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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1원 상점-83화 (83/240)

83화

“믿기 어렵군, 이런 곳에 너 같은 인재가 있다니.”

차상훈은 자신의 발차기에 당하고도 바로 일어서는 정도현을 극찬했다.

레벨은 물론이고 힘이나 속도에서도 차상훈이 확실히 우위였다.

다른 75레벨 플레이어였으면 진즉 다리가 풀렸을 터.

하지만 정도현은 달랐다.

‘내 공격과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어.’

마치 미래를 엿본 것처럼 한 박자 먼저 움직였다.

힘으로 밀리는 걸 알고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다. 검을 교묘히 꺾고 비틀며 상대의 힘과 충격을 분산시켰다.

“하지만 너도 알 텐데? 지금 네 힘으론 버티는 게 고작이란 걸.”

버틴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이대로 계속 싸우면 정도현의 체력과 집중력도 차츰 떨어질 터.

그와 달리 정도현은 실수 한 번이 치명적이며 패배로 연결된다.

“패배를 인정하고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내가 은퇴하면 너한테 사업을 물려주지.”

그 말에 임세준이 입을 쩍 벌렸다.

그가 차상훈한테 충성을 맹세한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다.

훗날 차상훈이 현역에서 물러나면 그의 마약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서.

그런데 그걸 애먼 놈한테 뺏기게 생겼다.

“이, 이러는 법이 어딨습니까!”

임세준이 항의하자 차상훈이 그를 째려봤다.

그의 눈빛은 신뢰가 아닌 불신과 실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정도현한테 쪽도 못 쓰고 탈탈 털리는 모습만 보여 줬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지만 임세준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건 그 녀석이 아니라 접니다!”

“아, 그래. 그랬었지.”

그 말에 차상훈은 성가시단 표정을 지었다.

정도현의 재능에 매료돼서 가장 중요한 걸 까먹고 말았다.

그가 내려온 건 인재 발굴이 아니라 그리핀 길드의 구슬 마약 때문이었다.

임세준을 내치면 구슬 마약도 함께 날아간다.

차상훈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제안했다.

“내 후임 자리는 정도현한테 양보하게. 자넨 뒤에서 그를 받쳐 주는 게 어떤가.”

“…예?”

“자네가 그랬잖나?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한다고. 안 그럼 죽는다고 말이야.”

자기보다 잘난 놈 위에 올라서려 들면 되겠는가. 그건 순리에 어긋난다.

차상훈의 말에 임세준은 화가 치밀었다.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런데 대놓고 들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가 분해서 주먹을 꽉 움켜쥘 때.

정도현이 불쑥 끼어들었다.

“아까부터 너희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뭔 헛소리야?”

차상훈은 답답하단 표정으로 중얼댔다.

“사람이 너무 잘나도 탈이야. 좋게 말해 줘도 도통 말귀를 못 알아먹어.”

차상훈이 단검을 치켜들며 자세를 잡았다.

아무래도 힘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 봐야만 정신을 차릴 듯했다.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해 상대해 주마.

그가 그렇게 마음먹었을 때.

“……?”

정도현이 대뜸 착용한 장비 템을 모조리 인벤토리로 집어넣었다.

그의 돌발 행동에 차상훈은 당황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그다음부터였다.

정도현이 다른 장비 템들을 꺼내 입었다.

아까 끼고 있던 것보다 더 좋아 보였다.

‘레어 등급인가?’

날 상대하면서 안 좋은 장비 템을 꼈다고?

실수였을 린 없다. 일부러 그런 거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시건방졌다.

“+5강 세트 아이템, 이거면 되겠지.”

“뭐라 지껄인 건가? 지금 날 놀리나?”

차상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오만방자함에도 정도가 있지.

감히 날 무시해? 본때를 보여 주마.

“「블러드 아이」.”

화아악-!

차상훈은 아껴 뒀던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눈동자에서 새빨간 안광이 피어올랐다.

타앙-!

그가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아까보다 훨씬 빠르다.

“버르장머릴 고쳐 주마!”

카가가강-!

차상훈의 외침과 함께 참격이 쏘아졌다. 두 자루의 단검이 번갈아 가며 정신없이 휘몰아쳤다.

정도현은 뒤로 물러나며 쏟아지는 칼날을 비스듬히 흘렸다.

장비를 바꾼 덕에 아까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정도현이 예상보다 훨씬 잘 버티자 차상훈은 이를 꽉 깨물었다.

‘죽여 버린다!’

이젠 다 필요 없다.

이깟 놈 하나 못 죽이고 쩔쩔매는 것처럼 보일까 봐 기분이 불쾌했다.

차상훈은 집요하게 급소를 노렸다.

공격에 살기가 담기자 구경꾼들 입장에선 그렇게 살벌할 수가 없었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냥 놔둬요.”

