…아뇨, 성수를 사용했습니다.”
“호오, 성수를 썼다?”
오승민이 그 말만을 기다렸단 듯이 덥석 물었다.
“그날 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들한테 흥미로운 이야길 들었네.”
“…흥미로운 얘기요?”
“자네 말대로 성수를 써서 석화를 치료했다고 말이야. 그런데 그 정도 주문은 상급 성수가 아니고선 별 차도가 없을 거란 말이지?”
그 말에 강민겸 지부장이 입을 쩍 벌렸다.
정도현이 상급 성수를 썼다고?
그건 고레벨 사제들만 제작할 수 있다.
오승민 주교도 중급 성수를 만드는 게 한계일 터.
즉, 상급 성수는 개인이 들고 다닐 아이템이 절대 아니었다. 교단의 엄중한 관리를 받아야 할 물품이었다.
“자네 입으로 말했으니 발뺌할 생각 말게. 영상에도 잠깐 보이더군. 상급 성수 말이야.”
오승민이 확실한 증거를 내밀었다.
느리게 재생한 영상에서 정도현의 손바닥 위로 희끄무레한 형체가 생겨나는 게 보였다.
얼핏 보면 회복 포션을 꺼내는 것 같지만, 오승민은 사제였기에 이게 상급 성수인 걸 한눈에 알아봤다.
“바른대로 말하게. 자네가 쓴 상급 성수를 어디서 입수했지? 대답 여하에 따라 신성 모독죄로 간주할 걸세.”
그 말에 강민겸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신성 모독죄는 플레이어라도 예외가 없었다. 정도현은 끌려가서 종교 재판을 받고 평생 수용소에 갇히리라.
궁지에 몰렸는데도 정도현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강민겸이 더 불안할 지경이다.
“알겠습니다. 어떻게 얻었는지 알려 드리죠.”
정도현이 그렇게 말하곤 휴대폰을 꺼냈다. 그의 행동에 오승민은 고갤 갸웃했다.
갑자기 누구한테 연락하는 걸까.
“어, 나야. 문제가 좀 생겼어.”
정도현은 전화 받은 상대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래, 최대한 빨리 연락해 봐.”
그가 통화를 끊자 오승민이 무섭게 째려봤다.
“자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뭐, 시간이라도 벌 속셈인가?”
“너무 서두르지 말고 잠시 기다려 보시죠.”
“…뭐?”
“조금 있으면 주교님께 연락이 올 겁니다. 제게 성수를 준 사람이 직접요.”
오승민은 기가 찼다.
성수를 훔쳐다 판 놈이 자신한테 전화를 건다고?
말도 안 되는 개소리다. 오승민이 그렇게 생각하며 헛웃음을 지을 때.
띠리링-!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받아 보시죠.”
“…….”
오승민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누구십니까?”
[아, 오승민 형제님. 접니다.]
“……!”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였다.
오승민은 상대가 누군지 떠올리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당황한 그가 말을 더듬으며 확인했다.
“호, 혹시… 신규원 주교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C구역은 넓어서 중앙과 각 지방마다 교단 지부가 설립되어 있다.
그에게 연락한 건 동부 교단 지부를 관리하는 주교 중 한 명인 ‘신규원’이었다.
직책은 같지만 C구역 주교는 사실상 직급이 한 단계 더 높았다.
상관의 연락에 오승민의 손이 덜덜 떨렸다.
[형제님, 정도현이란 청년이 상급 성수를 밀매해서 심문 중이라 들었는데. 맞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허허, 그건 형제님이 오해하셨습니다.]
“예? 오, 오해요?”
[상급 성수는 제가 선물로 준 겁니다.]
신규원 주교의 충격적인 말에 오승민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상급 성수를 선물로 받았다고?’
오승민이 떨리는 눈으로 정도현을 응시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