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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85화 (85/240)

85화

해방단 간부들이 회담을 위해 하나둘 모였다.

C구역에서 활동하는 간부들은 밀항선을 타고 D구역으로 내려왔다.

“다들 잘 지냈나?”

“말도 마. 탈옥범이랑 관리국 놈들이 치고받느라 정신없어 죽겠어.”

“내 구역도 마찬가지야.”

간부들이 각 구역 근황과 잡담을 나누던 중 누군가가 말했다.

“수용소 습격할 때 불멸자가 없어서 뚫기가 좀 힘들었지.”

“그러고 보니 퍼펫이랑 불멸자 죽였다던 놈. 지금 어쩌고 있어?”

“관측자, 네가 감시하겠다고 했었지?”

정도현을 언급하자 간부들이 한규리를 쳐다봤다.

수용소 습격 이후로 다들 바빠서 한동안 그쪽에 신경을 쓰지 못했었다.

그래도 주요 간부를 둘이나 죽인 놈이다. 그냥 놔둘 순 없는 노릇.

작전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탈옥범들로 인한 혼란도 얼추 가라앉았다.

이제 슬슬 녀석의 처우를 결정할 때가 됐다. 한규리가 덤덤하게 말했다.

“정도현은 지금 D구역에 있습니다.”

“…D구역?”

“E구역 떨거지 아니었어?”

“레벨 올리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 확실히 뭔가 능력을 숨기고 있군.”

“사람을 되살리는 아이템도 갖고 있다며?”

간부들은 이전에 받았던 보고로 정도현이 죽은 사람을 되살린 걸 알고 있었다.

되도록 같은 편으로 회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회유하려 나섰던 불멸자도 놈에게 당해 버렸다.

“놈의 처우는 보스께서 정하실 거다.”

근육질의 거한, ‘골리앗’이 그렇게 말하자 간부들도 고갤 끄덕였다.

“그나저나 정기 회담까지 좀 남았는데 왜 소집한 걸까?”

“그 예언자인지 뭔지가 또 미래를 본 거 아냐?”

“그러고 보니 D구역에 생긴다던 폐쇄형 게이트는 어떻게 됐어?”

“피닉스 길드가 무사히 막아 냈습니다.”

그 말에 간부들이 제법 놀랐다. D구역 길드치곤 분전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걸 막아 낸 게 누구 덕인지는 꿈에도 모른 채.

“‘그림자’ 녀석,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회담 시간은 이미 지났는데.”

“허, 참. 그림자가 지각을 다 하고. 별일이네.”

“공간 도약도 할 수 있는 놈이.”

간부들이 시시덕거리던 중 회담장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림자가 왔다고 생각한 간부들은 빨리 들어오라며 재촉했다.

끼익-!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그림자가 아니었다.

시커먼 가면을 쓴 사내와 어린 소녀였다.

“…응?”

“쟤넨 누구야? 혹시 아는 사람?”

“몰라. 처음 보는데?”

회담장에 들어온 건 해방단 보스의 대리인, 그림자가 아니었다.

낯선 이의 등장에 간부들이 일동 당황했다.

정체 모를 남자는 플레이어의 정보를 비공개로 바꿔 주는 ‘칠흑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그 옆에는 호기심 가득해 보이는 소녀가 달라붙어 있었다.

[???] [???]

[강새벽] [LV.1]

‘1레벨?’

간부들은 가면을 쓴 남자보다 소녀 쪽이 더 신경 쓰였다.

1레벨 플레이어는 고레벨보다 더 보기 어려웠다.

고블린 두세 마리만 잡아도 레벨이 오를 테니까.

왜, 시험을 치면 100점보다 0점 맞은 사람이 더 드물지 않던가. 그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물론 저 소녀가 최근에 각성한 걸지도 모르지만.

소녀는 원탁에 앉은 간부들을 쭉 둘러보곤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강새벽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녀의 발랄한 인사에 간부들은 멍하니 쳐다봤다.