“하지만…….”

그새 길드원들을 제압한 박성원이 정도현을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도와주려고 걸음을 떼자 서아린이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렸다.

“닭다리니 뭐니 말하면서 경험치 욕심내던데, 우리가 끼어들면 진짜로 화낼걸요?”

그녀의 말에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려 있던 임세준이 눈을 크게 떴다.

‘경험치 욕심?’

임세준은 정도현의 목적과 닭다리의 의미가 뭔지 깨달았다.

녀석은 차상훈을 사냥해야 할 몬스터처럼 취급한 거였다.

‘저 미친 새끼!’

아무리 전투 센스가 좋아도 그렇지.

정도현 혼자선 차상훈을 쓰러트릴 수 없다.

임세준은 둘의 전투를 지켜보며 히죽 웃었다.

그는 반평생 레드 플레이어로 살았다.

그래서 척 보면 알 수 있었다.

차상훈의 공격에서 살의가 느껴진다.

그가 진심을 발휘했으니 곧 결판이 나리라.

‘잘난 척하더니 꼴좋다.’

카가가강!

그러나 임세준의 예상과 달리 어느새 둘은 백여 합을 주고받았다.

그런데도 정도현 몸에는 상처 하나 생기지 않았다.

‘저 끈질긴 놈이. 빨리 뒈져!’

임세준이 속으로 저주를 퍼부을 때.

차상훈의 눈동자에 일렁이던 붉은 안광이 옅어졌다.

「블러드 아이」의 지속 시간이 거의 다한 것이다.

“…큭!”

차상훈의 손놀림에서 조급함이 비쳤다.

설마 버프가 끝날 때까지 버텨 낼 줄은 몰랐던 모양.

휙! 샤악!

정도현의 기세가 바뀌었다. 공격 빈도가 훨씬 늘었다.

둘의 능력치가 비슷해지자 팽팽하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운다.

그와 검을 섞을 때마다 차상훈은 뜨거운 모래사막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망할, 어쩌다 이렇게 말렸지?’

내가 유리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정도현은 밀리는 척했을 뿐, 한 번도 위험했던 적이 없었다.

차상훈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블러드 아이」가 완전히 끝나면 뭘 해도 패배하는 미래밖에 안 보였다.

어디로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려 하면 정도현은 이미 그에 맞춰서 대비했다.

‘그렇게 어렵진 않아.’

불리할수록 고를 수 있는 선택지의 폭은 좁아지는 법이니까.

정도현이 그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싱긋 웃었다.

빠직-!

그 미소가 차상훈의 마음속에 불을 질렀다.

놈의 신원을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얼굴을 마구 난도질하고 싶었다.

샤악! 팅-!

정도현의 절묘한 찌르기. 격분했던 차상훈은 조금 늦게 반응했다.

단검 하나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 핑그르르 돌며 저 멀리 날아갔다.

“크윽!”

차상훈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정도현은 굳이 뒤쫓지 않았다.

유인책인 걸 간파한 것이다.

정도현은 오히려 상대의 함정을 역이용했다.

“……!”

차상훈이 거리를 벌려 주자 정도현은 중급 회복 포션을 꺼내 사용했다.

검기로 증발했던 마력이 서서히 차오른다.

“제기랄!”

제대로 당했다. 설마 중급 포션을 갖고 있었을 줄이야. 이건 예상치 못했다.

포션을 쓴 정도현이 자신 있게 달려온다.

‘젠장, 이제 어쩌지?’

죽음을 앞둬서일까. 차상훈의 시간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졌다.

그러다 떠올렸다. 그의 인벤토리에 있는 어떤 아이템을.

“어?”

차상훈이 아이템을 꺼냈다. 그걸 본 임세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건 그가 샘플로 줬던 도핑제였다.

차상훈이 궁지에 몰리자 속으로 조마조마했던 그는 겨우 한시름 놨다.

‘저걸 쓰면 무조건 이길 수 있어.’

능력치 상승도 상승이지만 지속 시간이 무려 30분이다.

그러니 아까처럼 도중에 힘이 빠져서 역전되진 않을 터.

차상훈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히죽 웃었다.

까득-!

그가 환약을 깨물어 삼켰다.

“……?”

카앙-!

정도현이 뒤로 밀렸다.

검을 맞대고 나서 그도 눈치챘다.

방금 차상훈이 삼킨 게 도핑 계열 아이템이란 걸.

‘저런 아이템은 처음 보는데.’

정도현은 날아드는 단검을 피하거나 막으면서 얼마나 강해졌는지 가늠했다.

「블러드 아이」를 썼을 때보다 신체 능력이 좀 더 강해졌다.

‘도핑제는 효과가 좋은 대신 지속력이 짧아.’