골리앗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꼬맹아, 넌 누구냐?”

“어, 강새벽인데요?”

“이름 말고 정체를 밝혀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이곳은 해방단 간부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 장소였다.

“빨리 앉아라.”

“알았어요, 아저씨.”

가면을 쓴 사내가 자연스럽게 원탁에 앉았다. 그러자 강새벽도 남자 옆에 앉았다.

꿈틀.

둘의 태도에 골리앗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움직였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지.”

“잠깐, 그 전에 너희 정체부터 밝혀라. 보스께서 뽑은 간부들인가?”

골리앗이 대표로 질문했다.

퍼펫과 불멸자가 당했으니 공석이 생기긴 했다.

어쩌면 저 둘은 보스가 새로 구한 인재들일지도 모른다.

골리앗의 질문에 가면의 남자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더니 한마디 툭 내뱉었다.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뭐?”

“그땐 이 녀석처럼 쪼그만 꼬맹이였는데.”

가면의 남자는 강새벽의 머리에 손을 툭 얹으며 그렇게 말했다.

골리앗을 꼬맹이라 부르자 다들 당황했다.

저러니 마치 골리앗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 같지 않은가.

몇몇 간부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골리앗은 해방단 창설 멤버야.’

수십 년 전, 골리앗이 저 1레벨 소녀보다도 어렸을 적.

죽어 가던 그를 해방단 보스가 구해 줬다고 들었다.

그때의 은혜를 갚고자 골리앗은 보스를 따랐고, 해방단 설립에 크게 기여했다.

골리앗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보스, 당신입니까?”

“그래, 나다. 한 삼십 년 만인가.”

처음 듣는 목소리였지만 저 특유의 말투는 틀림없는 보스였다.

보스가 그림자를 보내지 않고 직접 나타났다. 해방단 창설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간부들은 순간 숨이 막혔다.

골리앗은 애써 동요를 감추며 말했다.

“…당신이 진짜 보스란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 그래! 그림자처럼 대역일 수도 있잖아?”

골리앗은 보스가 칠흑의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게 의심스러웠다.

그가 기억하기로 보스는 저렇게 티가 나는 위장 아이템을 쓰지 않는다.

그냥 얼굴 자체를 바꾸고 말지.

보스 옆에 있던 강새벽이 대답했다.

“돈 아껴야 한대요.”

“…뭐?”

“얼굴 바꾸는 아이템은 소모성에 지속 시간도 하루밖에 안 된대요.”

그녀의 설명에 골리앗과 간부들은 의아한 눈으로 보스를 쳐다봤다.

돈 몇 푼 아끼려고 가면을 택했다니?

물론 효율이 더 좋은 건 맞다.

칠흑의 가면은 충격으로 부서지지 않는 한 반영구적으로 작동하니까.

대신 눈에 너무 잘 띈다.

정체를 완벽히 감추고 지냈던 보스가 갑자기 돈이 아깝단 명목으로 칠흑의 가면을 쓰다니. 이해가 안 됐다.

‘퍼펫이 죽어서 굵직한 자금줄은 다 끊겼지만…….’

‘그래도 밑구역에서 올라오는 상납금이 있잖아?’

E와 F구역에 흩어져 있는 해방단 단원들은 갱단 조직을 차려 보호세를 거두고, 그중 일부를 해방단 자금으로 보내 준다.

그 돈이면 저렇게까지 궁상떨 필요는 없지 않나?

“아직 소식 못 들었나. F구역에서 보내오던 자금도 거의 다 끊겼다.”

“예? 그게 무슨…….”

“블랙 스컬, 그 흑마법사 길드가 인접 구역들과 거대 조직을 거의 다 흡수했어.”

블랙 스컬이라니? 처음 듣는 길드였다.

기억에 남지 않은 걸 보면 그리 대단치 않은 조직일 텐데.

대체 무슨 수로 다른 구역들을 하나둘 정복했단 말인가.

“그곳 간부들은 레어 아이템으로 무장했다더군. 장비 강화도 제법 한 것 같고.”

“F구역 놈들이…….”

“레어 템을?”

보스의 말에 간부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정도면 D구역 플레이어들이랑 거의 맞먹는 수준 아닌가.

다른 구역의 길드들이 밀릴 만도 했다.

“뒤를 봐주는 세력이 따로 있는 듯하다. 그러니 몇 명 내려가서 조사하고, 할 수 있으면 놈들을 정리해 줬으면 한다.”

보스는 블랙 스컬을 새로운 자금줄로 삼고 싶었다.

간부들이 눈치를 살폈다.

그들도 C구역에서 처리할 일들이 많아 바쁜 상황이었다. 그런데 F구역까지 내려갔다 오라니.

썩 내키지 않았다.

“제가 가겠습니다.”

다들 쉬쉬할 때 골리앗이 나섰다.

“대신, 진짜 보스인지 증명해 주십시오.”

“어떻게?”

“저랑 한판 붙어 보시죠.”

골리앗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단순명료한 방식. 참으로 골리앗다웠다. 보스가 피식 웃었다.

“나한테 지면 진짜인 걸 인정하겠다?”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직접 붙어 보면 보스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하긴 그렇겠군. 그럼 오랜만에 대련해 볼까?”

그 말에 골리앗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릴 때부터 그는 보스를 동경했다.

그처럼 강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노력했다.

얼마나 죽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그렇게 했는데도 그는 끝내 따라잡지 못하고 한계에 봉착했다.

“늘 그랬듯 먼저 들어와라. 선공은 양보하마.”

보스의 말에 간부들이 당황했다.

밖으로 안 나가고 여기서 싸운다고?

누군가가 말릴 새도 없이…….

쾅-!

골리앗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보스는 그가 내지른 주먹을 한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빙글 돌렸다.

쿵!

골리앗의 몸이 핑그르르 돌아가면서 바닥에 처박혔다.

맨손으로 골리앗의 공격을 되받아친 것이다.

바닥에 대자로 뻗은 골리앗.

다친 곳은 없다. 그저 힘을 역이용당해 넘어졌을 뿐이다.

다시 일어서서 싸울 수 있다.

그러나 골리앗은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선 이미 결론이 났으니까. 골리앗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정말 보스셨군요.”

이 기묘한 감각, 틀림없었다.

어릴 적에 수없이 당했던 보스의 무술이다.

해방단을 창설한 이후 그는 보스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세월로 치면 거의 삼십 년.

그에게 있어 보스는 생명의 은인이자 아버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가슴이 저며 왔다.

서운하고도 너무 반가웠다.

“…한 번도 안 온 건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미안하다. 그때 이후로 이제 나 자신 말고는 아무도 못 믿겠거든. 골리앗, 너조차도.”

“그럼 저 꼬맹이는 뭡니까?”

“저 앤 예언자다. 그러니 남한테 맡길 수 없어. 내가 데리고 있어야만 해.”

보스가 그렇게 말하곤 쓰러진 골리앗한테 손을 내밀었다.

골리앗이 웃으며 손을 붙잡고 일어섰다. 어릴 때 보스 밑에서 수행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금방 끝내고 오겠습니다.”

“다른 간부들은 안 데려가도 괜찮나?”

“제 능력 아시잖습니까. 저 혼자 충분합니다. 다른 간부들도 요새 바쁘고요.”

“…그래. 그래도 방심하진 마라. 다른 세력이 그놈들 뒤를 봐주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골리앗은 다른 이의 도움 따윈 필요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보스한테 성장한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를 지켜보던 한규리가 침을 꼴깍 삼켰다.

[???] [LV.91]

골리앗의 레벨은 무려 91.

해방단 간부 중에서도 가장 높았다.

저 정도면 C구역 상위 길드 팀장급이 아니고선 못 막는다.