그도 예전에 밥 먹듯이 사용해서 한계를 잘 안다.

아무리 길어 봤자 5분이 최대.

게다가 도핑 효과가 강할수록 끝난 이후 리스크도 커진다.

특히 상급 도핑제 같은 경우엔 하루 내내 능력치가 확 떨어진다.

그러니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럼 놈도 자멸하겠지.

“…큭큭!”

차상훈의 거슬리는 웃음소리가 귓가를 비집고 들려왔다.

저 의기양양한 표정. 전혀 궁지에 몰린 사람 같지 않았다.

이해가 안 돼서 쳐다보자 차상훈이 킬킬대며 말했다.

“방금 내가 먹은 건 도핑제다.”

“그건 보면 알아.”

채앵! 카가각!

정도현이 거릴 좁히며 검을 휘두르자 차상훈이 여유롭게 받아쳤다.

치열한 공방이 오가는 와중에도 둘의 대화는 계속됐다.

“근데 이건 좀 특별해.”

“…….”

“효과도 훨씬 좋고 지속 시간도 30분이나 되거든.”

30분?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와 눈빛이 사실이라 말해 주고 있었다.

정도현의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녀석이 왜 저리 자신만만하게 구는지 직감했기 때문이다.

“「블러드 아이」의 쿨타임은 10분이다.”

차상훈은 약점이나 마찬가지인 스킬 쿨타임을 스스로 까발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알려 준들 바뀌는 건 없으니까.

“10분 후에 「블러드 아이」까지 발동하면 네가 버틸 수 있을까?”

강력한 버프를 두 개나 두른다면 정도현도 버틸 재간이 없을 터.

차상훈은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다.

네놈의 명줄도 이제 10분밖에 안 남았다고.

“어디 끝까지 발악해 봐라!”

차상훈이 그렇게 비웃으며 단검을 휘둘렀다.

서로의 칼이 맞닿을 때마다 검기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서아린 씨, 이젠 도와줘야 합니다!”

“잠시만요. 좀 더 지켜봐요.”

“예? 저 녀석이 하는 말 들으셨잖아요.”

박성원이 점차 밀리기 시작한 정도현을 돕기 위해 돌격 자세를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서아린이 말렸다.

“도현 씨 표정을 좀 보세요.”

“예?”

“저게 어딜 봐서 위험한 사람이야.”

박성원은 정도현의 얼굴을 살펴봤다.

그녀 말대로 당황하거나 초조함이 전혀 안 느껴진다.

뭐랄까. 짜증과 아쉬움이 가득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궁지에 내몰린 사람 같지는 않았다.

“혼자서 안 될 것 같으면 진즉 도와 달라 했겠죠. 그런 거로 고집 피울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정도현은 무모하지만 냉철한 판단력도 지녔다.

승산도 없는 싸움에 계속 매달릴 사람은 아니었다.

즉, 이길 자신이 있단 뜻이겠지.

‘하긴, 아직 레어템만 끼고 있잖아.’

여차하면 원래 쓰던 장비로 압살해 버릴 수 있을 거다.

물론 그러면 경험치도 조금밖에 안 들어오겠지만.

“야, 그 도핑제 어디서 났냐?”

정도현은 단검을 옆으로 흘리며 질문했다. 그러자 차상훈이 킬킬대며 조롱하듯 말한다.

“곧 뒈질 놈한테 알려 줄 필요가 있나?”

“아, 그러세요?”

채앵-!

정도현은 순간적으로 힘을 실어 상대를 쭉 밀어냈다.

차상훈은 날렵하게 공중제비를 돌며 충격을 흘려보냈다.

그러는 사이 정도현은 무기를 바꿨다.

똑같은 무기였지만 이놈은 +10강짜리였다.

게다가 마이스터 서광원이 직접 만들어 준 거라 기본 성능이 에픽 등급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차상훈은 그것도 모른 채 으스댔다.

“자, 이제 5분 남았…….”

카앙-!

정도현이 달려들며 칼을 휘둘렀다.

차상훈은 아까처럼 막아 내려다 흠칫했다.

“컥……!?”

검에 담긴 힘이 엄청났다.

차상훈은 뒤로 쭉 밀려나더니 휘청댔다. 정도현은 그 틈에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채채채채챙-!

차상훈은 필사적으로 받아쳤지만 십여 합 만에 하나뿐인 단검을 놓치고 말았다.

“어, 어떻게!”

“곧 뒈질 놈한테 뭐 하러 설명해 줘.”

“자, 잠깐! 도핑제에 대해서 말할게!”

“필요 없어.”

콰직-!

정도현은 상대의 머리를 내리쳐 수박처럼 쪼갰다.

“아…….”

믿었던 이가 쓰러지자 임세준은 나라 잃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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