고레벨 플레이어로 인정해 주는 기준이 100레벨부터임을 감안하면 골리앗은 엄청난 강자였다.

‘도현 씨한테 빨리 알려야 해.’

저번에 들었다. 블랙 스컬은 정도현의 수하들이 관리하는 길드라고.

골리앗이 나서면 블랙 스컬은 하루아침에 무너지리라.

* * *

한규리는 간부 회담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정도현을 찾아갔다.

그녀의 보고에 정도현이 고갤 끄덕였다.

“해방단 보스가 그림자 대신 몸소 행차하셨다?”

“네.”

코드 네임, 그림자. 공간 이동 능력을 가진 플레이어.

해방단 보스는 그림자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간부들에게 전언을 내리거나 보고를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림자가 안 오고 본인이 직접 왔다는 건…….’

그림자한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공간 이동이 가능한데 못 올 정도면 죽었거나 크게 다쳤단 소린데.’

장거리 도약이 가능한 녀석을 죽인다니, 상당히 어려워 보였다.

어쩌면 죽거나 다친 게 아닐지도 모른다.

바쁜 일이 있어서 미처 못 왔던가.

뭐, 녀석이 어떻게 됐는지는 당장 중요치 않다.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는 골리앗이었다.

“91레벨이라니, 꽤 골치 아프게 됐네.”

“…줄 건 주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한규리는 블랙 스컬을 포기하자고 넌지시 말했다.

아무리 정도현이 강해도 91레벨과 정면으로 싸우는 건 무리였다.

게다가 골리앗은 전투 경험도 풍부하다. 모든 면에서 그를 앞설 터.

“그래, 싸우면 내가 질 수도 있겠지.”

정도현도 이번 상대는 100%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그 녀석들한테 말해 줄 수도 없고.’

류동하 일당이 미리 도망치면 정보가 새어 나간 걸 알아챌 거다.

그럼 해방단 간부 중에 첩자가 있는지 밝혀 내려 하겠지. 그럼 한규리가 위험해진다.

블랙 스컬과 한규리.

그의 선택에 따라서 둘 중 하나가 위태로워진다.

“설사 싸워서 이기더라도 성치 못할 거예요.”

팔이나 다리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잃을지 모른다.

한규리가 그렇게 말하며 그를 걱정했다.

물론 그 문제는 엘릭서가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녀는 모르겠지만.

“정도현 씨가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뭐, 그렇지.”

개노답 삼인방은 그를 해코지하려 했던 놈들이니까.

그녀 말대로 목숨 걸고 구해 줄 필욘 없었다.

하지만 놈들이 죽고 블랙 스컬이 무너지면 곤란한 점이 있었다.

“실은 블랙 스컬이 F구역 곳곳에 고아원을 세우고 관리 중이거든.”

“…고아원이요?”

“그래, 내가 그러라고 지시했어.”

정도현은 이전부터 F구역 아이들이 제대로 먹고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

길드가 안정화되고 수입이 확 늘어나자 곧바로 추진했다. 이제 막 첫걸음을 뗐다.

그런데 그걸 골리앗이 짓밟으려 하고 있었다.

그의 얘기에 한규리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블랙 스컬이 무너지면 거기 있는 애들은 어떻게 되겠어?”

“…그래서 목숨을 거시겠다고요?”

“응.”

“정도현 씨… 바보예요?”

그녀가 뭐라 말하든 정도현은 골리앗과 싸우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른 동료분들은요? 같이 싸우실 건가요?”

“아니, 걔들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데려가도 도움이 안 될 거야.”

박성원은 「정의집행」이 있으니 어쩌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데려가기엔 상대가 너무 위험했다. 자칫하면 죽을 거다.

“혼자 싸우겠다고요?”

“그래, 내가 잘못되면 할아버지를 부탁해.”

“…알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니까. 비장의 카드가 있거든.”

정도현이 그렇게 말했지만 한규리는 그가 잘못될까 불안한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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